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43
정도마신 42화
원향루(元香樓).
하북성 번화가에 자리한 기루.
그 앞에서 한 기녀를 희롱하던 사내가 한 미모의 여인에게 손목을 잡힌 채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이거 안 놔! 아아악!”
사내는 악을 쓰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의 손목을 비틀어 꺾고 있는 여인의 손은 가녀리게 생긴 것과 다르게 철근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횡포는 그만 부리시고 얌전히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아, 알았어!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제발 이것 좀 놔줘!”
“흥!”
여인의 고운 손은 그제야 사내의 손목을 놓으며 밀어냈다.
사내는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다가 황급히 일어나 손목을 부여잡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괜찮아요?”
기녀는 자신을 구해 준 여인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름답다. 수란 언니보다도 예뻐.’
한껏 치장하고 꾸민 자신보다, 여인의 미모는 훨씬 아름다웠고 고혹적이었다.
원향루의 제일 기녀인 수란보다도 뛰어나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태어나 본 여인들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인이 산적 같은 남자를 한 번에 제압해 버리고 쫓아냈다는 사실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기녀는 거절할 때 나긋나긋하면서도 단호해야 해요. 사내에게 분노할 여지를 주지 말고, 오히려 당신에게 더 잘 보이고 싶게끔 만드세요.”
“예? 아, 예…….”
마치 기녀 생활을 오랫동안 해 본 듯한 여인의 말투에 기녀는 조금 의아했지만, 그 조언은 마음에 굉장히 와닿는 것이었다.
이때 여인이 말했다.
“나는 정유문의 천화라고 해요. 혹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찾아오세요.”
“정유문…… 혹시 안평 마을의 그 정유문인가요?”
“네, 맞아요.”
천화는 생긋 웃고는 말했다.
“그럼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아? 아니, 잠깐만…….”
기녀는 황급히 자신의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러나 천화는 대가는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기녀 생활은 길지 않으니 돈을 목숨처럼 소중히 하라는 말만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효, 경공을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천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기녀와 빠르게 헤어진 뒤, 도망갔던 사내의 뒤를 쫓았다.
대충 사라진 방향으로 따라가던 그녀는 한 골목에서 멈추었다.
그곳에는 아까 그 사내가 손목을 어루만지며 혼자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천화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 사내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하려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천화는 순간 깜짝 놀랐지만,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안도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너무나 익숙한 손길이었기 때문이다.
천화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저런 놈을 가만두라고?”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바로 묵영이었다.
묵영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불필요한 살인은 피하라고 하셨어.”
천화가 말했다.
“저런 놈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나. 그때는 힘이 없어서 당했지만 지금도 그럴 필요는 없잖아?”
“당분간은 참아.”
“왜? 지금 여기서 조용히 처리하면 지존도 모르실 거야.”
천화는 손을 놓으라는 듯 묵영을 노려봤다.
하지만 묵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화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천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했다.
“알았다, 알았어.”
묵영은 그제야 손을 내렸다.
천화가 물었다.
“몇 개나 했어?”
묵영은 대답 대신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다 끝냈구나. 나도 다 끝냈어. 돌아가자.”
그러자 묵영이 말했다.
“나 좀 도와줘.”
“응?”
“강아지를 찾고 있어. 어떤 여자애가 잃어버렸대. 몸은 하얗고 이마에만 옅은 갈색 털이 있는 어린 강아지. 잃어버린 지 한 시진 정도.”
천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다섯 개 다 끝났다며?”
사완악이 명령한 다섯 개의 선행이 끝났는데, 왜 그런 일에 나서냐는 뜻이었다.
그러나 다음 묵영의 대답에 천화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름은 초초. 자기 이름을 잘 알아듣는 대.”
“초초…….”
천화와 묵영이 도망쳐 나온 기루에서 키우던 개의 이름이었다.
천화도 그 개를 좋아했지만, 묵영에게 초초는 너무나 특별한 의미였다.
묵영은 자신의 어머니가 일을 할 때 언제나 그 개와 함께 놀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초초도 묵영만을 졸졸 따라다녔었다.
어느 날 어떤 개장수에게 팔려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천화는 번잡한 거리를 한번 돌아본 후,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빨리 찾아보자.”
* * *
“부르셨나요.”
문주전을 찾아온 구휘의 목소리에서는 애써 눌러 담고 있는 불만의 기색이 느껴졌다.
설린은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말했다.
“아직도 기분이 풀리지 않은 것 같구나.”
구휘는 쀼루퉁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린이 다시 말했다.
“그래도 정식 문도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 않니? 당분간 지켜볼 생각이니 네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구나.”
구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문주님이 결정하신 일이고, 총관님과 호법님도 더 이상 말리지 않으셨으니 저 따위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요.”
설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정유문에서 충분히 의견을 말할 자격이 있으니까.”
“…….”
구휘는 묵묵히 땅만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문주님은 정말 그들을 믿으십니까?”
설린이 멈칫하며 구휘를 쳐다봤다.
“사람을 납치하고, 아무렇지 않게 독까지 썼던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개과천선을 한다고요? 저는 절대 믿을 수 없습니다. 위험한 자들이라고요. 지금은 사 공자님께 화를 당할까 봐 두려워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설린은 가만히 구휘를 바라보며 끄덕였다.
“그래. 사실 그럴 가능성이 더 높겠지.”
구휘는 조금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문주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왜 그들을 받아 주신 거죠? 정유문의 전통이라는 건 그저 듣기 좋은 변명이나 다름없어요. 사조님께서 철없는 삼류 무사들을 정유문으로 데려와 계도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요.”
설린이 말했다.
“사 공자님이 원하시니까.”
“네?”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을 정유문으로 오게 하고 문도로 받아 달라고 한 것이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사공자님의 뜻이라는 거잖니. 난 사 공자님의 부탁을 들어드린 거란다.”
구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문주님, 정유문이 사 공자님께 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것은 맞지만, 문파의 모든 대소사를 사 공자님이 원하시는 대로만 처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설린이 대답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나는 사 공자님께서 갑자기 이런 일을 하실 때에는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나쁜 짓을 하던 사람들이 매일 나가서 선행을 베풀고 있지 않니?”
그녀의 말에 구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사 공자님의 생각을 정말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협객의 명성을 얻는 것에 집착하는지도요.”
“그분을 길러 주신 사부님들의 소원이라고 하셨지.”
구휘는 그 순간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설린의 표정을 보고는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문주님은 사 공자님을 많이 신뢰하고 계시는군요.”
“내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 주시고, 정유문의 이름을 지켜 주신 분이니까. 그리고…….”
설린이 웃으며 말했다.
“내 느낌이라고 해 두자.”
“…….”
설린은 구휘가 아무 대답이 없자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휘아야.”
“네.”
“너는 앞으로 그 네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감시해 주렴.”
“감시…… 요?”
“그래. 네가 이번에는 내 뜻을 따라 주었으니…… 나 역시 휘아 네가 저들을 믿을 수 있을 때 그들을 정식 문도로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만약 네 눈에 조금이라도 의심쩍은 부분이 남아 있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임시 문도일 뿐이란다.”
구휘는 설린의 말에 조금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네 생각이 있으면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 주렴. 나는 휘아가 있어서 정말 든든하구나.”
구휘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그들을 믿지 않아요. 철두철미하게 그들을 감시해서 그들이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설린이 미소 지으며 끄덕였다.
“그래, 부탁 하마.”
* * *
설린과 구휘가 문주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 순간.
한 사내가 문주전의 지붕 위에서 양손을 깍지 껴 머리 뒤에 대고, 입에는 풀잎 하나를 질겅질겅 씹으며 누워 있었다.
그는 지붕 위에 누워서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고, 다만 그의 백의장삼만이 바람에 펄럭였다.
아무도 모르게 그곳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사내는 물론 사완악이었다.
어느 순간, 사완악은 몸을 일으켜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는 마치 하늘을 나는 새처럼 가볍게 하강하여 어느새 정유문의 입구에 다다랐다.
“왔어?”
정유문으로 막 들어선 만사무와 가종후, 천화, 묵영은 도깨비처럼 불쑥 나타난 사완악의 모습에 조금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예, 지존…… 아니, 사 공자님.”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조금 늦었네. 다 같이 돌아오는 것도 신기하고.”
천화가 대답했다.
“실은…… 마지막에 강아지를 찾느라 두 분 오라버니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강아지?”
천화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완악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찾았나?”
“예.”
“좋아, 그럼 각자 오늘 행한 선행들을 말해 보도록. 만사무부터.”
만사무가 대답했다.
“길 가는 노인의 짐을 들어 주었고, 도둑 한 명을 잡았고, 강도 짓을 하는 왈패들을 혼내 주고, 술 취해 싸우는 자들을 말리고, 또…… 아이가 넘어지려는 것을 잡아 주었습니다.”
만사무는 마지막 말을 하면서 슬그머니 사완악의 눈치를 보았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음.”
이어서 가종후와 천화, 묵영 모두 자신들의 선행을 나열했다.
그것들 중에는 제법 큰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잘했다. 그럼 다들 가서 문주님께도 보고하고 편히 쉬도록. 내일도 똑같이 한다.”
“예.”
네 사람은 이런 일들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완악의 명령에 감히 불만을 품지도 않았다.
그들이 사라진 후.
사완악은 문득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철두철미하게 감시해라. 아니, 그래야만 하지.”
사완악의 그 말은 마치 문주전에서 흘러나온 구휘의 말에 대한 대답 같았다.
하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건 대관절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이때, 사완악은 다시 한번 뜻 모를 말을 읊조렸다.
“언제까지 숨어만 있을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