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50
정도마신 49화
그는 준수한 외모의 청년으로, 키가 훤칠하고 어깨가 딱 벌어져 있었으며 재기 넘치는 눈동자에, 허리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검집을 차고 있었다.
설린은 그 검집의 문양을 보고는 살짝 놀란 얼굴로 청년을 쳐다봤다.
“당신은…….”
청년은 설린이 자신의 신분을 알아챘음을 느꼈는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시오? 나는 안휘성 남궁세가의 남궁준휘라 하오.”
남궁준휘.
그 이름에 설린의 눈은 더욱 크게 뜨였다.
사완악의 눈에도 이채가 흘렀다.
“혹시 남궁세가의 소가주이신…….”
“하하, 그렇습니다.”
본래 오대세가는 모두 엇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분야는 조금씩 달랐다.
제갈세가는 무공을 이해하는 뛰어난 오성(悟性)에 정계(政界)와의 인맥이 깊었고, 사천당가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독공과 암기술을 지녔으며, 하북팽가는 타고난 골격과 체질을, 모용세가는 신비한 검술과 유연함을, 남궁세가는 막대한 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듯 각자의 장점이 뚜렷하여 어느 가문이 더 뛰어난가는 논할 수 없었는데,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제갈세가가 오대세가의 수장 역할을 해 왔고, 남궁세가의 발언권은 가장 약했다.
그 이유는 각 문파의 강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다른 문파들은 모두 무공과 관련된 장점들이 있었으나 남궁세가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남궁세가의 무공은 오대세가 중 가장 약했다.
심지어 뒤에서는 재력만 아니었다면 서문세가나 진주언가가 오대세가의 한 자리를 차지해야 옳다는 말들과, 무림세가가 아니라 무림상가(武林商家)가 아니냐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남궁세가는 그런 모욕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림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결국 무력(武力)임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오십 년 전.
한 명의 천재로 인해 이런 남궁세가의 입지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바로 전대 강호 칠대고수 중 한 사람이자, 검제(劍帝)라 불렸던 남궁명조였다.
물론 남궁명조는 강호 칠대고수 중에서는 약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그는 무공의 이치를 깊게 이해하고,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는 일대종사의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오대세가 중 가장 약했던 남궁세가의 무공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재정립하였고, 자신의 깨달음을 추가하여 열 개의 무공을 만들었다.
세 개는 남궁세가의 모든 무인들이 단계별로 익힐 수 있는 검법이었고, 세 개는 검법이 아닌 무공들, 세 개는 직계의 제자들이 각자의 성향에 따라 익힐 수 있는 상승검법들이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오직 가주만이 익힐 수 있는 제왕검형(帝王劍形)이었다.
막대한 재력을 지니고 있던 남궁세가는 꿈에 그리던 초절정의 고수와 그의 심득까지 얻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호랑이가 날개를 달고 용이 여의주를 물게 된 격이었다.
비록 십 년 전, 검제 남궁명조가 의문의 불치병에 걸려 생을 마감하고 말았지만, 작금의 남궁세가는 과거와 그 위상이 천지 차이였다.
그리고 남궁준휘는 바로 검제 남궁명조의 손자이자, 소가주의 신분이었다.
‘검제 남궁명조의 검법은 대단히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사완악은 염라대사 영환 사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면 저쪽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사완악이 가리킨 곳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위치였다.
그러자 남궁준휘는 미소를 짓더니 사완악을 위아래로 살펴보고는 불쑥 물었다.
“당신의 이름이 사완악이 맞소?”
사완악은 초면인 남궁준휘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응?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하하, 다행이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당신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오.”
“나를?”
남궁준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우리 남궁세가가 정유문에게 고마워할 일이 있지 않았소?”
설린과 사완악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육사괴를 말하는 건가?”
“그렇소. 그들이 오 년 전 해를 끼친 사람은 나의 육촌뻘되는 분이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깨닫고 두려움에 떨며 강호에서 모습을 감추어 버렸지만, 우리 남궁세가는 그 원한을 잊은 적이 없었소. 다만 그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본가에 중요한 일이 생겨 바로 사람을 보낼 수가 없었소. 그런데 정유문에서 소림사의 고수님과 함께 그들을 생포하여 본가로 보내 주었으니, 실로 감사한 일이었고 가주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셨소.”
남궁준휘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정유문의 분들을 찾고 있었소. 육사괴를 제압한 실력이라면, 필시 이번 비무 대회에도 참가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오. 그리고 생각대로 두 분을 만났으니 참으로 반갑소.”
남궁준휘는 그러더니 설린의 얼굴에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분이 사완악 소협이시니, 당신은…….”
설린은 고개를 살짝 숙여 목례하며 말했다.
“정유문의 문주 설린입니다.”
“아!”
남궁준휘는 한 차례 눈을 빛내더니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었다.
“소문대로, 아니, 소문 그 이상으로 정말 미인이시오.”
“예? 아…… 예, 과찬이십니다.”
설린은 남궁준휘의 말에 어색한 표정으로 작게 대답했다.
남궁준휘는 포권하며 말했다.
“정식으로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소. 이 남궁세가를 대표해서 정유문의 설린 문주님과 사완악 소협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오. 이 남궁 모가 도울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하시오. 내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노력하겠소.”
이때 사완악은 남궁준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저기 얼굴을 가린 사람이 강호 사대미녀 중 한 사람이라고?”
남궁준휘는 사완악에게 곧바로 끄덕였다.
“그렇소. 사천당가 가주님의 여식이자, 당문독화라 불리는 여인이오. 얼굴을 가린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쏠리기 때문일 것이오.”
확실히 얼굴을 모두 가리고 있는데도 저리 주목을 받고 있으니 알 만한 일이었다.
사완악의 표정에도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런데 별호가 독화(毒花)라니. 미녀의 별명치고는 꽤 살벌한데?”
“그건 그녀가 사천당가가 자랑하는 독공에 능하기 때문이지만…….”
남궁준휘가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손바닥으로 입술을 가리고 속삭였다.
“사실 성격도 좀 매섭기는 하오.”
“오호. 당신은 저들과 친분이 있으니 그녀의 실제 얼굴을 본 적도 있겠군.”
“소협도 그녀의 얼굴이 궁금한 것이오?”
사완악은 물론 궁금했다.
‘새로운 시대의 사대미녀라. 과연 어머니보다 더 미인일까?’
사부 요희요검 채보령은 기존의 삼대미녀 중 한 사람이었다.
사완악은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미인인지 모르고 자랐으나, 세상에 나온 이후로는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나이는 마흔이 넘었으나, 여전히 강호의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사완악이 씩 웃으며 말했다.
“사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지.”
그 말에 설린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남궁준휘는 호탕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하하, 영웅호색(英雄好色)이니 실로 맞는 말이오. 나는 물론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있소만…… 그럴 게 아니라 함께 저 자리로 가는 것은 어떻겠소? 육사괴를 잡은 것은 본가에게 고마운 일 이전에 무고한 피해자를 막은 큰 협행이니, 이토록 훌륭한 두 분을 저 자리의 친구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소만.”
설린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남궁준휘는 사완악과 설린을 띄워 주듯 이야기했으나, 사실 그것은 엄청난 제안이었다.
중소 문파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문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정유문에게 정파의 하늘과도 같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후계자들을, 심지어 남궁세가의 소개로 안면을 틀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중소 문파의 사람이 들었다면 무릎 꿇고 간청할 정도의 큰 선물이었다.
물론 사완악은 그런 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듯 설린을 바라봤다.
“재밌겠는데? 설린 문주 생각은 어때?”
설린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녀 역시 당문독화 당소윤에 관한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당소윤의 성격은 매우 도도하고 예민하며 때로는 난폭한 면모도 보이지만, 그녀의 미모를 본 남성들은 오히려 그런 성격에 더욱 빠져든다고 했다.
설린은 당소윤에 흥미를 갖는 사완악을 보며 남궁준휘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유문의 문주였다.
그녀에게는 과거의 영광만큼은 아니더라도 선조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는 문파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것은 비단 설린 혼자만의 꿈이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이어진 꿈이었다.
‘정유문을 위해서라면 저들과 친분을 쌓아 두는 일이 반드시 도움이 되겠지.’
설린은 여인의 마음을 제쳐 두고 문주로서의 판단을 선택했다.
“저도 좋아요. 남궁 소가주께서 소개해 주신다면 큰 영광이지요.”
“좋습니다. 가시지요.”
남궁준휘는 흡족한 듯 힘차게 말하며 앞장섰다. 사완악과 설린은 그 뒤를 따랐다.
남궁준휘가 나타나자 담소를 나누던 명문대파의 후계자들이 고개를 돌려 눈길을 주었다.
그중 앳되지만 기골이 장대한 청년 한 명이 반가운 얼굴로 먼저 인사를 했다.
“남궁 형님, 어디 갔다 이제야 오시는 겁니까? 맹주님의 개회사는 이미 끝났습니다.”
남궁준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다른 곳에서 듣고 있었다. 이분들을 소개하려고 모시고 왔다.”
남궁준휘의 말에 기골이 장대한 청년은 물론, 다른 후계자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사완악과 설린을 바라봤다.
“이분들은 누구십니까?”
“인사해라. 이분은 정유문의 문주 설린 낭자이시고, 이분은 내가 말했던 사완악 소협이시다.”
“아!”
청년은 이미 들은 바가 있는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남궁준휘는 사완악과 설린에게도 청년에 대해 소개했다.
“이쪽은 하북팽가의 팽무강이라 하오. 하북팽가의 소가주이고, 나와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라오.”
하북팽가의 소가주.
남궁준휘만큼이나 대단한 신분이다.
하지만 팽무강은 신분에 맞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얼굴로 사완악을 쳐다보며 말했다.
“안녕하시오? 하북팽가의 팽무강이오. 두 분…… 정확히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남궁 형님께 들었소. 그런데 정말 육사괴를 그대가 생포한 것이 맞소?”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팽무강의 음성은 상당히 우렁찼다.
육사괴를 때려잡았다는 말에 다른 후계자들은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눈빛으로 사완악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완악은 자신을 쳐다보는 명문대파의 후계자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대단한 놈들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이때였다.
갑자기 남궁준휘가 웃음과 함께 사완악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무강, 설마 너는 사 소협의 협행을 의심하는 것이냐? 본가에 그들을 이송해 준 개방 분타주님의 말씀이니 틀림없다.”
그때였다.
별안간 한 여인의 냉소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말이군요.”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방금 말한 여인을 바라봤다.
그녀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사천당문의 여인, 바로 사대미인 중 한 사람이라는 독화 당소윤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확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남궁준휘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 사매, 그게 무슨 뜻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