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63
정도마신 62화
어두운 밤, 어느 깊은 산속.
하늘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가 산속 가득 울리고 있을 때, 한 줄기 희미한 달빛이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추었다.
한낮에도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이 깊은 산속에, 비가 내리는 밤중에 두 사내가 있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욱 특이한 점은 두 사내 중 한 사람은 잿빛 승복을 입은 승려라는 것과, 그 승려가 축 늘어진 한 사람을 둘러메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두 사람은 바로 현종과 남궁준휘였다.
현종은 어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묵묵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현종은, 가장 깊고 우거진 곳에 다다라서 돌연 멈춰 서더니 남궁준휘를 땅에 가볍게 던져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약간의 내공을 일으켜 남궁준휘의 혈도 몇 군데를 찔렀다. 잠시 후,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남궁준휘의 얼굴에 빗물이 계속 떨어지자 그의 몸이 움찔거리며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루 동안 혈도가 봉해져 있었으니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닐 것이오.”
“큭…… 다, 당신은?”
남궁준휘는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상황이 기억났다.
‘혼신의 힘을 다한 기습이었는데…… 소림사에서 비밀리에 키운 고수인 것인가?’
자신과 비슷한 나이임에도 소림사의 방장과 같은 배분, 거기에 짐작할 수 없는 무공 실력.
남궁준휘는 현종에게 무공으로 대항할 생각을 포기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매우 의아함을 느꼈다.
“여, 여기가 어디지…….”
“보다시피 아무도 없는 산속이오.”
남궁준휘는 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현종을 쳐다봤다.
“날 왜 이곳에 데려온 것이오?”
그러자 현종은 남궁준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도…… 그 이유를 생각 중이오.”
현종은 비를 맞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남궁준휘를 응시하고 있었고, 표정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남궁준휘는 가슴 한편이 왠지 모르게 서늘해졌다.
그것은 바로 현종의 눈빛 때문이었다.
‘이것은 결코 불자(佛者)의 눈빛이 아니다. 대체 이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눈빛은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았는데, 남궁준휘는 그 가라앉은 눈빛이 마치 깊고 깊은 구렁텅이를 보는 것 같았다. 고요하면서도 당장이라도 무엇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괴이함과, 뭐라 형용할 수는 없지만 본능적으로 공포심이 일며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글쎄, 나도 모르겠소.”
현종은 여전히 같은 표정, 같은 눈빛으로 말하고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
남궁준휘는 사방을 둘러봤다.
시야에는 오로지 우거진 수풀만이 가득했고,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쏴아아 하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울리고 있었다.
남궁준휘는 정신을 잃기 전 현종이 했던 말들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대사께서는 나를 남궁세가로 데려가려는 것이 아니었소?”
그러자 현종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아마도…… 그건 아닌 것 같소. 왜냐하면 나는 정도맹에서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성의 반대 방향으로 올라왔기 때문이오.”
남궁준휘는 기분이 더욱 꺼림칙해졌다.
본래라면 남궁세가로 가지 않는다는 말에 기뻐해야 할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고, 현종의 말투 또한 매우 이상했다.
현종은 마치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혼란에 빠진 사람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남궁준휘를 향해 물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남궁준휘는 이 괴이한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무엇이오?”
“내가 당신의 혈도를 점혈할 때, 만약 힘을 과하게 사용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소?”
남궁준휘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이게 무슨 뜬금없는 질문인가?’
하지만 이때 현종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남궁준휘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눈빛에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는 크게 부상을 입었거나 그 자리에서 죽었을 테지.”
현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오. 즉, 나는 스스로 힘 조절을 매우 정확하게 한 것이오.”
그러고는 이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 힘을 제어하지 못했던 적이 없었소. 전혀 흥분을 한 것도 아니었고, 강적을 만난 것도 아니었으며, 내 몸의 상태가 나쁜 것도 아니었소. 배고픈 호랑이든 사나운 곰이든 피할 수도 있고 가볍게 제압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소?”
남궁준휘는 점점 현종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왜 남궁세가가 아닌, 그 반대 방향으로 올라와 이런 깊은 산속에 자신을 데려왔는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종의 눈빛이 매우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고, 혼란스러워하는 듯한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자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듯하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이 자리를 어떻게든 모면해야겠다.’
남궁준휘는 현종의 무공이 감히 자신이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깨달은 상태였다. 그는 기습이나 도망갈 생각은 포기하고, 현종이 한 말들의 뜻을 대강 짐작하며 아부하듯 말했다.
“하하, 당연한 말씀입니다. 대사처럼 깊은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 힘을 제어하지 못할 리 있겠습니까? 호랑이나 곰 따위야 대사께서 살리고자 하면 살릴 것이고, 죽이고자 하면 일격에 숨통을 끊어 놓을 테니 이런 깊은 산속이라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지요.”
남궁준휘의 말을 들은 현종은 돌연 멍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서 남궁준휘의 말을 곱씹듯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어느새 장대비가 되어 거세게 퍼붓고 있었다.
“살리고자 하면 살릴 것이고, 죽이고자 하면…….”
“예, 맞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산속에서 비를 맞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이제 그만 하산하는 게 어떻겠…….”
그런데 그 순간, 남궁준휘는 당황하여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현종이 갑자기 길게 늘어뜨린 양팔을 사시나무 떨리듯 잘게 떨면서,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사님, 왜 그러십니까?”
“나는…….”
그때였다.
번쩍! 꽈르르릉!
검은 하늘에서 산 전체를 밝힐 듯한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연달아 번쩍였다.
동시에…….
쩌억!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두 사람 옆에 있던 거대한 나무 하나가 네 갈래로 조각나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때, 남궁준휘의 눈은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휘둥그레졌다.
‘마, 말도 안 돼…….’
그 거목은 번갯불에 맞아 쪼개진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는 순간, 현종의 신형은 빛살처럼 나무를 향해 쏘아졌고, 그의 손에서 가공할 내력이 폭발하며 나무의 기둥에 일권을 내질렀던 것이다.
‘이게 사,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인가……!’
하얗게 번쩍이는 불빛 속에 나타난 현종의 뒷모습을 보자, 남궁준휘는 다리가 덜덜 떨려 왔다. 이때, 현종이 천천히 몸을 돌렸는데, 그와 눈이 마주친 남궁준휘는 뱀을 본 개구리처럼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당신 말이 맞소. 나는…… 죽이려 했던 것이오.”
“누, 누굴 말입니까?”
“호랑이도, 곰도 말이오. 이제는 그 이유를 천천히 생각해 보아야겠소.”
“나는 대사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때 현종의 깊은 눈빛에서 기이한 빛이 일렁였다.
“결국 이곳에 왔다는 건 당신을 남궁세가로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고, 당신을 죽이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오.”
남궁준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 현종이라는 승려는 더욱 괴이하게 느껴졌고,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숨이 막힐 듯한 공포심이 느껴져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대사님. 그럼 이제 내려가실…… 아아악!”
갑자기 남궁준휘의 입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궁준휘는 자신의 오른손을 부여잡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오른손은 다섯 개의 손가락이 모두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뺨을 때린 손이었소.”
“크으으으! 그게 대체 무슨…… 카하아악!”
이번에는 남궁준휘의 왼손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덜렁였다.
현종이 그의 손목을 잡아 강제로 돌려 버린 것이었다.
현종은 비명을 내지르는 남궁준휘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은 몸을 건드린 손이었지.”
이때 남궁준휘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무언가 머릿속에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뺨을 때리고 몸을 건드렸다.
그것은 자신이 정유문의 문주이자, 사완악의 연인에게 했던 행동이었다.
“다, 당신 설마…….”
그때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남궁준휘의 입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비명이 메아리쳤다.
그는 덜렁이는 손가락과 손목을 끌어안은 채 땅을 나뒹굴며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또 하나 섬뜩한 것은 그의 두 눈은 어느새 눈알이 사라져 텅 비어 있었고, 핏물이 비와 함께 뺨을 타고 온 얼굴에 흘러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종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담담하게 들려왔다.
“아미타불. 그것은 욕념(欲念)의 눈이었소.”
현종은 발작하듯 꿈틀거리는 남궁준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번쩍! 꽈르릉!
하늘에서는 다시 한번 뇌성벽력이 번쩍였다.
그리고 그 하얀 번갯불이 잠시 산속을 밝혔을 때, 현종의 입가에는 아주 작은 미소가 나타났지만 이내 사라져 다시 심각한 얼굴로 굳어졌다.
“이 모습이…… 내가 당신을 바로 죽이지 않았던 이유였구려.”
퍽!
다시 한번 무언가 쪼개지고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남궁준휘의 몸은 안정을 찾은 듯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를……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겠소. 하지만 그 전에…….”
현종은 갑자기 몸을 돌려 수풀 한 곳을 고요히 응시했다.
“이제 그만 모습을 나타내시오.”
* * *
“역시 상성이 별로였네.”
“헤헤, 그래도 생각보다 잘 버텼죠?”
“말과 달리 얼굴은 꽤 분해 보이는데?”
“……너무 정곡을 찌르지 마세요. 사실 마지막 초식도 눈에는 보였는데…… 다시 하면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설린과 팽무강의 비무는 모두의 예상대로 팽무강의 승리였다.
그는 비무에 임하자마자 마치 한 마리의 성난 소처럼 달려들었고, 대도를 휘두르며 하북팽가가 자랑하는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를 펼쳐 냈다.
혼원벽력도는 강호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맹한 위력을 자랑한다. 각각의 초식들이 매우 저돌적이었는데, 그 또한 팽무강의 큰 체구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무공이었다.
그 모습에 관전하던 사완악은 혀를 찼다.
내심 기대한 것과 달리, 팽무강은 지금까지의 상대와 달리 설린에게 선공을 양보하거나 여유를 부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무의 양상은 사완악이 예상했던 대로 설린의 일방적인 비세(非勢)였다.
설린은 최선을 다해 팽무강의 힘을 흘려 내며 맞섰지만, 몰아치는 그의 초식에 손발이 어지러워지며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 덩치 놈이 당황한 것 같기는 했어.”
“앗, 정말요?”
“응.”
사완악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설린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그중 당사자인 팽무강은 가장 크게 놀랐다.
그녀가 팽무강의 무지막지한 혼원벽력도법을 오십여 합이나 막아 냈기 때문이었다.
설린은 이제 괜찮다는 듯 쾌활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나머지는 사 공자님께 맡길게요. 우승해서 정유문의 이름을 높이고 오세요! 물론 사 공자님께는 너무 쉬운 일이겠지만요.”
설린은 사완악이 당연하다는 듯 미소를 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흐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