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75
정도마신 74화
설린은 사완악을 향해 말했다.
“우선 당 소저의 혈도부터 풀어 주세요.”
당소윤은 여전히 고통에 몸부림치며 기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완악이 말했다.
“문주님, 그녀는 나에게 주려고 했던 고통을 본인이 받고 있는 것뿐이야.”
설린이 말했다.
“사 공자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어요.”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정유문의 사람은 자비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제 부탁입니다. 저를 이용했다고 하셨으니, 제 부탁 정도는 들어주실 수 있지 않나요?”
사완악은 설린을 빤히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당소윤을 향해 지풍을 연달아 날렸다.
당소윤의 몸이 강하게 한 번 꺾이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설린은 다시 말했다.
“사 공자님은 정말 이곳에 있는 사람을 모두 죽일 생각인가요?”
사완악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그것은 강호의 가장 기본적인 이치야. 그들이 날 죽이려 했으니, 그대로 돌려줄 뿐이지.”
설린은 끄덕였다.
“하지만 저는 사 공자님이 누군가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완악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설린이 말했다.
“어쩌면 사 공자님이 누군가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완악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굉장히 듣기 거북한 말을 하는군.”
“저도 확신이 든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의 정황이 충분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사완악은 설린의 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설린은 문득 고개를 돌려 양천상에게 말했다.
“맹주님, 맹주님은 사 공자님이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을 언제 알았죠?”
양천상이 설린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건 왜 묻는가?”
설린은 양천상 옆의 구휘를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휘아를 곁에 두고 계시니 이미 전부터 사 공자님의 정체를 알고 있거나 의심을 하고 있었겠지요. 그래서 이곳에 탈출할 수 없는 진법을 만들어 놓고, 비무 본선 진출자들을 모아 데려온 거죠.”
양천상은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설린이 물었다.
“그런데 정말 이곳이 사 공자님을, 흉악한 사대악인의 제자를 제압하기 위해 준비된 곳이 맞을까요?”
순간, 양천상의 표정에 동요가 일어났다.
“당연한 것을 왜 묻는지 모르겠군.”
“……!”
하지만 이때, 사완악은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설린이 말했다.
“그래요. 이상하죠?”
이때 청운이 설린을 향해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입니까?”
설린이 말했다.
“맹주님의 호위로 있는 휘아는 사 공자님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사대악인의 제자라면 적어도 전대 칠대고수 중 두 사람의 무공을 이어받았고, 일반적인 무공과는 전혀 다른 술법도 알고 있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사대악인의 제자를 잡기 위해 만든 함정치고는 너무 허술하지 않은가요?”
이때 구휘가 말했다.
“문주님, 그건 사완악 저자의 이목을 숨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저자는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영리하니까요.”
“휘아야.”
설린이 구휘를 부르며 말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 진법 밖에는 미리 다른 고수들이 준비하고 있어야 하지 않았겠니? 혹은 도착한 후 뒤늦게라도 당도해야 했어. 그런데 내가 보기에 맹주님은 그런 준비를 하지 않은 것 같구나. 만약 그렇다면 후기지수들에게 사 공자님을 공격하라고 명령한 것 대신, 최대한 시간을 많이 끌었을 테니까.”
“…….”
구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설린은 양천상에게 다시 물었다.
“그리고 맹주님은 어째서 구경만 하고 계시는 거죠? 이곳에서 사 공자님과 겨룰 수 있는 사람은 맹주님이 유일하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나요?”
양천상은 침착한 표정으로 설린을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지금 내공으로 이 진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네. 내가 무공을 사용했다가는 진법이 깨져 저자가 도망갈지도 모르네.”
설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럼 만약 사 공자님이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을 쓰러뜨린 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
“그때도 진법을 깰 수 없으니 계속 그렇게 있으실 건가요?”
“그건…….”
양천상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설린을 노려보다가 문득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사완악 저자를 혼자서 제압할 자신이 없네.”
설린이 말했다.
“그래서 여기 후기지수들이 목숨을 바쳐 사 공자님의 힘을 최대한 빼놓으면 그때 대결하실 생각이었군요?”
“그만큼…… 사완악 저자는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인물일세.”
후기지수들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양천상을 바라봤다.
물론 양천상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이 평소 알던 정의롭고 용맹한 맹주의 대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린의 추궁에, 후기지수들의 안색은 더욱 굳어졌다.
“정말 그런 생각이신가요?”
“물론이네. 사완악 저자는 이 강호에 피바람을 불러올 사람일세.”
“그러니까요. 그런 것치고는 준비가 참 허술하죠.”
“섣불리 판단하지 말게. 그는 오늘 이곳에서 탈출할 수 없을 걸세.”
이때 사완악이 말했다.
“반대였군.”
사완악이 다시 중얼거렸다.
“하하, 반대였어.”
사완악은 청운을 향해 말했다.
“우리 모두 바보였군.”
청운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맹주의 시원찮은 대답과 그 표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이오?”
사완악이 말했다.
“이곳은 나를 죽이기 위해 준비된 공간이 아니야.”
“그럼?”
“너희들. 바로 너희들을 죽이기 위한 곳이다.”
청운과 후기지수들의 얼굴에 큰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자신들을 죽이기 위한 공간이라니?
도대체 지금 사완악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똑바로 말하시오.”
사완악은 주변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도망칠 수 없는 공간. 다른 정파의 고수들이 목격하거나 도와주러 올 수 없는 곳.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아주 훌륭한 명분. 양천상 본인이 나서지 않는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힘의 차이. 자, 이곳이 누구를 죽이기 위해 적합한 곳으로 보이지? 나일까, 아니면 너희들일까?”
순간, 후기지수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완악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의구심이 생기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때, 청운은 또 한 가지의 생각을 떠올렸다.
바로 맹주가 준비한 장보도였다.
애초에 맹주 양천상이 준비한 장보도는 그 넓은 태산에서 이 은밀한 장소를 찾아낼 만큼 상세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청운이 거침없이 이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양천상이 전음으로 길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길을 찾는 것은 자네들이 시험에 몰입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뿐이네. 진정한 시험은 그 장소에 도착해서 시작되니 내색하지 말고 길을 안내하게.’
그때는 그것이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맹주는 분명히 이 시험 장소에 관한 장보도를 각 문파의 책임자들에게도 주어 만약을 대비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어차피 제대로 찾지도 못할 장보도라면 앞뒤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것 하나 눈치채지 못하다니, 사마 사부가 알게 되면 혼쭐이 나겠군.”
사완악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설린이 알아차린 것을 그가 놓쳤던 이유는 양천상이 양쪽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후기지수들 중에는 그들의 사부나 부모, 혹은 문파의 다른 누군가가 사대악인에게 해를 입어 원한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후기지수들의 대표나 다름없는 무당파의 청운과 화산파의 화진우가 그랬으니, 후기지수들은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이름만으로도 다른 의심은 전혀 할 수 없었다.
반대로 상대가 누구든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사완악은 후기지수들이 살의를 드러내며 덤벼들자 그 반골 기질이 폭발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완벽했으나…….
하지만 양천상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는 바로 설린이었다.
설린은 어떻게든 사완악을 설득하기 위해 궁리했고, 그러던 중 위와 같은 이상한 점들을 깨달았던 것이다.
“맹주님, 저들의 말이 사실입니까?”
청운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얼굴로 양천상을 바라봤다.
물론 사완악과 설린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양천상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청운 도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
“저자를 처단하기 위한 나의 준비가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네. 나는 사완악 저자의 무공이 저 정도로 고강하다고는 예상하지 못했네. 하지만 말일세. 나는 지난 십여 년간 정도맹주로서 끊임없이 노력하여 마침내 평화로운 무림을 이루었네. 그런 내가 정도의 미래인 자네들을 왜 죽이려 한다는 말인가?”
청운도 바로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사완악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도맹주가 스무 명의 후기지수를 죽이려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다.
“정신 차리시게!”
양천상이 버럭 호통을 쳤다.
“자네들은 사대악인 중 요희요검의 특기가 미혼술이라는 것을 잊었는가! 청운! 전대 장문인의 죽음을 잊었는가! 사완악 저자의 요사한 술법에 언제까지 정신을 빼앗길 생각인가!”
청운은 전대 장문인의 죽음이라는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사완악은 교묘한 말로 무당파 전대 장문인의 죽음을 심하게 모욕했다.
그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양천상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화산파의 화진우에게도 소리 질렀다.
“화진우! 자네의 아버지와 문파 식구들이 몰살당했네. 그 원수의 제자를 보고도 놓아줄 생각인가!”
화진우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버지의 원수.
문파의 원수.
화진우는 청운을 향해 말했다.
“청운, 더 이상 저 요사한 녀석의 말을 듣지 말게. 정유문의 문주도 한통속이거나 정신을 지배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네.”
청운과 다른 후기지수들은 화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이곳에 오는 동안 함께했던 맹주를 믿었다.
또한 사대악인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한이 있었고, 강호에 나가면 그런 자들이 수백 명이 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완악은 그들을 보며 혀를 찼다.
“멍청한 것들. 지들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의 편을 들다니.”
청운이 말했다.
“더 이상 삿된 말로 우리를 현혹시키지 마시오. 우리는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당신을 제압할 것이오.”
사완악은 처음으로 이마를 찌푸렸다.
애초에 그는 청운을 비롯한 후기지수들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저 그들이 자신에게 적의와 살기를 드러냈기에, 자신도 똑같이 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나로 하여금 이 녀석들을 죽이게 하려는 계획이었다는 말이지?’
청운은 맹주가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완악은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점점 오기가 생기게 만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