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74
정도마신 73화
사완악은 일부러 가장 큰 동작의 초식을 사용한 뒤, 자신의 허점을 노출시켰다.
만약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고수라면 상대의 허점을 노릴 때도 자신의 방어를 소홀히 하지 않았겠지만, 이것을 절체절명의 기회라고 생각한 후기지수들은 자신들이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날카로운 초식을 있는 힘껏 전개했다.
바로 사완악이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사완악의 손에서 펼쳐진 것은 사부 구득소의 유풍유권이었다.
유풍유권은 이화접목(移花接木)의 무공이었다. 꽃이 핀 나무를 다른 나무에 심는다는 뜻으로,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역으로 공격하는 수법인 것이다.
사완악의 손이 한 후기지수의 손목을 잡아 교묘하게 돌려놓자, 강하게 전개한 그의 초식이 다른 후기지수를 향해 날아갔다.
“헉!”
두 사람은 황급히 손을 거두려 했으나, 회심의 일격으로 펼친 초식의 힘을 완전히 거둘 수는 없었다.
사완악은 서로 초식이 엉킨 두 사람의 중심을 무너뜨려 잡아당기면서 자신과 위치를 바꾸었다. 그러자 다른 두 사람의 초식이 그 중심이 무너진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팔과 등을 찌르게 되었다.
“크읏!”
“하하! 같은 편끼리 뭐 하는 짓이지?”
사완악은 웃음을 터뜨리며 부상을 당한 사내를 향해 가볍게 일장을 내질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부상당한 사내가 날아가며 고꾸라졌다.
“이, 이럴 수가…….”
후기지수들은 아연실색하며 주춤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사완악에게 합공한 열세 명의 후기지수 중 순식간에 네 명이 쓰러졌다.
앞서 사완악에게 당한 황보정과 화진우, 팽무강, 진철영, 당소윤까지 합하면 아홉 명.
사완악과 설린을 빼면 총 열여덟 명이었으니, 전력의 반이 쓰러진 것이다.
그야말로 추풍낙엽(秋風落葉)이었고, 마치 들개 무리에 한 마리의 범이 뛰어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때, 한 청년이 마치 구름을 밟듯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며 사완악을 향해 일장을 내질렀다.
이때 사완악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경시(輕視)할 수 없는 위력의 장력이었기 때문이다.
사완악은 마룡일효의 초식으로 상대의 장력을 해소하며 뒤로 조금 물러서서 미소를 지었다.
“겁먹은 강아지처럼 꼬랑지를 내리고 있는 줄 알았더니, 드디어 나서는군.”
사완악을 잠시 물러서게 한 청년은 무당파의 무림일룡 청운이었다.
청운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사과하십시오.”
“사과? 뭘?”
“전대 장문인은 평생을 정의롭게 사셨던 분입니다. 그분이 무당파에 거둔 제자가 수십이 넘고, 그 수십의 제자는 많은 의로운 일을 했지요. 비록 당신 사부의 악독한 술법에 빠져 목숨을 잃으셨지만, 당신에게 그렇게 모욕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그리 중요한가?”
청운은 사완악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중요합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의 거짓된 말로 그분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청운은 조용히 말을 했지만 그 눈빛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사완악은 자신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청운의 기개(氣槪)에 탄복하며 끄덕였다.
“좋아, 이 정도라면 합격이다. 거짓된 말로 명예를 더럽혀서는 아니 되지. 사실 내 사부님도 무당파의 옥상 진인에 대해서 나에게만 말씀해 주신 비밀이 있었지.”
비밀이라는 말에 청운은 의아한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사완악이 말했다.
“옥상 진인은 당시 강호 칠대고수는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심후한 내공을 지닌 고수였다고 하더군. 사부님의 미혼술은 뛰어나기는 했지만, 젊은 도백천이라면 몰라도 오랜 시간 수양을 쌓고 내공이 그토록 뛰어난 옥상 진인에게 통할 자신은 없었다더군.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내 사부님은 그 무당파의 장문인에게 미혼술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거지.”
청운의 안색이 고목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사완악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야. 사부님은 단 한 번도 옥상 진인에게 술법을 사용한 적이 없으셨지. 하지만 누가 알았겠어? 스스로 사부님을 찾아와 그 대단한 내공을 다 갖다 바칠 줄은. 오히려 도백천은 대쪽 같은 절개를 지니고 있어서 미혼술을 사용해야만 했다던데 말이지. 사부님이 세상에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옥상 진인같이 대단한 무공을 지닌 사람도 사부님의 미혼술에 당할 수 있다는 말이 세간에 퍼지면, 그 누구도 함부로 사부님을 건들 수 없을 거라 생각하셨던 거지.”
사완악은 인정한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대단한 늙은이긴 해. 무당파의 장문인으로 세상의 눈을 속이며, 뒤로는 그렇게 여색을 탐하다니…….”
“갈!”
청운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그 요망한 혓바닥을 놀리지 마시오!”
사완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청운을 바라봤다.
“거짓된 말로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 그래서 사실대로 말해 주었더니 왜 화를 내는 것이냐?”
“사완악! 그 입 닥쳐라!”
청운은 모욕감으로 눈을 번뜩이며 사완악에게 신법을 전개했다.
청운의 손에서 분노의 태극권이 펼쳐졌다.
“정말 이상한 놈이구나.”
사완악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파신마장으로 청운의 태극권에 맞서 갔다.
청운의 태극권은 비무 대회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비무의 태극권이 호수였다면, 지금의 태극권은 바다였다.
그 안에 담긴 내공이 달라서였다.
태극권은 특이하게도 얼마나 많은 내공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위력이 완전히 달라지는 무공이었고, 심후한 내공을 지녀야지만 사용할 수 있는 초식들도 있었다.
그리고 청운이 진심으로 개방한 그의 내공은 사완악조차 고개를 끄덕일 만큼 대단했다.
꽝!
장세(掌勢)와 장세가 부딪치자 폭음이 일며 강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청운은 격돌의 순간, 반 보 물러섰다.
하지만 그것은 본 사완악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청운의 반 보 후퇴는 힘에서 밀려서가 아님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청운은 사완악의 장력 중 일부를 받아들이고, 그 위에 자신의 힘을 더해 두 번째 초식을 전개했다.
마치 사완악의 유풍유권과 같이, 청운은 사완악의 장력을 역이용하여 돌려주는 것이었다.
“제법이군.”
사완악은 물러서지 않고 재차 파신마장을 펼치며 청운의 장력과 정면으로 마주쳐 갔다.
꽝꽝꽝!
장력이 상쇄될 때마다 굉음이 일었다.
청운은 기교를 이용해 사완악의 힘을 흘려 내며 싸웠고, 사완악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세로 계속해서 장력을 뿜어냈다.
누가 보아도 사완악의 불리한 싸움.
하지만 그렇게 몇 번의 격돌이 더 일어났을 때, 청운의 안색이 점점 하얗게 변해 갔다.
반면 사완악의 장세는 더욱 거세졌다.
청운은 장력이 격돌할 때마다 보법을 밟고 손으로 원을 그리며 사완악의 힘을 천지로 흘려 보내려 했다. 하지만 사완악의 장력은 그럴수록 더욱 빠르고 강하게 밀려왔고, 결국 청운의 입에서 한 움큼의 선혈이 토해졌다.
사완악은 손을 멈추고 말했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이나, 강능단유(剛能斷柔)인 법이지.”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압할 수 있고, 반대로 강함 역시 부드러움을 끊어 낼 수 있다는 뜻.
사완악의 장력이 청운이 받아 낼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 것이었다.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청운은 창백한 안색으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녕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완악은 주변에 쓰러진 후기지수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이미 이긴 거 같은데?”
청운이 말했다.
“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죽겠지만, 그 전까지 모든 힘을 다해 당신에게 저항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맹주님이 계시지요.”
사완악은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양천상을 바라봤다.
강호 팔대고수, 정도맹주, 운룡무왕.
그를 수식하는 모든 말들이 그가 얼마나 강한지 나타내 주고 있었다.
청운의 말은 자신들을 모두 상대하고도 그런 양천상과 싸울 수 있겠냐는 뜻이었다.
사완악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피라미 몇 상대했다고 달라질 건 없지. 그리고…….”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폭죽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화려한 불꽃이 일어났다.
사완악과 청운은 물론, 멀리 있던 양천상도 의외의 상황에 뒤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사완악은 크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어떻게 일어났지?”
사완악의 점혈 수법은 군림혼혈공에 기반을 두고 있어 보통의 점혈과는 완전히 달랐다.
강호 팔대고수 정도의 내공을 지니고 있거나, 군림혼혈공을 창안한 의왕(醫王) 갈효봉 정도의 의술 실력이 있어야만 혈도를 풀어 줄 수 있는 일.
사완악은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고 설린의 혈도를 풀어 줄 생각이었는데, 그녀가 버젓이 깨어나 있는 것이었다.
‘현종 스님의 염주 덕분이었어.’
설린은 자신도 모르게 품 안의 염주를 어루만졌다.
남궁준휘가 설린을 불러내 악행을 저지르려고 했던 날.
현종은 설린을 구해 주고 정도맹을 떠나기 전, 그녀에게 하나의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특이하게도 금색의 작은 부처 조각상이 달린 염주였다.
염주알은 푸른색과 적갈색이 섞여 있었는데, 돌과 나무도 아니고 보석이나 쇠도 아닌 그 재질은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현종은 염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구천항마호신불(九天降魔護身佛)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은데요?’
‘소림사의 소림 수호승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신물(神物)입니다. 그것을 지니고 있으면 몸에 어떤 해롭고 삿된 기운도 침입할 수 없지요. 또한 신물을 지닌 자의 몸 안에 이상이 생겼을 때, 자생의 능력을 도와주는 물건입니다. 외상을 막을 수는 없지만, 지혈과 상처가 회복되고 독에 대한 해독 능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설린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런 물건을 어찌 저한테 주십니까?’
‘오늘의 일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당분간 몸에 지니고 계십시오. 저는 그것이 없더라도 이 한 몸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건 소림사의 보물입니다.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현종이 웃으며 말했다.
‘구천항마호신불은 소림 수호승의 재량입니다. 완전히 드리는 것도 아니고 빌려 드리는 것이니 갖고 계십시오. 그리고 이것도 받으십시오.’
현종은 길고 가느다란 붓통 같은 것을 하나 주었다.
‘이건 신호탄입니다. 아래의 줄을 잡아당기면 하늘에 폭죽을 쏘아 올리지요. 완악에게도 이 폭죽의 쓰임새를 말해 놓고, 혹시 오늘처럼 위험한 일이 있으면 사용하십시오. 저든, 완악이든, 혹은 그 누군가든 문주님을 도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설린은 결국 현종에게 그 두 가지 물건을 받았다.
사완악이 수혈을 짚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그녀는 서서히 정신이 깨어날 수 있었다.
소림사에서 전해지는 신묘한 구천항마호신불은 사완악의 군림혼혈공마저 풀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설린은 정신을 차리고도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사완악의 성격을 알고 있었고, 정신을 차려 사완악을 말려 봤자 다시 혈도를 제압당하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강한 방법으로 개입하지 못하게 만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설린은 무작정 사완악을 말리는 게 아니라, 사완악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는데, 그러다 문득, 굉장히 이상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맹주님은 무슨 생각이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