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81
정도마신 80화
사완악의 검날은 두 사람의 허벅지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윽!”
“큭!”
두 사내는 짧게 신음을 내뱉으며 다리를 부여잡았다.
생명의 위험이 있거나 다리가 불구가 되는 중상은 아니지만, 당장 빠르게 경공을 펼치기에는 지장이 있는 정도의 상처였다.
이는 사완악이 정확히 계산한 깊이의 상처였으니, 그의 손끝 감각이 얼마나 정교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완악은 쓰러지는 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승광신법을 펼쳤다.
“아, 안 돼! 거기 서라! 네놈은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아아!”
사완악의 신형은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갔고 그 외침은 벌써 멀리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왜 다들 자기소개를 하고 싶어 하는 거야?’
사완악은 애초부터 그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떤 사부에게 어떤 원한을 갖고 있는지 따위를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 봐야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부들의 행방을 모른다고 해 봐야 믿지도 않을 것이며, 믿는다 해도 순순히 보내 줄 리도 없었다. 그저 도백천의 사형들처럼 ‘사대악인 대신 네가 죽어라’ 하며 달려들 것이 뻔했다.
삐이익-! 삐이이익-!
세 사내를 쓰러뜨린 곳에서부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호각(號角)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사완악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 같았다.
‘도대체 저런 건 언제 또 준비한 거야?’
사완악은 속으로 구시렁대면서도 신법에 더 속도를 실었다.
승광신법을 극한으로 전개하면 속도는 훨씬 더 빠를 수 있지만, 내력의 소모는 그만큼 더 심해진다. 더군다나 사완악은 이미 양천상과 도백천의 사형들, 그리고 몇 명의 추격꾼들과의 공방으로 꽤 많은 내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혹시 모르니 최대한 힘을 아껴 놔야겠지.’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사부님의 원수! 죽어라!”
갑자기 땅속에서 한 개의 창날이 불쑥 튀어나오며 사완악의 신형을 꿰뚫어 버릴 듯 찔러 왔다.
순간, 사완악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 창날은 평범한 암습이 아니었다.
상대는 뛰어난 고수임이 틀림없었다.
발밑에서부터 찔러 오는 궤도는 너무나 절묘했고, 창끝에는 수많은 변화가 내포되어 있어 쉽게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사완악이 사부들에게 배운 무공 중에서도 이 암습에 대응할 수 있는 마땅한 초식은 없었다.
하지만 이때, 사완악의 몸이 공중에서 둥글게 말리며 팽이처럼 회전했다.
이는 실로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이어서 찔러 오는 창끝이 흔들리며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사완악은 마치 묘기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창날을 피해 내고는 그대로 땅으로 뚝 떨어지다가 창을 쥔 사내의 양어깨를 두 발로 밟아 버렸다.
우드득!
“크윽!”
뼈가 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창을 찔렀던 암습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창대를 놓치며 땅으로 추락해 곤두박질쳤는데, 다시 일어섰을 때는 양쪽 쇄골이 으스러진 듯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방금 그 무공은…….”
사완악은 씩 웃으며 말했다.
“광대권법.”
“과, 광대권법…….”
암습자의 얼굴에 황당함이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 사완악의 동작이 광대의 묘기 같기는 했지만…….
세상에 그런 무공도 있단 말인가?
“그럼 이만!”
“기, 기다려라! 너는 내가 누군지……!”
암습자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사완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미 도망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 그거참, 재밌군.”
사완악은 경공을 펼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광대권법은 사완악이 그야말로 재미 삼아 만든 무공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깊은 무학의 이치가 담겨 있긴 하지만, 즉석에서 만들어 낸 무공이 얼마나 심오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습게도 그런 광대권법이 희대의 절학인 파신마장이나 유풍유권, 환요검법 같은 무공들보다 더 유용하게 사용되는 순간이 있을 줄이야!
‘그렇다. 세상에 완벽한 무공은 없다.’
그것은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너무 당연한 말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사완악은 여전히 경공을 펼치며 나아갔지만 머릿속에서는 다른 상념에 빠져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완악은 문득 어떤 강렬한 기운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섰다.
“어?”
사완악은 눈앞의 상황을 확인하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앞에는 냉랭한 기운을 뿜어내는 다섯 명의 중년 도사가 서 있었다.
얼마나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 그들이 나타났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물론 새로운 추격자가 나타났다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보통이 아닌데?’
아까 전, 땅에 숨어 암습을 시도했던 창술가도 고수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도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암습자보다 더 뛰어났다.
그것은 기운의 차이였다.
암습자는 전신에서 패도적인 기운과 살기가 흘러나왔지만, 이 다섯 명의 도사는 그만큼 강렬한 기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잔잔한 물결 같았다.
기운을 폭발시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갈무리하여 절제하는 것은 진정한 고수의 영역이었다.
사완악은 이전처럼 섣불리 공격할 수가 없었다.
이때 다섯 도사 중 깡마른 한 사람이 말했다.
“네가 그 사완악이구나.”
그들은 지금까지 만났던 자들과 달리 길게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화산오검(華山五劍)이다.”
화산오검.
화산오검 또는 매화오검이라 불리는 그들은 화산파를 대표하는 다섯 명의 검사(劍士)였다.
사완악에게 패배한 화산파의 후기지수 화진우가 화산파 제일의 기재라고 하지만, 그건 아래 세대에서의 이야기였다.
화산오검은 젊은 시절 모두 화진우보다 뛰어났었고, 지금은 모두 화산파의 장로직을 맡고 있었다.
그런 화산오검이 한 사람도 아니고 전원 모두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너의 사부 잔혹신풍은 화산파의 속가 매영문에 살겁을 저질렀다.”
깡마른 도사는 조용히 말했으나, 그의 눈빛은 얼음장보다 차가웠다.
“그리고 사대악인의 제자인 너는 맹주님을 시해했다.”
화산오검의 전신에서 칼 같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사완악은 그들의 서릿발 같은 기세와 자신에게 심판을 내리는 듯한 말투에, 오히려 지금까지 참아 왔던 심사가 뒤틀렸다.
사완악은 크게 비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가 문제지?”
깡마른 도사의 표정이 고목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완악이 빠르게 말했다.
“매영문의 일은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고, 사부님의 행방은 나도 알 수 없지. 그리고 맹주의 죽음은 내가 암습을 한 것이 아니야. 맹주가 나를 진법 안에 가두었고, 서로 무공을 겨루다 일어난 일. 강호에서는 아주 흔하고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도 없는 사건인데, 어떤 대의명분으로 나를 죄인 취급하는 거지?”
깡마른 도사는 무슨 대답을 하려다가 일순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대의명분(大義名分)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정파의 사람들은 언제나 대의명분을 중요시했다.
사파의 무인들은 정파인들의 그러한 점을 위선(僞善)이라고 비꼬거나 어리석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 대의명분이야말로 정파인들이 추구하는 협의 기본이었고 정신이었다.
그리고 화산파는 구파일방 중 어느 문파보다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곳이었다.
깡마른 도사, 화산오검의 대사형이자 구궁지검(九宮知劍)이라는 별호를 갖고 있는 장완 도사는 사완악의 말에 대답을 하려 했지만, 막상 반박을 하려 보니 일견 잘못된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완악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사대악인의 제자인 네가 그들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는 말인가?”
사완악이 대답했다.
“만약 당신의 사부가 당신에게 아무 말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다면, 당신은 사부의 행방을 알 수 있을까?”
“…….”
“그리고 설령 내가 우리 사부의 행방을 말한다고 해도, 그 자리에 이미 사부가 떠나고 없다면 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할 생각이지? 결국 당신들은 지난 원한의 분을 풀기 위해 나라도 죽이려 들 것이 아닌가?”
장완 도사의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새파랗게 젊은 사대악인의 제자의 언변에 화산파의 장로인 자신이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창피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무량수불. 장완 진인께서는 그 요사한 말에 현혹되실 필요 없습니다.”
갑자기 하나의 도호와 함께 서쪽 수풀에서 한 무리의 새로운 도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숫자는 일곱이었고, 화산오검과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사완악은 그 일곱 도사의 복장이 익숙했다.
바로 무림일룡 청운이 입고 있던 도복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또 새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무당칠자(武當七子)의 말이 옳다. 맹주를 시해한 개 같은 놈에게 대의명분 따위는 필요 없지. 우선 잡아서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고 족쳐 놓은 다음, 사대악인 그 개종자들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아내면 될 일이다.”
그 음성의 주인은 동쪽에서 나타났다.
그는 다 해져 작은 천으로 몇 번이나 덧대 기운 낡은 옷에, 허리에는 포대 자루로 만든 일곱 개의 매듭을 달고 있는 늙은 거지였다.
그를 본 구궁지검 장완 도사가 공손히 알은척을 했다.
“강개(彊丐)께서도 오셨군요.”
무당칠자.
화산오검이 화산파를 대표하듯, 무당칠자는 무당파를 대표하는 일곱 명의 고수였다.
젊었을 적에는 서로 경쟁의식이 있었고, 강호에서는 화산오검과 무당칠자 중 누가 더 강하냐는 논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강개.
개방의 늙은 장로인 강개는 화산오검과 무당칠자보다 오히려 더 유명했다.
그는 ‘굳세다[强]’라는 별호대로 입이 거칠고 성격이 불같아 많은 사건을 일으켰지만, 개방의 제자답게 정의감이 투철해서 수많은 협명을 날렸다.
정면의 화산오검과 서쪽의 무당칠자, 동쪽의 강개까지.
남쪽은 사완악이 내려온 방향이니, 이 열세 명의 고수들은 사완악을 중심으로 세 방위를 점하고 둘러서서 무형의 기운을 내뿜으며 퇴로를 막고 있었다.
무당칠자의 대사형 산양자가 말했다.
“맹주께서 너를 가둔 이유는 사대악인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사대악인을 옹호할 마음이 없었다면, 그곳에서 기다렸다가 만인의 앞에서 네 사부들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도 네가 당당하다면 스스로 투항하고 사람들 앞에서 너의 잘못이 없음을 증명해 보거라.”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맹주와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당신들이 무슨 권한으로 나를 막아선단 말이지? 어째서 당신들이 강압적으로 원하면 상대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나는 아무것도 한 짓이 없는데 어째서 그것을 내가 증명해야 하지? 내게 무슨 죄가 있다면 당신들이 그것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맹주가 나를 가로막고 공격하면 나는 그저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산양자는 담담히 말했다.
“사부는 부모와 같기 때문이지.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사대악인이 저지른 행동들이 얼마나 잔혹하고 끔찍한 일이었는지 깨닫지 못한다는 뜻일지니. 또한 그런 사대악인의 공동 전인인 너를 가만히 둘 수는 없는 일. 만약 네가 지금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네가 익힌 그 무공들은 거두어야 함이 옳다.”
그 말을 들은 사완악은 속에서 억눌렀던 무언가가 터지는 느낌이었다.
“정말 지랄 맞게 재수 없는 말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