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80
정도마신 79화
“소, 소저. 당신이 말해 보시오. 소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설린이 무슨 대답을 하기 전에 사완악이 먼저 말했다.
“어차피 말해 봤자 증거를 필요로 하겠지.”
사완악이 설린을 보며 말했다.
“네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검술을 펼쳐 봐라.”
설린은 눈을 깜빡이며 사완악을 바라봤다.
마치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묻는 듯한 눈빛.
사완악은 검날에 살짝 힘을 주며 말했다.
“어서!”
이때 설린은 생각했다.
‘사 공자님은 나를 도백천의 딸이라고 속여 이곳을 탈출하실 생각이구나. 저들이 눈치챌까 봐 전음을 하지 않는 것이겠지.’
전음은 소리는 들키지 않지만 입 모양은 움직이므로 예리한 안목을 가진 사람에게는 들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검술을 펼쳐 보라니?’
그때 설린의 머릿속에 구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사 공자님이 창안한 정유검법은 도백천의 군자신검을 변형한 것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저분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설린은 사완악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목에 검을 대고 있는데 어떻게 검술을 펼치겠습니까?”
사완악은 속으로 매우 만족했다.
‘문주는 역시 똑똑하군!’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저 뒤쪽으로 가서 펼쳐라.”
어차피 설린이 도망치지 못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설린은 사완악의 말대로 뒤쪽으로 걸어가 검으로 들어 기수식을 취하고, 허공에 정유검법의 초식들을 하나씩 천천히 전개했다.
그리고 그녀가 약 세 개의 초식을 펼쳤을 때 중년인들의 표정은 크게 흔들렸고, 그녀가 일곱 개의 초식을 펼치자 온몸을 떨었으며, 마지막으로 다섯 개의 초식을 더 펼친 후에는 그들의 얼굴에 모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조금은 다르지만 이것은 군자신검이 틀림없다. 정녕, 정녕 백천의 딸이란 말인가!”
사완악은 설린에게 돌아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설린이 다가오자 사완악은 다시 그녀의 목에 검을 얹어 놓고 말했다.
“이제 말해라. 네 아비가 누구인지.”
설린은 사완악의 묘책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군과 구휘가 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면 불가능한 계략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그럴듯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민했다.
사완악의 장단에 맞춰 주면 그녀는 저들을 속이는 일이고, 사제를 향한 그립고 소중한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며, 정유문의 문주가 사대악인의 제자를 도와주는 일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설린은 사완악이 왜 이런 연극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만약 사 공자님이 마음먹고 이곳을 나가려 한다면 저 네 사람은 모두 화를 피하지 못할 거야.’
사완악이 그들을 죽이지 않고 비켜서게 만드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설린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돌연 눈물이 맺혔다.
“어머니는 말씀하시길 제 친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분을 너무 미워했고, 저는 제 친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큰 병을 얻어 돌아가시기 전 그분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성함은…… 도백천. 세상에서 군자신검이라 불렸던 도백천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완악은 하마터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헛웃음을 내뱉을 뻔했다.
설린의 눈물은 진짜였고, 그 음성에서는 진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잘 맞춰 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나라도 깜빡 속겠는걸?’
사완악의 생각대로 네 명의 중년인은 오한에 걸린 듯 손발을 잘게 떨었다.
“그것이…… 그것이 정말이냐?”
사완악은 말했다.
“도백천은 뒤늦게 그녀에게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검법을 비급으로 만들어 건네주었지.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태영문의 사형들을 찾아가라는 말과, 그 비급이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중년인 중 한 명이 사완악에게 물었다.
“너는 그 일을 어찌 다 알고 있는 것이냐?”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당신들에게는 불쾌한 진실일 수 있지만, 사부에게 들었지.”
“허어!”
중년인들은 그저 할 말을 잃은 듯, 그저 설린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이때 사완악은 씩 웃으며 칼에 살짝 더 힘을 주었다.
그러자 설린의 곱고 하얀 살결에서 붉은 핏방울이 나타났다.
중년인들이 기겁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 무슨 짓이냐!”
“당장 그 칼을 내려놓지 못할까!”
사완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럼 이제 길을 비켜 주셔야지?”
“그, 그런……!”
중년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제의 복수를 위해 수련한 십 년의 세월.
하지만 그 사제가 남긴 유일한 핏줄.
“네놈이 그 아이를 순순히 풀어 줄 것임을 어떻게 믿지?”
사완악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나를 추적해 오는 사람들이 당신들만은 아닐 텐데, 이 여자를 데리고 도망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이건 일종의 거래야. 이곳에서 나가면 바로 풀어 주도록 하지. 그 후에 다시 나를 잡으러 오는 건 당신들 자유야. 하지만 만약 나를 끝까지 막아선다면…….”
사완악이 보검을 고쳐 잡자 햇빛에 칼날이 번쩍였다.
“나도 이판사판으로 이 여자를 죽일 수밖에 없다. 내 사부들은 수백 명을 죽인 살인마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군.”
중년인들은 사완악의 눈빛과 미소, 몸에서 흘러나오는 광기와 살기에서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대악인의 제자라면 능히 그런 일을 하고도 남음이었다.
중년인들은 서로를 한 번 마주 보고는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백천의 딸을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다!
원수는 다시 찾아가 갚으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제가 남긴 딸이 저 파렴치한 녀석에게 해를 입는다면, 죽어서도 사제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들은 수십 년을 함께 지내 온 사이기에 말을 하지 않아도 뜻이 통했다.
네 사람은 모두 검을 내리며 대형을 풀고 말했다.
“그 아이의 몸에 다시 한번 상처를 냈다가는 네놈의 뼈까지 씹어 먹을 것이다.”
“당신들은 나와 십 장의 거리를 두고 따라와. 이 조건을 어기지 않는다면 이 여자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테니.”
중년인들은 사완악에 대한 분함과 설린에 대한 걱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비켜섰다.
사완악은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설린과 함께 동굴로 들어갔다.
중년인들은 약속대로 십 장의 거리를 두고 뒤따라왔고, 사완악은 동굴을 빠져나오며 비로소 설린에게 전음을 날렸다.
-연기력이 장난 아닌데?
설린은 전음을 할 줄 모르기에 묵묵히 걷기만 했다.
-문주.
뚜벅, 뚜벅.
동굴 안에는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문주가 내 편을 들지 않았으면 난 문주를 죽이고 정유문을 망하게 했을 거야. 그러니까…… 문주는 내게 협박을 받은 거지.
‘사 공자님……!’
설린은 사완악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완악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정유문은 정식으로 탈퇴하지. 그동안…….
사완악은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혼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재밌었어.”
문득, 설린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것은 참 복잡한 마음이었다.
여기서 사완악과의 인연이 끝이라는 생각과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서운함, 그리고 아쉬움, 또한 연모의 마음들이 뒤섞여 심장이 뛰고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사완악이 걱정되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에게만큼은 사완악은 세상에서 가장 고맙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사대악인의 제자가 아니라 사대악인 당사자라 해도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사완악은 그녀에게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사완악은 이제 무림의 공적이 되었기에, 그의 앞길에 어떤 험난함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설린은 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사완악과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완악의 전음이 그녀의 마음을 잘라 냈다.
-우린 이제 아무 관계없는 거야.
설린은 결국 흐느껴 울고 말았다.
사완악은 별다른 표정 없이 계속해서 걸어갔다.
때마침 뒤쪽에서 중년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왜 그 아이가 울고 있느냐!”
사완악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여자는 참 겁이 많은 것 같군. 아무 짓도 안 했으니 조용히 따라오기나 하셔.”
사완악은 조금 더 걸음을 빨리했다.
곧 처음 들어왔던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설린은 그 동굴의 입구가 영원히 멀어지기를 바랐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끝에 이르고 말았다.
사완악은 뒤를 돌아 중년인들에게 말했다.
“약속대로 이 여자를 풀어 주지. 그리고 어쨌든 당신들이 길을 비켜 줬으니 한마디 충고를 해 줄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당신들이 만약 내 사부님을 만나게 된다면…….”
사완악은 해맑게 말했다.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쳐. 당신들이 십 년 동안 연마한 그 진법 따위로는 절대 사부님을 이길 수 없으니까.”
“뭐, 뭐라?”
사완악은 그 말을 끝으로 땅을 박찼다.
그의 신형은 마치 하늘을 나는 새처럼 훌쩍 위로 솟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백의장삼을 펄럭이며 질풍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그야말로 놀라운 경신술이었다.
중년인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사완악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황급히 설린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으냐? 다친 곳은 없느냐?”
설린은 가장 나이가 많은 중년인이 다가와 그녀를 걱정하며 다독이자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중년인들은 그녀가 얼마나 놀랐으면 이토록 서럽게 우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화가 솟구쳤고, 산 전체에 메아리가 치도록 내공을 담아 크게 외쳤다.
“사대악인의 제자가 도망쳤다!”
“잡아라! 사대악인의 제자가 도망쳤다!”
* * *
휘이익! 휘이익!
사완악은 경공을 펼치며 빠르게 하산했다.
하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일부러 이렇게 깊은 곳까지 온 거였군.’
태산의 깊은 숲속은 실로 험준했다.
사부 구득소의 승광신법은 본래 평지에서 그 진정한 속도가 발휘되는 신법이었다.
물론 어떤 지형지물에서도 웬만한 신법보다는 뛰어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 정도 속도로는…….
“멈춰라!”
사완악의 앞에 돌연 세 명의 사내가 막아섰다.
“가끔은 예상이 틀려도 되는데 말이지.”
사완악은 홀로 중얼거리며 그들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근엄한 표정으로 사완악의 앞에 나타났던 세 사내의 얼굴에 약간의 당황함이 떠올랐다.
“머, 멈추라고 했다! 네가 사대악인의 제자…… 으악!”
다급히 외치던 사내는 가슴에 일장을 얻어맞고 뒤로 날아갔다.
“이런 미친놈이!”
그 사내의 양옆에 있던 두 사내가 검을 들고 동시에 사완악의 어깨와 허벅지를 찔러 왔다.
사완악은 오른손으로 손날을 만들어 어깨를 찔러 오는 검의 칼등을 내리누르듯 쳐 내며 방향을 꺾이게 만들었다. 그러자 그 검은 아래로 뚝 떨어지며 허벅지를 찔러 오는 검을 막아 갔고, 두 사내의 검이 서로 강하게 부딪쳤다. 바로 유풍유권의 한 수였다.
“으음!”
두 사내는 손목에 강한 충격이 왔는지 짧게 신음을 내며 검을 거두었다.
사완악은 그 순간 검을 뽑아 양쪽으로 빠르게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