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93
정도마신 92화
사완악은 마지막 시험의 이름이 마성이라는 것을 듣고는 약간의 의아함이 생겼다.
‘마성이라면…… 얼마나 마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시험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이 시험에 도전한 사령문의 제자는 모두 열세 명. 그들은 모두 강한 무공과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는 독심, 그리고 그 어떤 고통도 참아 낼 수 있는 인내의 시험을 통과한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마성이 과연 부족했을까?’
사완악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돌연 눈앞에 한 노인이 나타났다.
그 노인은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손에는 긴 나무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 노인의 눈동자는 진한 녹옥빛을 띠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의 표면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어서 마치 영혼이 없는 망자(亡者)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누구지?’
이때 노인이 사완악을 향해 고개를 똑바로 하고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사완악은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치솟았다.
그리고 이어서 노인의 뒤에는 여덟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여덟 명 중 네 명은 키도 똑같았고, 얼굴은 텅 비어 버린 구멍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네 사람은 그 모습이 확실했는데, 사완악은 그들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구휘, 양천상, 재담꾼, 이군? 이들은……!’
지금까지 만났던 천기자의 제자들.
그렇다면 저 노인은?
‘천기자!’
하지만 사완악은 천기자를 알지 못했다.
아직 만나 본 적 없는 천기자의 제자들의 얼굴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천기자도 그래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사완악의 머릿속에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미안하구나…… 이 모든 것이 강호를 위함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서너 살 남짓한 아이를 품에 안고 중얼거리는 한 노인.
그 노인은 바로 사완악의 눈앞에 나타난 천기자의 외양과 똑같았다.
사완악은 그의 품에 있는 아이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억도 할 수 없는 어릴 적의 장면은 사완악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또렷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군…… 당신이 천기자였군.”
가라앉은 사완악의 눈빛에서 가슴이 섬뜩해지는 살기가 흘러나왔다.
첫 번째 시험 때와 마찬가지로, 사완악은 지금의 상황이 환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때, 돌연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이한 기운들이 하나의 기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기운들은 마치 악령처럼 날뛰며 방 안을 돌아다녔고, 악마의 웃음소리 같은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완악은 그 소리가 몹시 거슬려 허공을 쳐다봤는데, 그 순간 방 안에서 날뛰던 사령(邪靈)들은 모두 사완악의 백회혈(百會穴)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커헉!”
사완악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이마와 목, 손등의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올랐다.
쿠오오오오!
가공할 기운이 사완악의 전신에서 폭사되듯 터져 나왔다.
‘이건…….’
사완악은 자신의 몸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 넘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였다.
“모든 것은 강호를 위함이다.”
그것은 천기자의 음성이었다.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천기자를 바라봤다.
천기자는 여전히 초점이 없는 녹옥빛 눈동자로 히죽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사완악은 마음속에서 다시금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어떤 수십 개의 음성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저자를 죽여! 용서하지 마!’
‘저자는 너를 이용하고 있다! 저자를 죽여라! 잔인하게! 가장 잔인하게 죽여!’
‘파괴시켜라! 모든 것을!’
‘피[血]…… 그의 피로 세상에 복수를 시작하라!’
그 음성들이 머릿속에 웅웅 울려 퍼지자, 사완악의 단전에 잠들어 있던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도 날뛰기 시작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지금 너의 힘이라면 세상 모든 여인을 취할 수 있다!’
사완악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만났던 여인들이 스쳐 가고, 자신에게 검을 겨누었던 정도맹과 소림사의 무인들을 향한 살심(殺心)도 피어올랐다.
이때 사완악은 천기자의 녹옥빛 눈동자를 바라봤는데, 천기자는 이제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발버둥 쳐 봐야 소용없다. 너는 오로지 내 계획을 위해 존재하는 자이니라.”
“닥쳐라!”
사완악의 입에서 마침내 참을 수 없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천기자의 옆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다.
후기지수 중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남궁준휘와 당소윤, 그리고 태산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암습자들, 화산오검과 무당칠자, 소림사의 십팔나한과 두 노승까지.
그들은 모두 병기를 들고 사완악을 향해 겨누었고, 키 작은 노승이 근엄한 음성으로 외쳤다.
“사대악인의 제자인 저놈의 사지를 잘라 강호의 넋을 위로하라!”
사완악은 들끓는 분노를 한 줄기 비웃음으로 토해 내며 말했다.
“내가 네놈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
그러자 남궁준휘가 외쳤다.
“닥쳐라! 너의 사부들과 너는 반드시 처단해야 할 악인들이다. 그리고 네놈을 도와준 이 연놈들도 마찬가지다!”
남궁준휘는 두 사람을 잡아 끌어와 앞에 무릎꿇렸다.
사완악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한 사람은 현종이었다.
현종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내상을 입은 듯 얼굴은 창백했고,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으며, 사지는 철구가 달린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키 작은 노승이 말했다.
“네놈 대신 이 배신자 녀석의 단전을 파괴했지. 네놈도 곧 이 꼴이 될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설린이었다.
남궁준휘는 사완악 앞에서 설린의 윗옷을 찢어 버렸다.
그러고는 머리카락을 잡아 고개를 젖힌 뒤 그녀의 목에 칼날을 대고 말했다.
“크크크, 네놈의 사부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네 여인이 겁탈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사완악은 전신이 덜덜 떨려 왔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분노의 외침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고, 사완악의 시선은 현종과 설린에게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아무 죄가 없을 텐데.”
당소윤이 교성을 터뜨리며 말했다.
“당신과 정을 통한 것이 죄겠지. 나보다 아름답다고 한 저년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똑똑히 지켜보겠다.”
“그런가? 그것이 죄였는가?”
사완악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마.’
그 순간, 사완악의 몸에서 끊임없이 외쳐 대던 사령들은 더욱 미쳐 날뛰었고, 사완악의 몸에서는 가히 천지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폭발적으로 넘실거렸다.
사완악은 정도맹의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네놈들이 생각하는 대로……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 주마.”
사완악은 파신마장의 초식을 내질렀다.
세상을 태워 버릴 것 같은 뜨거운 장력이 주변을 불구덩이로 만들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천지개벽의 위력을 담은 장력.
그리고…….
쎄에에엑!
사완악의 검에서 펼쳐지는 환요검법은 요사스러운 검광을 뿌리며 정도맹의 무인들을 향해 검기가 날아갔다.
“여기까지인가.”
갑작스러운 중얼거림.
그 음성은 바로 사혼지관의 시험관인 미지의 혼령이었다.
미지의 혼령은 괴성을 내지르며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허공에 무공의 초식들을 쏟아 내고 있는 사완악을 보며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오랜만에 나타난 제대로 된 도전자였고, 지금까지 봤던 수많은 사령문의 후인들 중에서 가장 재밌고 독특한 놈이라 약간의 기대를 품은 것은 사실이었다.
만약 통과만 한다면, 삼백 년 전의 그놈보다도 더 대단한 놈이 탄생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역시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예언의 후인은 독심과 인내, 마성을 이미 완성하여 나타난다고 했지. 세 가지 시험이 의미가 없는 자라고 했다. 하지만 저 녀석이 보여 준 모습은 그와는 많이 달랐으니.’
세 번째 시험은 도전자가 얼마나 마성에 물들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사령문의 지존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마성을 지니고 있기 마련.
그 마성을 완벽히 제어하는 것이 이 시험의 내용이었다.
마성을 완벽히 다스리는 사람만이 그 어떤 요소에도 흔들리지 않는 순수한 악성을 지닐 수 있고,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지 않으며, 진정한 사존(邪尊)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완악은 탈락이었다.
미지의 혼령은 사완악이 과도한 내공의 사용으로 주화입마에 걸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사완악은 그런 자신의 상태를 모르고 괴성을 지르며 장력을 쏟아 내고 있었고,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지금까지 다른 도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기를 소진하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나름 즐거웠다. 그 대가로 환상에서나마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 주마.’
미지의 혼령이 그런 생각을 품자, 돌연 기이한 기운이 일어나 사완악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사완악은 자신의 파신마장에 마침내 천기자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다른 무인들이 피를 토하며 추풍낙엽처럼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완악은 광기 섞인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터뜨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사완악의 입에서 조금 이상한 말이 흘러나왔다.
“크하하하! 내가 이따위 술법에 당할 것 같으냐!”
“…….”
“닥쳐! 닥쳐! 닥쳐! 그 누구도 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다!”
미지의 혼령은 순간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사완악을 바라봤다.
혼령의 눈에 사완악이 보는 환상이 나타났다.
사완악은 여전히 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표정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쓰러진 천기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네놈들을 죽이게 만들려는 것도 네 계획이냐? 그럼 난 절대 죽이지 않는다. 나는 네놈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도 해 주지 않겠단 말이다.”
사완악은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그는 돌연 자신을 향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닥쳐라, 사완악! 그만 지껄여! 나라고 해도 나에게 강제로 명령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닥치고 있어! 세상을 피로 물들이라고? 그럼 난 앞으로 평생 남의 피를 보지 않겠다! 닥쳐!”
미지의 혼령은 사완악의 말이 그의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는 사령들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참으로 황당무계한 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무엇 때문에 주화입마에 걸려 가며 싸움을 했단 말인가?
‘설마?’
미지의 혼령은 사완악의 뒤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한 사람은 넝마가 된 승복에 사지가 쇠사슬에 묶여 있는 중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머리가 풀어헤쳐지고 상의가 찢어져 있는 미모의 여인이었다.
‘자신의 모든 생명의 기운을 사용해 가며 싸운 것이 마성에 잠식되어서가 아니라, 저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