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94
정도마신 93화
미지의 혼령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도전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삼백 년 전의 그놈이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독한 광기 때문이었다.
그의 광기는 사령들의 사이함을 넘어서는 것이었고, 사령들을 자신의 일부로 녹여 다스렸다.
그리고 예언의 후인은 이미 마성을 완성한 자이기 때문에 사령들의 존재를 스스로 눈치채고 환영을 깨고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데 사완악은 그 두 가지와는 전혀 다른 사례였다.
사완악이 이 시험을 견뎌 내고 있는 것은 그저…….
‘오기(傲氣)! 지독한 오기로다.’
미지의 혼령은 감탄을 하면서도 한 가지 의아함이 새로 생겼다.
‘마성에 대항하고 사령들의 속삭임을 거부하는 것은 오기라고 쳐도, 저 두 사람을 목숨 걸고 지켜 내는 것은…….’
이때, 미지의 혼령은 사완악의 심장 깊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하나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저, 저건……?’
사완악을 처음 보는 순간 느꼈던 알 수 없는 거대한 기운.
그 기운은 어떤 단단한 껍질에 꽉 막혀 봉인된 느낌이었는데, 이제 보니 그 껍질에 금이 가고 그 사이로 자줏빛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게 대체 무슨 기운이지?’
그 광채는 아직 완전히 봉인에서 깨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광채에 닿는 사령들은 모두 불에 타 버린 재처럼 사라져 갔다.
사령들은 사완악의 머릿속과 온몸을 돌아다니면서도, 그 자줏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심장에는 감히 범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한 줄기 자줏빛 광채가 사완악의 백회혈로 치솟았다.
그러자 사완악이 돌연 쓰러져 있는 천기자의 제자, 정도맹의 맹주 양천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넌 어떻게 죽은 놈이 다시 살아왔지?”
양천상이 외쳤다.
“사대악인의 제자인 네놈을 죽이기 전까지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개소리군.”
그러고는 갑자기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들은 왜 얼굴에 구멍이 뚫려 있냐?”
사완악은 이어서 뒤를 돌더니 축 늘어져 있는 현종을 바라봤다.
“나조차 감당할 수 없는 이 괴물 같은 땡중이 이렇게 쉽게 당할 리도 없거니와.”
사완악은 초췌한 모습의 설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허공에 대고 말했다.
“미안한데 우리 문주님이 한마디도 안 하는군. 그래도 저들을 죽이면 안 된다고 울면서 말리는 답답한 사람인데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완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우리 문주님 가슴은 저렇게 크지 않아. 저건 그저 내가 현종에게 남궁준휘의 일을 듣고 상상했던 모습이라고.”
사완악은 이어서 힘이 다한 듯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해, 문지기 귀신 놈아.”
그 순간, 사완악의 눈앞에 있던 모든 환영들이 씻은 듯 사라졌다.
사완악은 기침을 토해 내며 말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
“…….”
“시험은 통과한 거지?”
미지의 혼령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시험의 조건은 마성을 다스리고 모든 상황이 환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가 예상했던 방향과는 다르지만, 사완악은 분명히 시험의 통과 기준을 달성했다.
“그렇다.”
“그럼 이제 난 뭘 얻을 수 있지?”
사완악은 다시 말했다.
“아니, 그전에. 이제는 묻는 것에 대답을 해 줘야지. 넌 정체가 뭐지?”
“난…… 주선(呪仙)의 사념혼(思念魂)이다.”
“주선?”
“하늘이 이 땅에 능력을 베풀기 위해 한 명의 신인(神人)을 보냈으니 그가 음양천자(陰陽天子)이다. 음양천자에게는 열두 명의 제자가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나를 만든 주선이었다.”
주선의 사념혼은 계속해서 말했다.
“음양천자의 열두 제자는 각자 다른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것은 꼭 무공 같은 능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의술이나 농업, 정치 등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도 있었다. 그중 산신(山神)과 마선(魔仙)은 인간이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전수받았다.”
사완악이 물었다.
“주선은?”
“나를 만든 주선은 다른 종류의 힘을 갖고 있었다. 술법과 저주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주선은 자신의 힘이 산신과 마선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음양천자를 찾아갔고, 음양천자는 주선에게 열두 제자의 능력은 종류가 다를 뿐 모두 같은 힘을 지닌 것이라 말해 주었다.”
사완악은 음양천자의 그 말이 꽤 심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의술을 이어받은 자는 마공을 이어받은 마선을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의술을 이어받은 자의 능력이 마공을 이어받은 자의 능력보다 못한 것은 아니다.
음양천자의 눈에는 그 두 가지가 매우 동등한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주선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주선은 자신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산신과 안하무인의 마선을 힘으로 이기고 싶었다. 그리고 음양천자의 말에서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느꼈다. 만약 모두가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무공 쪽으로 개발해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산신은 생(生)의 기운을 얻었고, 마선은 멸(滅)과 역(逆)의 기운을 얻었으니, 주선은 자연적인 기운이 아닌, 인간의 욕심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욕심에는 사(邪)가 있었고 색(色)이 있었으며, 그 근본에는 사(死)가 있었다. 그 연구를 토대로 자신의 주술 능력을 더해 무공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사령문 무공의 시초이다. 그리고 나는 그 힘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주선이 자신의 술법으로 만들어 낸 혼령이다.”
사완악은 그 말을 듣고는 말했다.
“그럼 산신과 마선의 힘은 어떻게 되었지?”
“산신의 깨달음은 여러 제자에게 다시 나누어 흩어졌다. 한 제자는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루었고, 어떤 제자는 교(敎)를 만들었으며, 어떤 제자는 세상을 떠돌았다.”
“설마 불가의 무공이나, 도교의 무공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사완악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구파일방에는 각자 다른 뛰어난 절학들이 존재하지만, 사실 그 무공들은 일맥상통하는 면들이 있다. 오대세가 역시 마찬가지. 만약 뿌리가 같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일리 있다.’
사념혼이 말했다.
“마선의 무공 역시 여러 제자에게 나누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산신의 제자들과 달리, 함께 힘을 모아 마선을 신으로 숭배하는 종교를 창설했다.”
“마교로군.”
“그렇다. 하지만 주선은 제자를 키우지 못하고 지하 깊숙한 이곳으로 숨어야만 했다.”
“어째서?”
“산신과 마선이 주선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산신은 주선의 무공이 자신의 가르침에서 어긋나는 이치를 따르고 있다는 이유로 주선의 무공을 없애려 했고, 마선은 주선이 만들어 낸 술법들을 매우 껄끄러워하여 주선의 후대를 없애고자 했다. 그래서 주선은 아무도 찾지 못할 장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남겨 놓고 나를 만들었다.”
사완악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장소면 그런 걸 왜 남겨 놔?”
사념혼이 말했다.
“주선은 예언을 했다. 훗날 자신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후인이 나타난다는 것을.”
“그게 전대의 영겁사령존인가?”
“아니다. 그는 주선이 예언하지 못한 자였다. 그는 정말 우연하게 기연으로 주선의 장소를 찾았고, 나의 시험들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장소에 있는 모든 것과 나의 본체를 이 장소로 옮겨 왔다.”
“그는 어떻게 이곳을 찾아낸 것이지?”
“북해빙궁에서 내려오는 만년빙정(萬年氷晶)은 본래 주선이 만들어 낸 물건이었다. 산신에게 죄를 지었던 제자 중 한 명이 그것을 훔쳐 달아나 따로 문파를 세운 것이 바로 북해빙궁이지. 영겁사령존이 어떻게 이곳을 찾았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다만 나는 그러한 과정이 어쩌면 주선이 예언한 후인이 찾아오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 시험을 합격한 네가 나타났지만…….”
사념혼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너 역시 예언의 후인은 아닌 것 같다.”
“그래?”
“주선이 예언한 후인은 네가 보여 준 모습과는 사뭇 달라야 했다. 너는 전대의 영겁사령존처럼 예언과 상관없이 이곳에 와서 시험을 합격한 자이다. 그런데 어째서 너에게서 그 녀석의 힘이 느껴지는지 모르겠군.”
사완악은 영겁사령존의 힘의 일부가 자신에게 녹아 있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시험을 통과한 것은 맞지? 전대 영겁사령존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주선이 남긴 그 사령문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건가?”
사념혼이 말했다.
“물론이다. 그것은 주선의 약속. 이 회색빛 통로를 따라가면 그 끝에 또 하나의 문이 나타날 것이다. 너는 그 안에서 진정한 사존의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몸이 엉망진창이라서 말이야. 시험에 통과했는데 뭐 회복시켜 주는 영약이나 술법 같은 건 없는 거냐?”
“없다.”
“혹시 안에 들어가면 또 위험한 것 있는 거 아니지?”
“시험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 방은 안심하고 들어가도 좋다. 그리고 내상을 치료할 방도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다행이네. 거참! 한 장소에 다 모아 놓으면 되지, 귀찮게도 만들어 놨군. 그럼 이만.”
사완악은 투덜대면서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회색빛 통로를 따라 힘겹게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 주선의 사념혼은 홀로 중얼거렸다.
‘네가 지닌 그 자색의 기운이 어떤 영향을 줄는지…… 지켜보겠다.’
* * *
회색 통로를 따라가자 사념혼의 말대로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그 문은 사혼지관의 철문과 달리, 지극히 평범한 철문이었고 특별한 문양도 없었다.
‘궁극에 이르면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 따위는 아니겠지. 그냥 귀찮았나 보군.’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사완악은 크게 놀라며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다가 피 한 모금을 왈칵 토해 냈다.
‘맞다, 나 조금 전 주화입마에 빠졌었지.’
“큭큭.”
사완악은 자신이 주화입마에 잠깐 빠졌던 것도 잊은 채 내공을 끌어올렸다는 사실에 괜히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의 상황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사완악이 본능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던 이유. 그것은 방문을 열자마자 뿜어져 나온 지독한 냉기 때문이었다.
“진짜…… 얼어 죽……!”
사완악은 ‘얼어 죽겠네.’라는 말을 끝까지 꺼내지도 못하고 몸을 덜덜 떨었다.
피부가 갈라지고 뼛속까지 깡깡 얼어붙는 듯한 추위.
그 냉기는 너무나 차갑다 못해 마치 불구덩이에 들어온 것처럼 온몸이 타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완악이 익힌 염화심공은 극양의 내공심법이니 만약 몸이 정상이었다면 이 냉기에 저항할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이 개 같은 귀신 놈. 위험한 거 없다더니…… 내 돌아가면 네놈을 어떻게든 성불시켜 주마.’
사완악은 속으로 사념혼을 욕하다 보니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이 방 안에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