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96
정도마신 95화
소림사의 방장실.
중년의 승려는 보통의 체구와 골격에, 편안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편안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은은하게 주변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고, 조용히 차 한 잔을 입가에 가져가는 몸짓에서는 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듯한 여유가 담겨 있었다.
이 평범함 속에 거대한 비범함을 지닌 승려는 바로 소림사의 방장 대사, 현암이었다.
현암은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제.”
“예, 방장 사형.”
현암과 마주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승려는 바로 현종이었다.
“원로원의 노여움이 가볍지 않네.”
“예, 그렇겠지요.”
“사부를 죽인 흉수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고동락했던 사형제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분들이 느꼈을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네. 특히 그는 소림사를 빛낼 최고의 인재로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자이니 말일세.
“이해합니다.”
“사제가 염라대사의 장법을 사용했다고 하던데?”
현종은 솔직히 말했다.
“예. 그 친구의 장법을 보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 무공을 따라 했던 것 같습니다.”
“배우지 않고도 그 무공을 똑같이 펼쳤단 말인가?”
“그 장법은 소림사의 백보신권과 흡사했는데, 위력은 조금 떨어져도 더 경쾌하고 빠른 장점이 있었지요. 제가 그 장법을 펼칠 때의 상황은 매우 긴급했고, 어떻게든 더 빠르게 무공을 펼치려고 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영감을 얻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현암은 현종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종의 재능은 그런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도 남음이었다.
다만 현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것이 원로원을 더 화나게 만든 것이네. 소림 수호승인 사제가 그 무공을 사용해 버린 순간, 염라대사의 무공이 소림사의 무공보다 더 뛰어난 면이 있다고 인정해 버린 격이니 말일세.”
현종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염라대사가 소림사의 무공을 변형하고 발전시켜 무공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순간 소림사의 무공이 원래 지니고 있던 장점은 사라진 면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소림의 무공에 큰 자부심이 있습니다.”
현종의 말속에는 뼈가 있었다.
원로원이 소림사의 무공에 자부심이 부족하니, 그런 생각을 한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현암 역시 동의하는 것이었고, 이 뛰어나고 영민한 사제의 말에 속이 시원해졌으나 그는 소림사의 방장으로서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나 역시 이번 일은 매우 아쉽네. 염라대사 영환은…… 우리 천년 소림사 역사에 다시없을 치욕이자 오점이니까.”
현종은 진심으로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면서도 말했다.
“그는 사부들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 충분히 말했습니다.”
현암은 현종에게 말했다.
“세상에 모든 것이 말 한마디로 해결될 수는 없네.”
“본인이 저지른 행동이라면 그렇지요. 하지만 그 친구는 아무 잘못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와 정말 막역한 사이가 되었나 보군.”
현종은 고개를 저었다.
“완악이 제 벗이어서가 아닙니다.”
현종은 이어서 말했다.
“물론 그 친구 역시 사람들 앞에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정도맹과 소림사의 방식은 틀렸습니다. 칼을 앞세웠고, 목숨을 위협했지요. 만약 정중하게 부탁했다면, 제가 아는 완악은 틀림없이 지금과 달랐을 것입니다. 심지어 사승님들은 소림사의 무공을 거둔다는 명분으로 그의 단전을 파괴하려 했습니다. 제 기준에서 선과 악을 나누라면…….”
현종은 잠시 멈추었다가 단호하게 내뱉듯 말했다.
“소림이 악이었습니다. 피해자는 완악이었지요. 하지만 그 순간에도 손속에 사정을 두어 인명을 해치지 않은 그 친구는 진정한 대협(大俠)의 모습이었습니다.”
현종의 어조는 어느새 격앙되어 있었다.
“그것은 소림이 보여야 할 모습이었습니다. 사대악인에게 원한이 있는 소림이 먼저 나서서 사부의 죄를 제자에게 물을 수 없다고 했어야 했습니다. 소림이 앞장서서 그를 핍박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불심(佛心)으로 도리어 품어 주었다면, 깊은 원한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로움을 보였다면, 천하는 소림사를 다시 한번 존경했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염라대사 영환을 배출한 불명예를 씻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현암은 현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사제는 나와 원로원의 결정에 반하고, 같은 소림사의 제자를 공격했네. 그것은 인정하시는가?”
“…….”
현종은 무언가 할 말이 가득한 듯 보였으나, 더 이상 다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예.”
“이틀 뒤부터 달마동에서 일 년 면벽을 행하시게.”
달마동은 소림사의 사조 달마가 구 년간 득도를 위해 면벽 수련을 한 동굴이었다.
소림사의 성지(聖地)였지만, 일 년간 그곳에서 나오지 말고 면벽 수련을 하라는 것은 일종의 징계였다.
현종은 담담한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가서 쉬게.”
현종이 방장실을 나가고 홀로 남은 현암은 피곤한 듯 두 눈을 감고 고요히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아미타불. 부끄러울 뿐이구나…….”
* * *
지하 삼 층에서 올라온 사완악을 보며 가종후는 무릎을 꿇고 감격한 듯 말했다.
“오오, 영겁사령존이시여!”
그리고 가종후의 음성이 울려 퍼지기 무섭게, 만사무와 묵영, 천화까지 모두 지하 이 층으로 내려와서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네 사람을 쳐다봤다.
“왜들 이렇게 요란을 떨어?”
가종후가 말했다.
“지존께서 돌아오지 못하시는 줄 알고 저희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릅니다.”
사완악은 가종후와 다른 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내가 내려갔다 올라오는 데 얼마나 걸렸지?”
“오늘로 정확히 삼십 일째입니다.”
사완악은 조금 당황스러운 얼굴로 가종후에게 되물었다.
“삼십 일?”
“예. 만약 오늘도 올라오시지 않는다면 저희는 목숨을 걸고 지존을 찾아 나설 생각이었습니다.”
사완악은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가종후의 결연한 눈빛은 광적인 신앙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삼십 일이라.’
지하 삼 층에서 사혼지관을 통과하고 마지막 사존의 힘을 얻을 때까지 사완악은 시간의 흐름을 알 수가 없었다.
느낌으로는 한 사, 오 일 정도가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삼십 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줄이야.
만사무가 물었다.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그 질문에 사완악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보기엔 어떻지?”
사령문의 수하 네 사람은 서로를 마주 봤다.
혹시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냐는 듯한 눈빛.
하지만 네 사람 모두 의아한 얼굴일 뿐이었다.
만사무는 사완악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솔직히 전과 달라지신 바를 느끼지는 못하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만사무는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지존께 아무 기운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사완악의 묘한 미소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뀌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확실히 성과가 있었네.”
만사무는 사완악의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완악은 지하 삼 층에서 영겁사령존의 힘을 얻었다.
그럼에도 네 사람은 사완악에게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엄청난 기운을 밖으로 조금도 표출하지 않고 평범하게 갈무리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는 뜻이다.
바로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반박귀진(返璞歸眞)의 경지였다.
“감축드립니다.”
가종후도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저는 믿고 있었사옵니다. 감축드립니다! 지존! 만세! 만세! 만만세!”
사완악은 별일 아니라는 듯 피식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당분간은 이곳과 지하 일 층, 그리고 지상의 무공 비급들을 좀 살펴볼 것이다.”
만사무가 물었다.
“이곳의 비급들은 사령문의 상위 무공들이지만…… 지하 일 층에 있는 것은 대부분 하급의 술법들이고, 지상의 무공 비급은 정파의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혹시 찾으시는 무공이 있으십니까?”
“아니, 특별히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봐 둬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지. 아무튼 우리는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도록 하겠다. 때가 되면 강호로 나갈 생각이니 너희도 그동안 수련에 매진하도록 해라.”
사령문의 수하들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예, 지존.”
* * *
두 사람이 숲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기골이 장대한 사내였고, 다른 사내는 평범한 체구에 시체처럼 창백한 낯빛, 마른 얼굴에 마치 유생처럼 차분하고 지적(知的)인 인상을 지닌 중년인이었다.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중년인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정말 이곳까지 왔군.”
중년인은 깍듯하면서도 과하지 않을 만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림사에 잠입하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담한 듯 말했으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놀라웠다.
사내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고수들이 있지.”
“그럼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좋다.”
사내의 말이 떨어지자 중년인은 품에서 서책 한 권을 꺼내 내밀었다.
“이것인가?”
“예.”
“흐음.”
사내는 그 서책을 흥미롭다는 듯 대충 넘겨보고는 말했다.
“현종이 일 년 면벽 수련을 명 받았다.”
중년인은 조금 놀란 듯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가 말했다.
“잘된 일이다. 달마동에 갇혀 있다면 그 녀석의 눈을 피하기 쉽지. 유일한 걱정거리가 사라진 셈이다. 그러니 일 년 후, 그곳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중년인의 눈에 광채가 번뜩였다.
“부디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사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나직이 말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