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datory Soul RAW novel - Chapter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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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어조가 무척 섬뜩해서, 레아는 무심결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방금까지 살기등등하던 이샤칸은 흠칫 놀라며 레아를 살폈다.
“어디 아파?”
사나움이라곤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다정한 어조였다.
당신이 무서워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서, 레아는 그냥 적당히 변명했다.
“조금 추워서요.”
이샤칸은 곧장 걸치고 있던 침의를 걷어서 상체를 드러냈다.
가려져있던 천이 걷히니 맞닿은 살에서 후끈한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
레아를 바투 고쳐 안은 이샤칸은 이불까지 꼼꼼하게 덮어주었다.
그러고 나니 거짓말로도 춥다고 말하지 못할 상태가 되었다. 조금 더워서 땀이 삐질 배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이샤칸과 몸을 붙이고 있는 것이 좋아서, 레아는 불평 않고 그에게 꼭 안겨있었다.
서로를 끌어안은 채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할 건지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정해진 주제 없이 시답잖은 대화만 주고받았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다시금 잠이 솔솔 밀려왔다. 레아는 웅얼웅얼 말하다가 스르륵 잠들어버렸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부드럽고 다정하던 눈이 섬뜩하게 변하는 광경을.
한숨 달게 자고 일어나니 해가 지고 있었다. 잠든 사이 하루가 지난 것이다.
레아는 자신이 여전히 복숭아 과수원의 저택에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곧장 알아채지 못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아챘다.
그도 그럴 것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희미한 먼지 냄새가 깨끗이 사라지고, 대신 좋은 향기가 방 안에 가득했다.
어둑하고 우중충하던 특유의 분위기는 커튼을 활짝 걷어놓은 창문에서 쏟아지는 노을빛에 말끔히 걷혔다.
탁자 위에는 이국적인 금색 향로가 놓여있었다. 향로에 피워놓은 향의 냄새가 시원하고 달았다.
레아는 한동안 냄새를 맡아보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방문이 열렸다. 시녀들인가 싶어서 깜짝 놀랐던 레아는 낯선 쿠르칸을 만나게 되었다.
“일어나셨어요?”
옅은 갈색 피부에 긴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은 그녀가 방싯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저는 뮤라입니다. 두 번째로 소개를 드리네요.”
아마 기억의 공백 속에 존재하는 이들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떠올려보려 노력했으나, 역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혹여나 서운해할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뮤라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레아가 침대 등받이에 기대어 앉을 수 있게 도와주고, 쟁반에 받쳐온 작은 유리잔을 내밀었다.
“쭈욱 들이켜세요. 모르가 님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묘약이랍니다.”
해독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들으며 일단 마셨다. 유리잔을 깨끗하게 비우자 뮤라는 저녁식사를 내어왔다.
양손에 쟁반을 받쳐 들고 등장한 그녀의 모습에 레아는 입을 벌렸다.
식사를 한 스무 명이서 같이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전부 레아만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뮤라는 작은 쟁반을 레아 앞에 놓아두고 음식을 덜어주었다.
그녀가 내어주는 음식을 본 레아는 저도 모르게 이불을 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일전에 먹었던 쿠르칸 음식들이었다. 그때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또 먹고 싶다고 종종 생각했었다.
레아는 기쁘게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레아가 음식을 하나씩 먹어치울 때마다, 뮤라는 뛸 듯이 기뻐했다.
옆에서 저리 좋아하며 방방거리니 자꾸 많이 먹게 되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평소의 서너 배로 먹어치운 뒤였다.
배가 터질 것 같아서 더 이상 못 먹겠다며 식기를 내려놓자, 뮤라는 아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레아는 그녀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샤칸 님은 어디 가셨나요?”
“으음, 이샤칸 님께서는…… 다른 분들을 데리고 잠시 외출하셨어요. 아마 내일쯤이면 돌아오시지 않을까요?”
뮤라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다들 아주 의욕적이랍니다.”
그러나 밝게 웃는 입술 끝에는 한겨울 서릿발 같은 분노가 서려있었다.
“……여태 많이 참았거든요.”
무엇이 쿠르칸들을 이렇게나 분노케 만들었을까. 레아가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였다. 뮤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우리 레아 님 간식 챙겨드려야지!”
동동거리던 뮤라는 후다닥 뛰어가선 다른 쟁반을 들고 와 레아 앞에 내려놓았다.
쟁반에는 모양 좋은 작은 과자들이 줄지어 담겨있었다.
“바클라바예요.”
얇은 밀가루반죽과 견과류를 층층이 쌓고, 위에 꿀과 레몬을 섞은 시럽을 뿌려서 만들었다며 설명을 곁들였다.
뮤라는 따뜻한 차도 한잔 내어주었다.
많이 달기는 한데 차와 함께 먹으니 괜찮았다. 뮤라는 잘 먹는 레아를 보며 한껏 뿌듯해했다.
“아무튼 레아 님께선, 그냥 이렇게 푹 쉬며 기다리기만 하시면 된답니다.”
레아는 차를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해가 완전히 저물었는지, 창밖의 하늘에 서서히 짙은 남색이 섞여들고 있었다.
왠지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 * *
주술사들은 심장을 먹으면 영혼의 힘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여 어려운 주술을 쓸 때 짐승 심장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모르가는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런 주술들은 보통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하기 마련이었다.
도마리들이나 쓸 만한 방법인 것이다. 비위가 상한다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빠르게 강력한 주술을 부리는 데는 역시 이만한 수단이 없으니 말이다.
“…….”
모르가는 질린 얼굴로 접시에 담긴 것을 바라보았다.
시뻘건 그것은 뮤라에게 부탁해 각종 향신료로 양념한 검은 암소의 심장이었다.
하지만 향신료로 감춰도 금방 펄떡거릴 것 같은 모양새는 그대로였다.
날것으로 먹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뜯어먹긴 좀 그래서, 칼로 조금씩 썰어 먹었다.
암소의 심장을 한 조각씩 잘라 먹으며 모르가는 생각했다.
두 번이나 기적이 일어났다.
첫 번째는 불임이었어야 하는 몸에 아기가 들어선 것이고, 두 번째는 유산했어야 하는데 지켜낸 것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기적을 바라선 안 되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지금부터는 똑바로 정신 차려야 했다.
암소 심장을 전부 씹어 삼킨 모르가는 천천히 숨을 뱉어냈다.
미리 그려놓았던 주술진 위에 자리하고선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수십의 쿠르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투를 앞두고 잔뜩 고양된 눈동자들은 어둠 속에서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수많은 눈동자들이 내뿜는 광채가 섬뜩했다.
주술진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연기는 쿠르칸들을 향해 흘러가 스며들었다.
모르가는 피 묻은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점잖게 말했다.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라네.”
가장 앞에 서있던 게닌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일시적으로 왕비의 눈에서 쿠르칸들을 감춰주는 주술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하자, 하반은 이샤칸을 모시러 갔다.
“이샤칸 님.”
이샤칸은 담벼락에 기대어 잎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연기를 들이마시고 있는데도 눈의 안광이 형형했다.
말없이 피우던 잎담배를 내던진 그가 고개를 까닥였다.
지시나 명령은 필요 없었다. 쿠르칸들은 왕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사방에 내려앉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에스티아의 수도에서도 가장 알짜배기 자리에 위치한 호화로운 저택이었다.
왕의 애첩이라는 지위를 내세워 받아 챙긴 뇌물로 사들인 저택은 내부 또한 사치스러웠다.
호화저택의 주인은 술에 취한 채 침대 위에서 혼자 깔깔 웃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밤 다른 귀족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술을 잔뜩 받아 마시고 왔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라옐 부인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결벽증 걸린 것처럼 굴더니, 어디 천한 놈들한테 당하고 정신 차렸으려나.”
왕녀가 벌벌 떨면서 울었을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짜릿했다.
그렇게 당해놓고도 어디 가서 하소연 못 하고 제 손으로 덮어야 할 터이니 더욱 통쾌했다.
아마 내일쯤이면 왕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왕녀를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상처 주고 비꼬아줄지 생각하며 키득거리던 그녀는 스르륵 입을 다물었다.
“…….”
입을 다물려고 생각해서 다문 것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섬뜩함이 허리춤을 스치고 지나간 탓이었다.
갑자기 조금 추워진 것 같았다. 미라옐 부인은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던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덮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서 침실의 작은 종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놀라서 죄다 달려온 하녀들에게 그녀는 발작적으로 소리 질렀다.
“기사들 전부 데려와!!”
하녀들은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갔다.
미라옐 부인은 죄수와 용병들을 돈 주고 사들여 기사라고 부르며 저택을 지키도록 하고 있었다.
이번에 왕녀에게 보낸 놈들도 그렇게 사들인 기사들의 일부였다.
질이 좋지 않으나, 실력만큼은 확실한 놈들이었다.
초조하게 방 안을 거닐며 기사들만 기다리던 그녀는 문득 멈춰 섰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자신이 난리를 쳤으니 당연히 저택이 발칵 뒤집혀 시끌시끌해야 했다. 기사들이 머무르는 숙소도 그리 멀지 않은 터였다.
지금쯤이면 온 복도에 발소리가 울려야 하건만……. 그런데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불안하게 서성거리던 미라옐 부인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다.
“꺄아아악!!”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가 정신없이 뒷걸음질 쳤다.
애타게 기다리던 기사들은 전부 목이 날아간 채 몸통만 남아 있었다.
시체가 곳곳에 늘어진 복도를 보며 벌벌 떨던 미라옐 부인은 결국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하반이 날쌔게 튀어나와 그녀를 커다란 자루에 집어넣었고, 게닌이 짊어졌다.
조용한 복도 한가운데 서있던 이샤칸은 피 묻은 손을 털어내었다. 그가 나직이 말했다.
“……일단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