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아낙시아를 비롯한 마족들의 극진한 배웅 인사를 받으며 리드가 퇴장했다.
다시 던전 안에서 온전한 일인자로 군림하게 된 아낙시아.
그녀가 높은 단상에 서서 오만한 눈빛으로 인간들을 훑었다.
“나는 아낙시아 펠헴스테인 공작이다. 인간의 기사들아, 그 미천한 힘으로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녀가 격을 드러내자 검을 쥔 기사들의 손이 떨렸다.
흔들리는 검 끝은 그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아낙시아는 이를 파고들었다.
“살려는 주마. 그러니 왕자와 공주만 남고 나머지는 인간계로 돌아가 전해라. 아낙시아 펠헴스테인이 공작위 계승을 기념하여 공주와 왕자를 납치하였으니, 구하고 싶으면 용사를 잔뜩 보내라고.”
우왕좌왕하던 인간들은 결국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왕자와 기사들, 왕녀와 시녀들이 서로 비장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어서 가서 내 위험을 왕국에 알려라.”
“알겠습니다, 왕자님. 꼭 구하러 오겠습니다.”
왕자는 근엄한 척하지만 초조해하고 있었고, 기사들은 충성스러운 척하지만 서둘러 던전 안에서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 비해 왕녀와 시녀들 쪽은 사이가 좀 더 돈독해 보였다.
“셀레스티드 왕녀 전하, 저희도 같이 남겠습니다.”
“안 될 소리를 하는구나.”
“왕녀 전하만 두고 갈 수는 없어요.”
“그만. 시간 끌 때가 아니야. 비안카, 네가 모두를 데리고 나가렴. 명령이야.”
“따르겠습니다, 전하.”
그때였다. 방금 막 대답한 시녀가 아낙시아의 관심을 끌었다.
푸른빛 도는 긴 흑발과 마족처럼 예쁜 붉은 눈을 가진 귀족 영애.
그녀의 모습을 담는 아낙시아의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잠깐, 거기 너.”
“…….”
비안카가 대답 없이 시선만 힐끗 주었다.
그 도도함이 아낙시아의 심장을 뛰게 했다.
“이름이 뭐지?”
“비안카 길레트.”
“그래, 비안카. 너 좀 마음에 드는데.”
“……!”
별안간 아낙시아의 옆쪽에 전신 거울이 소환되더니, 그 안에서 뻗어 나온 네 줄기의 사슬이 비안카의 손목과 발목을 휘감았다.
여느 마족 노예들처럼 구속당한 비안카가 질질 끌려 아낙시아의 바로 앞에 당도했다.
“으윽…….”
아낙시아가 비안카의 고개를 강제로 들게 했다.
“서큐버스 여왕의 옛날 모습을 보는 기분이야. 이 아낙시아 님의 마음에 들었으니 좋은 제안을 해주지. 내 시녀가 되어라.”
“…….”
“널 서큐버스로 만들어 영생을 살게 해주마. 영원토록 나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영광을 누리는 거야. 어때? 기쁘지?”
“사양하겠어.”
“아, 그래?”
촤르르륵!
사슬이 비안카의 몸을 거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녀는 거울 안쪽에 있는 의자에 강제로 착석하게 되었다.
비안카가 거울 면 안쪽을 두드렸다.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소리는 외부로 전달되지 않았다.
“거기서 일주일쯤 갇혀 있다 보면 생각이 바뀔 거야.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에 영혼을 팔 너를 상상하니 기대되는걸.”
아낙시아가 상기된 얼굴로 전신 거울에 박제된 듯한 비안카를 감상했다.
“장식용으로도 좋겠어. 거기 너희들, 이거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놔.”✠‘이래서 아낙시아를 미리 처리해 두고 싶었는데.’
천년 얼음성에서 만났던 거울의 공녀 아낙시아.
당시만 해도 S급이었던 그녀가 SS급이 되어서는 리드의 간택을 받고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아쉬움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예하?”
“아닙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클로비스 경.”
현재 나는 성황청으로 귀환하여 긴급회의에 참석하는 중이었다.
로미나 레칸드로 후작은 히스펜릴 공국에 방문하기 전에 엘펜하임 교국에 먼저 들렀던 모양이다.
클로비스가 나를 위해 왕국의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그래서 빈체스터 왕실은 발칵 뒤집힌 상태입니다. 화를 면한 것은 별장 여행에 동참하지 않은 리가레스 왕자뿐이라고 합니다. 예하께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리가레스 왕자는 우리 엘펜하임 교국에 굉장히 적대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다마다.
심각한 브라더 콤플렉스인 3왕자 리가레스는 교단을 제 동복형인 2왕자의 원수로 여기고 있다.
그가 즉위하면 왕국과 교국에 피바람이 불 터였다.
따라서 엘펜하임 교국은 3왕자의 왕위 계승을 결단코 바라지 않는다.
이번 토벌에 당연히 협조할 것이다.
“생환한 호위 기사들의 말에 따르면, 던전 싱크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낙시아라는 보스는 자신의 공작위 계승을 자축하는 의미로 두 왕족을 납치했으니 용사를 보내라고 도발했습니다. 정말 의문인 일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타이밍을 지정해서 던전 싱크를 일으켰는지…….”
물론 그건 혼돈악이 된 리드의 권능이다.
“처음에는 빈체스터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로미나 레칸드로 후작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던전에 입장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아낙시아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퇴각했다고 합니다.”
“그랬겠죠.”
아낙시아의 SS급 던전, ‘용사들의 시체가 묻힌 동화의 땅’은 너무도 넓었다.
무려 공동묘지, 괴수의 늪, 가시덤불 숲, 미로 정원을 쭉 지나야만 거울의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성은 구경도 하지 못했겠죠. 그래도 가시덤불 숲까지는 가봤을 테니, 그 길까지 척후는 문제없겠어요.”
회의에 참석 중이던 데칼 추기경이 외알 안경을 밀어 올리며 감탄했다.
“예하께서는 모르는 게 없으시군요.”
“신성경이라서 그런 거려니 이해해 주세요.”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왕국군 토벌대는 거울의 성을 감싼 가시덤불 숲 앞에서 퇴각을 결정했다.
말이 숲이지 실상은 살아 움직이는 결계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근거리 딜러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결계 말이다.
오러 마스터인 레칸드로 후작이 있었으니,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뚫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1차 토벌대는 앞서 공동묘지와 괴수의 늪을 헤매면서 전력 손실이 심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결계를 돌파해도 보스가 있는 곳까지 얼마나 더 많은 관문을 거쳐야 하는지는 미지수.
신중한 지휘관이라면, 무작스럽게 강행 돌파하기보다는 퇴각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쪽을 택하는 게 당연했다.
“거울의 성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힘을 비축하고 싶을 테니, 결계를 쉽게 뚫을 화력을 각국에 요청했겠군요.”
요청 내용도 대충이나마 짐작되었다. 자고로 나무의 상극은 불인 법이니까.
“예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왕국에서 우리 교국에 요청한 것은 성화(聖火)를 쓸 줄 아는 주교급 능력자 최소 다섯 명이었습니다. 마도 공화국에는 같은 급인 6써클 파이로맨서(Pyro-Mancer) 마법사들을 보내달라고 했겠지요.”
다섯 명이나? 내가 봤을 때는 인력 낭비다.
하지만 나는 속마음을 고이 숨기고 질문을 했다.
“힐러는요? 요청하지 않았나요?”
“힐러 지원은 이미 빌헬론 교구에서 충분히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좋아요. 성황청에서 보낼 지원 병력은 화력 조건만 만족하면 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예하.”
이것으로 기초 설명은 끝났다. 이제 추기경 의회가 어떤 생각인지를 들어볼 차례였다.
인자한 인상의 데칼이 다시금 나섰다.
“저희는 신성경 예하께서 이번 토벌전에 꼭 참전해주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두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인가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두 가지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해 주신 모양이군요.”
빠른 대화 진척을 위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이유는 3왕자의 왕위 계승이 교국에 불리하다는 점이고, 두 번째 이유는 왕국에서 막대한 보상을 약속했다는 점이겠지요.”
“역시 현명하십니다. 그런데 정말 세 번째 이유를 모르시겠습니까?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만.”
“어, 뭘까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글쎄요…….”
“생각하셔야 합니다.”
데칼 추기경과 베잘리우스 추기경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건 분명 시험하는 눈이다.[‘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이단을 솎아내기 위한 질서교의 상식 시험 같다고 속삭입니다.]정말인가 싶어 살짝 긴장할 때였다. 목걸이가 울렸다.
아하! 경쟁의식 때문에!
아그네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세 번째 이유를 생각해 냈다는 뜻으로 운을 띄웠다.
“그러고 보니 마도 공화국에서는 ‘키메라 연구가’가 나오려나요?”
키메라 연구가, 모리피스 마르셀리온.
8써클 대마법사인 그는 대륙의 여섯 강자 중 한 명이다.
‘이번 회차에서는 마탑주가 리드의 손에 죽었으니 다섯 강자라고 해야겠지만.’
그가 거론되자 베잘리우스와 데칼이 살짝 흥분하여 입을 열었다.
“상황상 그렇겠지요. 그 미치광이 마법사가 그간 우리 교국을 어찌나 무시했는지. 이참에 그 마법사의 콧대를 꺾어놔야 합니다.”
“이건 단순한 토벌전이 아닙니다. 성전이라 생각하시고 신성경께서 꼭 마도 공화국보다 먼저 보스를 토벌해 주십시오. 헬카이온 때처럼 말입니다.”
“아, 예…….”
두 추기경한테서 이런 진심 어린 응원을 받을 줄이야.
신성력이 영락해 가는 탓에 엘펜하임 교국은 이제까지 만성적인 인재 부족에 시달리던 참이었다.
오죽하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에 간신히 비비던 일레온 오드렉이 교국 제1검이랍시고 떵떵거렸겠는가.
심지어 그나마도 죽어버렸고.
그런 와중에 신성경인 내가 나타났으니, 교단은 그간 무시당해온 설움을 설욕하고 싶은 마음이 만만한 모양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데칼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크흠, 아무튼 신성경께서 참전해 주셔야 이쪽의 격이 맞습니다. 각국에서 손에 꼽는 강자를 내보낼 테니까요.”
베잘리우스도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왕국의 레칸드로 후작, 마도 공화국의 미치광이 마법사, 공국의 히스펜릴 공왕이 나올 테니까요. 우리도 격을 맞춰야 합니다.”
여기서 나는 할 말이 생각났다.
“아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공국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무엇입니까, 예하?”
“히스펜릴 공왕께서는 이번에 참전하지 않으실 거예요.”
“예? 공국이 왕국의 원조를 거부했단 말입니까?”
외교 마찰로 번지나 싶어 두 추기경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나는 오해를 바로잡았다.
“아뇨, 아뇨. 일국의 왕이나 다름없으시니 직접 움직이시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 대신 손녀를 보내기로 결정하셨어요.”
“아니, 그런…… 격 떨어지게.”
“그 손녀가 전데요.”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