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본래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스켈레톤이었다.
그래서 일을 마치면 낚시, 꽃꽂이, 조각, 운동 등 각종 취미 활동을 즐기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울감에 푹 파묻혀 잎사귀에 빻은 약초를 말아 시가를 피우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폐도 없으면서.
그들의 대장 격인 해골 농사꾼 1004호, 에피덴은 특히나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기다란 낫을 거꾸로 세워 들고 텅 빈 눈두덩에서 암울한 안광을 뿌리는 스켈레톤.
그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사신이었다.
참고로 낫은 농장주가 선물한 ‘수확의 낫’이란 이름의 아이템으로, 수확량을 확률적으로 두 배로 만들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사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달그락달그락…….
달달그라락…….
해당 아이템 덕분에 오늘도 풍족한 수확량을 거두었을 텐데도 해골 농사꾼들은 우울해 보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무정형의 불꽃, 지옥염화가 납작하게 바닥에 눌어붙으며 말했다.
달그락, 달그락…….
그들은 던전 팜의 주인, 아일렛을 걱정하는 중이었다.
던전 팜의 시간은 현실보다 세 배 빠르다.
약초를 조달하러 온 레오날드와 엘테아로부터, 아일렛이 전투 후유증으로 잠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도 한참이 지났다.
사흘에 한 번 꼴로 들르는 로델라인 부부는 여전히 갱신된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
에피덴이 헬베로스를 위로하려는 듯 불꽃 위로 약초 부산물을 솔솔 뿌려주었다.
평소라면 신나서 불꽃을 더 반짝였을 헬베로스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좋아하는 채식도 마다한 헬베로스는 적발과 적안을 가진 어린 남자아이로 인간화했다. 그리고 키르탄이 가꾸는 꽃밭으로 가서 꽃을 마구 꺾고 뜯기 시작했다.
달그라라라락!
기함한 키르탄이 대번에 달려왔다. 꽃꽂이용으로 정성스럽게 키운 꽃인데 무슨 행패냐는 달그락거림이 격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헬베로스는 당당했다.
키르탄은 곧장 납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왜인지 그 이후 다른 스켈레톤들도 함께 둘러앉아 리스를 만들기 시작했다.✠대홍수가 잦아들어 산호초 가득한 뭍과 드넓은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던전.
이곳에 살고 있는 열두 인어들도 인어의 눈물을 수급하러 온 엘테아와 힐데로부터 소식을 듣고 아일렛을 걱정하긴 마찬가지였다.
해맑은 인어들답게 걱정은 깊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그들은 강철 복어 마수로 해상 발리볼을 하는 중이었다.
인어들이 수면 위로 점프를 높게 뛴다. 그리고 공중에서 꼬리지느러미를 힘차게 휘두른다.
퍼어어억!
강철 복어가 터질 듯한 소리를 내며 고속으로 지평선까지 날아갔다.
직격하면 최소 중상일 듯한 스포츠를 하면서도 인어들은 신나 했다.
물론 모두가 흥에 겨운 것은 아니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복어들을 시종일관 열의 없는 눈으로 보던 붉은 머리칼의 막내 인어.
사실 그녀는 딴생각에 깊게 빠져 있었다.
열한 명의 언니 인어들이 발리볼을 멈추고 걱정스레 막내 곁으로 몰려들었다.
그때 막내가 생각을 마무리 짓고 결심한 듯 말했다.
막내 인어의 눈빛이 비장해졌다.
막내 인어는 그 길로 바닷장어 사냥을 떠났다.✠재앙이 걷혀 나간 뒤 페론사의 하늘은 가을답게 청명함을 자랑했다.
히스펜릴 공왕의 거처, 라이미안 하우스.
반라의 근육 미남 조각상이 늘어선 정원으로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이 쏟아졌다.
대리석 분수대에서 튀어 오른 물방울이 난반사시키는 빛이 세상을 반짝반짝하게 했다.
이 멋진 광경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대저택 3층의 어느 방.
그곳에 시간의 흐름을 잊고 깊게 잠들어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방은 환자가 휴식을 취하기 좋도록 꾸며져 있었다.
깔끔하고 보송보송한 침구, 적절히 환기된 청량한 공기, 그 안에 은은하게 감도는 허브 향은 여러 사람의 배려 없이는 갖춰지기 힘든 것이었다.
아일렛은 그런 포근하고 상냥한 공간에서 분홍색 머리칼을 부챗살처럼 하얀 시트 위에 펼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을 제외하면 방은 무척 고요했다.
공왕성의 모두가 잠든 신성경을 위해 복도 먼 곳에서부터 발소리를 주의하며 걸었다.
그러나 단잠을 방해하지 않는 행동과 모순적이게도, 사실은 모두가 아일렛이 눈뜨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공왕성의 모든 사람들의 바람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욱더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을 품은 이가 있었다.
“…….”
스툴 의자를 끌어다 놓고 미동 없이 침대 맡을 지키고 있는 미남자는 마치 소금 사막의 석상처럼 메마르고 생기가 없었다.
그는 속눈썹이 음영을 깊게 드리운 눈으로 하염없이 침대에 누운 이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굴곡이 아름다운 입술이 무의식중에 열렸다.
“아이…….”
평소 현악기를 연주하는 듯했던 중저음의 미성은 탁하게 잠겨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는 부름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번에도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아일렛 로델라인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그를 위로했다.
사실 테실리드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신계의 문 안으로 아일렛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116번의 인생 동안 신에게 학대당했던 그다.
그의 신이 이번 생에서 또 그의 소중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앗아가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신계의 문만큼 신을 증거하는 확실한 기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신이 빼앗아간 거다.
신이 아일렛을, 그의 신이 아일렛 로델라인을 거두어 간 거다.
절망했다.
지독하게 절망해버렸다.
이미 버리고 떠난 세상이면서. 다시 신 노릇을 해서 세상을 유지시킬 생각도 없으면서.
그런 주제에 버린 세계에 굳이 권능을 떨쳐 그의 마지막 선과 희망을 끝끝내 앗아가야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이제껏 억누르고 있었던 세상에 대한 절망이 한순간에 밀려와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절망에 스스로를 놔버리려던 그때, 갑자기 신계의 문이 다시 열리며 아일렛 로델라인을 내보내주었다.
신이 그의 품에 그녀를 되돌려준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신이.
그의 신이.
‘엄격한 질서와 선이?’
먼저 자비를 비참하게 구걸한 건 자신이건만 막상 그 자비가 내려지자 혼란스러웠다.
‘설마…….’
엄격한 질서와 선이 아닌가?
불현듯 대진리의 바이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개종하라.또 다른 신이 그에게 자비를 내려준 건가?
그러나 테실리드는 곧장 가설을 철회했다. 섬기는 신도 내려주지 않는 자비를 이단의 신이 그에게 내려줄 리가 없잖은가.
게다가 신계의 문을 연 건 아일렛 로델라인이었다.
그냥 성녀도 아니고 무려 신성경이 연 신계의 통로 끝에 이단의 신이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엄격한 질서와 선’이라는 전제로 회귀했다. 익숙한 부정적인 생각이 바로 새로운 의혹을 떠올렸다.
신이 그에게 아일렛을 돌려준 건, 더 큰 좌절과 절망을 주기 위한 수작인 게 아닐까?
오랜 세월 동안 배신과 상실에 훈련되고 학습된 그의 머리는 비극을, 최악의 상황을 발견해야 납득이 되었다.
마침 당면한 상황이 마냥 희망적이지만은 않았다.
벌써 열흘째다.
신성 강림의 페널티인 이틀은 진작에 지났으나 그의 아일렛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있다.
어쩌면, 신은 그에게 그녀의 껍데기만 준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테실리드는 숨이 멎음을 느꼈다. 그러잖아도 소금 석상 같았던 남자가 희게 질려갈 때였다.
‘쟤 또 우울한 생각하네.’
창가에 서 있던 반투명한 금발의 미인이 속으로 혀를 찼다.
아그네스는 테실리드의 음울한 머릿속을 환기할 겸 그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을 권해보았다.
“괜찮습니다.”
“어젯밤은 충분히 잤습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괜찮다.
충분하다.
조금만 더.
아그네스는 이 통각 신경과 시간관념이 고장 난 듯한 회귀자에게 탄식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아그네스는 결국 테실리드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러나 공왕성에 테실리드에게 잔소리를 할 사람이라면 그녀 외에도 많았다.
달칵.
강건하고 우람한 육체를 가진 이가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