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53)
53화
짜르르릉, 캐시 차감되는 소리가 영롱하기도 하다.
이로써 기본 스킬부터 궁극 스킬까지 모든 신성력 스킬을 배웠다.
딜러, 서포터, 힐러 스킬 구분 없이 전부![‘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당신의 현명한 판단에 물개박수를 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쇼핑 좀 할 줄 아는 모양이라며 호감을 표합니다.] [‘창조경제 관리자’가 이번 달 매출 실적이 좋겠다며 흐뭇해합니다.]어라, 새로운 신님이 등장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사업 본부장이 여긴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창조경제 관리자’가 곧 있을 대규모 업데이트와 관련해서 회의 좀 하자고 말합니다.]신들은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 사라졌다.
이쯤에서 내 앞에 기다렸던 메시지가 떴다.[ 당신의 순위가 변동합니다. 현재 순위: 573위 (▲20,412)]드디어 천 등 안에 들어서 순위가 표시되었다.
세계관 100위 이내에 들라는 튜토리얼 퀘스트는 아직 완료하지 못했다.
성녀급 신성력과 궁극 스킬을 가지고서도 생각보다 순위가 낮은 이유는 쉽게 짐작되었다.
‘스킬이 전부 1레벨이라서겠지.’
다른 건 몰라도 치유가 1레벨이어서야 어디서 힐러라고 명함이나 내밀겠나.
당분간 스킬 레벨을 올리는 데 집중해야겠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사용을 해야 레벨이 오르잖아? 이걸 어디서 사용해?”
끄응. 난감하다.✠엘펜하임 교국, 성황청에서는 또 소란이 일었다. 오랜만에 대예배당 중앙에 쏟아진 상서로운 흰 빛 때문이었다.
“오오! 성녀급 경지에 도달한 자가 탄생했습니다! 200년 만의 일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신성력 각성자라니! 신성 강림의 주인공이 분명합니다!”
“근 2년 넘게 신성 강림을 쓰지 않고 잠잠하셨던 건 폐관 수련 중이셔서였나 봅니다!”
“아아, 빨리 영접하고 싶습니다! 대체 그분은 어디에……!”
아일렛이 가진 은총의 그릇이 성녀급으로 확장되는 각성의 순간, 그녀의 존재를 느낀 추기경들은 전율했다.
대예배당에 모인 추기경들 가운데는 비안카의 할머니인 카틀레야도 있었다.
그녀는 상서로운 흰 빛의 주인공이 아일렛인 걸 꿈에도 모른 채, 추기경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어서 성녀님의 소재 파악을 해서 성황청으로 모셔야 하거늘!”
“성녀 수색대를 맡은 클로비스 경이 영 성과를 못 내는군요.”
“허허, 성녀님의 존재감이 뚜렷해졌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겠지요. 좀 더 기다려봅시다.”
“근데 그분의 성별은 여성으로 결정 난 겁니까? 아까부터 다들 성녀라 부르시는군요.”
“흠흠, 아무래도 성자보다는 성녀 쪽으로 홍보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이 좋아서…….”
대화 주제가 정치 쪽으로 슬쩍 넘어갔다.
충분히 말을 주고받은 추기경들이 자리를 파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대예배당의 인원이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쯤 카틀레야도 회랑 복도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때였다.
“카틀레야 추기경 예하.”
성황청의 제1성가대가 탐낼 법한 미성이었다. 돌아본 곳에는 그녀의 키를 엇비슷하게 따라잡은 소년이 있었다.
낮달의 빛을 자아내서 만든 듯이 반짝이는 은발, 얕은 바다의 물빛처럼 빛의 각도에 따라 청록과 담청을 오가는 눈동자.
장인이 세공한 수정 조각상처럼 섬세하고 미려한 이목구비는 보는 이의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은발과 하얀 얼굴, 그리고 성기사 제복.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결하고 성결한 색으로 무장한 채 통창의 빛살을 받는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성예술 속의 존재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카틀레야가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테실리드 형제.”
신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압도적으로 강한 성흔양. 테실리드 아르젠트.
카틀레야의 시선이 습관대로 테실리드의 머리 위를 향했다.
‘여전하군.’
살아온 수명은 평범했다. 그러나 남은 수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 역시도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존재였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소년의 음성이 공기를 잔잔하게 울렸다.
“지난 추수감사절에 길레트 백작성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다네.”
“오랜만에 평안한 시간을 보내셨겠군요. 백작가에 별고 없으셨습니까?”
소년과 자신이 살뜰하게 안부를 챙기는 사이였나. 의문을 느끼면서 카틀레야는 대답했다.
“별일이랄 게 있겠는가. 중앙 정계에도, 던전 토벌에도 관심을 끊은 지 오래된 가문이니, 늘 그렇듯 평화로웠다네.”
“사용인들도 말입니까?”
“사용인?”
“전에 성황청에 방문했다가 던전 싱크에 휘말렸던 여자아이가 있었지요. 그 애가 그곳의 사용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 아일렛 말이군. 그때 자네가 구해서 업고 나왔었지. 벌써 2년이 넘은 일인데, 신경 쓰고 있었나?”
“예, 조금.”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네. 자네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컸더군. 소녀 태가 나기 시작했어.”
“그렇습니까…….”
시선을 내리깐 테실리드가 설핏 웃음을 머금은 듯했다.
평소에도 선하고 온화하게 미소 짓는 얼굴이지만 지금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카틀레야로부터 관찰의 시선을 느낀 테실리드가 대화를 급히 마무리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예하. 그럼.”
기사의 예법으로 가슴에 주먹을 대고 묵례한 뒤 뒤돌아섰다.
회랑 복도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 그를 기다리고 있던 두 소년들과 마주쳤다.
“늙은이들 있는 곳에는 뭐 하러 다녀왔냐?”
세 사람 중 키가 가장 더디게 자라는 헤스티오가 긴 흑발을 쓸어 넘기며 삐딱하게 물었다.
“그러게 말이야. 카틀레야 추기경은 성흔양에 그리 우호적이지도 않은데.”
변성기를 겪고 있는 이페일이 쉰 목소리로 거들었다.
테실리드가 대답했다.
“아일렛의 안부가 궁금해서 묻고 왔습니다.”
“야!”
“야!”
두 친구들이 동시에 버럭 했다.
“너 그 존댓말 재수 없으니까 그만하랬지!”
“오러 각성하고 기사 서임 받더니 맛이 갔냐? 기사도에 감명받은 건 알겠지만 너무 심한 거 아니야?!”
“…….”
친구들의 컨셉충 취급에,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테실리드는 곤혹스러워할 뿐이었다.
‘존댓말 써야 신성력 올라서 그런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놈의 ‘칠주선과 칠죄종의 규율’ 버프가 문제였다. 존댓말이 겸손과 친절 항목을 만족시켜 신성력 상승효과가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언어 습관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었다.
오러를 각성하면 신성력은 덜 신경 써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그는 주인공답게 체질적으로 특별해서 ‘신성 오러’라는 것을 발현해 버렸다.
얄궂게도 오러를 각성하고 나니 더욱 빡세게 신성력 관리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냥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는데.”
애환을 숨기며 토로해 보았지만.
“이해 못 해!”
“작작해!”
돌아오는 반응이 격렬하다.
몇 없는 친구를 잃을 수는 없었다. 테실리드는 드물게 물러서기로 했다.
“알았어. 너희들 앞에선 가급적 안 쓸게.”
“그래, 제발. 평범하게 살자.”
“같이 다닐 때 쪽팔리지 않게 해주라.”
본관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는 테실리드가 카틀레야를 만난 용건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두를 꺼낸 건 헤스티오였다.
“아일렛의 안부를 묻고 왔다고? 아일렛이면 그때 장난감의 저택에서 만났던 그 여자애?”
“그래.”
“걔가 좀 인상이 강렬하긴 했지. 머리에 꽃 달고 악마한테 시집가겠다고 했을 때는 정말……. 어디서 테실리드 너 같은 게 하나 더 나타났나 싶었는데.”
“…….”
“암튼 신기한 애였던 건 인정하지만…… 아직도 안부를 신경 써? 우리하고는 다른 세계에 사는 평범한 애잖아. 다시 볼 일도 없을 것 같은데.”
“다시 만날 거야.”
테실리드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스킬도 나눠 배웠지 않은가. 재회는 필연이다.
그의 확고함에 헤스티오가 입을 다무는 사이, 이페일이 목을 가다듬고 조언했다.
“뭐, 노친네들한테 들키지만 않게 해. 여자애한테 관심 두는 거 알면 학을 뗄걸.”
“그런 거 아닌데.”
“아니어도 조심하라고. 자기들끼리 설레발치니까.”
맞는 말이긴 했다. 교단은 신실한 만큼 보수적이기도 했다.
교단의 교리가 결혼을 허용하도록 고쳐진 지도 두 세기가 넘었다.
그러나 교단은 성흔양에 한해서만은 신에게 삶을 봉헌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치곤 했다.
평생 청교도처럼 수절시키며 종으로 부려먹을 생각이 만만한 것이다.
환속이 꿈인 이페일은 자기가 말해놓고 우울해져서는 한숨을 푹 쉬었다.
헤스티오가 주제를 돌리고자 했다. 마침 좋은 소식이 있었다.
“그보다 우리 이제 곧 성황청 바깥으로 나갈 일 생기나 봐.”
“나간다고? 정말?”
“그래, 이페일. 오늘 오전에 국무원 회의하는 거 엿들었는데 얘기가 나오더라고. 대륙에서 교단을 필요로 하는 곳에 성흔양을 보낼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 포교와 봉사 활동이라는데 주로 던전 토벌이겠지.”
“오예!”
“진짜 좋아하네.”
드디어 성흔양들이 세상의 지평선을 성황청 바깥으로 넓히게 되려는 모양이다.
테실리드도 조금쯤 가슴에 기대감이 이는 것을 느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