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오러 마스터가 되기 위한 수련에 매진하고 있던 어느 날.
연금술사인 아빠의 조수로서 모든 노동을 면제받은 나와 다르게, 오늘 백작성의 사용인들은 몹시 분주해 보였다.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아요.”
마침 하녀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하녀장님 말씀 들었어? 내일 카틀레야 추기경께서 오신대.”
“뭐? 대부인이? 내일이 무슨 날이라도 돼?”
“몰라. 아무튼 예배당 청소부터 하자.”
아그네스가 손뼉을 짝 치며 기뻐했다.
“그러네요. 이번 축일은 백작성에서 보내시려나 봐요.”
월삭, 즉 초하루.
태음력을 중시하는 교단에서 새해 첫 달이 뜨는 날은 몹시 중요한 축일이었다.
이날 교국에서는 속죄제와 번제(燔祭)를 크게 드린다.
‘월삭.’
속으로 단어를 곱씹었다. 아주 특별한 이벤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젯밤 커튼 치는 것을 잊은 창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겨울 해가 게으르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꽤 늦은 아침이었다.
나는 이불 안에서 꿈지럭거렸다.
“더 잘래요…….”
“끙……. 잔다니까요…….”
“싫어 싫어……. 잠잘 거야…….”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굼벵이처럼 웅크렸다.
“이런 날도 있는 거죠…….”
아그네스가 이불 속으로 얼굴을 쑥 내밀었다. 납량특집이 따로 없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어요.”
“네. 이따 봐요, 아그네스.”
나는 반대로 돌아누워서 잠을 청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침대 덕분에 금방 곯아떨어졌다.
“흐암.”
내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첫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이불 밖으로 빠져나왔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방 안에서 빈둥거리기만 했다.
도통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아그네스가 허리에 양손을 짚었다.
“네.”
“네.”
긍정하면 당장 면담에 들어갈 기세였다.
“그건 아니고요.”
그때였다. 창밖에서 집사와 하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하녀장! 방금 대부인께서 도착하셨다네!”
“버, 벌써?! 아이고, 우리 마님께선 아직 안 일어나셨을 텐데!”
“이럴 때가 아니야! 어서 마님을 깨우고 아침 단장 도와드리게!”
친우의 도착 소식을 들은 아그네스가 눈을 빛냈다.
“네, 그래요.”
옷을 챙겨 입고 드디어 방 밖으로 나섰다.
방금 막 도착한 카틀레야 추기경이 있을 곳이라면 뻔했다. 나는 본관 1층의 예배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촛불이 불을 밝히고 있는 경건한 공간. 그 한가운데에서 기도하고 있는 중년 여성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카틀레야 추기경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추기경 예하.”
“추기경 예하는 무슨. 대부인이라 부르려무나. 잘 지냈니, 아일렛?”
“네.”
손녀 친구를 보는 카틀레야 추기경의 얼굴에 미소가 살며시 번졌다. 거짓말처럼 냉막함이 걷혀 나가는 모습이었다.
곧 그녀의 시선이 내게서 조금 비낀 곳을 향했다.
“아그네스도?”
성유물 목걸이 덕분에 아그네스의 영혼이 나와 함께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일찍이 밝혔었다.
비록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하겠지만 아그네스와 카틀레야 추기경이 서로가 있는 곳을 따뜻한 눈으로 보았다.
생사와 시간을 초월한 우정의 현장은 훈훈했다.
“잘 지내셨대요. 대부인 마님의 건강에 대해서도 물으셨고요.”
“내 건강을? 아직 정정하니까 네 곁으로 가려면 멀었다고 전해주렴.”
“네. 들었죠, 아그네스?”
“지금 내 말본새가 얄밉다느니 하면서 투덜거리고 있지?”
“푸흡…… 네. 두 분 정말 친하셨나 봐요.”
그 후로도 잠시간 두 사람의 의사소통을 도왔다.
문득 나도 안부가 궁금해진 사람이 있었다.
“테실리드는 잘 지내나요?”
“테실리드라면…… 얼마 전에 성검의 주인이 되었단다. 성황청의 기대대로 잘 성장해 주면서 명성을 떨치고 있어. 오늘 성황청에서 치르는 번제에서도 테실리드가 성화 봉송을 맡을 예정이란다.”
“그렇군요.”
“꽤 신경 쓰는구나. 너희들의 접점은 10년 전에 발생했던 던전 싱크뿐이었지 않니?”
“최근에도 우연히 한 번 더 만나서요.”
“그래?”
세월과 지혜가 녹아들어 있는 눈이 나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아일렛.”
카틀레야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테실리드 아르젠트는 평범한 인생을 살 것 같지는 않아.”
“…….”
“그러니 그와 엮이는 건…….”
말이 이어질수록 카틀레야 추기경의 턱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대부인 마님.”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새겨들을게요. 그 이상 말씀하지 마세요.”
“…….”
살아온 수명과 남은 수명을 볼 수 있는 생사안(生死眼)에 테실리드는 비정상적으로 비쳤을 터.
카틀레야 추기경은 금제를 어기면서까지 나에게 경고를 주려 한 것이었다.
아그네스는 테실리드의 정체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대부인 마님.”
“……생각해 보니 내가 불필요한 말을 한 것 같구나. 너 역시도 평범한 아이는 아닌 것을.”
카틀레야 추기경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마주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 어머님!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마침 백작 부인이 등장했다. 퇴장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카틀레야 추기경과 백작 부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예배당을 빠져나왔다.
기왕 방 밖으로 나온 김에 도서관으로 발끝을 돌렸다. 대륙의 순문학책을 빌려와서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통합 서재로 보면 편하지만 그럼 아그네스가 심심할 테니까.
“아그네스는 문장을 음미하며 읽는군요.”
“아그네스 같은 독자도 있고, 저 같은 독자도 있는 거죠.”
몇 권의 책을 완독하고 아그네스와 감상 교환까지 마쳤을 때, 창밖이 부쩍 어두워진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해가 몰락해 있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시간이 되었다고 알립니다.]드르르륵.
미련 없이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났다.
“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아그네스.”
“중요한 일이에요. 가요.”
초저녁의 하늘은 심해처럼 검푸르다. 나는 서녘 지평선 근처를 눈으로 더듬었다.
손톱자국과 같이 얇은 초승달. 월삭의 달이 그곳에 걸려 있었다.
나는 사용인들의 눈을 피해 백작성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다 이유가 있답니다. 아그네스도 잘 봐요.”
지금은 2월을 목전에 두고 있는 1월. 입으로 토해낸 숨이 하얗게 부서졌다. 그것은 겨울밤의 시린 바람에 빠르게 쓸려 나갔다.
나는 시스템을 열었다. 오랜만에 ‘순위 변동’ 알림 설정을 켜두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 시간 정도 진득하게 기다렸을 때였다.
파아아앗-!
서쪽 하늘에서 섬광과 함께 별이 떨어졌다. 찰나의 순간이 지난 뒤 나는 심호흡을 했다.
“네.”
장난스럽게 미신을 들이미는 아그네스. 그러나 내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아그네스, 저건 그렇게 상서로운 징조가 아니에요.”
그 순간이었다.[ 당신의 순위가 변동합니다. 현재 순위: 8위 (▼1).]1등 하락.
내가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왔구나.”
‘그’가 마침내 이 세계로 건너왔다.
“카르페이오스가 했던 말 기억해요?”-곧 인간 세계에 월삭(月朔)이 다가온다. 그날 그분, ‘갓 태어난 혼돈악’께서 친히 광림(光臨)하실 터.
놀라는 아그네스를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그’는 이 세계의.
“최종 흑막이에요.”
사아아아아…!
겨울바람이 내 몸을 휘감고 지나간 순간이었다.[ 긴급 알림! 새로운 존재의 출현으로 해당 세계의 난이도가 재조정됩니다.] [ 해당 세계의 생존 난이도는 ‘SS급’입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