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95)
95화
“…….”
내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아, 맞다.”
생각난 게 있었다.
“하피 퀸의 오색 깃털.”
지난 던전에서 얻은, 낙사를 방지해 주는 일회용 아이템! 그걸 믿고 뛰어내린 게 분명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굳이 그런 극단적인 연출을 할 필요가 있었냐며 화를 냅니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정말 18회차로 넘어가는 줄 알고 식겁했다고 말합니다.]
“그니까요. 아주 그냥…… 돌아오기만 해봐.”
“참새똥맛 환단을 먹여주겠어요.”
처절한 복수극을 계획하는 사이, 뒤에서 당황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 너, 너 뭐야!”
“연금술사라며!”
“어떻게 부단장한테서 벗어난 거지……?!”
메인 탱커인 렉토 부단장은 찬영 기사단에서 나름 에이스였다.
나를 둘러싸고 포위진을 구축한 찬영 기사단의 얼굴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일단 이 녀석들부터 처리해야겠네요.”
내가 듣기에도 싸늘한 목소리에 단장과 부단장이 도발당했다.
“처리라니, 누가 할 소리!”
“여자를 없애라! 목격자를 살려둬선 안 된다!”
이제는 기사도 흉내도 내지 않고 떼로 덤비려는 모양이다.
“성황청 가서 증언해야 하니까 살려는 줄게. 고마운 줄 알아.”
나는 세르펜스를 꺼내 흰 빛을 입혔다.
“오, 오러 유저……!”
“연금술사랬는데!”
“그래 봐야 비기너 수준일…….”
촤라라락!
섭섭한 오해를 하기에 바로 사복검을 전개했다. 내 애검이 포식하는 뱀처럼 날뛰며 일대에 피보라를 일으켰다.
“으아악! 내 다리, 내 팔……!”
“뭐,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검술은……!”
“비, 비기너 따위가 아니다! 오, 오러 익스퍼트! 그것도 상급 이상이야……!”
“히익! 우리 상대가 아니야! 테, 테실리드! 테실리드를 불러야……!”
어찌나 패닉에 빠졌는지 급기야 자기들이 사지로 등 떠민 테실리드를 부르고 있다.
짜증 나서 사복검을 더욱 매섭게 채찍처럼 휘둘렀다.
“아아악!”
“커허억!”
스무 명이 좀 못 되는 오합지졸. 그들이 전투 불능이 되기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리를 중점적으로 베거나 부러뜨린 탓에 찬영 기사단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끄, 끄흑! 대, 대체 정체가 뭐냐……!”
볼썽사납게 바닥을 기던 게드빌 단장이 눈물과 콧물을 줄줄 빼며 외쳤다.
철컥. 세르펜스의 검신이 검집 안으로 들어갔다.
“테실리드 임시 보호자다, 왜?”
“뭣…… 크, 크헉!”
죽이면 안 되니까 검집째 팼다. 물론 오러 유저의 육체는 단단하므로 적당량으로 오러를 실었다.
퍽! 퍽! 퍽! 퍽! 퍽!
“맞으면서 반성해.”
“끄, 끄악! 아악! 사, 살려주십쇼! 악! 끄아악! 자, 잘못했……!”
퍽! 퍼억!
“뭘 잘못했는데?”
“컥! 테, 테실리드한테…… 커흐억!”
퍼억! 퍽퍽퍽퍽!
“그래, 테실리드한테 뭐? 왜 뒷말을 안 해?”
“제, 제발 자비를… 쿠헉!”
“자비?”
저절로 실소가 나온다. 곧장 내 얼굴에서 표정이 빠져나갔다.
“이게 자비야.”
“……?!”
나는 오러를 조절하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다.
흥분하지 말자. 죽이면 안 되는걸.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선지, 이어진 내 목소리 또한 더없이 차가웠다.
“있잖아. 내가 버스트 던전에서 뭘 보고 나왔는지 알아?”
“큭! 커허억!”
“테실리드가 거기서 당한 고통을 너희 머릿수로 나눠도.”
“크헉! 크학!”
“이딴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
“끄허어억!”
“그러니까 이 정도면 자비로운 편이지. 안 그래?”
“끄어어어…….”
규율에 얽매인 17회차 주인공은 제 손으로 직접 복수할 생각 같은 건 꿈도 못 꿀 게 뻔하다.
그러니까 내가 보호자가 된 지금, 이 정도의 물리적인 참견은 해도 되지 않겠는가.
아니, 나 아니면 누가 해주는데?
퍼어어억!
“끄륵…….”
애석하게도 게드빌 단장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나는 정신을 잃은 그의 뒷덜미를 집어다 던졌다.
“히, 히이익!”
내동댕이친 위치는 렉토 부단장의 옆이었다. 기겁한 그가 주저앉은 채로 뒷걸음치려 했다.
“두 배 가지고 되겠어요?”
들으란 듯이 뒷말을 이었다.
“감히 내 목에 칼을 들이댄 놈인데.”
“히꾹!”
내 시선이 렉토 부단장을 위에서 아래로 쓱 훑었다. 원작에서 그는 테실리드를 질투하는 메인 탱커였다.
“탱커면 맷집 좋겠네.”
“요, 요, 용서해 주십시오! 다신 안 그러겠…… 흐아아악!”
역시 잘 버텼다. 덕분에 원 없이 두드려 팰 수 있다는 점은 좋았으나 단점도 있었다.
“그, 그만! 그만해, 제발!”
녀석의 말이 짧아지는가 싶더니 돌연 고개를 퍼뜩 쳐들었다. 퉁퉁 부어터진 얼굴은 악에 받쳐 있었다.
“우, 우린! 그저 살고자 했을 뿐이다! 너라면 그 상황에서 달랐을 것 같나!”
“…….”
난 잠시 손을 멈췄다.
내 눈빛이 차게 식었다.
나는 검집을 천천히 내렸다. 이에 렉토 부단장은 제가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한 듯 히죽거렸다.
“그것 봐라. 인정하지? 너 역시도……!”
“내가 너희를 살려두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뭐?”
벌레와 눈높이를 맞춰줄 흥이 사라졌다. 세르펜스를 다시 허리에 패용하고 일어났다.
당황한 벌레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재판정 가서 증언하라고 살려두는 거거든. 그런데 너는.”
“…….”
“하라는 증언은 안 하고 헛소리만 할 것 같다.”
즉.
“쓸모없어 보여.”
“……!”
어떤 선고라도 들은 듯, 벌레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진다. 나는 검지를 들어 올려 렉토 부단장의 미간에 댔다.
피잉-.
“무, 무슨 짓을…… 흡?!”
“쉿.”
엄마에게 전수받은 히스펜릴의 오러 운용법이 벌레의 몸뚱이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청각을 시작으로 촉각에 이르기까지, 시각을 제외한 전신의 감각과 신경이 극도로 예민하게 벼려진다.
“흐…… 흐어…… 흐어어억…….”
“부, 부단……장?”
“흐어어어……!”
“부, 부, 부단장님……!”
이미 전신이 상처투성이이기에 내가 더 손을 보탤 필요는 없었다.
“끄르륵…….”
실핏줄이 터져 눈이 벌겋게 물들었다. 그는 비명 대신 신음과 침거품을 줄줄 흘리며 쓰러졌다.
“부, 부, 부단장님한테 무슨 짓을……!”
“죽진 않아.”
“…….”
“죽기보다 괴롭겠지만.”
“……!”
차라리 죽음이 해방이리라.
하지만 탱커 포지션의 오러 유저는 쇼크사하기도 힘들다. 그러니까 이대로 두면…….
잊을 뻔했는데 렉토 부단장은 원작에서 테실리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적이 있다. 지독한 열등감 때문에.
렉토 부단장은 본질이 악한 인간이며, 살의의 뇌관이 되는 열등의식도 변함없다.
하물며 잃을 것이 없는 자는 남을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데 주저함이 없는 법이지 않던가.
렉토 부단장은 어차피 화형당할 게 뻔한 참에, 제 한 몸을 불살라 재판정에서 테실리드를 기상천외하게 모함하고도 남을 놈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악당이 악행을 한 번 더 저지를 기회를 줘야 할까?[‘창조경제 관리자’가 후환을 남기지 않는 선택을 좋게 평가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응징은 본래 처절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업계 종사자로서 동의를 표합니다.]렉토 부단장을 지켜보던 때였다.
문득 옆에서 불온한 기색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단원 중 몇몇이 하찮은 신성력을 끌어 올려 몰래 치유를 쓰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나직이 읊조렸다.
“묵언 수행.”
내 손끝에서 빛의 아지랑이가 나비처럼 날아갔다. 목표는 찬영 기사단원들의 입이었다.
“읍! 으으읍?!”
상급 디버프 스킬로 주둥이를 봉했다. 신성력 주문을 영창할 수 없게 된 기사들은 경악했다.
“이참에 치유력이 없어서 서러운 성흔양의 기분 좀 느껴보라고.”
“……!”
피를 철철 흘리도록 뒀더니 의외의 부가 효과가 있었다.
“커흡……!”
“쿨럭, 쿨럭!”
몇몇 기사들이 코피를 흘리고 각혈을 하기 시작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역병 1단계에도 몸이 반응하나 보네요.”
체내에 오러나 신성력을 운용해서 저항할 수 있지만, 찬영에 그만한 집중력을 가진 실력자는 없었다.
안 그래도 나 역시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아까 테실리드, 힘을 얼마나 회복한 것 같았어요?”
“그럼 20분이 한계예요. 제가 준 포션까지 마신다 치면 30분이고요.”
오롯이 테실리드의 힘으로 던전을 클로징하게 두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힘을 마저 회복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가급적 개입하지 않고자 했다.
그랬는데…….
“커헉, 끄헉…….”
“커흐흐흡……!”
찬영 기사단은 계속해서 피를 토했다. 이따금씩 힐을 살짝살짝 걸어줬으나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만 갔다.
체감 5단계쯤일까. 그럼 심층부를 헤매고 있는 테실리드는 어떤 상태지?
목걸이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기다렸다.
아그네스가 나를 부르는 음성이 평소보다 낮다.
허공에 풀어두었던 눈의 초점을 목걸이에 맞췄을 때였다.
“후우…….”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럴 줄 알았어요.”
“가요, 아그네스. 미아 찾으러.”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찬영 기사단을 방치해 두고 검은 개선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쉬이익!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극단적인 연출에 비명을 지릅니다!]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