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121
7화. 무영문 일곱 번째 제자(7)
사형제가 모두 연무장에 모였을 때, 사부, 무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로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장로를 필두로 한 열두 장로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장로 모두를 본 건 처음이었던 호진과 정천은 신기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다 모였느냐?”
“예, 사부님.”
무명이 제자들을 죽 둘러보았다. 흐뭇한 얼굴로 제자의 얼굴 하나하나를 새겨넣던 무명의 시선이 정천에게로 고정되었다.
“성취가 있었던 게냐?”
“아…….”
역시 사부는 귀신같이 그의 성취를 알아보았다.
“막내가 입적을 달성했다고 합니다!”
들뜬 목소리로 외치는 호진의 말에 송백림과 사현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입적이라고?’
‘벌써?’
셋째, 환욱이 몇 년 전에야 겨우 들어선 경지였고, 넷째 원주완과 순유가 얼마 전 간신히 들어선 경지였다. 그들이 이십 년에 걸쳐 간신히 이룩한 경지를 고작 십 년 만에 달성한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헤헤.”
“더욱 정진하거라.”
“예, 사부.”
무명은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이 노부가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그가 일장로로부터 한 자루의 검을 건네받았다. 검집을 벗겨내자 백옥같은 자태의 검신이 드러났다. 제자들은 그 검이 어떤 검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백은성류검(白銀聖瀏劍).
물론 그 검이 어떤 검인지 잘 모르고 있던 정천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백림이는 앞으로 나오너라.”
송백림이 무명의 앞에 섰다.
“이 백은성류검은 과거 혈천교가 강탈해갔던 무신검(武神劍) 효성 대협의 검이다. 우리 무영문 칠 대 조사께서 혈천교를 타파하고 회수해 보관해 왔었지.”
무명은 그 말과 함께 송백림 앞에 검을 내밀었다. 송백림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 검을 받아들었다.
“끝없이 정진하거라.”
“감사합니다, 사부님. 가르침대로 끝없이 정진하겠습니다.”
송백림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제자들이 그를 부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다음, 현아, 앞으로 나오거라.”
이번에는 둘째, 사현이었다. 이장로가 무명에게 또 다른 한 자루의 검을 건넸다.
스르릉-
검집을 벗겨내자, 은은한 녹빛의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녹일천검(綠一天劍)은 과거 팔 대 조사께서 녹림천왕을 타파하고 얻은 검으로…….”
무명의 설명이 끝나고, 사현은 검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언제나 그렇듯 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고,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없었다.
“욱아, 앞으로 나오거라.”
그렇게 한 명, 한 명, 무영문의 신물들이 제자들에게 건네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정천의 순서가 되었다.
“천아.”
정천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모든 장로의 얼굴이 굳었다. 지난 장로 회의에서 무명은 막내 제자에게 사사할 신물을 고르지 않았다. 일장로가 그 이유를 물었으나, 딱히 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어느 때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던 사현마저 감정의 변화가 있을 정도였다.
“이 검은 네 몫이다.”
허리춤에서 검을 끌러 정천에게 건네는 무명. 무명의 단 하나뿐인 신물이자, 무영문주의 상징이었던 검이었다.
“그, 그걸…….”
이번만큼은 정천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가 아랫마을에서 가져왔던 검이었기 때문이다.
묵혼혈룡검(墨魂血龍劍).
“사부님!”
환욱이 소리쳤다.
“왜 그러느냐?”
“그건 사부님의, 그리고 무영문주의 신물이 아닙니까?”
무명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 검은 내가 애용하는 검은 분명하나, 무영문주이기 때문에 애용하는 건 아니란다.”
“하지만……!”
“검은 도구일 뿐이고, 각자에게 어울리는 도구를 건넸을 뿐이다. 이의가 있느냐?”
“…….”
아무리 무명 스스로가 아니라고 해도, 현 무영문도 중 묵혼혈룡검을 무영문의 신물로 여기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묵혼혈룡검을 저 새파란 애송이에게 준다는 건, 그를 차기 무영문주로 낙점했다는 의미와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의 고견에 반하는 제자는 없을 겁니다.”
환욱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송백림이 선수를 쳤다.
“하하, 역시 대제자 답구나. 욱아, 네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보거라. 다른 게 보일 것이니라.”
그렇게 무명은 무영문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장로들과 제자들 앞에서 막내 제자 정천에게 묵혼혈룡검을 건넸다. 물론 호진을 제외하고 이 결정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특히.
‘두고 보자.’
송백림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슴 깊숙이 갈무리하며 후일을 기약했다.
* * *
〈서로 화(和)하여 극(極)에 이르면 무(無)의 오의(奧義)를 깨우치리라.〉
일곱 제자는 사부가 떠나기 전 심득(心得)을 새겨놓은 암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각자의 방식으로 너희들의 무(武)를 좇거라.〉
사부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산의 명분을 만들어 주고 떠났다.
“대사형, 사부를 찾으러 가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언제나 쫑알쫑알 말이 많은 넷째, 원주완이 물었다.
“난 내려가오.”
야심이 큰 환욱이었다. 아마 사부에게 신물을 받았던 날이었을 것이다. 정천을 향한 적개심을 공공연히 드러냈을 때가.
사현은 언제나 그렇듯 일찌감치 사라진 후였다.
“대사형….”
평소 성정이 강하지 못한 순유는 원주완과 함께 송백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천, 너도 같이 가지 않을래?’
호진은 사현이 떠나기 직전, 정천에게 물었다. 하지만 정천은 그 제의를 거절했고, 호진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사현을 따라갔다.
그리고.
“천아.”
송백림이 그를 불렀다.
“저요?”
이제 통관(洞觀)의 경지에 들어선 정천은 다른 상념에 빠져 있다가 송백림의 부름에 귀를 후비며 답했다.
“저, 저! 건방진 놈이. 사부에게 신물을 받더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감히 대사형에게 무슨 말버릇이야.”
평소 송백림을 존경하는 원주완과 순유가 욱했지만 송백림의 제지가 빨랐다.
“천아, 너도 나와 함께하겠느냐?”
“제가 왜요?”
“대사형, 왜 저런 놈까지 포용하시려 하는 겁니까? 어차피…….”
송백림의 제안에 원주완과 순유가 놀랐다. 하지만 정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왜라니, 사부께서 심득을 남기고 떠나셨다.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 무영문을 존속해야 하지 않겠니.”
정천은 코웃음을 쳤다. 이제는 잘 알고 있다. 환욱처럼 공공연하게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능구렁이 수백 마리는 그 안에 품고 있는 송백림의 검은 속내를.
‘내 묵룡이 탐나는 건 아니고?’
그러나 그는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다만 씨익 웃었다. 그가 아는 대사형이라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묵룡을 차지하고자 할 것이다. 설사 자신을 죽이고서라도. 정천도 이제는 더 이상 어리다 할 수 없는 나이였다. 괜히 힘도 없는데 깝죽거렸다가는 죽음뿐이라는 걸 절대 모르지 않았다.
“하하, 네가 정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 행선지는 정했더냐?”
“아직 모르겠네요.”
무에 대한 깊이는 과거와는 비견될 수 없을 만큼 깊어졌지만, 세상에 대한 경험은 거의 전무했다.
‘흐음, 소호변으로 가볼까?’
그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경험했던 세상이라고는 소호변에서 지냈던 것이 전부였다. 자연스레 그곳이 떠오를 수밖에.
“어쨌든, 저도 내려가 볼게요. 그럼, 이만.”
대사형이 다른 소리를 하기 전에 정천은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지만, 정천은 무시하고 길을 나섰다.
* * *
정천은 정처 없이 걸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궁금할 법도 했지만,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걸었다. 배가 고프면 사냥과 채집을 했고, 졸리면 잤다. 가끔 식사다운 식사를 하고 싶을 때면 인근 마을을 찾아가 끼니를 때우곤 했다. 그 나머지 시간에는 그저 무학과 검에 대한 고민뿐이었다.
“이야, 사람들이 엄청 많네. 건물은 또 왜 이렇게 높아?”
처음이었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도착한 거대한 도시.
“여기가 어딘가요?”
그는 지나가는 여인을 붙잡고 물었다. 덥수룩한 머리와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그리고 엉망진창인 의복까지. 그야말로 야인의 행색인 정천을 본 여인이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뭐지……?”
그동안 작은 마을들에서는 그를 보며 왠지 안쓰러운 얼굴로 식사를 대접해주곤 했었다. 그런데 여기는 민심이 달랐다.
“에? 처음 보는 얼굴인데?”
웬 거지가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그의 허리춤에 매여있는 검을 슬쩍 쳐다봤다.
“아, 좀 전에 이곳에 도착했거든요. 혹시 이 도시가 어딘가요?”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던 거지가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항주를 와서는 항주가 어딘지 모른다고? 그게 대체 뭔 개뼉다구 같은 소리요?”
“오오, 여기가 항주였군요! 다행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근시일 내에 한 번 찾아오려고 했는데.”
정천의 반응에 거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에이, 난 또 개방 출신인 줄 알았더니. 웬 정신 나간 인간이…… 쯧쯔.”
김샜다는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거지.
“개방?”
아무리 무림에 대해 무지하다고 하더라도 개방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정천은 쪼르르 달려가 그에게 손을 뻗었다.
“저기…….”
그가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 거지가 어깨를 살짝 뺐다. 정천은 본능적으로 그 움직임을 따라가 어깨를 잡아챘다.
“……!!”
놀란 거지가 그의 안면으로 주먹을 뻗어왔다. 슬쩍 주먹을 피하는 정천. 이번에는 거지가 그의 복부를 향해 내공을 실은 손바닥을 날려왔다.
‘항룡십팔장이라고 했나?’
개방의 대표적인 장법. 물론, 아무 거지나 항룡십팔장을 배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정천은 모르고 있었다.
턱.
이번에는 손바닥을 마주 뻗어내며 거지의 장법을 방어해냈다.
“하앗!”
이번에는 손날이었다. 빠른 손속. 이 짧은 거리에서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턱.
정천은 손쉽게 그의 수공을 막아냈다.
“…….”
정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체 왜 이러냐는 얼굴로. 적어도 그가 적대적인 인물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지가 정색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오?”
어깨를 잡아챈 게 화를 낼 일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천이 사과했다.
“혹시 어깨를 잡은 게 기분이 나쁘셨으면 미안합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뭘 말이오?”
이제야 상대가 대화를 이어갈 마음이 들었다고 생각한 정천이 눈을 빛냈다. 그가 배운 대로라면 개방의 거지들은 무림 지식과 정보에 빠삭하다.
“아, 별건 아니고. 흑도맹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정천이 가볍게 내뱉은 말에 거지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정체를 밝히시오.”
“예? 갑자기요?”
거지의 전신에서 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음? 대체 왜 그러시는 거죠?”
“세 번은 묻지 않겠소. 누구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정천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출신은…… 제가 말씀드리기 곤란하고. 정천이라고 합니다만.”
적대감이나 멸시하는 태도는 전혀 없어 보이기에 거지의 기색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적어도
“항주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것이오?”
“음…… 뭐랄까. 결자해지(結者解之)나 좀 해보려고 한달까요?”
“흑도맹과의 결자해지라…… 백도의 인물이오?”
정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다시 정색하는 거지. 백도가 아니라면…….
“그럼, 마도의 인물…….”
“그건 더더욱 아니고.”
“그럼, 흑도……?”
“그것도 아닌데.”
정천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해했다.
“후우, 세 번은 묻지 않으려 했는데, 누구요?”
정천도 답답했다. 중원에서 출신을 함부로 발설하는 건 무영문의 문규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그러다 지금의 그를 규정할 수 있는 하나의 출신성분이 떠올랐다.
“낭인?”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