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07)
107_소금과 청어(6)
항구에서 새로 출범한 상단을 배웅하는데,
저 멀리서 선제후의 대리인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 꼴을 보니, 자연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온 거지?’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든 게 내 잘못은 아닐 거다.
저 녀석이 최근 쏘다니면서 한 짓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한자 동맹 일에 쓸데없이 간섭한단 말이야.’
나는 최근 한자 동맹의 특권 폐지를 선언했다.
그런데 저 대리인은 뭐가 못마땅한지 자꾸 딴지를 건다.
작센 선제후와 한자 동맹 사이엔 특별한 연도 없는 걸로 알고 있건만 말이다.
‘같은 독일인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동맹 요청을 거절했다 여겨서?
하지만 난 아직 선제후의 요청을 확실히 거절하지 않았다.
달리 내게 적의를 표할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쯤 되자, 대리인이 한자 동맹의 첩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찌 됐건, 그가 다가오는 게 썩 좋은 의도로 보이진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내가 떨떠름히 묻자, 대리인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저 배로는 무역할 수 없습니다!”
“뭐?”
대리인이 가리킨 배는 내 것이었다.
이번에 새로 건조한, 자랑스러운 영국의 3호선.
신성로마제국으로 첫 상행을 나가기 직전인 배 말이다.
“이 배로 무역을 할 수 없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
헛소리면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성로마제국에서 그 배로의 무역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로마에는 로마의 법이 있으니까요.”
···나는 그 말에 잠깐 멈칫했다.
현지의 법에 저촉되는 문제가 있다고?
그렇다면, 확인해볼 필요가 있기는 했다.
“자세히 설명해보게.”
“문제는 선폭입니다. 저 배의 선폭은 너무 넓지 않습니까?”
3호선은 1호선과 2호선과 같은 형태를 띠었다.
선폭이 넓고 선체는 낮아 안정성을 추구한 형태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나?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선폭을 토대로 상선의 세금을 추산합니다.”
“뭐?”
대리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용적량이 아니라 선폭으로 세금을 매긴다고?”
물론 영국에서도 오가는 상선에 세금을 매기긴 한다.
하지만 영국이 세금을 산출하는 방식은 술통(ton).
범선에 최대 몇 개의 술통이 들어가는지를 따져서, 그 용적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그런데,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선폭으로 세금을 매긴다고?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대리인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봐선 진짜 같았다.
내게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뭐하러 그리 비효율적으로 세금을 책정하지?’
하지만 그 나라의 법이 그렇다면 별수 없었다.
내가 아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알겠네.”
“예. 그러니 차라리 한자 동맹을 통해-.”
“그러면 선폭이 좁은 배를 만들면 되는가?”
“예?”
“왜 그렇게 놀라는가? 선폭이 문제라면 새 배를 만들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정 아니면 사와도 되고. 흠, 네덜란드에 괜찮은 배가 있을 것 같군.”
배를 건조하는 데 드는 시간은 절대 적지 않다.
지금은 돈보다 시간이 아쉬운 참이니, 웃돈을 주고라도 배를 사 오는 게 더 좋을 듯했다.
네덜란드에 보낼 선박 견적을 생각하고 있을 때, 대리인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음?”
선폭 낮은 배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또 뭐가 문제인데?
“영국의 물건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의 물건을 가져오는 것 역시 중요한 것 아닙니까? 빈 배로 돌아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긴 하네만.”
그런 당연한 이야길 왜 하는 거지?
그런데, 대리인이 골 때리는 소리를 했다.
“한자 동맹이 건조한 배가 아니라면, 신성로마제국의 상인들은 그 배에 물건을 적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뭐? 무슨, 아니 설마 그것도 법인가?”
한자 동맹은 국가를 초월한 상인 연합 아닌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싶었다.
“물론 나라의 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한자 동맹의 법이고, 한자 동맹의 영향력이 닿는 곳의 상인들은 전부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곳을 전부 피해서 무역을 하려면···, 글쎄. 힘드실 겁니다.”
그 말에 기가 막혔다.
무슨 그런 오만한 이야기가 다 있지?
‘그러니까, 자기들 멋대로 그런 벽을 쌓고 텃세를 부린다고?’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잠깐만, 이 정도면 그 통행세도 한자 동맹의 수작 아니야?’
나는 고개를 들어 항구의 저편을 보았다.
그곳에 한자 동맹의 배가 정박해 있었다.
무척이나 선폭이 좁고, 선체가 높은 배가 말이다.
이 시대 다른 범선에 비교해봐도 상당히 기형적인 형태.
한자 동맹이 통행세를 절약하기 위해, 혹은 타국의 배를 배제하기 위해 그런 법을 만든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는걸?’
자금이 넘쳐나는 놈들 아닌가.
적절한 로비로 법에 손을 댔을지도 몰랐다.
그리 생각하니, 아주 기가 막혔다.
“꼭 신성로마제국이 한자 동맹의 소유지 같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는 그저, 무역에 작은 힘을 행사할 뿐입니다.”
방금 분명 ‘저희’라고 했지?
역시 이 대리인은 한자 동맹 소속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신성로마제국과 무역을 하려면 한자 동맹에서 건조한 배를 사야 한다는 것인가?”
그것만으로도 열통이 터질 일인데, 대리인은 고개를 저었다.
“유감이지만 한자 동맹은 함선을 판매하진 않습니다. 빌려주지도 않지요. 또, 배를 산다고 그게 한자 동맹의 함선이 되지도 않습니다. 오직 한자 동맹이 소유주인 배만 한자 동맹 영향권인 도시에서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습니다.”
정말 참고 참는데, 놈들이 도를 넘었다.
“결국 한자 동맹이 신성로마제국과의 무역을 독점하겠다는 거군. 영국이 한자 동맹과의 부당한 협약을 파기하더라도, 여전히 신성로마제국과의 무역은 그쪽에서 독점하시겠다? 이게 깡패인지, 상인인지도 모르겠군.”
“물론 한자 동맹은 상인입니다. 그러니 여왕 폐하께선 골치 아픈 일에 손 떼시고 상업은 상인들에게 맡겨놓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선제후 대리인, 아니 한자 동맹의 대리인이 그렇게 씨불였다.
그리고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다.
‘개자식들이? 날 만만히 봐도 정도가 있지.’
내가 말했다.
“좋아, 그러면 그대들의 그 같잖은 법을 내 지켜주도록 하지.”
“정말이십니까?”
“그래. 한자 동맹이 소유하고 건조한 한자 동맹의 배를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저 배를 사용하겠네.”
내가 손을 들어 한자 동맹의 배를 가리켰다.
그걸 본 대리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말씀드렸듯, 한자 동맹은 배를 빌려주지 않습니다. 팔지도 않고요.”
“상관없어. 저 배는 세금 연체자의 배니까.”
지금부터, 불량 채무자 강제 집행에 들어간다.
꼭 빨간 딱지 붙고 차압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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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루카스는 현기증을 느꼈다.
한자 동맹의 안마당, 스틸야드가 털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스틸야드의 물건을 집어 갔다.
그게 소비자라면 더없이 좋겠으나, 저들은 병사였다.
여왕이 직접 파견한 여왕의 근위병들.
“폐하! 이곳은 압수수색이 끝났습니다!”
“와아, 여긴 술을 쌓아뒀네요!”
“이리 돈이 많은데도 세금을 안 낸다고? 쓰레기 놈들 같으니!”
병사들은 거침없이 스틸야드를 들쑤셨다.
스틸야드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에게, 그들은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가차 없이 물건을 빼앗아 가고, 길을 막는 것은 파괴해버렸다.
“제, 제발 그만두시오! 돈이라면 드릴 테니까!”
보다 못한 스틸야드의 상인들이 돈을 싸 들고 가져왔다.
“밀린 세금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소?”
상인들의 말마따나, 그건 넘칠 정도의 황금이었다.
애초에 스틸야드가 돈이 없어 세금이 밀린 게 아니었다.
면세 혜택을 거둔다는 여왕의 뜻에 대한 항의로 세금을 내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때는 이미 늦었다.
“돈을 그리 쌓아놓고 앉아있었으면서 세금은 내지 않았다고? 더욱 괘씸하군. 징벌적 청구를 해야겠어.”
여왕은 그리 말하며 금을 압수해버렸다.
여왕은 거칠 것이 없었고, 병사들은 메뚜기 떼처럼 스틸야드의 금은보화를 쓸어갔다.
“허, 세상에. 귀한 보물이 가득하군요.”
“확실히 돈이 많긴 많았나 봅니다.”
여왕뿐 아니라 의원들도 모조리 나와 스틸야드의 귀중품을 구경했다.
와이어트가 눈에 띄는 보물을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폐하! 세상에, 이것 좀 보십시오!”
“뭔데 그러나? 팔찌?”
“황금 사자가 새겨진 팔찌입니다. 로마의 보물 같은데요? 허, 이런 건 어지간한 귀족도 구하기 어려울 텐데 말입니다.”
여왕은 팔찌를 들어 한번 휙 돌려보고는,
그대로 와이어트에게 건넸다.
“내게는 어울리지 않겠군. 자네 가지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와이어트가 황금 팔찌를 얻어 차고 싱글벙글 웃었다.
다른 의원들은 부럽다는 듯 그를 쳐다보고, 여왕은 호탕하게 웃었다.
‘이, 이게 나라가 맞나? 해적들의 전리품 분배가 아니라?’
지켜보던 루카스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한자 동맹의 물건을 자기 것처럼 저리 막 다루다니.
세상에 정의는 다 죽었냐는 말이다.
물론 그건 작센 선제후가 영국 여왕에게 바친 선물이었지만,
루카스의 머릿속에 그건 이미 한자 동맹의 정당한 보물이었다.
‘미친 야만인 여왕 같으니!’
루카스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떻게든 따지고 싶었으나, 그는 공포에 질렸다.
여왕의 병사들의 기세가 너무 사나웠기 때문이었다.
루카스가 번민하는 와중에도 여왕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여왕은 정박된 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선폭이 좁은 배로군. 그에 비해 적재량은 괜찮아 보이니 무역에 쓰기엔 적당하겠어.”
여왕은 그리 말하다, 문득 의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배를 아주 압수하는 건 지나치게 잔인한 것 같군. 그러니, 이 배는 당분간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지. 한자 동맹이 앞으로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지를 보고 돌려주겠다는 것이네.”
의원들이 손뼉을 쳤다.
“허어, 폐하의 관대함이 넘쳐흐릅니다.”
물론, 말이 좋을 뿐이다.
이리되면 배의 실소유자는 영국이지만, 소유자는 한자 동맹.
빌린 것도, 산 것도 아니고 담보이니 한자 동맹의 법을 어기지 않았다.
‘말장난이지만, 알게 뭐람? 한자 동맹이 먼저 시작했는걸.’
여왕은 그리 생각하며 당당히 말했다.
“당분간 이 배를 영국 국영 상단의 배로 사용하겠노라.”
배에서 한자 동맹의 깃발이 떨어졌다.
그 자리엔 영국 왕실의 깃발과 상단의 깃발이 펄럭였고,
한자 동맹의 자랑스러운 깃발은 내팽게쳐져 진창에 처박혔다.
“으아아아악!”
마침내 이성을 잃은 루카스가 소리를 질렀다.
여왕은 그제야 루카스를 돌아보았다.
“아, 선제후 대리인.”
여왕이 능청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조언 덕에 적절한 배를 구할 수 있었네. 이 배가 있다면, 신성로마제국과의 무역도 문제없겠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루카스가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
“···포고하겠습니다.”
“응? 뭐라고?”
“선전포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루카스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외쳤다.
그러나 여왕은 귓구멍을 파며 심드렁히 말할 뿐이었다.
“작센 선제후가, 내게 선전포고를? 그거 이상하군. 그가 내게 적대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한자 동맹의 이름으로 전쟁을 선포하겠단 말입니다!”
“그건 더욱 이상하군. 자네는 선제후의 사람이 아니라 한자 동맹의 사람이었던 건가? 자기소개도 제대로 못 하는 머저리로다. 그런데 말이다.”
여왕이 주변의 병사들에게 손짓하고는 말했다.
“선제후 대리인이 아니라 일개 상인 나부랭이라면, 내게 예의를 갖추어라. 미천한 것.”
병사들이 루카스의 양어깨를 눌렀다.
강제로 무릎 꿇려진 루카스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가 목을 긁으며 거친 쇳소리로 소리쳤다.
“후회하게 될 겁니다! 한자 동맹은 영국을 적대할 테니까요. 무역제재가 뒤따를 것이고, 우리의 군대가 영국의 해안을 공격할 겁니다! 지금은 내가 무릎 꿇었지만, 결국은 영국이 80년 전처럼 우리에게 무릎 꿇게 되리란 말입니다!
그러나 여왕은 여전히 심드렁한 태도였다.
그 뒤에 있는 의원들은 아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루카스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질렸으나, 이내 생각을 바꿨다.
‘저 미치광이 여왕이야 현실 파악을 못 하는 것이고, 그 뒤에 의원들은 여왕이 두려워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겠지.’
루카스가 투지를 잃지 않고 여왕을 노려보자,
여왕도 그의 생각을 어렴풋이 읽었다.
여왕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자, 혹시 내 눈치를 보느라 숨겼지만 실은 오줌 싸고 싶은 사람 있나?”
그 우스꽝스러운 말에 의원들이 그럴 리 있겠냐는 듯 웃었다.
“하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게요, 고작 다 늙은 개새끼의 위협 아닙니까.”
그 말에 루카스가 움찔 몸을 떨었다.
“한자 동맹의 무력? 별 볼 일 없지요. 상인치고는 제법이지만, 애초 80년 전의 전쟁에서도 우리를 무력으로 앞서진 못했습니다.”
“예. 오직 무역 제재로 경제를 파탄 내 승리한 것인데, 이제는 그때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무역을 제재한들,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우리 양모를 사갑니다.”
“철제대포가 필요해서라도 에스파냐는 우리와 무역을 이어갈 겁니다.”
“향신료는 신대륙에서 잘 들어오고 있어요.”
“지금 같은 때엔 베네치아 상인들과 통하기도 어렵지는 않지요.”
“소금과 청어는 네덜란드에서 구해오고 있는데, 한자 동맹의 제재가 뭐 그리 위협적이겠습니까?”
“하, 우리 군사력이요? 브리튼 일통이 코앞 아닙니까. 일개 상인이 뭐가 그리 두려울까요.”
루카스는 상황을 따라갈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알 수 없었다.
의원들의 말이 그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신, 멋대로 지껄이는 의원들의 표정만이 선명했다.
같잖다는 표정, 우습다는 표정, 안쓰러워하는 표정.
‘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루카스를 낮춰보고 있었다.
아니, 한자 동맹을 낮춰보고 있었다.
위대한 한자 동맹을.
“한심하기는.”
굳어버린 머리에, 여왕의 목소리가 꽂혀 들었다.
“저들의 성안에 틀어박혀 현실을 보질 못하는군.”
여왕은 그를 한심하게 내려보았다.
16세기는 격변기였고,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시대가 바뀌며 지는 해도 많았다.
베네치아도 그렇고, 에스파냐도 그랬다.
‘하지만 한자 동맹은 독보적인 머저리들이지.’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썩고 고였다.
하층민들을 무시하고, 특권에 절여진 이들.
그들끼리 똘똘 뭉쳐 배타적인 무역을 한다.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그들의 강함을 과신한다.
나중엔 아예 그들 세력권에 성을 쌓고 그 안에 틀어박혔다.
은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바로 최초의 부르주아, 성안의 사람이었으니까.
자신들의 세력권을 성으로 감싸고,
그 밖의 소리를 무시하는 이들.
‘어차피 내가 손대지 않았어도, 조만간 몰락했을 이들이지.’
그래서 여왕은 한자 동맹과 악연을 맺은 걸 후회하지 않았다.
“더 상대할 가치도 없군.”
여왕은 여전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루카스를 방치한 채 싸늘하게 돌아섰다.
이날, 스틸야드는 반파되었고.
며칠 뒤, 한자 동맹의 배가 신성로마제국으로 출발했다.
배 안에 탄 것은 영국의 국영 상단이었고,
이들을 이끄는 이는 토마스 와이어트였다.
그리고 그때 즈음, 한자 동맹 역시 스틸야드의 비극을 전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