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25)
125_네덜란드 독립 전쟁(2)
“각하, 전열이 지나치게 길어졌습니다.”
“음···.”
알바로 제독은 고심에 잠겼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포격에 맞선 전함들과 수송 선단 사이의 간격은 지나치게 벌어졌다.
“겁쟁이들 같으니.”
제독이 혀를 찼다.
포격의 사정거리 밖에서 따라오면 될 것을,
놈들의 대포가 무서워 대체 얼마나 물러섰단 말인가?
“어쩔 수 없지요. 놈들은 자랑스러운 에스파냐의 군인이 아니니까요.”
부관이 그를 달래듯 말했다.
“종자부터가 열등한 놈들이란, 어쩔 수 없는 건가.”
이번에 출판된 작전서에도 적지 않은 내용이지만,
출병한 에스파냐 무장상선 100척 중 상당수는 타국 소유였다.
에스파냐에 정박한 타국의 상선 중 일부를 강제 징발한 것.
때문에 이들의 전투 의욕은 무척이나 낮았다.
“그래도 후환이 두려우니 아주 도망가진 못했을 겁니다.”
“그래, 결국 합류하긴 하겠지.”
하지만 전열이 지나치게 길어져 버렸다.
합류를 위해 족히 반나절은 걸릴 지경이었다.
‘영국이 이 상황을 꾸민 것은 명확한데, 대체 무슨 생각이지?’
제독의 머릿속에 여러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후방의 상선을 습격하는 것.
아니면 단순히 그들의 발을 지체시키려 한 것일지도 몰랐다.
혹은 끊어질 듯한 허리를 습격해 군을 두 동강내려 할 지도 모르고,
상선의 용병들과 떨어진 전열의 포격함에 백병전을 걸지도.
어찌 됐든 경우의 수는 무척 많았고, 그렇기에 예측할 수 없었다.
“적의 전략을 예측할 수 없다면, 최악의 경우를 피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알바로 제독이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
그것은 그들의 보급선이 탈취당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상당히 보급이 아슬아슬하니까.’
막대한 용병 전력을 실은 함선이었다.
오죽 보급이 부족했으면, 출병식 이후에도 비밀리에 에스파냐 항구에 중간 정박해야 할 정도였다.
전함이 상선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이때, 상선이 공격당해 용병들이 죽고 보급선이 불타면 상황은 무척 곤란해진다.
“어쩔 수 없군. 기다렸다가 전열을 재정비한 후에 출발해야겠어.”
하지만 망망대해에서 정박하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눈앞의 칼레 해안에 정박할 수밖에 없나. 하지만, 칼레는 적들의 영토인데.”
알바로 제독이 찝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칼레는 프랑스는 물론, 우리 에스파냐와도 접한 땅입니다. 바로 코앞에는 알바 공작 각하의 육군도 자리 잡고 있고요. 육지에서의 기습은 불가능할 겁니다.”
부관의 조언에, 알바로 제독이 한숨을 쉬었다.
“하긴, 어차피 밤중 영국 해군의 포격을 뚫으며 전진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어쩔 수 없군. 칼레에 정박하되,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각하!”
곧 칼레 해안으로 정박이 시작되었으나,
알바로 제독은 거듭해서 전열을 유지하라고 명령했다.
“우리는 흩어진 함선들과 합류하는 게 목적이지, 늘어져서 휴식을 취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결코 경계를 늦추지 말라!”
낮 동안의 포격전에 지친 해군들은 내심 불만을 품었지만, 감히 제독의 말에 대드는 이들은 없었다.
전함들은 진형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상선들의 합류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며 상선들이 하나둘 돌아와 일행에 합류했다.
합류한 무장상선들은 진형의 외곽부에 자리 잡았다.
늦게 돌아와 가장 외각에 자리한 함선들은 전부 강제 징용된 외국인 상선이었다.
“많은 함선이 합류했습니다. 영국군이 습격하려면 이전에 습격했겠지요. 이 정도면 안심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알바로 제독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한숨도 쉬지 않고, 캄캄한 해안을 경계했다.
본래도 꼼꼼한 성격인 그였으나, 지나친 감이 있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라다. 상대는 그 영국 해군 아닌가.’
이것은 제독의 기억 속, 영국군의 모습 때문이었다.
에스파냐의 바다에서 벌어졌던 바르바리 해적들과의 전투.
영국군은 그 접전에서 해적들을 상대로 승리를 차지했었다.
‘놈들은 경계심을 풀고 육지에 정박한 해적을 기습했지.’
그걸 생각하면, 영국이 꾸민 이 정박은 주의해야 마땅했다.
해적들을 상대로 불을 쏘아대던 그때 같은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잠깐, 불?’
그 순간.
우연처럼 돌풍이 불었다.
휘몰아친 바람은 어떤 신의 전령이었을까.
바람이 제독의 배에, 육지의 나뭇잎을 흩날려주었다.
제독은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손에 쥐었다.
가벼웠다.
그가 주먹을 쥐자, 나뭇잎은 흔적 없이 바스러졌다.
‘···! 공기가 건조해!’
명백한 제독의 실책.
평생을 지브롤터에서 살아온 그는
2월의 칼레가 얼마나 건조한지 알지 못했다.
그가 고개를 번쩍 들고 황급히 외쳤다.
“화공! 화공을 대비하라!”
그러나 때는 늦었다.
바다 너머에서 한 척의 배가 다가왔다.
“상선이군. 우리 배가 한 척 더 합류하나 본데?”
“잠깐, 배의 돛이 생긴 게 좀 이상하지 않아?”
“어, 진짜다.”
에스파냐에선 쓰지 않는 삼각돛이 달린 배.
배는 조종하는 이 없이, 해류에 따라 밀려오고 있었다.
“배에 뭔가 거뭇거뭇한 게 가득 실려 있는데?”
에스파냐 선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콰쾅!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바다 건너편에서, 대포가 발사되었다.
에스파냐가 낮 동안 질릴 정도로 보았던 위력 낮은 화포였다.
그러나, 그 위력은 절대 같지 않았다.
-화르르륵!!!
다가오던 삼각돛 배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고작 대포 하나로 만들었다곤 믿을 수 없는 광경.
순식간에 배의 모든 곳이 벌겋게 타올랐다.
“어, 어어? 저, 저게 무슨 일이야?”
“배에 화약이라도 실렸던 건가?”
“지금 그걸 생각할 때야! 저 배가 우릴 향해 다가오잖아!”
혼란에 빠진 에스파냐 진영.
게다가, 어둠 너머로 비슷한 배들이 세 척이나 더 다가왔다.
적의 화공이 시작된 것이다.
“으악! 저 배도 폭발하겠지?”
혼란으로 가득 찬 에스파냐 진영.
그 안에서, 알바로 제독이 쩌렁쩌렁 외쳤다.
“침착하라! 지금부터 명령을 어기는 놈들은 베어버리겠다!”
그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불타는 배가 진형에 파고들게 두면 안 된다.
진형을 갖춘 배들은 쉽사리 움직일 수 없고,
배들끼리 서로 붙어있으니 불이 순식간에 옮겨붙을 터였다.
“외곽의 상선들이 적의 화공선을 예인한다!”
그의 명령에 따라 진형 외곽의 작은 상선들이 출발했다.
상선들은 갈고리 달린 밧줄을 발사해 적의 화공선에 걸었다.
그들이 동시에 배를 끌자, 화공선은 맥없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오오, 될지도 몰라!”
그러나 소용없었다.
-콰앙!
불타는 배가 다시 큰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내분에 실어둔 흑색 화약이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배의 불길이 갈고리 밧줄에 옮겨붙어 화르륵 타올랐다.
그러자, 선원들이 겁을 먹었다.
“히익! 우리 배에 불이 옮겨붙을지도 몰라!”
“바, 밧줄을 자르자!”
상선들을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독단으로 밧줄을 끊어냈다.
그리고는 화공선과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전속 항해했다.
“이런 멍청한!”
알바로 제독이 이를 갈며 외쳤다.
그건 단지 명령 거부에 대한 분노는 아니었다.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화공이 시작되었다는 건···!”
그 순간, 포격 소리가 귀를 먹먹히 울렸다.
“이미 적의 함선 또한 앞에 있다는 것 아닌가!”
섣불리 적들의 사정권에 들어간 상선들은 벌집이 되어버렸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포격.
화약을 실은 화공선들은 점점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어, 어쩌지요?”
“제독 각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제독이 불같이 화내며 명령했다.
“외곽의 상선들로 화공선을 예인하라고 명하지 않았나! 그렇게 하지 못한 자들의 최후는 이미 보았을 터! 명령에 따라 움직여라!”
일단 시간을 번 제독은, 입을 닫고 매섭게 주변을 살폈다.
‘제기랄, 대체 어디냐! 어디가 빈 곳이야!’
만약 포위망이 완성된 상황이라면, 그들은 끝이다.
사방으로 포위된 상황에서 화공선을 막을 길은 없다.
이제라도 진형을 해체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게 최선.
‘하지만 포위망이 완성되었을 리가 없다!’
그들의 전력이 영국 전력보다 수 배는 많았다.
그런 그들을 영국 해군이 완전히 포위할 순 없다.
함선의 숫자가 부족하니까.
게다가 적들은 이 어둠 속에서 미등 하나 켜지 않은 상태.
정말 포위망이 완전하다면, 그런 불편한 짓을 할 리 없다.
‘포위망은 반드시 빈틈이 있다. 가능성이 있는 방향은···!’
제독이 매섭게 정면을 주시했다.
대포도, 화공선도 들어오지 않는 방향.
‘···저긴가!’
제독이 외쳤다.
“전원! 내가 불러주는 방향으로 항해한다! 전속력으로 포위망을 뚫는다!”
제독의 명령에 따라 필사적인 탈출이 시작되었다.
불타는 화공선을 피해, 모든 전선이 한 방향으로 내달렸다.
중간에 낙오된 배는 버렸다. 불붙은 배의 선원도 버렸다.
에스파냐 함선은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제독의 예상대로, 앞을 막는 것은 없었다.
“하···비참하군.”
제독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벽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무사히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부관, 피해를 보고하라.”
“아직 모든 전함이 합류하지 않았습니다만···. 최소 25척 이상의 무장상선을 손실했습니다.”
“그런가.”
제독이 주먹을 떨었다.
“···영국 놈들의 피해는 없다시피 하겠지. 망할. 놈들의 지휘관은 지금쯤 축배라도 들고 있겠군.”
그러나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런 망할!”
이번 작전의 지휘관, 토마스 와이어트.
그가 아쉬움에 자기 무릎을 내리쳤다.
병력 대비 커다란 전과를 거뒀으나,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포위망이 완벽하지 못했다. 적의 도망을 용납했다.
함선이 부족한 탓이 컸으나,
이토록 구멍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달리 하나 더 있었다.
“호킨스, 이 경솔한 작자가!”
영국군의 포위망에 호킨스의 함선이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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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의회.
긴급 전쟁 보고를 위해 마련된 자리는 무척 싸늘했다.
큰 목소리로 씩씩대는 와이어트 때문이었다.
“무장상선 100척 중 30척!”
그가 외쳤다.
“고작 30척입니다. 갤리온과 포격함에는 흠집도 내지 못했지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 아닌가?”
한 귀족이 그를 달래듯 말했으나, 이는 와이어트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할 뿐이었다.
“충분한 성과라고요? 상대는 바다에 발이 묶인 용병들이었는데요? 놈들이 육지에 풀려나는 순간, 우리 군과 네덜란드에 끼칠 피해를 생각해보십시오! 최적의 기회는 지금이었단 말입니다!”
듣고 있던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안되는 건 알지만, 솔직히 아쉬웠다.
와이어트가 손가락을 들어, 그의 옆에 선 자를 가리켰다.
“전부 지휘관인 저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한 호킨스의 탓입니다.”
의회가 술렁거렸다.
내가 호킨스에게 물었다.
“왜 그랬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간신히 대답했다.
“후퇴하는 척 길을 돌아 놈들의 보급선을 습격했습니다. 시간 내에 놈들의 배를 가라앉히고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군.”
“놈들의 제 생각보다 훨씬 멀리 도망쳐, 추격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해는 갔다.
나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래서, 잡긴 했나?”
“예. 적의 대형 보급선 두 척을 잡아 물건을 탈취하고, 불태웠습니다. 안에는 식량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와이어트가 다시금 외쳤다.
“하지만 호킨스가 약속된 자리를 지켰다면, 더한 공적을 거둘 수 있었겠지요. 제게 말도 없이 진영에서 이탈한 호킨스가 모든 걸 망쳤습니다.”
의회는 책임 논란으로 술렁거렸다.
“으음, 지휘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으니 처형해야···.”
“그건 너무 과합니다. 그간 세운 공적이 있으니, 직위에서 해임하는 정도로 용서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이번 전과 역시 무시할 수는 없지요.”
“아무리 그래도, 전쟁이 애들 장난입니까?”
웅성거리는 이들의 목소리에 아주 골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들 진정 좀 하게, 판단은 내 몫 아닌가.”
나는 호킨스를 마주 보고, 천천히 말했다.
“내 판단을 말해주지. 나는···.”
내 말이 끝나자, 의회 여기저기서 경악성이 울렸다.
“예? 그에게 아무 책임도 묻지 않으시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