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3)
13_세 명의 반역자(5)
죽은 남작과 그 일당의 재판일정이 잡혔다.
이에 따라 런던탑 사건의 경위는 곧 온 런던에 퍼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계급을 막론하고 한결같았다.
“세상에! 여왕은 대체 겁이라고는 없는 건가?”
일국의 왕이 호위도 없이 반역자와 맞서다니.
그야말로 영웅담에나 나올법한 이야기 아닌가!
“이거, 우리 여왕님께는 용감왕이라는 별칭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
“프랑스의 기사왕 앙리 2세라도 우리 여왕님께는 안 될걸!”
“그래도 너무 무모하신 거 아닌가? 여왕께서 돌아가시면 우리는 어쩌라고.”
세세한 반응은 다를지라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왕의 용기에 놀랐다.
그리고는 궁금해했다.
여왕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는지.
‘와씨.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네.’
여왕의 진심을 알았다면 뒤집혔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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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진정이 안 되네.”
난 요동치는 와인잔을 보며 투덜거렸다.
이제 다 끝났는데도,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도통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게 다 윌리엄 남작 때문이다.
물론 남작 자체는 별것도 아니었다.
그의 음모 따위는 진작에 모두 파악했다.
오죽하면 다른 반역자 제거를 위해 그의 습격을 유도하기까지 했을까.
남작의 마지막 죽음을 제외한 모든 건 예상 내였고, 내 손 안에 있었다.
그러니 지금 나를 떨게 하는 건 남작 따위가 아니다.
“무서운 건, 내 무지지.”
윌리엄 패짓 남작.
역사 속에 제대로 된 기록도 안 남은 사람.
하지만 그런 사람이 날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아, 내가 메리 여왕이 된 이상 원 역사는 이미 개뿔 의미 없구나.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언제든 살해당할 수 있겠구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지금은 안온한 21세기가 아니라 빌어먹게 위험한 16세기.
왕족이라도 하루아침에 살해당하는, 목숨이 미친 듯이 가벼운 시대니까.
뭐시기 백작이 휘두른 반란 사건에 목이 따일 수도 있고,
저시기 주교가 독을 탄 포도주를 마실 수도 있고,
시민 혁명으로 참수될 수도 있다. 그것도 언제든지.
“와, 나 진짜 파리 목숨이 된 거구나.”
이 시대 왕들이 편집증에 걸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까딱했다간 권력을 노리고 기어오른 것들이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지?
나는 와인을 마시고 또 마시며 고민을 이어나갔다.
어둠이 내려앉고, 밤이 점차 깊어졌다.
와인 병은 점차 높이 쌓여갔다.
그리고 더는 늘어날 와인 병도 없을 무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눈 부신 햇살이 보였다.
마침내 여명이 찾아온 것이다.
“어머나, 세상에! 여왕님!”
시녀, 메리 헤이스팅스가 깜짝 놀란 비명을 질렀다.
“설마 주무시지 않은 건가요? 이 시간까지 기도실에 계셨다니.”
헤이스팅스는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이내 뒤편에서 굴러다니는 와인 병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잠깐만요. 설마 성찬식에 쓰는 와인을 전부 드신 건가요?”
머리 아프니까 좀 조용히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내 상태를 살피던 헤이스팅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오늘 재판에는 못 가실 것 같네요.”
“재판?”
헤이스팅스가 친절히 대답했다.
“오늘은 제인 그레이 아가씨와 윌리엄 남작 일당의 재판일이잖아요. 물론 판결의 결과는 뻔하니, 굳이 가지 않으셔도 괜찮겠지만요.”
“아니.”
나는 휘청이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재판에 빠져서야, 밤새도록 고민한 게 아무 소용이 없다.
“재판에 가도록 하지.”
어젯밤, 나는 살기 위해 치열히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제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어젯밤, 내가 갈 방향을 정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걸어가야 할 방향을.
치열한 고민 끝에 정한 길.
그러니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에 사과 따위는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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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의 분위기는 무거웠으나, 동시에 가벼웠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되어 잡혀 온 이들을 절망에 빠져 있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일말의 긴장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싶었다.
그럴 만도 했다.
재판은 너무나도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재판장에 선 이들의 죄목도, 증거도 명확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직접 서명한 서약서가 내 손에 있었다.
이 때문에 죄인의 편을 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조차 없었다.
머리가 있다면, 그래 봤자 내 노여움을 살 뿐이라는 것을 알 테니 말이다.
결국, 이 재판은 예정된 사형에 이르기 전의 요식 행위일 뿐.
따라서 재판은 쾌속으로 진행되었다.
“그럼 제인을 비롯한 반역자들은 전부 지엄한 법에 따라 참수형을···”
마침내 판사가 판결을 내리려고 하던 바로 그때.
그때였다. 내가 이 재판에 끼어든 것은.
“잠깐.”
판사가 깜짝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명색이 판사인데, 너무 내 눈치를 본다.
“형식은 지켜야지. 윌리엄 남작의 일에 대한 증언은 받지 않나? 당시 현장에 있던 간수가 증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판사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잊어버린 것은 아닐 테고, 아마 내 눈치를 보느라 생략한 게 아닐까.
어차피 결과가 정해진 재판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이상 상황은 달라졌다.
곧 내가 지목한 간수가 끌려 나와 증언대에 올랐다.
간수는 벌벌 떨며 증언했다.
나는 죄가 없다.
그저 협박받았을 뿐이다.
그런 지루한 변명이 한창이나 이어졌다.
결국, 보다 못한 판사가 채근한 뒤에야 제대로 된 사건 진술이 나왔다.
물론, 순전히 그의 시각에서 본 이야기였다.
“존 경을 보러 간다던 여왕님이 갑자기 제인 아가씨의 감방으로 가더군요. 그러면서 모든 일이 틀어졌습죠. 여왕님은 그때부터 절 경계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남작님의 반란이 드러났고요. 아마 그때 제인 아가씨께서 여왕님에게 남작이 서명한 서약서를 주신 것은 아닐지···”
그 말에 재판장이 술렁거렸다.
간수의 말대로라면, 제인은 반란의 주모자가 아니다.
오히려 반란 저지의 최대 공헌자였지.
“하긴, 생각해보면 저 서약서가 어디서 났겠어? 제인 그레이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서약이니, 당연히 그녀가 가지고 있었겠지.”
“그러면 이 사건을 해결한 것은 역시, 제인 그레이의 밀고?”
순식간에 여론이 제인에게 호의적으로 돌아가니, 판사도 당황했다.
“으음···”
‘판사도 믿을 수밖에 없겠지. 간수가 저런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
물론 내게 서약서를 준 사람은 제인이 아니라 존 녹스.
그것이 진실이지만, 판사나 간수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서약서에는 존 녹스의 서명이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따라서 제인은 이번 반란 사건에서 공을 세운 인물.
상을 주기는커녕 벌한다니,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판사가 고민하는 이유야, 뻔하지.’
내 눈치를 보는 것이다.
제인이 내게 위협이 되는 인물인 걸 아니까.
좋아, 그렇다면 내가 도움을 좀 줘볼까.
“나 또한 이 사건의 증인으로 한마디 하고 싶은데.”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 쏠렸다.
“조금 전, 간수가 증언한 모든 내용은 사실이라네.”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그래, 내가 제인을 감싸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
“험, 험. 알았습니다. 더 들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내 의사를 확인한 판사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이렇게 해서, 결국 최종적으로 나온 판결은 이러했다.
반란에 참여했던 반역자 대다수는 사형.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이들은 일단 수감.
제인은 죄가 있긴 하지만,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니 형을 삭감.
따라서 런던탑에 구속하는 것이 아닌 가택연금으로 처벌을 낮춘다.
전적으로 내 의견이 반영된 재판 결과였다.
모두 뜻밖의 재판 결과에 얼어붙어 있을 때.
나는 먼저 재판장을 빠져나왔다.
“자, 잠깐만요 여왕 폐하!”
그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나를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토마스 와이어트였다.
이번 사건으로 명실상부한 내 총신이 된 인물이기도 했다.
“여왕 폐하. 이번 재판 결과는 정말···”
말을 망설이던 와이어트가,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제인 양을 살려두신 것까지는 이해합니다. 군주일지언정 사람이니, 아끼는 친척을 살려주고 싶으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가택연금이라니요? 다시 그녀의 추종자가 몰려들면 어쩌려고요? 지나치게 마음 약한 결정입니다. 지금이라도 재고하시지요.”
하! 마음이 약해?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왔다.
“와이어트. 무례하군. 나는 그대가 섬겨야 할 그대의 군주임을 명심하게.”
“···죄송합니다.”
내가 감정적이지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일까.
와이어트도 곧 침착을 되찾고 내게 사죄했다.
“분명히 말해두지. 나는 관대하지도, 마음 약하지도 않아. 그래, 나는 제인을 풀어줬네. 하지만 와이어트. 그렇다고 대체 뭐가 달라진다는 말인가?”
와이어트는 지나치게 재판의 결과에 집중했다.
그래서 재판의 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놓쳐버린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제인은 내게 서약서를 넘긴 인물로 공인되었다.
그래, 자신에게 충성을 바친 사람들의 명단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사형하고, 제인을 풀어줬다.
이제 사람들은 대체 뭐라고 생각할까?
“사람들은 제인이 자유를 얻기 위해 제 신하를 버렸다고 생각할 텐데, 자신에게 충성하던 영주를 배반한 군주가 군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나? 제인은 이미 정치적으로 팔다리가 잘린 것이나 다름없어.”
“···하지만 제인 아가씨를 그냥 죽였다면 더욱 확실하지 않았겠습니까? 잠재적 신교도 반란분자를 확실히 없앨 수 있었을 텐데요.”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막 빙의했을 때의 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윌리엄 남작을 만나기 전의 나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목숨을 지키려면, 단순히 역사 속 위험인물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더 적극적인 수를 써야 한다는 것을.
“제인을 죽여 반란의 싹을 밟는다. 그건 제인이 유일한 신교도 왕족일 때나 가능하지.”
그러나 또 다른 신교도 왕족 엘리자베스가 존재한다.
흠 많은 어머니 때문에 지지받지 못했던, 하지만 누구보다 야심 찬 인물.
“제인이 멀쩡했을 때, 반란 분자들은 제인을 이용하려 했어. 하지만 내가 제인을 죽였다면 그들은 엘리자베스를 지지했겠지. 그러니, 나는 제인을 풀어주었다. 치명적 흠을 만들어서.”
그러면 어떻게 될까?
간단한 정치 논리다.
“반란분자들은 이제 둘로 찢어질 거야. 육손 마녀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를 지지하는 자와 배반자 제인 그레이를 지지하는 자들로. 한 줌밖에 남지 않은 이들이 두 갈래로 갈라져 그들끼리 싸우게 될 테지.”
와이어트가 감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통합이 끝나기 전에, 나는 그들을 내 품으로 끌어안는다.”
그러니까 제인 그레이를 풀어준 것은 이간책이자, 화해의 손짓이었다.
내게 협조하면, 나는 얼마든지 자비롭게 대해줄 수 있다는 손짓.
“어차피 언젠가는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내 백성들 아닌가. 그러니 지금은 관대함을 보이는 게 좋겠지. 그들이 차후 내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
와이어트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나?”
“아니요. 그냥 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여왕 폐하께서···”
와이어트는 주저하다가 이내 덧붙였다.
“···전보다 더 군주 같아지신 듯해서 말입니다.”
“내가?”
내가 언짢아 보이기라도 했는지, 와이어트는 허둥거리며 변명했다.
“아니, 여왕께서 지금까지는 군주답지 않았다든가, 그런 말은 절대 아닙니다! 제 실언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후후, 그래. 알겠으니 그만하게.”
내가 웃어넘기자 와이어트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넘겼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아,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폐하.”
와이어트와 작별한 뒤, 나는 준비된 마차에 타 잠깐 상념에 젖었다.
‘군주다워졌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어젯밤, 나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남작의 사건으로 확실히 알았으니까.
역사 속 위기만 대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예기치 못한 위험들도 피해야 했다.
그러나 무슨 수로?
편집증에 걸린 것처럼 사방을 경계하며 살아야 할까?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봤자 오래 산다는 보장도 없는데?
더군다나 그런 건 내 성격에 맞지도 않는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내가 내린 답은 이러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걸 이용해, 위기가 찾아오지도 못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도전받지 않으면 위험할 일도 없다.
그러니 감히 날 해칠 엄두도 내지 못하게 왕권을 강화한다.
타국에서 침략할 생각도 하지 못하게 국력을 키운다.
압도적인 철혈의 군주가 되어, 자신을 스스로 지킨다.
그게 바로 내가 찾아낸 해답이었다.
혹 그런 결심이 나를 군주답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결코 전처럼 소심하게 굴지 않을 생각이니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실소가 새어 나왔다.
`이 말을 들으면 혈압 올라갈 사람들이 많겠는걸.’
네가 대체 언제 소극적이었냐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뭐, 역사를 아는 것치고 이 정도면 정말 소심했지.
앞으로의 행보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를 예정이었다.
`꼬우면 내게 겁을 주지를 말았어야지.”
그러니 앞으로 내가 무슨 짓을 하던, 전부 그들 탓이다.
나는 준비된 마차에 올라타 마부에게 외쳤다.
“런던탑으로.”
이 반란의 숨은 공로자, 존 녹스의 처우를 결정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