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70)
170_가격 혁명(1)
에스파냐는 현재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
국가 파산까지 선언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
웬만한 나라라면 무너져도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파냐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신대륙에 탐사선을 보냈고,
마침내 포토시 은광 개발에 성공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에스파냐가 할만한 행동은?
“은이 시장에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양의 은은 처음 봅니다.”
답은 뻔하지.
에스파냐는 막대한 은을 시장에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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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방심했어.’
내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포토시 은광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포토시 은광에 호킨스와 드레이크를 보낸 참이었으니, 그들 편으로 먼저 소식이 들릴 거로 생각했건만···.’
그러나 내가 틀렸다.
아무래도 에스파냐는 나보다 한발 빨랐던 모양이었다.
“시장의 빵 가격을 확인해봤어, 페르디난트?”
때마침 돌아온 왕자에게 내가 물었다.
페르디난트는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생각대로입니다. 한 달 전에 비해 5% 가까이 가격이 올랐더군요.”
“휴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 예상보단 훨씬 더 양호했기 때문이었다.
‘에스파냐에서 은화가 물처럼 흐른다는 소문이 돌았던 직후치곤, 은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지 않았어.’
사람들이 지나치게 놀란 것도 참작해야 한다.
곧 저들이 평온을 되찾으면, 어느 정도 회복되겠지.
최종적으론 2~3% 정도의 물가 상승일 것이다.
‘그 정도면, 인플레이션이라고도 하기 힘들지.’
21세기에는 매년 겪는 연례행사였다.
그 정도 물가 상승은 별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러나 모르겠습니다.”
왕자는 무척이나 어두운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돈의 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무척이나 두려워 보였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내 생각을 수정했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 사람들에겐 처음인가?’
금융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다.
은화 1개의 가치는 10년 뒤에도, 100년 뒤에도 언제나 같으리라고 믿던 시대의 사람들.
그런 이들에겐, 이 정도 물가 상승도 큰 충격이겠지.
그렇다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경제학은 사람의 심리 또한 고려해야만 한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패닉이 가져올 사태도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돌아가야겠어.’
내가 입술을 꾹 깨물면서 생각했다.
본국을 지나치게 오래 비워두었다.
한시바삐 돌아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내 서두르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왕자가 말했다.
“은광에 대한 타협은 어쩌실 겁니까?”
아, 그러고 보니 그 문제가 있었지.
“며칠 전까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지금은 아무래도 좋아. 적당히 양보하도록 하지.”
포토시 은광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포토시 은광에 매장된 은의 양은, 지금껏 유럽에서 채굴된 모든 은의 양보다 3배는 더 많은 양.
그러니, 자잘한 은광의 가치는 퇴색된다.
“그 은광 소유권을 두고 실랑이할 시간이 없어. 은광보단, ···그래. 한자 동맹이 제국 내 소유하고 있던 환전상이나 작은 은행 등의 금융 사업을 탈 없이 물려받는데 집중하는 게 좋겠어.”
인플레이션 상황에선 금융업이 중요했다.
제국 내 금융업을 손에 쥔다면 한층 안전해지겠지.
“그들은 당연히 동의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자의 말에 내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과연, 왕자의 말대로.
제국 제후들은 쌍수를 들고 내 제안을 환영했다.
아직 포토시 은광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겠지.
성공적인 회담이 마무리되자, 나는 곧장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어느새 내 새로운 고향이 된 곳, 영국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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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뒤.
나는 물론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와아아, 여왕 폐하 만세!”
“부군, 페르디난트 전하 만세!”
나는 환호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겉으로 둘러봤을 때, 영국은 평화로웠다.
제국을 감싸던 전쟁의 불안한 기운도, 떠나기 직전 보았던 인플레이션도 느껴지지 않았다.
“돌아오신 걸 환영해요.”
궁으로 가자, 엘리자베스가 나를 반겼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나, 엘리자베스는 곧장 섭정 자리에서 물러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간 짐이 무거웠어요. 폐하께서 돌아오셔서 정말 기쁩니다.”
“겸양은. 난 네가 잘해주었으리라고 믿는단다.”
탐색의 눈빛으로 엘리자베스를 살필 때, 주교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돌아오실 때는 두 분이 이리 정답게 오실 줄 알았습니다.”
“주교. 하여간 자네도 참.”
하여간 분위기 깨는 데엔 뭐가 있다.
나는 왕자와 어색하게 시선을 교환하고는, 주교에게 물었다.
“그래, 내가 없는 새 별일은 없었나?”
“물론입니다, 폐하. 영국은 평안합니다.”
주교의 보고에 따르면, 정말 별일이 없었다.
국내의 사정은 안정적이었고, 불만 세력은 없다.
세금도 제대로 걷혔고, 군사적 충돌도 없었다.
‘월싱엄의 보고에 따르면 아무 문제 없던 건 아닌 모양이지만.’
난 주교와 만나기 전, 월싱엄에게 들었던 보고를 떠올렸다.
그가 속삭이길, 내가 없는 사이 귀족들 사이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기는 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소수의 호위만을 데리고 제국에 있는데, 제국에선 곧 내전이 터질듯하니 위기 상황을 대비해 후계자를 선정해야 하지 않겠냐는 움직임이.
‘유감스럽게도 반란 세력이 누구를 후계자로 밀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엘리자베스를 의심하지만, 증거는 없다.
제국의 일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내가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수상한 움직임은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너무 늦게 돌아오지 않아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할 기회를 놓쳐 아쉬웠다.
‘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지금은 그런 정치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영국의 물가를 조사해 가져오거라.”
나는 곧장 조사관을 파견해 확인을 시작했다.
그런데 다행히, 영국의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제국과는 달리, 물가가 크게 상승하지 않았군.”
곧장 밀가루와 빵의 가격이 올랐던 제국과는 다르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도,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영국이 에스파냐보다 멀어서인가?’
아직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도착하지 않았을 가능성.
일리는 있으나, 영국이 최근 상업에 열중하는 걸 생각하면 다른 이유가 더 설득력 있어 보였다.
‘애초에 영국이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덜 받았을 가능성.’
그 요인은 알고 있었다.
“피터 경, 영국의 농업 생산량은 어떠한가?”
몇 달 만에 얼굴을 보게 된 재무장관.
윌리엄 피터가 꼼꼼히 정리된 서류를 내밀었다.
“저희는 애초부터 타국에 비해 식량의 물가가 낮은 편이었지요. 폐하의 치세 중, 두 차례의 큰 변화가 있지 않았습니까.”
윌리엄 피터가 말하는 2가지 변화.
그것은 신대륙 작물과 윤작법의 도입이었다.
‘그 말대로, 우리의 식량 생산력은 나쁘지 않지.’
풍부한 생산량을 자랑하는 고구마와 감자가 있다.
윤작법을 도입해서 휴경지 역시 상당히 줄여놨다.
식량이 귀하지 않으니,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것이다.
“휴우, 그나마 다행이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곧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잘하면 이번 물가 상승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는걸?’
내가 아는 역사 상식을 동원해보자.
에스파냐의 은화로 시작된 물가 상승.
그건 전 유럽을 덮칠 인플레이션의 시작이다.
아메리카에 보낸 탐험대가 포토시 은광을 박살 내지 않는 한, 물가 상승은 지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역사대로라면 최종적으로 2배가 넘는 상승률을 보이겠지.
모든 나라가 이로 인한 패닉에 빠질 것이다.
그런데 이때, 영국이 대처를 잘하기만 하면?
다들 두 걸음을 물러나는 상황이다.
여기선 제자리만 지켜도 한참 치고 올라가는 효과가 나지 않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21세기 사람이지.’
이건 역사학적 지식에서 오는 자신감이 아니다.
온갖 금융위기를 겪어온 21세기 사람의 자신감.
고작 2% 물가 상승에 벌벌 떠는, 이 사태 자체가 낯선 중세 사람들과는 할 수 있는 대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 21세기의 매운맛을 보여주마.’
“곧장 조폐국으로 가지.”
내가 의욕적으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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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폐하.”
의례적인 인사와, 벌벌 떠는 조폐국 직원을 보아넘기며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당분간은 화폐 생산을 줄이도록 해야겠네.”
이번 인플레이션의 이유는 화폐량 상승.
은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려 화폐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국내 화폐량이라도 제한을 둘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환율을 알아볼 수 있겠나?”
“환율, 말입니까?”
직원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영국의 은화는 얼마나 가치 있지?”
내 물음에 직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환율의 중요성 따윈 생각도 못 해본 듯했다.
‘하지만 이건 가장 중요한 문제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닥쳐온다.
그렇다면, 영국의 화폐가치를 지키는 건 중요한 문제였다.
“영국 화폐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그것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직원이 무척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혹시 잘 모르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다만···.”
한참 주저하던 직원은 내가 다그치고서야 울먹이는 눈으로 진실을 고했다.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애당초 국제 거래에서는 잘 받아주지 않지요.”
“아니, 왜?”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물었다.
이게 무슨 신용화폐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은화는 같은 은화 아닌가.
영국 화폐는 받아주지도 않는다니?
“그것이··· 화폐의 순도 문제 탓입니다.”
알고 보니, 같은 은화가 아니었다.
직원은 한참이나 역사를 거슬러 설명을 시작했다.
영국의 화폐가치가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한마디만을 했다.
“그러니까, 다 헨리 8세 탓이다?”
직원은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으나, 부정은 하지 않았다.
“휴우.”
내가 한숨을 쉬었다.
정리해보자면, 직원의 말은 이랬다.
한때 영국의 은화는 다른 국가처럼 90퍼센트 이상의 순도를 가진 은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헨리 8세 때 재정이 악화하자, 그는 은화에 꼼수를 부리는 방법을 생각해냈단다.
은의 무게를 줄이고, 크기도 줄이고, 순도마저 25%로 줄인 은화.
당연히 그 은화를 제값에 쳐주는 국가는 없었다.
타국의 돈에 비해 반절 가치로 취급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아예 거래를 거부하기 일쑤.
영국 은화에는 치욕적인 별명마저 붙었단다.
“구리 코라고 합니다.”
“구리 코? 왜인가?”
직원이 면목 없단 눈으로 말했다.
“오랫동안 쓰인 은화는 돌출된 코 부분의 도금이 벗겨져서, 그 안의 구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가지가지 한다 진짜.
내가 짜증스럽게 명령했다.
“앞으로 영국은 그런 형편 없는 화폐를 발행하지 않을 것이네.”
화폐 신뢰도가 낮아지면 인플레이션에 더욱 취약해진다.
미리 예방해두는 것이 좋겠지.
“화폐 순도는 높여서 새로 디자인하도록 하고, 그간 시장에 돌아다니던 형편없는 은화는 수거하여 다시 제작하는 것이 좋겠군.”
내 통보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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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차근차근 물가 상승에 대응하던 시간.
타 국가의 반응은 영국과 상당히 달랐다.
우선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에스파냐.
에스파냐는, 사실 이 사태를 반쯤 줄기고 있었다.
“설마 은의 가치가 그렇게 떨어질 줄이야.”
“정말 예상외입니다. 아무리 많은 은을 캐왔다고는 하나,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나쁜 것 없는 일이지. 그렇지 않나?”
“정말 그렇습니다.”
펠리페가 기쁘게 웃음을 터뜨렸다.
에스파냐는 막대한 빚에 파묻힌 상황이었다.
숨조차 쉬기 힘든 채무를 어떻게 갚을지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은의 가치가 폭락해 버렸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훨씬 간단해진다.
당장 어깨에 얹어진 짐이 가벼워지는 것이다.
“하하, 은행 놈들 표정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나? 약이 바짝 올랐더군.”
“빌려줄 때는 천금이었던 것이, 돌려받을 때는 가치가 확 떨어졌으니 당연하겠지요. 아주 꼴좋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에스파냐가 희희낙락하던 그때.
에스파냐가 예기치 않게 투척한 오물을 그대로 뒤집어쓴 자들은 따로 있었다.
약이 바짝 오른 은행의 공격 대상이 된 곳.
그곳은 바로, 프랑스였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앙리의 성난 고함이 궁전을 뒤흔들었다.
“내게 돈을 빌려주고, 얼마를 돌려받겠다고?”
분노로 이성을 잃은 왕과 달리, 은행은 무척이나 차분하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한 해 이자는 47%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폭거였다.
적어도 프랑스가 느끼기엔 그랬다.
“은화 100개를 빌리면 고작 한 해 뒤에 150으로 갚으라는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나!”
앙리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신대륙 안정화가 이제 코 앞이다! 조금의 대포, 조금의 병사만 더 보내면 그 막대한 황금의 땅이 우리 것이 된단 말이다!”
정말 이제 조금이면 되었다.
그러나 애가 타는 앙리와 달리, 은행은 뻔뻔했다.
“죄송하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돈의 가치가 폭락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돈을 찍어내는 건 에스파냐였다.
프랑스가 아니란 말이다.
그만한 돈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으으, 에스파냐 놈들.’
앙리가 이를 갈며 생각했다.
프랑스 역시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저만한 이율의 빚을 진다면, 에스파냐처럼 국가 파산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 돈이 급한 상황에, 어떤 방법을 쓸 수 있겠나?
에스파냐가 신대륙 남쪽에서 막대한 은을 긁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그 순간.
앙리의 머릿속에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에스파냐의 막대한 은?”
저 먼바다를 건너 에스파냐로 향할 은화들.
그러나 바다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겠나.
앙리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순간 스쳐 지나간 생각은 무척 매혹적이었으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프랑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잠깐 고민에 잠겼던 앙리는, 이내 결심했다.
“영국에 연락을 취해보도록 하지.”
이 순간.
프랑스는 위험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