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208
상남자 208화
집에 돌아와 씻고 옷을 갈아입은 유현이 출근길에 올랐다.
한성타워 출근과 울산 공장 출근은 다른 점이 많았다.
복장부터 달랐다.
여기서는 정장이 아닌 자유복을 입었다.
반바지에 슬리퍼만 아니면 대부분 허용하는 분위기였다.
유현 역시 그 흐름에 맞춰서 편하게 입었다.
또 다른 건 출퇴근 방법이었다.
울산의 웬만한 곳엔 출퇴근 버스가 다 배치 있었다.
따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이게 굉장히 큰 장점이었다.
집 앞에서 회사 안까지 데려다 주니 이보다 편리할 수 없었다.
그 마음을 담아 유현은 버스 기사에게 기분 좋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좋은 아침입니다.”
“아, 네.감사합니다.”
버스 기사는 살짝 놀란 눈치를 보이다가 이내 화답했다.
자리에 앉은 유현은 창밖을 바라봤다.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왠지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잠시 후.
버스에서 내리니 큼지막한 울산 4공장 건물이 보였다.
울산 4공장은 4층짜리 큰 건물 2개가 이어져 있는 형태였다.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이 사무동으로, 유현이 근무할 곳이었다.
그리고 우측은 모듈동으로, 그곳엔 모듈 공정 라인이 있었다.
웅성웅성.
유현은 길게 늘어진 사람들을 따라 사무동으로 들어갔다.
다들 셔틀 버스를 타서일까?
버스에서 내리는 시간이 비슷해서인지 엘리베이터와 계단에 사람들이 빽빽했다.
건물 안에 들어선 유현은 2층에 올라섰다.
2층의 절반은 제품개발 4팀의 자리였다.
짧은 벽면에는 회의실과 집무실이 있었고, 이어진 긴 벽면에는 소속 팀들이 위치했다.
유현이 짧은 벽면과 이어진 좁은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담당 집무실 문틈으로 거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야.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고준호 상무가 화를 냈다.
살짝 엿보니 그 안에는 4담당 소속 파트리더 이상의 인원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출근 시간 30분 전부터 이곳에 와서 혼나고 있었다.
비단 오늘만 이러는 게 아니라 이게 일상이었다.
밑 사람들을 들들 볶아야 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고준호 상무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유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발걸음을 이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인사했다.
4담당 비서 주윤하였다.
“안녕하세요.한유현 씨 맞죠?”
“네, 윤하 씨.안녕하세요.”
“어라? 한 번에 알아보시네요?”
그녀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작고 아담한 데다 눈이 워낙 커서인지 귀여워 보였다.
파견 준비 과정에서 그녀에게 신세 진 게 많은 터라, 유현이 살갑게 말했다.
“도움 많이 받았는데 당연히 알아야죠.”
“호호.도움이라뇨.빈말이라도 감사하네요.”
“진심입니다.”
유현의 넉살 좋은 말에 주윤하가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더니 뭔가 떠올랐는지 또 눈을 크게 떴다.
“혹시 더 필요하신 거…… 아.담당 면담 시간.”
“괜찮아요.다른 날로 잡아 주셔도 돼요.”
“아뇨, 아뇨.요청하신 대로 오늘로 잡았어요.제가 메일 드린다는 걸 깜빡해서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나요.”
유현은 주윤하가 무척 고마웠다.
과거 그녀와는 큰 접점도 없었고, 이전엔 얼굴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녀는 너무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 줬고, 또 도와줬다.
덕분에 파견 오기 전 준비사항들을 빨리 처리할 수 있었다.
그 마음이 절로 표현됐다.
“지난번에 담당 일정표랑 업무 리스트도 보내 주셨잖아요.너무 감사해요.”
“아이 참, 그게 제 일이에요.얼마든지 부탁하세요.”
“네.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유현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져서일까?
주위를 힐끔 살핀 그녀가 유현에게 귀띔했다.
“그쪽 팀에서 유현 씨 오는 거 전혀 신경 안 쓰더라고요.명패도 제가 직접 가져다 놨어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별거 아니에요.아무튼 조심하세요.일부러 따 시키는 거 같으니까.”
충분히 예상했던 일인지라 유현은 거리낌 없이 답했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혹시라도 도움 필요하면 연락하고요.”
“그럼요.자주 봬요.”
“네.들어가세요.”
유현은 밝게 인사한 후 기분 좋은 걸음을 이어 나갔다.
팀에 도착한 유현은 대번에 이상기류를 확인했다.
주윤하가 말한 대로였다.
팀원들은 분명 유현이 온 걸 확인했음에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티가 팍팍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현은 먼저 온 팀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움직였다.
옆자리 김선동 주임 연구원(대리 직급과 동급)은 일찍부터 와 있었다.
뚱뚱한 체형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낀 그는 몸을 움츠린 자세가 특징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선동 주임님.오늘부로 선행제품팀에 파견 온 한유현입니다.”
“네?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유현이 반갑게 인사했지만, 그는 오히려 몸을 움츠렸다.
일부러 시선을 피하려는 기색이 명백했다.
대충 이유를 알 것 같아 유현은 뒷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곤 자리에 들어오는 맹기용 선임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맹기용 선임님.한유현입니다.”
“호오, 나를 알아?”
맹기용 선임은 특유의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엔지니어치곤 제법 깔끔한 차림에, 눈웃음이 인상적인 그에게 유현이 말했다.
“네.지난번 회의에서 몇 번 뵀습니다.그때, 설명하셨던 게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 어떤 부분이지?”
“IC 설계 일정을 제안해 주신 부분 있지 않습니까…….”
유현의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질수록 맹기용 선임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때였다.
파티션 너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거 유현과 마찰이 있었던 윤기춘 선임의 목소리였다.
“야.맹기용.”
“네, 네, 선임님.갑니다.”
맹기용 선임은 바로 답한 후, 유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유현은 고개를 돌려 맹기용 선임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는 윤기춘 선임에게 불려가 혼나고 있었다.
“너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이래 봐.”
“주의하겠습니다.”
“진짜 두고 보겠어.”
쯧쯧.티 좀 안 나게 하지.
유현은 윤기춘 선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유현의 따돌림을 주도하는 건 명백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수준 낮았다.
저래선 언젠가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충분히 예상했던 상황이라 유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던 대로 계속 인사할 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민수진 선임님.오늘부로 파견 온 한유현입니다.”
“네, 반가워요.”
“잘 부탁드립니다.”
유현은 활짝 웃었지만, 그리 밝은 시선이 돌아오지 않았다.
민수진 선임은 상투적인 목소리를 뱉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진목 주임님…….”
“아, 네.”
인사를 받는 대부분이 이렇게 유현과 거리를 두었다.
질시 어린 시선이나 무시하는 눈빛은 덤이었다.
그럼에도 유현은 계속해서 인사했다.
단지 인사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 주위의 시선, 책상에 놓인 물건을 모두 눈에 담았다.
동시에 과거의 기억과, 회의 때 발언들을 겹쳐서 비교했다.
그럴수록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지금 팀 사람들은 유현을 어떻게 생각할까?
담당 앞에서 버릇없이 지껄이던 건방진 사원?
소문대로 싸가지 없고 버릇없는 자식?
여기서 유현은 적극적으로 인사하며 한 가지 이미지를 더 추가했다.
뻔뻔한 놈.
사실 누군가 팀에 오면, 팀 총무나 파트 선배가 소개시켜 주는 게 관행이었다.
이처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야 했다.
하지만 유현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인사했고, 이름을 불렀다.
상대가 호의적이지 않아도 거리낌 없이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그려졌다.
‘쟤 원래 저렇게 뻔뻔한 놈인가?’
이는 유현이 철저히 의도한 바였다.
은연중에 이러한 심리를 그들에게 깔아 놓았다.
이는 곧 선보일 유현의 돌출 행동에 범퍼 역할을 할 터였다.
인사를 마친 유현이 사건의 주동자인 윤기춘 선임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빙긋 웃으며 친한 척을 했다.
“윤기춘 선임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고 싶지 않은데.”
“저도요.그래도 매일 봐야 할 거 같습니다.”
“…….”
유현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윤기춘 선임은 잠시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가 이를 악문 채 으르렁거렸다.
“야, 내가 경고했지?”
“어떤 경고요?”
“너, 파견 생활 결코 편치 못할 거다.기대해.”
“네, 기대하겠습니다.”
그가 밀어낼수록 유현은 오히려 고개를 들이밀었다.
물론 목소리를 낮춰 주변에 흘러들지 않게 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그럴까?
윤기춘 선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넌 내가 우습냐?”
“설마요.반가워서 그렇죠.”
“이…….”
그가 바짝 독이 올랐을 때였다.
유현은 비밀 이야기를 하듯 귓속말을 했다.
“선임님, 저 오늘 담당님 면담 있습니다.”
“뭐, 뭐라고?”
“그냥 그렇다고요.”
“…….”
뭘 쫄고 그러시나?
설마 이를까 봐?
유현은 빠르게 눈알을 굴리는 그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단춧구멍 같은 눈이 일그러지는 게 퍽 우스웠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
“이 자식이 진짜…….”
유현은 윤기춘 선임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그가 등 뒤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또 어떤 마음일지 뻔히 보였다.
‘조금 만 더 힘내 주세요.’
윤기춘 선임이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그가 더 날뛰어야 앞으로 유현의 행동에 추진력이 생길 수 있다.
유현이 그를 골리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이유였다.
잠시 후, 팀장과 2명의 파트리더가 돌아왔다.
담당 집무실에서 실컷 깨지고 난 후라서 그런지 표정이 그리 밝진 않았다.
분위기를 살핀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먼저 1파트리더 정인욱 책임에게 다가갔다.
눈 아래 다크서클과 깊게 팬 팔자 주름을 가진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정인욱 책임님.이번에 파견 온 한유현입니다.”
“아, 유현 씨, 우리 파트지?”
“네, 맞습니다.”
“잘 부탁해.”
“네.감사합니다.”
정인욱 책임은 상투적인 인사를 하곤 고개를 돌렸다.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눈치였다.
그저 컴퓨터로 인터넷 뉴스를 보는 데 열중할 뿐이었다.
유현은 꾸벅 인사를 한 후 발걸음을 물렸다.
정인욱 책임에 이어 간 곳은 2파트리더 홍혁수 책임이었다.
그는 옅은 눈썹과 제법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게 특징이었다.
지난번 회의에서도 유현을 탐탁지 않아 하는 티를 팍 냈다.
그런 그가 가면을 쓴 채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홍혁수 책임님.한유현입니다.”
“허허.잘해 보자고.”
“네.잘 부탁드립니다.”
“아, 팀장에게 인사해야지.”
그가 고개를 스윽 하고 돌리자, 주변 사람들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좀 전에 팀장이 들어왔을 때보다 더 눈치를 보는 듯했다.
유현이 적당히 말했다.
“제가 직접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래.그러자고.”
“감사합니다.”
유현은 끝까지 정중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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