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251
상남자 251화
회로 3팀이 업무를 해야 하는 것도 맞고, 압박을 받는 것도 사실이었다.
선행제품팀이 충분히 리드할 수 있는 상황이란 의미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쉽게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다.
이건 이론이 아닌 실전인 까닭이다.
사람이 엮인 일을 논리만으로 접근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 어려움을 방증하듯 이진목 주임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으아! 어떻게 선임님한테 PCB 시뮬레이션을 맡기냐고.”
“나중에 애플 인증을 받으려면 경험자의 도움이 필요해요.”
“유현아, 이거 진짜 어려워.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맹기용 선임은 얼굴이 아예 사색이 됐다.
“조 책임님한테 도저히 IC 미팅 같이 가자고 못하겠다.”
“그냥 말만 하면 되잖아요.업무 리스트에도 올라가 있어서 조 책임님도 아실 거예요.”
“유현아, 이건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냐.”
가장 활달한 두 사람이 이런 지경인데, 다른 사람들은 볼 것도 없었다.
김선동 주임은 혼자 뚝딱뚝딱 일 처리를 잘했지만, 그건 그만의 방식이었다.
그도 애플의 업무 스타일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
민수진 선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회로 3팀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 했다.
유현은 일단 지켜봤지만, 개선될 여지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어쩐다?
자리에 돌아온 유현이 고민에 빠졌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풀릴 문제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유현은 그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직급에서 밀렸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만,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선행제품팀 1파트 사람들은 스스로를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걸 깨기 위한 확실한 계기가 필요했다.
유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진목 주임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어? 축구 대진 떴다.”
“어디, 어디.”
“여기 봐요.”
동시에 파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유현도 무리에 껴 이진목 주임이 가리킨 모니터 화면을 바라봤다.
사내 게시판에 모바일 그룹 축구대회 대진표가 공지로 올라와 있었다.
달칵.
이진목 주임이 긴장된 표정으로 마우스를 클릭하자 화면에 대진표가 떴다.
참가하는 총 16개 팀이 화면 하단부에 주르르 나열되어 있었다.
토너먼트 대진이다 보니 붙어 있는 팀이 상대였다.
3담당 회로 3팀 VS 4담당 선행제품팀
“우왁! 회로 3팀?”
대진표를 확인한 이진목 주임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파티션 너머에 있던 회로 3팀 인원들이 고개를 쭉 들었다.
그들 눈빛만 봐도 위축되는지 사람들이 침묵했다.
“…….”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유현이 속삭였다.
“회로 3팀 잘해요?”
“엄청!”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같은 답이 들려왔다.
유현이 씩 웃었다.
이제 변화의 시간이 다가왔단 직감이 든 탓이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공원 산책로를 달리던 유현이 옆에 있는 정현우에게 말했다.
“하, 좀 쉴까?”
“네, 형.하아, 하아.”
땀범벅이던 정현우가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털썩.
벤치에 앉은 유현이 정현우에게 물을 건넸다.
“자, 마셔.”
“허억, 허억! 고마워요.”
벌컥 물을 들이켠 정현우가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그러곤 유현에게 허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은 체력이 왜 이렇게 좋아요?”
“너도 엄청 좋아졌어.”
“저야 형 따라잡으려고 진짜 죽으라고 뛰는 거고요.”
“나도 지지 않으려고 뛰는 거지.”
“말도 안 돼요.”
유현이 웃자 정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도 체력에 꽤나 자신 있었는데, 막상 유현과 달려 보니 엄청난 격차가 느껴진 까닭이다.
그런 정현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유현이 말했다.
“한 번에 되는 건 없어.꾸준히 하다 보면 언제 이렇게 늘었나 싶을 때가 올 거야.”
“네.형 말은 무조건 믿습니다.”
“자식.”
유현이 정현우의 머리칼을 헝클였다.
그때 정현우가 문득 생각난 듯 박수를 짝 치며 물었다.
“아, 형, 축구 첫 게임, 회로 3팀이랑 붙죠?”
“맞아.”
“형도 나가요?”
“사람이 없어서 나가야지.”
“와! 진짜요?”
“어.안 그래도 회로 3팀이 강적이라 걱정이야.”
반색하는 정현우에게 유현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딱 봐도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인데, 승산이 낮아 보여서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이 황당했다.
“에이, 그래도 형이 있는데 지겠어요?”
“너, 나 축구하는 거 봤냐?”
“달리는 거 딱 보면 알죠.”
“그거랑 같아?”
“형 못한다고 생각할 사람 아무도 없을걸요?”
정현우의 얼굴엔 확신이 가득했다.
비단 정현우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워낙 강한 모습을 많이 보여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현이 남모르게 한숨을 쉬는 이유였다.
회사에서 일만 잘하면 되지, 축구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울산 공장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번 회로 3팀과의 승부는 무게감이 남달랐다.
담당 아침 회의를 다녀온 팀장이 팀원을 전원 소집했다.
중회의실 안에 김호걸 수석의 진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축구 시합, 어떤 수를 써서든 이겨야 해.”
“네?”
사람들이 황당한 표정을 짓자, 김호걸 수석이 결의에 찬 말을 뱉었다.
“담당님 특별 지시야.지면 정말 가만히 안 두시겠단다.”
“헐…….”
“담당님은 회로 3팀에 원수라도 졌대요?”
이진목 주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묻자, 정인욱 책임이 대신 답했다.
“지난번 회의 때 담당님 봤잖아.그 정도면 3담당이랑 전쟁하겠단 소리지.”
“아무리 그래도…….”
“그래도가 아니야.진짜 이번에 지면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는 수가 있어.”
“…….”
정인욱 책임이 확인 사살 하자, 회의실 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유현도 마냥 마음 편히 있을 순 없었다.
이렇게 두 담당 사이가 살벌해진 데는 유현의 지분도 꽤 있는 탓이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승리였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 소곤대는 소리만 들어 봐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떻게 3팀을 이겨.거긴 선수 출신도 있다며.”
“게다가 우승 후보라잖아.”
“우리는 사람이 없어서 팀장도 뛰어야 할 판인데, 이게 말이 돼?”
“하! 진짜 미치겠네.”
그렇게 잠시 웅성대는 분위기가 이어질 때였다.
갑자기 옆에 있던 맹기용 선임이 엉뚱한 말을 뱉었다.
“저희에겐 유현이가 있잖아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유현이 황당한 듯 묻자, 정인욱 책임이 가볍게 무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유현이라면 또 모르지.”
느닷없이 이진목 책임도 동참했다.
“맞네.유현이를 최전방으로 보내면 몇 골은 넣겠다.”
“저 축구 잘 못한다니까요.”
유현이 손사래를 쳤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심지어 민수진 선임과 김선동 주임도 끼어들었다.
“유현 씨, 너무 큰 겸손은 독이야.”
“제, 제 생각에도 유현이에게 공을 몰아줘야 할 거 같아요.”
“…….”
너무 어이없는 상황이라 유현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들이 다들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유현의 소문이 워낙 과장되게 퍼진 이유가 컸다.
하지만 축구는 정말 별개였다.
그런 유현의 고민을 조금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맹기용 선임이 말했다.
“그럼 제가 유현이 중심으로 작전을 짜 볼게요.”
정인욱 책임이 고개를 끄덕였고, 팀장도 동의했다.
“그래.업무 때문에 연습할 시간도 없잖아.그렇게라도 하자.”
“그렇게 한번 해 봅시다.”
“팀장님까지…….”
유현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분위기가 오른 듯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습니다.메시가 있는데 질 리가 없죠.”
“3팀도 유현이 소문 듣고 쫀 거 같더라고요.”
“그래.유현이가 붙으면 이길 수 있을 거야.”
갑자기 모두 힘을 내기 시작했다.
축 처져 있는 모습보단 확실히 보기 좋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유현의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에휴.”
그날 정시에 퇴근한 유현은 하준석을 만났다.
그런데 장소가 특이했다.
집이나 호프집이 아닌, 집 근처 야외 풋살장이었다.
바닥에 앉아 유현의 이야기를 듣던 하준석이 배를 잡고 웃었다.
“뭐? 너보고 메시? 푸하하하하!”
“야, 웃지 마.나 지금 심각하다니까.”
“알아, 알아.그러니까 축구라면 질색하던 네가 지금 축구화를 신고 있지.”
“그러게 말이다.”
유현은 박승우 대리가 사 준 축구화를 보며 답했다.
그런 유현의 등을 토닥인 하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걱정 마.이 형님이 제대로 전수해 줄게.”
“자식, 허세는.”
“허세는 무슨.한때 내가 우리 학교에서 마라도나라 불린 인물이야.”
하준석이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하자, 유현이 정확히 정정해 줬다.
“그건 손을 써서 그렇고.”
“야! 그건 아니지.”
“됐고, 얼른 시작하기나 해.”
유현은 발끈하는 하준석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잠시 후, 비어 있는 풋살장 안에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다.
꽤 움직였는지 둘 다 땀을 흘리고 있었다.
유현이 눈빛을 번뜩이며 하준석에게 말했다.
“다시 줘 봐.”
“오케이.”
뻥.
하준석이 찬 공이 낮게 깔린 채 빠르게 날아왔다.
유현이 발을 대자 공이 멀찍이 튕겨 나갔다.
동시에 하준석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냥 공을 받아.엉뚱한 데 차지 말고.”
뛰어가서 공을 가져온 유현이 하준석에게 패스하며 말했다.
“알았어.다시 차.”
“간다.”
하준석이 공을 차자 이번에도 똑같은 높이로 공이 날아왔다.
다만, 유현과 제법 거리가 있는 게 문제였다.
유현은 빠른 속도로 달려가 공을 받았다.
틱.
발을 가져다 대기만 했지만, 이번에도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준석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발이 왜 그 모양이냐?”
“그러게.왜 이러게 튕겨 나가지?”
“다시 해 보자.”
몇 차례 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유현은 재빨리 결론을 내렸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축구공 다루는 데 재능이 없었다.
하준석이 다가와 말했다.
“이거 심각한데.”
“그 정도냐?”
“어.이렇게 공을 못 받으면, 공격을 어떻게 해.”
하준석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이렇게 일대일 상황에서 패스를 잘 받지 못하면, 공격에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축구를 별로 해 본 적 없는 유현이지만 그 정도는 알았다.
“그래도 공은 잘 차지 않냐?”
“공이 뜨면 뭐 해.정확도가 떨어지는데.”
“공도 못 받고, 잘 차지도 못하고.”
“그래.그게 딱 네 상황이다.그래선 네가 아무리 빨라도 절대 골을 못 넣어.”
하준석은 이미 가능성을 접은 듯 고개를 저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유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번뜩 떠올랐다.
유현이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졌다.
“축구가 꼭 골을 넣어야 하는 거냐?”
“그래야 이기지.”
“골 안 먹어도 되는 거잖아.”
“뭐?”
“됐어.집에 가서 맥주나 한잔하자.”
황당한 표정을 짓는 하준석을 두고 돌아선 유현은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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