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264
상남자 264화
유현은 신규 IC와 고성철 선임에게 인계받은 패널을 받아 들었다.
그러곤 두 박스를 맹기용 선임의 차에 실었다.
맹기용 선임이 어두운 표정으로 차를 몰았다.
옆에 탄 유현이 특유의 긍정적인 말을 던졌다.
“잘될 겁니다.”
“유현아, 넌 지금 뭐 하러 가는지 알지?”
“패널에 IC를 붙이러 가는 거 아닌가요?”
“맞아.근데 이건 그냥 모듈 작업과 달라.패널 유리면 위에 IC를 바로 붙이는 거라고.”
“해상도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거라면서요.그게 왜요?”
“에휴…… 아니다.말해 뭐하겠냐.”
유현의 답에 맹기용 선임이 포기했단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현은 웃었다.
“걱정 마세요.잘될 거니까요.”
“안 되면 진짜 끝장이야.”
“이럴 때는 이 주임님을 생각하세요.”
불안해하는 맹기용 선임에게 유현이 아주 적절한 대안을 내놓았다.
맹기용 선임이 놀라 물었다.
“진목이? 왜?”
“아마 IC 부착 작업이 잘돼서 돌아오면 가장 걱정할 사람이 이 주임님이잖아요.”
유현의 말에 눈을 껌뻑인 맹기용 선임이 그럴듯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그래.빨리 잘됐으면 좋겠다.진목이 놀리게.”
“네.동참하겠습니다.”
“푸하하하.”
유현이 능청스럽게 동의하자 맹기용 선임이 크게 웃었다.
그제야 바짝 굳었던 그의 어깨가 조금 풀어졌다.
두 사람이 간 곳은 울산 1공장 옆에 위치한 IC 부착 업체 디앤디였다.
회사에도 IC 부착 라인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번 IC의 경우, 규격 외 사이즈라 대응이 안 됐다.
약속된 장소에 들어서자 직원이 나와 유현과 맹기용 선임을 반겼다.
“아이고, 연구원님들, 안녕하십니까.디앤디 이재원 선임입니다.”
“네.안녕하십니까.맹기용 선임입니다.”
“안녕하세요.한유현입니다.”
유현의 인사가 끝나자, 맹기용 선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재원 선임에게 말했다.
“이 선임님, IC 부착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걱정 마세요.여기 한유현 연구원님이 워낙 꼼꼼하게 자료를 보내 줘서 준비는 확실합니다.”
이재원 선임의 말에 맹기용 선임이 눈을 껌뻑였다.
“어떤 자료를…….”
“IC, 패널 도면을 한 번에 정리해서 보내 주더라고요.얼라인 키 부분과 주의사항도 넣어서요.”
“아…….”
여전히 맹기용 선임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이재원 선임이 유현을 한 번 더 띄웠다.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해 주면 하는 사람 입장에선 편하죠.연구원님, 감사합니다.”
사실 그 정도로 칭찬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이재원 선임이 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유현이 민망한 듯 공을 옆으로 돌렸다.
“제가 뭘요.전 그냥 맹 선임님 자료 다시 보낸 거밖에 없는데요.”
“하하.세부 일정까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 주셨잖아요.덕분에 바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재원 선임의 말을 들은 맹기용 선임이 유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툭.
그러곤 정신을 차린 듯 또렷한 눈빛으로 말했다.
“수고했다.”
“잘돼야 말이죠.”
“네가 그렇게까지 해 줬는데 잘되겠지.”
유현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팔에서 힘이 느껴졌다.
그의 표정에 어느새 결기가 서려 있었다.
IC 부착 작업은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끝났다.
이재원 선임이 현미경으로 찍은 사진을 다수 보여 줬다.
“테스트를 해 봐야 알겠지만, 불량은 없는 거 같습니다.보시면 이물 튄 것도 없고요.”
“네.정말 그러네요.”
맹기용 선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자신이 봐도 IC의 세부 핀과 패널 내 수백 개의 라인이 정교하게 맞닿아 있던 탓이다.
맹기용 선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재원 선임이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패널 테스트도 됐다면서요? IC도 단품 검사가 된 걸 테니 문제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하하.제 경험상 이 정도면 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확실히 이재원 선임이 고객 접대를 할 줄 알았다.
그의 가벼운 말과는 별개로 유현이 봐도 작업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 말인즉, 이제 바통이 넘어갔단 의미였다.
박스를 직접 받아 든 맹기용 선임이 이죽거렸다.
“자, 이제 진짜 김 주임 차례네.”
“제가 전화할까요?”
“아니.내가 전화해야지.”
“그럼 제가 들겠습니다.”
보기 좋은 구경인 터라 유현은 잽싸게 박스를 받아 들었다.
휴대폰을 든 맹기용 선임의 입가에 진한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잠시 후.
유현은 이진목 주임과 함께 모듈 공장에 들어섰다.
접이식 카트에는 IC까지 부탁된 패널이 담긴 박스가 올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신규로 제작한 FPCB가 담긴 작은 박스가 있었다.
이 둘을 연결하는 작업이 모듈 작업이었다.
그리고 카트 위에는 베일에 싸인 박스 하나가 더 있었다.
이진목 주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현아, 모듈 애들한테 진짜 이거 주려고?”
“네.그간 고마운 게 많아서요.”
“거기 뇌물은 안 통해.”
“뇌물 아니에요.”
유현이 웃으며 답하자 이진목 주임이 한숨을 쉬었다.
“에휴.그래.내가 할 말은 아니지.”
“왜요?”
“그냥, 너 바쁜데 데리고 와서 미안해서 그러지.”
“제가 바쁠 게 뭐 있습니까.”
유현은 바쁠 게 없었다.
매일 야근하고 고생한 건 팀원들이지, 유현이 아니었다.
이제는 다들 일도 알아서 하는 터라 유현이 손댈 것도 없었다.
오히려 상품기획팀에 있을 때보다 더 편했다.
그럼에도 이진목 주임은 유현을 걱정했다.
“그래도 좀 전에 IC도 부착하고 왔잖아.”
“덕분에 맹 선임님께 밥도 얻어먹었어요.이제 이 주임님 차례죠.”
“잘되면 밥이 뭐냐, 술도 산다.”
“잘될 겁니다.”
유현은 미소 지으며 모듈 라인으로 들어갔다.
유현이 모듈 작업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남색 카라 티셔츠를 입은 모듈 라인 여직원들이 다가와 유현을 반겼다.
“어머, 유현 씨, 안녕하세요.”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안녕하세요.오랜만에 모듈이 나와서요.”
유현이 반갑게 인사하자, 여직원 중 1명이 나와 카트 위의 박스를 직접 들려 했다.
“호호호.그래요.주세요.”
“아뇨.제가 옮길게요.”
“어머, 안 그러셔도 되는데.호호.”
유현은 여직원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패널과 FPCB가 담긴 박스를 옮겼다.
그 생소한 모습에 이진목 주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박스를 전하고 돌아온 유현에게 이진목 주임이 말했다.
“뭐냐? 너 지금껏 이런 대접 받으며 모듈 작업 한 거야?”
“어떤 대접이요?”
“아, 아냐.근데 저건 언제 줘?”
“나중에요.”
유현이 눈을 찡긋하자, 이진목 주임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모듈 라인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작업 인원 중 맏언니인 조유정의 목소리였다.
“자, 중요한 패널 왔으니까 확실히 작업하자.알았지?”
“네.언니.”
함께하는 여직원들이 크게 대답했고, 정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와…….”
이진목 주임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었다.
이건 까다롭기만 하던 모듈 작업이 절대 아니었다.
그는 왜 유현이 모듈 작업만 하러 가면 웃으며 돌아오는지 이제야 알았다.
모듈 작업은 예상 시간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모두 열정적으로 작업을 도와준 덕분이었다.
조유정이 박스를 인계하며 말했다.
“자, 다 됐습니다.”
“너무 감사해요.”
유현이 감사 인사를 전하자, 조유정이 우는 소리를 냈다.
“감사하긴요.근데 이번 게 조금 빡세긴 하네요.”
그만큼 힘든 작업이라는 걸 유현도 잘 알고 있었다.
애써 준 직원들이 고마워 유현은 베일에 싸인 박스를 풀어헤쳤다.
거기엔 비타민 음료 두 박스가 들어 있었다.
작업자들이 먹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안 그래도 그래서 이걸 준비했습니다.”
“어머, 감사해요.”
조유정은 깜짝 놀랐고, 다른 여직원들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짜 유현 씨는 센스쟁이라니까.”
“호호호호.”
일하기 전에 선물을 주면 부담이지만, 끝나고 주면 진심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여직원들이 무척 보람된 웃음을 보였다.
유현이 다시금 인사했다.
“매번 너무 감사해요.”
“아니에요.이렇게 챙겨 주시니까 더 고맙네요.언제든 말씀해 주세요.유현 씨 건 1번으로 끝낼 테니까.”
조유정이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그 마음이 고마워 유현은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네.감사합니다.”
작업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이진목 주임이 또다시 감탄했다.
“유현이 너, 대단하다.”
“뭘요.그냥 음료수일 뿐인데요.”
“아냐.너 하는 거 보고 많이 배운다.그냥 잘생겨서 잘해 주는 게 아니었구나.”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대단해.정말 대단해, 한유현.”
짝짝짝짝.
이진목 주임이 낯간지럽게 박수를 쳤다.
사람 다 지나가는 길에서 치는 박수는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카트를 끄는 유현이 속도를 점점 더 높였다.
검토실 안엔 팀 전원이 모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회로 3팀 인원들도 있었다.
유현이 들어선 순간, 정인욱 책임이 입을 뻥긋하며 물었다.
‘잘됐어?’
대체 왜 저런대?
유현이 코웃음 치며 크게 말했다.
“모듈 작업 아주 잘됐습니다.”
“오오오, 대박.”
정인욱 책임이 주먹을 쥐었고, 김호걸 수석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화면만 켜면 되겠네.”
“…….”
모두의 기대 속에 우울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2명 있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민수진 선임과 김선동 주임이었다.
김호걸 수석이 보채듯 말했다.
“자, 해 보자고.”
“잠시만요.조용히 좀 해 주세요.”
팀장이 말하든 말든 민수진 선임은 차가웠다.
그걸 가지고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그녀의 예민한 성격을 알고 있는 탓이다.
민수진 선임은 숨을 한 번 고른 후, 유현이 건넨 모듈을 받아 들었다.
“유현 씨, 땡큐.”
“잘될 겁니다.”
“쉿.그 소리는 말고.”
민수진 선임이 입에 검지를 대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민수진 선임이 모듈 FPCB 부분을 영상보드 커넥터에 연결했다.
영상보드의 사이즈는 지난번 데모에 비하면 현격히 작았다.
패널 사이즈보다 약간 큰 정도였다.
이를 위해 영상 처리 칩이 신규로 쓰였고, 그 안의 프로그래밍도 다 바뀌었다.
달칵.
영상보드에 모듈을 연결하자, 맹기용 선임이 어느새 유현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한 번에 되지 않을 거야.”
“그래요?”
“어.보통 이런 모듈 켜는 데 일주일은 걸려.”
“그렇군요.”
유현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신규로 프로그래밍한 데다 검증 패널도 없었다.
게다가 신규 IC에 초고속 통신 프로토콜도 신규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민수진 선임과 김선동 주임이 많이 고생했지만, 쉽지 않단 걸 유현도 잘 알고 있었다.
“켜겠습니다.”
꿀꺽.
민수진 선임의 말에 사람들이 침을 삼켰다.
영상보드와 연결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던 김선동 주임은, 긴장되는지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이 부분은 유현도 어떻게 도울 방도가 없었다.
그때 민수진 선임이 전원 어댑터 스위치를 켰다.
틱.
그 순간이었다.
패널이 한 번 껌뻑이더니 선명하게 윈도우 배경 화면 로고가 떠올랐다.
색은 반전됐지만, 확실히 구름과 하늘, 그리고 마크 일부가 보였다.
“휴…….”
“와.”
민수진 선임은 안도의 한숨을, 다른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쑥덕였다.
“대박.이게 한 번에 되네.”
“그러게.한 번에 제대로 불 켜는 건 처음 본다.”
“진짜 대단한데?”
그간 1파트가 고생하는 모습을 많이 봐 온 2파트 사람들도 혀를 내둘렀다.
뒤에서 지켜보던 3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잠깐만.담당님 모셔 올게.”
김호걸 수석은 신나서 뛰어갔다.
휴대폰을 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