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273
상남자 273화
유현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총기 분해 조립을 실습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탁.탁.탁.탁.
다들 설렁설렁, 하지는 않고 도장만 찍는데 현진건은 FM대로 분리 후 조립했다.
오죽하면 조교가 말릴 정도였다.
“선배님, 너무 열심히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해야죠.”
그는 병사들에게 존칭을 쓰며 열심히 했다.
그렇다고 잘하는 건 아니었다.
이론은 빠삭한 거 같은데 손은 굼떴다.
“총열 각도를 14도 정도 더 틀어서 꽂으면…….”
옆에서 이미 끝낸 유현이 끙끙대고 있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부분을 넣고 돌려야죠.”
“아, 맞네요.감사합니다.”
현진건은 머쓱한 듯 유현에게 인사했다.
별것 아닌 인사에 유현은 기분이 이상했다.
계속 과거의 그가 눈에 밟힌 탓이다.
도시락을 받아 점심식사를 하던 현진건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지금 일성에서…….”
“일성에서 근무하고 계시군요.혹시 통신 부품 쪽 엔지니어인가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요.아까 군대 주특기가 통신이라고 하시길래.”
유현이 넘겨짚자 현진건이 웃었다.
그는 이런 엉뚱한 곳에 웃음 포인트가 있었다.
“하하하.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은근히 상관관계가 있어요.아까 부대에서 또라이 선임 때문에 고생하셨다고 했죠?”
“네.”
“지금 회사에서도 그럴걸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제가 모나서 그런가 봐요.”
유현은 현진건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그의 인터뷰를 본 적도 없었다.
그만큼 현진건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이 인터뷰로 그에 대해 말했다.
그는 존경받을 만한 리더였다.
그래서 유현은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아뇨.재수 없게 얽힌 거죠.”
“그런 걸까요?”
“제가 확신합니다.저, 감이 좋거든요.”
“하하하하.”
유현이 넉살 좋게 말하자 현진건이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산에 있는 개별 훈련장을 돌았다.
총 16개의 코스로 이루어진 그곳에서 각개전투, 구급법, 화생방 등의 이론 교육을 들어야 했다.
모두 도장을 찍어야 통과할 수 있는 터라, 사람들은 군말 없이 따랐다.
군 간부들이 교관으로 있는 곳은 유난히 조용했다.
문제는 병사인 조교들이 직접 교육하는 곳이었다.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본 조교는…….”
“어이, 그냥 좀 하자.”
거기선 어김없이 예비군들의 갑질이 나왔다.
예비군 특유의 허세도 함께였다.
그럴 때마다 현진건이 움찔움찔했다.
옆에 있던 유현이 물었다.
“가서 한 소리 할까요?”
“아뇨.다 그런 건데요, 뭘.”
현진건은 고개를 저었지만,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유현은 그런 현진건을 눈에 담았다.
다음 코스는 조금 더 높게 올라가야 했다.
도착한 곳은 조교들이 교육하는 구급법 훈련장이었다.
“10분간 쉬겠습니다.쉬는 시간에도 복장은 꼭 갖춰 주시길 바랍니다.”
“지랄하네.”
조교의 말에 예비군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바닥에 소총들과 방탄 헬멧이 굴렀다.
그 와중에도 현진건은 조교의 말을 따랐다.
늘 한결같은 모습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자리 잡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유현이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였다.
웅성웅성.
쉬는 시간임에도 훈련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크윽.”
바닥엔 조교가 배를 잡고 구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유현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웅성거리는 사람 사이에 두 남자가 대치하고 있었다.
“켁, 켁.”
“이 새끼야, 네가 뭔데 끼어들어.”
유현은 몰려 있는 사람들을 비집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멱살을 잡고 있는 웃통 깐 남자가 보였다.
어설픈 문신이 있고, 얼굴에는 칼자국이 있는 양아치였다.
곧이어 캑캑대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조교를 때리면 안 되는 거죠.”
“시펄.이게 어디서 훈계질이야.뒤질라고.”
현진건이 멱살이 잡힌 채 위협당하고 있었다.
겁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건만, 현진건은 끝까지 양아치와 맞섰다.
말리는 사람들은 없었다.
남 일이라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고, 양아치에게 기죽어서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현은 아니었다.
“지랄을 해요.”
어금니를 빠득 문 유현이 양아치를 향해 달렸다.
다다닥.타악.
놀라는 사람들이 입을 채 열기도 전에 유현이 날았다.
“어?”
“저, 저…….”
그러곤 몸을 돌려 양아치를 향해 뒤차기를 했다.
유현의 전투화 바닥이 양아치 얼굴을 스치며 옆에 있는 나무를 강타했다.
쩡.
후두두두.
순간 거대한 소리가 울리며 솔방울과 솔잎이 툭툭 떨어졌다.
굵은 나무가 크게 휘청거렸다.
딱 봐도 장난이 아닌 파워였다.
사람들의 얼굴엔 경악이 드리웠다.
“…….”
순간 양아치는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니, 나무 중간이 푹 파여 있었다.
꿀꺽.
침을 삼키자 나무를 찬 남자, 유현이 이죽대며 말했다.
“어라, 빗맞았네.”
“이, 이게…….”
주변의 시선도 있는 터라 양아치는 발끈했다.
“그 손 놔라.”
“이 씨발.”
심지어 주먹을 쥐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덤벼 보든가.”
“…….”
유현이 피식 웃으며 다가가자, 양아치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풀었다.
“조용히 살자.안 그럼 네 얼굴이 저 나무 짝이 될 거야.”
저벅.
한 발 더 다가간 유현이 기백을 뿜었다.
“어쭈, 대답 안 하지?”
“네…….”
양아치의 몸이 절로 수그러들었다.
참 볼품없는 광경이었다.
그때, 풀려난 현진건은 쓰러진 조교를 돌보고 있었다.
일관성 하나만은 확실한 친구였다.
잠시 후.
무전을 받은 군대 간부가 왔다.
현진건이 나서서 조교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그게 아니고…….”
발끈하는 양아치에게 유현이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넌 눈깔아.”
“…….”
다른 예비군들의 증언도 이어진 터라, 양아치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이미 복장 자체도 불량했다.
결국 양아치는 간부에게 끌려갔다.
상황이 정리된 후, 조교가 다가와 유현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감사는 이쪽에 해야죠.”
유현이 손으로 가리키자, 조교가 현진건에게 깊이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정말 감사합니다.”
“고생했어요.”
현진건은 따뜻한 미소로 조교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그날 예비군 훈련이 끝난 후였다.
현진건이 유현에게 말했다.
“마음 같아선 내일도 같이 받고 싶은데, 아쉽네요.”
“내일 오세요.”
“하하.진심으로 오고 싶습니다.”
현진건의 눈빛에선 진심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는 오늘로 예비훈 훈련 시간을 다 채운 상태였다.
유현도 이대로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을 미소에 담아 말했다.
“그럼 오늘 저녁에 한잔할까요?”
“좋죠.”
현진건이 대번에 호응했다.
그날 저녁.
유현은 현진건과 울산 호프집에서 마주했다.
챙.
기분 좋게 건배를 하고 맥주를 마셨다.
한 잔, 두 잔 들어간 데다 나이도 같다 보니 어느새 말도 놓았다.
이런저런 고민도 주고받았다.
“사실 아무리 회사에서 일해도…….”
천재라 불리는 그도 회사 안에선 그냥 부속품일 뿐이었다.
유현은 그의 고충을 들으며 조언했다.
“진건아, 그건 네가 너무 능력이 출중해서 그런 거야.”
“능력은 무슨.회사 들어가면 다 똑같지, 뭐.”
“절대 아냐.내가 장담하지.”
유현이 잔을 내밀자 현진건이 미소 지었다.
과거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멀리 돌아 지금 하고 있었다.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도란도란 말을 섞고 있을 때, 현진건이 말했다.
“유현아, 오늘 정말 고마웠어.”
“또 그 얘기다.”
“아냐.정말이야.”
“내가 없었어도 넌 잘했을 거야.”
유현이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다.
현진건은 먼저 나서서 병사들을 챙겨 줄 정도로 정의로웠다.
겁 없이 부딪쳤고, 간부를 이용할 줄도 알았다.
하지만 현진건은 고개를 저었다.
“너처럼 시원하게 끝내진 못했겠지.어쩌면 일이 커졌을 수도 있고.”
“참 별생각을 다 한다.그냥 한 잔 해.”
챙.
유현은 잔을 들어 현진건의 잔과 마주쳤다.
맥주를 넘긴 현진건이 조금 더 사적인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동생 이야기였다.
“내 동생이 있는데…….”
“그래? 몸이 그 정돈데 군대에 갔어?”
유현이 놀란 반응을 보이자, 현진건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몸 약한 게 콤플렉스였나 봐.재검까지 받아 군대에 가겠단데 말릴 수가 없겠더라.”
“그래서 네가 병사들에게 잘해 줬구나?”
“동생 생각이 나더라고.”
유현은 현진건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러다 별생각 없이 물었다.
“동생은 어느 부댄데?”
“17사단.”
“아, 번개부대?”
“어, 맞아.”
순간 유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 가물가물 올라온 탓이다.
유현이 설마 하며 물었다.
“동생이 거기서 뭐 하는데?”
“탄약반에 있어.”
“혹시 이름이?”
“현진수.”
“…….”
그 순간이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장면이 유현의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이번 그룹사 이미지 제고를 위해 의인상 인원을 추가로 선정했으면 합니다.
그룹 전략실에 있던 유현이 한성 의인상 인원을 직접 선정했다.
당시 유현은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는 사람들 위주로 뽑았다.
그중에 군대 폭발 사고 피해자도 있었다.
현진수.
온몸에 화상을 입고, 다리를 절단한 채 억울하게 누명을 쓴 케이스였다.
오랜 시간 군대와 싸운 그는 결국 정당성을 입증했다.
자신의 실수로 사고를 낸 게 아니었다.
전적으로 탄약고 담당 간부의 관리 부실에 의한 사고였다.
오히려 전역을 앞둔 그가 후임들을 감싸기 위해 폭발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군대에선 그 사실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그 어떤 피해 보상도 없었다.
이 억울한 사건이 인터넷에서 크게 떠돌았다.
유현은 휠체어를 끌고 온 남자가 한성 의인상을 받을 때, 그 옆에 있었다.
그 이후로 현진수를 본 기억은 없었다.
그때가 현진건을 만나기 몇 년 전의 일이었다.
-빚을 졌으니 갚는 것뿐입니다.
유현은 그제야 현진건이 짤막하게 뱉었던 말의 뜻이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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