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714
상남자 714화
정다혜의 깊은 속을 알게 된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습니다.근데 집은 어디로 구했어요?”
“천천히 설명해 드릴게요.그 전에 체육관부터 가요.”
“체육관은 왜요?”
“관장님께 인사드려야죠.”
“관장님은 LA로 가셨어요.장우 영화 촬영 하는 거 구경한다고요.”
“그래도 한번 보러 가요.앞으로 운동도 할 건데, 궁금해서요.”
뉴욕에서도 그러더니, 정다혜의 격투기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의지를 보이는 그녀에게 유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힘들다고 울지나 말아요.”
“놀이기구도 못 타는 사람에게 들을 소리는 아니네요.”
“참 나.일단 가시죠.”
피식 웃은 유현이 3층으로 안내했다.
유현은 체육관에 들러 구경을 시켜 줬고, 간단한 운동을 함께 했다.
그 후 가볍게 몸을 풀고 1층으로 내려가 김밥을 먹었다.
유현의 일상 속에 그녀가 불쑥 들어온 셈이다.
밖으로 나온 정다혜가 감탄했다.
“김밥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사람들이 다 그래요, 김밥 맛있다고.”
“네.장우 선수가 괜히 자랑한 게 아니더라고요.다음엔 챔피언김밥에 도전해 봐야겠어요.”
“운동 열심히 해야겠네요.”
“일하고,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고, 딱 좋네요.재밌을 거 같아요.”
행복해 보이는 정다혜에게 유현이 물었다.
“그건 그렇고, 집은 어디로 구한 거예요?”
“어디일 거 같아요?”
“글쎄요.어제 도착했으면, 아직 호텔에 묵고 있는 거 아니에요?”
“땡!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요.정리는 금방이에요.벌써 이사했어요.”
“벌써요? 어딘데요?”
“어디냐 하면…….”
정다혜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말했다.
듣고 있던 유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잠시 후, 유현은 자신의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옆에 자리한 신축 건물을 보며 그가 확인차 물었다.
“그러니까 저 오피스텔이라는 거죠?”
“네.알아보니까 가격도 합리적이고, 편의시설도 좋더라고요.수영장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회사와 거리는 제법 되잖아요.”
“회사 주변 도심보단 여유롭게 지낼 수 있는 곳이 낫죠.여긴 주변에 녹지도 있어서 좋잖아요.”
정다혜가 그렇게 답하며 도로 맞은편을 가리켰다.
거기엔 유현이 새벽마다 달리기를 하는 공원이 있었다.
-집 앞에 공원이 있는데, 아침에 달리면 무척 상쾌해요.다혜 씨도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거예요.
예전에 그녀에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 유현이 피식 웃었다.
“그냥 저랑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라고 솔직하게 말하시죠?”
“아니에요, 그런 거.지극히 개인적이고 합리적인 이유에서예요.”
“아님 말고요.내가 좋으니까 됐어요.”
“정말이라니까요.”
정다혜와 마주하며 티격태격하고 있자니, 뭐가 됐든 다 좋았다.
유현은 그녀가 마냥 예뻐 보였다.
“알겠으니까 다혜 씨 집 가요.구경하게요.”
“안에 볼 것도 없어요.”
“뭐 있을 필요 있나요? 우리 둘만 있으면 되지.”
“뭐래?”
유현의 애틋한 시선을 받은 그녀가 황당해할 때였다.
유현의 오피스텔 건물에서 한재희가 튀어나왔다.
갑자기 마주쳐 당황했지만, 할 말이 있는 터라 유현이 바로 불러 세웠다.
“재희야! 저기, 소개시킬…….”
유현이 채 말을 하기도 전에 한재희가 바로 말을 끊었다.
얼굴엔 온갖 짜증이 다 섞여 있었다.
“하! 오빠, 진짜 나 미쳐 버리겠어.지금 회사에 다시 나오래.”
“회사에는 왜 다시 가?”
“한성 노트 어플 디자인 또 바꾸라잖아.정신 나간 소프트웨어팀 놈들이 업체 미팅을 하더니 또 방향을 틀었어.이게 말이 돼?”
“더 좋은 방향이 있었나 보지.”
유현은 답을 하면서도 뜨끔한 마음이었다.
“좋은 방향은 개뿔.대체 어떤 업체기에 한성 로고까지 빼라는 거야? 우리 회사는 뭔데 이렇게 끌려다니는 거고?”
“어딘지 몰라?”
“모르지.나중에 보기만 해.진짜 제대로 따지고 들 테니까.”
“…….”
씩씩대던 한재희가 뒤늦게 유현 옆에 있는 정다혜를 발견했다.
미간을 찌푸린 한재희가 팔짱을 낀 채 유현을 쏘아붙였다.
“그나저나 오피스텔 앞에서 웬 여자랑 있어? 미국에 있는 언니는?”
“야,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내가 안 나왔으면 어쩔 뻔했어? 오빠, 남자가 그러는 거 아냐.죽고 못 살 땐 언제고, 그새 딴 여자를 만나?”
“그게 아니라…….”
“잔말 말고 언니 연락처 좀 줘 봐.아니, 휴대폰 이리 내.”
한재희는 대뜸 손을 뻗어 휴대폰을 채 가려 했다.
유현은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유현이 고개를 돌리자 눈을 마주친 정다혜가 입을 가린 채 웃었다.
기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한재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헉! 설마, 언니야?”
“그래.”
“왜 말 안 했어?”
“네가 말할 타이밍을 안 줬잖아.”
“아후! 한유현, 진짜, 도움 안 된다, 안 돼.”
한숨을 푹 쉰 한재희가 정다혜를 보며 급 공손한 척했다.
입가엔 어색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다혜 언니 맞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도 재희 씨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반가워요.”
한 발 물러나 있던 정다혜가 다가와 인사하자, 한재희가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 너무 반가워요.근데 어쩌죠? 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다음에 봐야 할 거 같은데.”
“언제든지 봐요.저 계속 한국에 있으니까요.”
“네.그럼 술 한잔 꼭해요.울 오빠한테 쌓인 불만도 많을 텐데, 다 들어 드릴게요.”
“좋죠.”
“바로 날짜 잡아서 연락드릴게요.즐거운 시간 보내요.언니, 파이팅!”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던 한재희는 빠른 걸음으로 뛰어가더니, 택시에 올라탔다.
정말 회사에서 부르긴 한 모양이다.
여동생의 뒷모습을 보던 정다혜가 말했다.
“정말 귀엽고 예쁜 여동생이네요.”
“쟤가요? 아까 성격 보셨잖아요.”
“당차고 표현 잘하는 거죠.올곧은 것도 무척 마음에 들고요.근데 미안해서 어쩌나.”
“왜요?”
“괜히 저 때문에 고생하는 거 같아서요.”
더블와이가 한성과 협업을 추진한 배경에는 정다혜가 있었다.
그녀의 컨설팅 덕분에 더블와이는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구성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 된 킬러 어플리케이션이 급히 필요한 한성은 기존의 걸 많이 바꿔야 했다.
그 여파가 엉뚱하게도 한재희에게 미쳤다.
유현이 손을 내저었다.
“신경 쓰지 마요.저러다 또 금방 가라앉아요.”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순 없죠.재희 씨는 뭘 좋아해요?”
“쟤는 술이면 환장해요.”
“술이요? 풋.”
정다혜의 표정에 웃음이 어렸다.
다음 날, 유현은 정다혜와 함께 첫 출근을 했다.
두 사람 다 정시 출근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빨리 왔건만, 회사엔 아무도 없었다.
출근 시간이 자율이다 보니, 다들 느지막이 오는 모양이다.
덕분에 유현은 정다혜와 오붓하게 둘이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이렇게 마주하고 있으니 꼭 과거로 돌아온 기분이다.
“오랜만이네요, 사무실에 이렇게 둘이 있는 거.”
“오랜만이라니요?”
“아, 그냥.텍사스 시절 생각나서요.”
“싱겁긴.그땐 사무실이 없었잖아요.”
“그러네요.”
예전에 같이 일했다고 말할 순 없는 터라, 유현은 그저 웃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참 재밌다.
과거 한성에서 인연이 되었던 두 사람은 이제 다른 회사에 터를 잡았다.
그러면서도 둘 다 한성에 한 다리씩 걸치고 있었다.
이 인연이 또 어떻게 이어져 나갈까?
유현이 커피를 마시며 앞날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며 뿔테 안경을 낀 조용희가 들어왔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그가 크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엘리스 님! 이야! 이사님도 계셨네요.”
“네, 사일런트 님.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이다마다요.이렇게 봬서 너무 좋습니다.하하!”
큰 웃음을 시작으로 직원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인사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특색 있는 이들의 모습이, 달라질 유현의 회사 생활을 보여 줬다.
더블와이는 기존 회사 시스템과 많이 달랐다.
수평적 조직문화나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내재되어 있어서가 아니었다.
회사 내에선 심할 정도로 개인의 자율을 중시했다.
특히 의견이 충돌할 때 이 부분은 더 두드러졌다.
회의실에서 최대기의 반대 의견을 들은 정다혜가 놀라 되물었다.
“웨이팅 님, 기존에 있는 걸 두고 새로 짠다고요?”
“아무래도 전 제가 제안한 방식이 마음에 드는 거 같아서요.전 기업용 메신저엔 AI 상담봇을 연동한 아이템이 꼭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 건 일단 뼈대를 맞춰 놓고, 추후에 넣으면 되잖아요.한성과 정해 놓은 것도 있고, 일정도 지켜야 하는데요.”
“그냥 재미삼아 해 볼게요.하고 나서 괜찮으면 쓰고, 아니면 그걸로 딴 거 하면 돼요.”
“굳이 이 시점에서 자원을 나누는 건, 그리 합리적인 판단 같지는 않아요.”
정다혜는 첫날임에도 강하게 말했다.
웬만하면 이해해 주려 해도, 그녀의 기준에서 최대기의 행동은 지극히 비합리적이었다.
하지만 나도하는 오히려 반기는 기색이었다.
“일정 내에 둘 다 해내면 되죠.웨이팅 님, 그렇죠?”
“당연하죠.늦지 않게 하겠습니다.”
“좋아요.웨이팅 님에게 또 붙을 사람?”
“저요! 제가 돕겠습니다.하하!”
조용희가 크게 웃자, 나도하가 바로 정리했다.
“그럼 사일런트 님과 웨이팅 님이 편먹고 저희랑 내기 한판 하죠? 블라인드 평가해서 어떤 기능이 더 쓸모 있는지요.”
“오오! 좋습니다.이번에는 이겨서 지난 데모 프로그램 꼴 나지 말자고요.”
조용희는 금방 불이 붙었다.
보고 있던 정다혜가 황당해했다.
“제가 요청했던 데모 프로그램도 이런 방식으로 만든 거예요?”
“아, 한성에 전달한 거요? 그건 사일런트 님이 내기에 져서 혼자 한 거예요.왜요?”
“그 많은 걸 혼자…….”
태연한 나도하의 답에 정다혜가 할 말을 잃었다.
그저 방관하던 박영훈이 유현을 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나름 IT 전문가들, 고객으로 많이 만나 봤잖아.솔직히 걔네 톱급 수준보다 우리 직원들이 더 높은 것 같아.마치 도하가 여럿 있는 기분이야.
얼마 전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린 유현이 피식 웃었다.
‘빈말이 아니었나 보네.’
박영훈이 자부심을 가질 만큼 더블와이 직원들의 실력은 뛰어났다.
이는 유현이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하루 동안 더블와이 직원들을 겪은 정다혜가 혀를 내둘렀다.
“유현 씨, 다들 어떻게 저렇게 자유분방하게 일하죠?”
“그래도 놀랄 만큼 빨리 해내잖아요.”
“그래서 더 신기해요.분명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거 같은데…….”
더블와이 사무실에선 만화책을 보든, 게임을 하든 일절 터치하지 않았다.
출퇴근은 물론, 식사 시간도 자율이었다.
피곤하면 자도 됐고,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것도 상관없었다.
정다혜의 눈엔 이 모든 게 이상해 보였다.
유현도 당연히 적응이 된 건 아니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뭐, 어때요.잘만 하면 되죠.”
“그렇긴 한데요.”
“다혜 씨도 살짝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요.한번 믿어 봐요.”
“네.그래야죠.아, 오늘 재희 씨와 약속 있는 거 알죠?”
“그럼요.”
유현 입장에선 저녁에 있을 만남이 살짝 걸렸다.
‘재희 녀석, 괜히 쓸데없는 얘길 하는 건 아니겠지?’
정다혜가 휘둘릴 만한 성격은 아니지만, 워낙 여동생이 별나다 보니 내심 걱정됐다.
그런 유현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정다혜가 빙긋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재희 씨가 술 좋아한다고 해서 나름 준비해 놨어요.좋아할지 모르겠네요.”
“술이면 다 좋아할 애예요.”
“그럼 다행이고요.아, 점심은 김밥 먹어요.저녁엔 못 먹잖아요.”
“또요?”
“또라니요.전 매일 먹을 수도 있어요.”
무척 진지한 정다혜를 보며 유현은 웃고 말았다.
“알았어요.전 영훈이 형이랑 얘기 좀 하고 내려갈게요.”
“그럼 제가 짐 정리하고 먼저 내려가서 주문해 놓을게요.”
“네.조금 있다 봐요.”
정다혜를 보낸 유현은 대표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