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722
상남자 722화
내용을 다 확인한 조기정이 유현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겠네.애초에 자동화용으로 만들어진 장비가 아니야.”
“맞아요.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거고요.”
“업체 직원들도 와 있댔지?”
“네.매뉴얼 프로그램 담당자부터 임원까지 다 와 있어요.”
“오케이.그건 괜찮고, 생산라인과 통신하는 쪽만 빨리 잡으면 되는데…….”
조기정은 벌써 머릿속에 시나리오를 그린 눈치였다.
옆에 있던 강종호가 잽싸게 말을 받았다.
“통신 장비들은 부품 창고에 많이 있어요.골라서 가져가면 됩니다.”
“세미전자에서 그 업무를 한 직원도 나와 있어요.”
강준기를 떠올린 유현도 한마디 거들었다.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조기정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그럼 문제없겠다.”
“정말 괜찮아요?”
“그럼.부품 있겠다, 사람 있겠다, 못하면 안 되지.그 열악한 연태리에서도 해냈는데.그렇죠, 반장님?”
조기정의 시선을 받은 박철홍 반장은 여전히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응? 어.”
“반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난 여기서 뭘 해야 하나 싶어서.내가 낄 자리는 없는 거 같은데.”
유현의 물음에 박철홍 반장은 자신 없는 목소리를 냈다.
본인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유현이 볼 땐 아니었다.
여기서 그의 역할이 무척 중요했다.
“무슨 소리예요.수율 관리를 해 주셔야죠.반장님만큼 그걸 잘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게 자동화와 무슨 상관 있어.”
“이건 단순히 자동생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에요.중간에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해서 수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해요.”
“내가 그걸 어떻게 한다고.”
“연태리에서 긴급 감사 때 기억 안 나세요? 우리가 목포 사업장 작업반과 처음 호흡을 맞춰도 수율이 좋을 수 있었던 건, 반장님께서 그만큼 라인 관리를 잘해서예요.”
“…….”
할 말을 잃은 박철홍 반장이 최근 작업소장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자넨 반장이 돼서 대체 뭐 하는 건가? 공장장님이 까라면 까야지, 왜 쓸데없이 반원들 편을 들어서 일을 두 배로 만드냐고!
공장에서의 일은 꼬여만 갔고, 의욕은 떨어졌다.
기계처럼 일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해낼 자신이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유현의 한마디가 그를 깨웠다.
동시에 밤새 컨베이어벨트를 닦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연태리에서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멍한 표정으로 옛 기억을 되짚고 있는 그를 향해 유현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지 말고 오랜만에 같이 힘을 모아 보시죠.”
“좋아.어쨌든 모이니까 반갑네.”
미소 지은 강종호가 유현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이어서 조기정도 한마디 덧붙였다.
“끝나고 진하게 회식하는 거 맞지?”
“그럼요.제가 쏘겠습니다.”
“그럼! 당연히 함께해야지.”
척.
3명의 손이 모이니, 박철홍 반장이라고 마냥 뺄 수는 없었다.
그는 두툼한 손을 올리며 다른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 참.내가 도움이 될까 모르겠어.”
“도움이 무조건 됩니다.”
유현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사람들을 둘러봤다.
이렇게 있으니 꼭 연태리 때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유현은 긴급 감사를 준비할 때처럼 힘을 모았다.
“아자, 아자!”
모두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울려 퍼졌다.
E공장 2층에 연태리 3인방이 합류했다.
곧이어 강종호가 대동한 창고 직원들도 들어왔다.
이들은 창고 계장인 강종호의 지시에 따라, 부족한 장비들을 먼저 챙겼다.
이물을 쉽게 점검할 수 있는 작은 현미경부터, 진행 상황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TV와 모니터까지.
없던 부분이 채워지니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했다.
강종호는 나서서 사람들에게 창고 이용 방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사내 사이트에 접속해서 필요한 부품을 찾을 수 있는데…….”
“오오, 별 게 다 있네요?”
“여기에 파워 장비를 추가로 들이면, 검사 속도를 더 올릴 수 있겠어요.”
덕분에 사람들은 제한된 환경을 벗어나 더 넓게 사고할 수 있었다.
박철홍 반장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동선을 살폈다.
그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수첩에 기록하며, 부족한 전문성을 채웠다.
문제점이 생긴 부분을 꼼꼼하게 살폈고, 부분 라인마다 수율을 체크했다.
그 모습이 무척 진중해 보였다.
‘감이 돌아오셨나 보네.’
피식 웃은 유현은 고개를 돌려 유리 성형 장비 앞에 서 있는 두 남자를 바라봤다.
조기정과 강준기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토론하고 있었다.
“PC 하나로 멀티 장비를 제어하기 위해 I2C 프로토콜의 어드레스를 분리하여…….”
“오! 조 선임님,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그럼 제가 짰던 프로그램을 변경해서…….”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꽤 합이 잘 맞는 느낌이다.
왠지 강준기의 표정이 들떠 보였다.
강준기가 조기정을 무척 좋게 본 모양이다.
유현과 조기정이 나란히 앉아 있으면, 이젠 조기정에게 먼저 다가왔다.
“조 선임님, 아까 폴리싱 장비 모니터에 수율 띄웠던 거 있잖아요.”
“나중에 얘기해.”
“네.그럼 장비와 PC 연동할 때 무슨 프로그램 썼는지만 알려 주세요.”
“내가 짠 거야.그거 줄 테니까 좀 쉬어.”
“헉! 역시 대단하십니다!”
틈만 나면 놀랐고, 궁금한 게 있으면 일단 물었다.
“조 선임님, 압력계를 전기 버튼으로 조작하게 만든 건…….”
밥 먹을 때도, 호텔 로비에 앉아서도 질문은 쉬질 않았다.
듣고 있던 조기정이 질릴 정도였다.
“귀에 딱지 앉겠다.알았어, 알았어.궁금하면 호텔방으로 와.가르쳐 줄 테니까.”
“진짜입니까? 사부님! 바로 가겠습니다!”
급기야 강준기는 조기정을 사부라 부르며 졸졸 따랐다.
그럴 만도 한 게, 조기정의 실력이 워낙 뛰어났다.
덕분에 그의 손을 거친 장비들이 빠른 속도로 자동화되었다.
강준기도 열과 성을 다해 보조를 맞췄다.
“오오! 진짜 될 거 같습니다!”
어느새 강준기의 눈빛에 열정이 가득했다.
‘다 뻔해서 의욕이 안 난다더니…….’
그런 친구를 보며 유현이 피식 웃었다.
유현이 원주 공장에 온 지 어느덧 5일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유현은 우수한 인력을 밀어 넣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해 보였다.
대량 양산이 어려웠던 장비에선 어느새 원했던 모양의 스마트폰 외형이 만들어졌다.
수공업처럼 한 땀, 한 땀 만들 때와 수준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각 부분별 생산성 검증은 끝났다.
이제 모든 걸 종합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이걸 보기 위해 박창규 공장장이 유현 옆에 자리했다.
“정말 대량 양산이 가능하다고?”
“네.보시면 알 겁니다.”
유현이 자신 있게 답하자,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분명 그럴 리가 없는데…….”
박창규 공장장은 수많은 장비를 다뤄 본 사람이다.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 붙어도 셋업하기 힘들었던 장비를, 다른 업무를 하던 사람들이 와서 해낼 수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건 뒤에 서 있는 하성일 상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윽.
유현이 손을 들어 신호를 주자, 서우성 책임이 크게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장비가 가동되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치이이잉.치이이잉.
알루미늄 가공과 유리 성형이 동시에 진행되며 생산 시간을 단축시켰다.
모든 작업은 작업자의 간단한 조작만으로 진행됐고, 결과는 라인에 설치된 모니터에 의해 보여졌다.
공정을 세부적으로 나눠 각 부분별 수율도 따로 관리했다.
문제가 생긴 부분만 재작업하는 시스템을 가동하여, 수율을 극적으로 올렸다.
보고 있던 박창규 공장장이 감탄했다.
“허! 저것들은 또 언제 설치한 건가? 분명 지난번엔 없었는데.”
“이번에 생산라인 자동화를 하며 관리하기 좋게 달아 놨습니다.”
“자동화?”
박창규 공장장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하성일 상무가 앞으로 나와 설명해 줬다.
“공장장님, 원래 저 장비는 수동으로 압력과 온도, 그리고 결합 강도를 조절해야 했습니다.”
“알아.그래서 어려웠던 거잖아.근데 그걸 자동으로?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건가?”
이건 하성일 상무가 답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시선을 받은 유현이 사실대로 말했다.
“한성전자 CTO에서 온 조기정 선임과 세미전자 소속 강준기 대리가 수고해 줬습니다.”
“둘이서 저걸 다 했다고? 그게 가능해?”
놀란 하성일 상무를 물리며, 박창규 공장장이 물었다.
“자동화는 그렇다 쳐.아무리 그래도 부분 수율을 일일이 다 관리해서 표시하는 건 다른 문제일 텐데? 기준을 어떻게 마련했고, 또 문제를 어떻게 판별한 거지?”
“그건 박철홍 반장이 따로 설명드릴 겁니다.”
“박철홍 반장?”
“한성전자 강원 공장에서 지원 왔습니다.”
“강원 공장에서까지…….”
유현의 답에 박창규 공장장이 눈을 껌뻑였다.
그사이, 공정은 차곡차곡 진행되어 막바지에 이르렀다.
치이익.
도색된 알루미늄 옆면과 유리가 합쳐졌고, 오차 없이 정밀하게 맞물린 외형에 광택 작업이 이뤄졌다.
연속 공정이 불가했던 폴리싱 작업 부분까지 매끄럽게 연결됐다.
막힘없이 만들어진 최종 외형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툭.
곧이어 옆 라인에서도 비슷한 시간에 맞춰 작업이 끝났다.
뒤따라온 외형들도 문제는 없었다.
이는 목표했던 생산 시간보다 빨랐고, 안정적이었다.
불가능이 가능이 된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 성공이다!”
“대박! 우리가 해냈다!”
고생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안았고,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들뜬 분위기 속에서 박창규 공장장은 할 말을 잃었다.
오늘 그는 지금껏 쌓아 온 상식이 모조리 파괴된 기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유현이 말했다.
“이건 시작일 뿐, 앞으로 생산성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그러기 위해선 공장장님의 지원이 필수고요.”
“약속했지 않나.지난번엔 부득이한 문제가 생겨서 그랬을 뿐이야.”
“아뇨.앞으로 또 부득이한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설령 양상열 부장이 또 제안을 하더라도요.”
유현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온 순간, 박창규 공장장이 다리를 떨었다.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도무지 모르겠군.”
“모른 척해 드리겠습니다.단, 이제부터 관리 잘하세요.여기에 공장장님의 목이 달려 있다는 걸 꼭 명심하시고요.”
“…….”
유현의 반 협박에 박창규 공장장이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정도면 노선은 확실히 바로잡았을 터다.
유현이 그에게 물었다.
“관리 잘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알려 드립니까?”
“뭔가?”
의아해하는 그를 뒤로하고, 유현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채였다.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게 어렵지, 불씨가 남은 장작을 활활 태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법이다.
이어진 유현의 한마디가 열기를 확 끌어올렸다.
“오늘 회식, 공장장님이 쏘겠습니다!”
“오오오!”
“공장장님! 최고십니다!”
“공장장님! 공장장님!”
직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 인원들을 전부…….”
박창규 공장장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박창규 공장장은 회식을 지원한 데 이어 약속했던 포상금을 지급했다.
유현도 혁신전략실의 이름을 빌려 모든 인원에게 추가 보너스를 전달했다.
약속한 걸 바로 지킨 셈이다.
덕분에 인원들의 사기는 더 올랐고, 자발적으로 남아 인수인계를 했다.
성공 체험을 제대로 한 이들은 헤어짐의 아쉬움을 연일 회식으로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