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부산(2)
쏟아지는 폭우 너머.
하늘 위에 고고히 떠 있는 거룡의 모습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위압적이었으나.
김해 공항에서 특종을 기다리던 기자들은, 정작 다른 이유로 발생한 커다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어··· 그러니까···.”
우비를 갖춰 입고 마이크를 쥔 리포터.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려 거룡, 해신의 모습을 바라보곤. 다시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되돌리며 입을 열었다.
“천무그룹의 잠룡, 주현우는 이변 발생의 징조를 포착하고. 해당 위치로 바로 이동한 모양입니다.”
클로징 맨트를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 다른 기자들 역시, 서서히 상황 파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지금은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이동 준비해!”
“촬영 장비 빨리 옮기고! 시간 낭비하면 안 되니까. 조명은 그냥 여기에 한 명이 남아서 수습하고 뒤따라와!”
주위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착륙조차 없이 저공비행으로 사라진 페일 라이더. 그리고 그 방향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룡까지.
이건 그들이 생각하던 것 이상의 특종이 확실했다.
지금부터는 먼저 움직이는 자가 특종을 거머쥔다. 그 사실 하나가 이변의 공포를 몰아내고 기자들을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기자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이들이 있었다. 바로, 주현우를 기다리며 오늘도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던 존 록펠러와 그의 공략팀이었다.
“하···!”
한 발 늦게나마.
존 록펠러는 상황을 파악하고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거, 제대로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 한 방은 현우가 먹인 것도 아니고. 어이없을 정도로 완벽한 이변 발생의 타이밍 덕분이었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존 록펠러와 그의 공략팀은, 이곳에 덩그러니 남겨져 우스꽝스런 광대 신세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저, 대장님···.”
“우리도 움직이죠.”
그는 부하 헌터의 물음에 가볍게 손을 휘저으며 답했다. 갑작스레 터진 이변에 반응이 한 발 늦긴 했으나. 그게 정말로 늦은 것은 아니었다.
기자들이야 차량으로 이동할 테니.
폭우라는 날씨 여건을 고려했을 때. 현장까지 적어도 30분 이상은 걸려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쪽은 사정이 다르다.
탕그뇨스트(Tanngnjótr).
이 비공정은 적어도 속도 면에선. 현존하는 비공정 중에서 가장 빠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 발 늦게 출발해도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은 기정 사실.
여기서 운이 조금 좋다면.
저 거대한 보스급 해양 마족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잠룡을 도우며 전투에 가세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으리라.
‘나쁜 그림은 아니겠어.’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지금까지 계획했던 일들이 전부 예상대로 흘러가는 삶을 살아왔던 것도 아니다.
당장이야 우스워졌으나.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야 상관없어지는 법.
‘부산의 구원자까진 못 되어도···.’
구원 투수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러나 존 록펠러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미 그에겐 아이언 나이트라는 흡족한 별호가 있었고. 이번 일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주현우와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런데 대장, 만약 우리가 가기도 전에 저쪽에서 이변을 끝내버리면. 이거 완전 우습게 될 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이번 이변···.
그렇게 만만하진 않을 거다.
바다 쪽에서 느껴지는 존재감.
그건 명백히 저 거룡의 형태를 가진 보스가 최소 SSS급에 준하는 위험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원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
슈오오오─!
대기를 밀어내는 소리와 함께. 록펠러 가문의 자랑, 전함 탕그뇨스트가 허공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
한편···.
거룡, 해신의 근처에서 저공비행을 하며.
현우는 간단히 계획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해신과 버서커.’
그건 두 마리의 토끼다.
언제나 그렇듯, 한 번에 두 가지 결과를 바랄 때엔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에 현우는 열린 탑승구 사이로 몰아치는 폭우를 맞으며. 무작정 공략을 시작하기 보단, 우선은 차분히 상황을 살폈다.
해신(海神).
고작 마족 주제에도 불구하고. 토벌 이후, 한국 헌터 협회가 녀석에게 그리 거창한 이름을 붙인 까닭은 간단했다.
‘녀석은··· 자연재해 그 자체다.’
본채도 위협적이지만.
가장 큰 피해를 낸 재해로 기억된 이유. 그건 녀석이 등장과 함께 부산에 몰고 온 거대한 해일에 있었다.
당시 부산엔 이를 막을 수단이 없었고.
그건 현우가 알고 있는 미래보다 한참 과거인 지금, 이 시점에서 또한 다를 바 없는 이야기였다.
이미 녀석이 등장했으니.
만약 당장 해일을 막을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미래와 똑같이 큰 인명 피해가 나오는 것 또한 바꿀 수 없으리라.
그 순간.
현우는 문득, 지난번 미래의 네크로맨서가 저주처럼 내뱉은 한 마디를 떠올렸다.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현우는 녀석의 말을 곰씹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결과.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지금까지···.
현우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정말로 다양한 것들이 현우가 알던 미래와 다르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미래 중에서.
특히, 이미 죽은 사람이어야 했을 주양태 회장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은 현우가 이룬 최고의 쾌거였다.
그의 존재만으로.
천무그룹과 블랙 가문의 전쟁은 이쪽에 몇 배나 유리하게 돌아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네크로맨서는 이곳 과거로 찾아왔다.
그건, 현우가 이 시점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이미 패배한 미래 쪽은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타임 패러독스···.’
그런 복잡한 것은 모른다.
솔직히 파고든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리라.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우의 행보로 인해 ‘현재’는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장 해야 할 것은 하나.
눈앞에 닥친 적을 토벌하는 것.
사실, 현우가 지금까지 해온 일도 전부 다를 바 없었다. 항상 미래의 적을 예측하며 움직이고. 눈앞에 나타난 적이라면 최선을 다해 상대했다.
고작 그것만으로.
여태까지 수많은 미래가 바뀌었고. 비로소 지금의 현우가 존재하는, 과거와는 달리 많은 것들이 변한 현재가 되었다.
‘이제 곧, 블랙 가문도 끝이다.’
현우의 시선은 어느덧.
허공에 고고히 떠 있는 해신이 아닌. 그 너머의 바다 위를 향했다.
버서커.
놈은 해신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검은 목재 선박으로 보이는 아티팩트에 탑승해. 현우와 비슷하게 조용히 상황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선박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플라잉 더치맨.’
이는 비공정보다 한 단계 떨어지지만.
적어도 바다 위에서는 비공정보다 훨씬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한 선박 형태의 아티팩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벽에 가까운 스텔스 효과를 제공하는 것. 그게 저 선박형 아티팩트 플라잉 더치맨의 진가라고 할 수 있었다.
전생의 블랙 가문이 운용하던 페일 라이더가. 공중의 기동 요새로서 서울 방어전에서 활약했다면, 플라잉 더치맨은 반대로 은밀함을 활용해 강화도를 기습한 강습함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굳이 ‘완벽에 가까운’이란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플라잉 더치맨의 은신 효과가 페일 라이더에겐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녀석은 그 사실을 모르겠지.
현우는 곧, 녀석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일단은 해신이 일으킬 재해부터.’
아직은 차례가 아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본다면, 버서커 하나를 확보하는 것보다도. 부산을 덮쳐 수많은 생명을 앗아갈 재해를 막는 것이 우선이다.
어차피 포착된 이상.
녀석은 절대 살아 돌아갈 수 없다. 이전, 시칠리아에선 팔을 자르고 겨우 도망갔으나. 이번엔 머리통부터 붙잡을 테니까.
‘머리는 못 자르겠지.’
정말 만일의 경우.
록펠러 가문의 쌍둥이 전함 중의 한 기인 탕그뇨스트가 가까이 있으니. 협동 전선을 펼친다는 선택지도 있다.
‘물론, 그럴 일이 없는 것이 최선이다.’
이윽고···.
[────!]거룡, 해신이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크게 돌렸고. 그와 동시에 주위에서 막대한 양의 마나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는 재해의 전조 증상.
이어 불과 몇 초가 지났을 무렵.
현우가 예상하고 있던 사태가 발생했다. 서서히 그러나 육안으로 보기에도 매우 빠르게 해수면이 상승했다.
‘해일이 온다.’
10m가까이 치솟는 파도.
그건···.
그야말로 자연 재해 그 자체였다.
그러나 현우는 알고 있었다.
저건 진짜 자연적으로 발생한 해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인력(人力)으로 막을 수 없는 재해와는 다르다.
저건 마법과 비슷하다.
구성하는 마나의 결합만 파괴한다면. 해일을 말 그대로 파괴하는 것이 가능하단 이야기.
그러니 바로 이 순간이.
현우가 미리 생각해둔 계획이자 대처법을 실행으로 옮길 타이밍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힘에는 힘으로, 단순한 논리였다.
‘쉽진 않겠지만···.’
해일과 불꽃.
과연 어느 쪽이 먼저 꺼질 것인가.
물론, 단순 지속력과 내구력으로만 본다면. 이건 압도적으로 현우에게 유리한 대결이다.
하지만, 그건 대등한 조건일 때.
지금의 현우에겐 본인의 능력 외에 있는 족쇄가 하나 채워져 있다. 그건 바로 해일이 목표로 전진하고 있는 부산 그 자체.
힘의 대결을 떠나.
저 해일이 육지에 도달하기 전까지. 완벽히 제압하지 못한다면, 결국엔 현우의 패배나 다름없는 결과가 나올 테니까.
“성녀님.”
“예, 주현우님.”
대기하고 있던 아그네스가 대답했다.
“이번에도 죽지 않게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사실.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성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저, 저게 무슨···.”
족히 10m는 되어 보이는 크기.
거룡이 발생시킨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파도가 해변을 향해 실시간으로 빠르게 밀려들고 있었다.
해일(海溢)이다.
모두가 그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비공정 내부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건 여태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존 록펠러와 공략팀마저도. 당혹감 속에 일순 사고를 멈추고 멍하니 상황을 바라보게 만들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젠장!”
존 록펠러.
그는 경악하며 공략팀에게 속력을 높이란 제스처를 취했다. 이윽고 그의 뜻에 따라 탕그뇨스트가 속력을 최대로 올렸다.
이미 거룡을 향해 접근한 페일 라이더.
여기서 돌아가지 않는다면, 저 해일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고 만다. 물론, 이 재해의 여파는 단순히 비공정을 잃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아, 잠룡 들립니까?”
분명 근접 통신도 닿는 범위일 텐데.
잠룡, 주현우 측에선 대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마냥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저건 당신 혼자서는 대응이 불가능한 재해입니다!”
우선은 들린다고 생각하고.
존 록펠러는 통신기에 다급하게 외쳤다.
“아까운 비공정을 잃지 말고 우선 육지로 퇴각해서 저희와 함께 협동 공략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돌아온 대답.
그러나 그가 예상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예?”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그쪽이나 뒤로 물러나 주시죠. 휘말릴 경우엔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아니, 그게 무슨···.”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존 록펠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여기서 퇴각해서 수습할 수 있는 것을 수습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옳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을 모르는 건가!’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아이언 나이트라는 명성을 얻은 그였기에. 단순한 정의감에서 비롯된 만용이 얼마나 큰 피해를 낳는지. 경험으로서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유롭게 상대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물러나죠!”
“예? 하지만···.”
“지금쯤이면 저 아래에 다른 헌터들은 물론이고. 일반인인 기자들까지 도착했을 겁니다. 그들이 상황을 파악했을 무렵엔 이미 늦을 거고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론, 존 록펠러는 저 해일이 육지에 닿는 즉시. 해안에 나와 있을 기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부산의 시민들이 희생될 가능성에 대해 직감했으나.
그걸 안다고 해서 특별한 대책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으득, 존 록펠러는 이를 갈았다.
그 역시도 은연중에 이변이란 현상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이건 인간으로 하여금 완벽한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재해···.
아니, 재앙이 아닌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대적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것 같은, 실체로서 현현(顯現)한 절망을 보는 것만 같았다.
‘최대한 해변 쪽의 민간인을 대피시켜야 한다. 이변에서 떨어질 이득을 노리고 모여든 헌터들이 내 지시를 따라줄 지는 모르겠지만···.’
해봐야 한다.
당장 저 재해 앞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해야 그 정도뿐일 테니까.
그런데 그때.
기수를 돌린 탕그뇨스트의 뒤로.
번쩍하고 빛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
해일 위로 치솟는 불꽃 기둥.
이어 도합 열 세 개의 창백한 불꽃이 사라지지 않는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해일과 정면에서 맞부딪혔다.
페일 라이더가 출력을 제한하지 않고 전력으로 개시한 포격. 당연히 그 원동력은 현우의 무한한 마나, 인피니티 코어였다.
“···!”
그리고 그 순간.
부산의 일부 시민들을 포함해. 시시각각 육지로 다가오는 재해를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하늘을 난다고 해서.
다 같은 수준의 비공정이 아니다.
콰─과─과─과!
해일을 지워가는 포격.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광경이 눈앞에 현실로서 펼쳐지고 있었고.
“뭐, 저런 미친···?”
존 록펠러의 입에선.
평소 담지 않는 욕설이 불쑥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