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부산(3)
“음, 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리포터.
분명 방금 전까지.
그는 다가올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 카메라 기자와 함께 거대한 해일을 비추며. 화면 너머의 시청자들에게 대피하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은, 직전 죽음 앞에서 가졌던 숭고한 기자정신마저. 까맣게 잊게 만들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결과였다.
“해, 해일이··· 사라졌습니다.”
일단 입 밖으로 뱉었으나.
그의 이성은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두 눈을 의심해야 한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해일을 공격해서 파괴한다니.
어느 누구도 예상조차 하지 못한 대처법이.
실제로 그 효과를 거두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꿀꺽.
리포터는 마른 침을 삼켰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목격한 일에 대한 혼란함. 거기에 더해 기자로서 지금 이 순간, 세기의 특종을 발표 할 수 있다는 직감적인 설렘까지.
더없이 복잡한 감정들이 그의 가슴 속에서 뒤섞여 들끓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의식을 가진 기자답게.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해일을 파괴한 것은 천무그룹의 잠룡. 미국의 존 록펠러가 아닌. 한국 천무그룹의 잠룡 주현우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이곳에 있는 카메라만 얼추 세어 봐도 열 대는 족히 된다.
그중 절반 이상이 현재 상황을 라이브로 중계하는 중이었고. 해신의 출현과 거대한 해일을 직접 목격한 일부 부산 시민과 몇몇 인플루언서들까지.
본인의 스마트폰 등으로 촬영이나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이 상상을 초월한 광경은 지금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주현우.
천무그룹의 잠룡.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막대한 화력으로 돌진하는 해일을 지우며. 진정한 의미의 이변을 일으킨 것은 바로 그였다.
“아, 지금 막 비공정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또 한 번, 그가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
한편.
존 록펠러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을 억누르며. 다시 이성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해일을 지워버린 포격.
‘이론적으론 분명 가능하다.’
그 해일은 엄밀히 따지면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니 형태를 구성하는 마나의 결합만 파괴한다면, 저렇게 파훼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론.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밖엔 결론지을 수 없는 방법이다. 그런데 그걸 저 잠룡, 주현우는 실제로 해낸 것이었다.
“···저 비공정의 힘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그러나 존 록펠러는 절대, 현우의 마나가 무한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진 못하리라. 그건 가능 여부를 떠나서 애초에 상상조차 불가한 요소이니 말이다.
“정말···.”
대단하군.
그는 속으로 그 한 마디를 삼켰다.
그의 공략팀이 보고 있었다.
놀란 것은 사실이었으나. 자칫 잘못하면 그 감정은 경외심으로 보일 위험이 있었다. 그건 팀의 리더로서는 보여서는 안 되는 감정이다.
‘···경외심인가.’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경외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까진 소문으로만 들었지.
존 록펠러, 그로서는 페일 라이더라는 비공정의 실전을 이렇게 직접 목격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저건···.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스러운 위력이라고 밖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협적이라 느껴지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포격에 딜레이가 아예 없는 수준이었지.’
아니, 저걸 포격이라고 해야 할까.
존 록펠러가 보기에 저건 포격이라기 보단 차라리 소각에 가까웠다. 그게 아니라면 소거라는 표현도 어울릴 테고.
아무튼···.
말도 안 되는 성능이다.
아무리 대단한 비공정이라 해도.
재정비에 필요한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비단 비공정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병기에 적용되는 공통사항일 수밖에 없다.
그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저 비공정은 무시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그때.
여태까지 비공정 벽면에 기댄채. 조용히 상황을 관조하고 있던 한 사람이.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룡, 그 사람은 아무리 오빠라고 해도. 섣불리 건드려볼 사이즈가 아니라고. 이제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젤라.”
존 록펠러는 살짝 불편한 시선으로 그쪽을 바라봤다.
“이제 상황은 반전됐어.”
안젤라 록펠러.
이 존 록펠러의 비공정, 탕그뇨스트에 손님격으로 탑승해 있던 그녀는, 방금 전까진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자리만 지키고 있는 듯 했으나.
지금처럼.
자신이 나설 순간이 올 것임을 분명히 알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라이트닝 펀치야.’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만큼은 그 별호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기억하던 것처럼. 여전히 본인만의 독선적인 방법을 밀고 나가는 모양이었다.
‘놀라운 점은···.’
그 말도 안 되는 방식이.
항상 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건 이번 이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빠.”
“···음?”
“잠시, 통신기 좀 빌려줘.”
“뭘 하려고 그러지.”
“바보 같은 질문이네. 통신기를 통신에 쓰려고 하지. 그럼 내가 뭐, 통신기를 집어 먹기라도 할까봐 그래?”
“···.”
존 록펠러는 인상을 썼다.
그러나 당장 통신기를 내주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해일을 처리한 이상. 잠룡 쪽에서는 저 마족을 독점하려고 들 테니까.
“문제는 일으키지 마라.”
“문제는 무슨···.”
안젤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오히려 조금 있으면 나한테 고맙다고 하게 될 텐데.”
“그게 무슨 소리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통신기를 향해 입을 열었을 뿐.
“라이트닝 펀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감도는 통신기 너머. 그녀는 주현우가 방금 통신을 확실히 들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잠룡.”
[듣고 있습니다.]“이쪽이 더 좋은 건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내가 보기엔 둘 다 멋진 별호인데.”
고개를 갸웃 하는 안젤라.
그녀의 감성으로는 ‘라이트닝 펀치’라는 멋진 별호를 사양하는 현우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농담을 주고받을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녀는 여기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 있는 조금 멍청한 오빠와 다르게.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마침 그럴 만한 적당한 수단도 가지고 있고 말이죠.”
[수단?]“아티팩트가 있어요.”
해양에서 일어나는 이변.
그것을 예측한 오빠, 존 록펠러와 동행을 선택하며. 혹시라도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은 모조리 챙겨왔다.
[자세히 말씀해보시죠.]“저 녀석을 굳이 육지로 유인할 필요 없이. 이곳 바다 위에서 전력을 다해서 상대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물건이에요.”
[흠.]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안젤라는 여기서 이대로 기세를 잇는다면. 주현우에게서 그녀가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으리란 확신을 가졌다.
“여기서 육지로 전장을 옮긴다면. 아무리 조심해도 민간인 피해가 나올 텐데. 그건 당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잖아요.”
[···.]주현우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물론, 그가 거절하진 않을 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독선적이기는 해도, 그의 행보는 악인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조건은?]됐다.
안젤라는 주먹을 꾸욱 쥐었다.
“있기는 한데. 대단한 건 아니에요. 나는 민간인 목숨까지 거래하려 드는 수전노는 아니니까요.”
그래도 거래는 통했다.
씨익, 안젤라는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에 마야 언니한테 들었는데. 당신, 요즘 가문 연합이라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 있다면서요.”
[···.]“거기 나도 껴줘요.”
현우는 잠시 침묵했다.
안젤라 록펠러는 아마 전혀 모르고 제안한 것이겠지만.
이건 솔직히···.
현우의 입장에선 호박이 저절로 굴러온 셈이었다.
록펠러 가문.
안 그래도 그들을 이쪽에 끌어들일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 아닌가.
“다만 이건 록펠러 가문이 아닌. 저 개인, 안젤라 록펠러를 통해서 맺는 인연인 거예요. 그 점 하나만 확실히 해주면 돼요.”
[좋습니다.]하지만.
여기서 고작 하나의 이득만으로 만족하는 건. 현우로서는 전혀 성에 차지 않는 검소한 결과나 다름없었다.
호박이 굴러 들어왔으면.
그 넝쿨까지 뽑아 쥐어버리는 것이 바로 주현우였다.
[대신, 저도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그건···.
안젤라 록펠러는 물론이고.
자신의 명성을 신경 쓰는 존 록펠러까지. 아무런 대가 없이 확실하게 이용해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
“이런 씨발···.”
버서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젠 더 이상 놀랄 생각도 들지 않는군. 설마, 자연재해에 가까운 해일을 저런 식으로 막아낼 줄이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다하다 이제는 해일마저도 지워버리는 지경에 도달하다니. 이건 도저히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꼴이 아닌가.
“저, 버서커님···.”
“생각 중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연 부하.
그러나 버서커는 그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저으며 입을 다물게 했다.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아도.
어차피 녀석이 무슨 소리를 지껄여 올지는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할 것인가.’
매번 변수를 창출하는 주현우.
녀석 덕분에 또 한 번, 이렇게 시작부터 일이 어그러지게 되었다. 지난 시칠리아 섬의 악몽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본래 계획은 간단했다.
레비아탄이 일으킨 혼란을 틈타.
플라잉 더치맨을 부산에 상륙시키는 것.
그렇게 새로운 전쟁의 방아쇠를 당겨버릴 작정이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은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티폰도 해치웠던 놈이다.’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된다.
그 이후로 오래 지나진 않았으나.
버서커는 주현우가 더욱 강해졌으리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제 녀석은···.
자신이 감당하기 불가능한 초거대 변수가 되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다니엘 블랙 또한. 주현우라는 변수를 감당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찮은 필멸자들─]머릿속을 울리는 낯선 목소리.
그건 실제 귀에 들리는 음성이 아닌.
드래곤 등의 특별히 격과 지성이 높은 마족만이 가능한 일종의 전음이었다.
그러나 고작 그것만으로도.
SSS급 헌터 중에서도 상당한 힘과 경험을 쌓은 버서커의 손발이 파르르 떨려왔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할 시간이었다.
‘승리를 장담하긴 어려워.’
저건 드래곤 중에서도 최상위종.
지금까지 등장한 드래곤 종의 마족과 비교하면. 녀석들이 도마뱀 붙이 따위로 보일 수준의 강대한 존재다.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만은 확실하나.
이전, 시칠리아 섬에서 티폰을 거의 혼자 힘으로 해치웠던 주현우다. 심지어 지금은 거기에 아이언 나이트, 존 록펠러까지 붙어 있는 상황.
그리고 곧.
그의 시야에 두 개의 비공정이 해신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플라잉 더치맨의 스텔스 효과로 인해.
그들에겐 이쪽이 보이진 않겠지만. 여기서 가만히 대기만 하고 있다간 해신과 전투에 말려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안 되겠군.”
버서커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간다.”
그는 이내 몸을 돌렸다.
여기서 승산이 모호한 싸움에 전력을 소모하기 보단. 전력을 온존하여 이후 있을 본격적인 전쟁을 대비하는 편이 안전하다.
“하지만 버서커님!”
부하 하나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직 소환된 마족은 멀쩡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아무 소득도 없이 게이트 시드만 사용하고 돌아갔다간. 다니엘님께서 그 책임을 반드시 추궁하실 겁니다!”
“···내게 훈계라도 할 셈인가?”
“그, 그건 아닙니다만···.”
황급히 말을 주워 담는 녀석.
버서커는 인상을 쓰며 그의 어깨를 밀쳤다.
이따위 웃기지도 않은 실랑이를 벌이는 까닭이. 전부 주현우의 탓이라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닥치고 명령에 따라라.”
그런데 그 순간.
콰앙─!
플라잉 더치맨의 갑판에 푸른 섬광이 내리 꽂혔다. 갑자기 벌어진 이상 현상에 모두가 얼어 있는 가운데.
“크, 헉!?”
섬광 속에서···.
한 명의 인영이 튀어나와 버서커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그 일련의 사건은 불과 3초도 되지 않아 일어났기 때문에. 다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제자리에 우뚝 서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영의 정체를 파악하곤 깨닫고 말았다. 그렇게 당혹감에 굳어버렸던 잠깐의 시간이 치명적인 실수였다는 것을.
“자, 잠룡···!?”
“뭐?”
머리를 붙잡힌 채.
버서커는 어이없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째서 여기에···!”
“날파리부터 잡으려고.”
그러나 그건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그는 머리를 붙잡은 손을 떼어내려 힘을 쓰며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녀석을 죽여라!”
“이젠 변명도 없군.”
현우는 픽, 웃음을 흘렸다.
“뭐, 이번엔 도망은 못 치겠지.”
주위는 바다다.
녀석이 도주를 선택하기 위해선. 우선 이 플라잉 더치맨의 통제권을 되찾아야 할 텐데. 이미 현우가 승선한 이상, 그럴 가능성은 전무했다.
“으, 으아아!”
블랙 가문의 헌터.
등급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장 앞에 있던 녀석이 검을 빼들고 현우에게 덤볐다. 현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서렸다.
“그래, 한 번 해보자고.”
버서커의 머리를 움켜쥔 채.
현우의 신형이 푸른 섬광으로 화해. 플라잉 더치맨의 갑판을 가로질렀다. 퍼억! 가장 먼저 나섰던 헌터의 머리가 내뻗은 주먹에 그대로 박살났다.
“끄윽, 망령의 축복을 발동시켜라!”
발버둥치는 버서커의 외침.
그의 명령에 따라 부하들이 움직였고. 곧, 플라잉 더치맨의 갑판 위에 수많은 푸른 망령들이 나타났다.
망령의 축복.
이는 플라잉 더치맨을 기준으로 반경 50m에 적용되는 결계다. 지속되는 동안, 적의 생기를 훔쳐 아군에게 이전하는 상당히 까다로운 기능.
‘하지만 명확한 약점이 있다.’
현우가 우레불꽃을 펼쳤다.
그를 향해 다가가던 플라잉 더치맨의 망령이 일순, 비명을 지르며 푸른 연기로 화해 사라졌다.
“시, 신성력···!”
누군가 숨을 삼켰고···.
말 그대로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