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대균열, 붕괴(1)
“···이곳입니다.”
호세 페레즈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
그곳에서 현우는 아순시온 거리 한복판을 가로지른 거대한 균열을 목격할 수 있었다.
‘확실히 지진으로 인해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균열은 아니다. 자연적이라기엔 주변 대기에 마나가 너무 짙게 퍼져 있어.’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 내부로 향할수록 마나 농도가 짙어지는 거대한 균열을 바라보며. 현우는 지금껏 어떤 때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류한나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현우를 불렀다. 그러나 현우는 그녀에게 대답하는 대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거대한 균열.
이는 분명 현우가 기억하고 있는 미래의 ‘대붕괴’와 동일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 기억이 정확하고 지금 눈앞의 것이 그것과 완벽히 동일한 균열이라면.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로 치달은 셈이었다.
‘회귀한 후로 가장 골치 아픈 상황이군.’
현우는 침음성을 흘렸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눈앞의 대균열 때문이었다.
전생의 존 록펠러.
그 역시도 저 대균열 아래에서 목숨을 잃었다. 단순히 대지진과 동시에 발생한 붕괴로 인한 추락사는 아니었다.
‘저 아래엔··· 해신 이상으로 위험한 보스급 마족이 도사리고 있다. 존 록펠러 또한, 그 마족에게 목숨을 잃었었고.’
다행히 주영미가 있다곤 하나.
앞으로 6년 후의 존 록펠러와 지금의 그녀는, 일신의 무위로만 따진다면 거의 비등한 수준일 것이다.
그렇다는 건.
결국, 주영미 역시도 저 대균열에서 자력으로 빠져나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는 추론밖엔 남지 않는다.
“덕춘아.”
현우의 부름에 덕춘이가 슬며시 소매 아래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쉬익···.”
“혹시, 여기서 두 사람이 느껴져?”
“···.”
녀석은 잠시, 빤히 대균열 아래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쉭!”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은 영물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긍정의 뜻이란 것을 충분히 알아들을 만했다.
“아···!”
류한나가 안도감에 탄성을 흘렸다.
주영미와 주건우.
현우의 희망적 예측대로···.
두 사람은 저 아래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현우가 그들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 살아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리고 찾아낸 후에도 저 깊은 대균열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일반적인 게이트처럼 내부에 도사리고 있을 보스를 토벌해야 할 테니까.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건.
거기까지 모두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의 일이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군.’
현우는 잠시 대균열을 바라봤다.
여기서 두 사람을 잃을 순 없다.
단순히 정이라는 감정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주건우는 회귀 이후 지금까지 현우 본인이 공을 들여 키워낸 인재.
그리고 주영미의 경우는 여러 방면에 있어 천무그룹이라는 거인을 움직이게 만드는, 필수 불가결한 톱니바퀴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톱니다.
‘블랙 가문과 전쟁이 시작된 지금. 두 사람은 내게 있어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전력이나 다름없다.’
결국에 이건.
애초부터 답이 나와 있는 문제다.
“선택지는 둘 중에 하나겠네요.”
“···.”
류한나가 꿀꺽 침을 삼켰다.
현우는 여전히 균열 아래를 향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저 아래로 가서 직접 두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나마 희망적인 상황이라면 둘을 구출해오는 것.”
“자, 가죠.”
“어느 쪽으로 말씀이십니까.”
류한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본래의 현우라면 두 말할 것도 없이 후자를 선택하겠으나. 이성적인 선택은 당연하게도 전자이기 때문이었다.
저 거대한 균열 아래.
두 사람이 살아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애초에 대지진 발생 이후.
수많은 마족들이 저 아래에서 기어 나왔으니. 아래엔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마족들이 득시글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저 아래죠.”
“···역시, 그쪽을 선택하시는군요.”
류한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위험하겠죠.”
위험할 수도 있다가 아니다.
저 아래는 백퍼센트 위험하다. 미래를 알고 있는 현우조차도 대균열 아래에 어떤 마족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현우에게 있어서 그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까진 벌어진 일들의 대부분이 현우의 기억 속에 있던 일들이었으나.
언제까지고 그런 일들만 터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리고 정보라면 이미 충분하다.
저 아래에 지금으로부터 약 6년 후의 존 록펠러라는, SSS급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를 죽인 마족이 도사리고 있다는 정보.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위험에 대한 대비는 어느 정도 마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실은 현우 자신과 주영미가 지닌 무위가 곧 그에 대한 근거였다.
‘일단, 대균열 내부로 진입해서 두 사람과 합류만 한다면. 서로의 생존율은 배 이상으로 불어나게 된다.’
미래의 존 록펠러라고 해도.
현재의 현우와 주영미, 두 사람이 힘을 합친 수준엔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저 아래에 무엇이 있든, 상대하기엔 모자람이 없는 전력이 되겠지.
“그럼, 지금 바로 지원을 부르겠습니다. 마침 수색팀도 근처에 있을 테니. 대략 5분 이내로 이쪽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아뇨.”
현우는 호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S급 헌터인 그가 대장인만큼.
수색팀이라고 해봐야 A급 수준의 헌터 몇으로 구성된 것이 전부이리라. 그들은 오히려 저 대균열 아래에선 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당장 5분이라는 시간도 아까웠다.
“아니, 설마 두 분이서만 진입하시겠다는 겁니까. 두 분께서 뛰어난 헌터기는 하지만. 그건 너무 무모한 선택 같습니다.”
“···무모하진 않을 겁니다.”
류한나가 짧게 답했다.
그녀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일견, 저렇게 대책 없는 선택으로 보여도. 지금까지 그녀가 보고 겪은 현우는 항상 치밀한 계획과 계산에서 비롯된 선택을 반복 해왔다는 것을···.
아니,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가 만들어낸 결과는 항상 그렇게 보였다는 것을 말이다.
“호세 씨는 여기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주세요. 만에 하나, 여진이나 마족 분출이 다시 시작될 수도 있으니까.”
“어, 어어···!”
호세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현우는 대균열 사이로 몸을 날렸다.
***
“앞에 뭔가 있어.”
“···저도 느꼈어요.”
주영미는 슬쩍 주건우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흙먼지 너머를 향해 안력을 돋우며.
조용히 마나를 끌어올려 주위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출력을 조절한 창염을 흩뿌렸다.
이는 기습에 대비한 자세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다수의 인원이 한꺼번에 덤벼들 경우. 바로 창염의 출력을 높이며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해두는 것이었다.
‘···지금 이쪽으로 다가오는 녀석들이. 바로 일의 흑막일 수도 있겠어.’
녀석들이 신중함을 기한다면.
단순히 그녀를 이런 이변 속으로 빠트리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숨통을 끊고 확인사살까지 하려고 계획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주영미였더라도.
이와 비슷한 계략을 꾸몄다면,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온다.’
주영미는 기감을 최대로 날카롭게 세웠다.
혹여 저들이 기습을 위해 마나를 움직일 경우. 일대에 흩뿌려놓은 창염이 그보다 한 발 먼저 타오르며 삽시간에 모든 것을 불태울 것이다.
“···.”
조용히.
상대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길 10초 정도 지났을까. 녀석들은 이쪽의 기척을 감지한 기색은 전혀 없이. 무방비해 보이는 태도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먼저 공격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상대측에서도 이쪽을 막 눈치 챈 기색이 느껴졌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유리한 순간, 바로 창염을 운용하려던 주영미의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만! 공격하지 마세요!”
낯익지만 친숙하진 않은 목소리.
이윽고 흙먼지를 뚫고, 두 손을 들어 올린 채. 천천히 눈앞에 나타난 이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우리는 적이 아녜요!”
“그쪽은···.”
멘도자 가문의 젊은 가주.
남미에선 유사(流沙)라는 별호로 불리는 로이스 멘도자를 비롯한, 열 명 남짓한 멘도자 가문의 생존자들이었다.
평소 말끔한 정장과 카리스마 있는 태도로 유명한 그녀였으나.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대균열로 떨어진 탓인지. 정장은 엉망진창에 전신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이들도 전원, 주영미와 마찬가지로 이변에 휩쓸린 모양이었다.
“살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쪽에 비하면 별 볼일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도 나름 남미에선 SSS급 헌터에 버금갈 정도로 손에 꼽히는 실력자에요.”
툭툭, 몸에 붙은 흙을 터는 그녀.
자신 있게 이야기한 것 치고는, 대균열로 떨어지며 어딘가에 세게 부딪힌 건지. 오른 눈이 두툼하게 부어 있었다.
“그 눈은?”
“이, 이건, 우리 가문 사람들을 추락에서 보호하다 생긴 거예요. 아무튼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이 정도 추락에 비명횡사할 정도로 허접하진 않다는 거죠···.”
그녀는 제 눈두덩을 매만지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끄응, 그리고 혹시나 오해할지도 몰라 말해두는 건데. 우리 멘도자 가문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
“말이야 그렇겠지.”
주영미는 콧방귀를 뀌었다.
설령 멘도자 가문이 결백할지라도.
그리고 주영미 본인 역시, 그게 사실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들로 인해 이번 사건에 자신과 아들이 연루되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잠시 로이스를 노려보던 주영미는 이내 서슬 퍼런 기세를 거두었다. 여기서 이렇게 낭비할 시간은 없다.
“멘도자 가문의 책임을 묻기 전에, 우선은 이곳에서 탈출하는 것이 중요하니. 일단 그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도록 하지.”
“후, 훌륭한 판단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는 로이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멘도자 가문의 인원들이 더해진다면, 이런 곳이야 금방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요.”
“···뭐, 특별한 대책이라도 있나?”
“그, 그건 아니지만···.”
주영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런 머저리 같은 녀석들과 협력하기 위해. 이곳 파라과이까지 직접 와서 함정에 빠졌던 걸까. 그녀로서는 영 불쾌해질 수 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완전히 대책이 없는 건 아녜요!”
“말해봐.”
턱 끝을 까딱이는 주영미.
로이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구겨진 양복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기하학적 무늬로 빼곡히 장식되어 있는, 어둠속에서도 은은한 빛을 발하는 금색의 비늘이었다.
“우리 멘도자 가문이 보유한 신화 등급 아티팩트, 케챨코아틀의 황금 비늘이에요. 10년 전, 이곳 아순시온에 열린 게이트를 공략하고 손에 넣은 물건이죠.”
“자랑하라곤 하지 않았는데.”
“아, 아무튼···.”
입을 우물거리는 로이스.
그녀는 이내 손바닥 위에 비늘을 올리곤 가만히 두 눈을 내리감았다.
“여기에 마나를 불어넣고. 원하는 것을 떠올리기만 하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는 비늘.
이윽고 몇 바퀴 회전을 하더니. 비늘은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킨 채 우뚝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자, 보시다시피 이렇게. 내가 바라는 것이 있는 방향을 정확히 알려준답니다. 던전이나 게이트 내부에서 이만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건도 없죠.”
“흠, 확실히 그러네.”
주영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건, 놀라움이라기 보다는 다른 꿍꿍이가 있는 눈빛이었다. 물론, 득의양양한 얼굴로 우쭐대고 있는 로이스는 그 찰나의 눈빛을 읽지 못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멘도자 가문에게 뜯어낼 만한 물건이 하나 생겼네.’
주건우의 목숨을 구하는 데에 일조한 해신 소재의 정장. 그에 대한 빚을 청산하는 데에 저 정도 아티팩트라면 충분하겠지.
이렇게.
현우가 모르는 사이 뜻하지 않은 보상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주머니에 들어갈 예정이 되어버렸다.
***
그런데···.
균열을 빠져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
케챨코아틀의 황금 비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한지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이들은 예상치 못한 존재와 마주했다.
“잠깐.”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모습.
전신이 타오르는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골렘. 녀석이 이 앞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를 막고 서 있었다.
“···신규 마족인가!”
로이스 멘도자.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품에서 총열이 길쭉한 리볼버를 꺼내들었다. 그녀의 애병인 유일 등급 아티팩트 ‘마탄의 사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멘도자 가문의 생존자들 역시, 자신들의 가주를 따라 각자 무기를 꺼내들며 전투 준비태세를 갖추었다.
그때, 주영미가 조용히 손을 올려.
그들이 섣부른 행동을 하는 것을 막았다.
“단순한 신규 마족은 아니야.”
이곳까지 이동하면서.
그 짧은 시간에도 스무 마리에 가까운 마족을 상대하긴 했지만. 이번엔 직감적으로 그 격 자체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범한 골렘이 아니야.’
주영미는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그녀는 저 마족의 정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그러나 일단 술식의 흔적이 느껴지진 않는 것을 보아 마법사가 만들어낸 인공 골렘은 아닌 듯 했다.
저 마족이 품고 있는 방대한 마나를 통해. 최소한 한 가지 사실 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보스급은 확실하고, 아무리 못해도 최소 SS급 이상의 마족일 것이 분명해. 어쩌면 SSS급이 될 지도 모르겠네.”
“피해가는 길을 찾는 건 어떤가요.”
정보가 없는 이상.
여기서 도박을 할 수는 없다.
저게 유일한 길이 아닐 수도 있으니.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가며, 다른 통로를 찾는 편이 안전하고 현명한 선택이리라.
“아니, 그럴 순 없어.”
하지만 또 하나.
그들이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 비늘, 저 마족을 가리키고 있잖아.”
케챨코아틀의 황금 비늘.
이곳에서 나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야 할 그것이, 지금은 눈앞에 있는 저 마족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네요.”
로이스는 꿀꺽 침을 삼켰다.
이로서 선택지는 없어졌다. 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결국 탈출을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상성이 좋진 않겠어.’
주영미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일단은, 멘도자 가문.
이들은 대개 총기류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권능 자체가 파괴력보단 정교함과 집중력에 관련되어 있어 저런 골렘 형태의 마족과는 상성이 좋지 않다.
그리고 그녀와 주건우 또한.
창천신공과 창염의 근본은 불꽃과 열에서 비롯된 파괴력이니. 전신이 불타는 돌덩이로 이루어져 있는 저 마족과는, 아무래도 상성이 좋을 수가 없다.
‘현우처럼, 아예 창천신공을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킨 경우가 아니라면. 결국, 불과 불의 대결이나 다름없겠지.’
그렇다면 승부는 화력에서 갈린다.
당연하게도 순간 화력은 그녀가 더 뛰어날 수 있겠지만.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심각하게 불리해진다.
마족의 체력과 마나량은 인간과 비할 바가 아니니까.
빈 말으로라도 좋다곤 하긴 어려운 상황.
“로이스 멘도자, 너는 네 가문의 혈족들과 최대한 화망(火網)을 형성해서 저 마족의 움직임을 묶어라. 그리고 건우 넌, 뒤에서 네가 제일 자신 있는 창염갑을 사용해 멘도자 가문 혈족들을 보호하도록 하렴.”
“그럼 어머니는···.”
“선두는 내가 맡으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영미는 일행의 선두에 섰다.
“이번 기회에 잘 보렴 건우야.”
이견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그녀의 주위로 창염이 어우러지며 거세게 휘몰아치더니. 이내, 흩날리는 푸른 꽃잎이 되어 대균열의 어둠 속을 봄날처럼 밝혔다.
창천화(蒼天花).
한 장 한 장이 모조리 순수한 강기 이상의 응축된 파괴력과 절제된 고열을 품은, 오직 그녀만의 절기.
“천무그룹의 혈족은 언제나 최강이 되어 주변을 이끌어야 하는 거란다. 설령 그게, 얼마나 불리하고 비합리적인 상황이라 해도 말이지.”
한때, 천무그룹의 염화(炎花)로 불리며. 전 세계 남성 헌터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웠던 그녀의 모습이 이곳에서 재현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