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불꽃(1)
“으음···!”
기지개를 켜는 주형석.
그는 고개를 한 바퀴 돌리고 어깨를 붕붕 돌리며 한바탕 준비운동을 하는 것 마냥 몸을 풀고는, 그제야 여유로운 자세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야, 내가 한창 재미있을 부분에 도착한 것 같군. 첫 타자를 네크로맨서에게 양보한 보람이 있어.”
이윽고 차원 쐐기를 발견한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이쪽을 향해서 돌아섰다. 그리곤 당연하게도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현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오, 현우 아니냐.”
씨익, 이를 드러내며 웃는 주형석.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미소에 진짜 반가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미소는···.
오래전 잃어버린 장난감을 되찾은 아이가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그렇기에 현우는 그를 가만히 노려보며 전신에 우레불꽃을 피워 올렸다.
주형석은 반가움 보다는, 적의가 앞설 수밖에 없는 상대이다.
심지어 유럽지부 때의 네크로맨서처럼.
현우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 온 것이 확실한 그이기에. 아무리 현우라고 해도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적어도 한 번, 현우와 주양태 회장을 완벽하게 기만하고 천무그룹을 배신했던 사내이니까.
“오랜만에 보는 삼촌일 텐데. 그리 반갑지 않은 눈치구나. 혹시 이쪽 세계는 벌써 내 정체가 드러나기라도 한 건가?”
능청스럽게 묻는 물음에 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주형석에게 있어 충분한 대답이 된 모양이었다.
“하, 조금 더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이러면 과거의 나를 이용할 수도 없겠군. 아버지는 분명 내가 배신자라는 것을 알았으면 분명 고민 없이 죽여 버렸을 테니.”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는 주형석.
“아!”
이내 그는 손뼉을 쳤다.
뭔가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 그는 두 눈을 반짝이며 해쭉 입을 벌려 웃었다.
“아버지는 살아 계신가?”
그는 재차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을 거란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아무래도 대답을 기대하기 보단, 현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더 궁금한 듯했다.
“만약 그렇다면, 이쪽의 나는 꽤나 무능한 놈이었겠는데. 이것 참, 다른 자신의 치부와 마주하는 건. 생각했던 것보단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군!”
어깨를 으쓱이는 주형석.
그는 다시 차분히 주위를 둘러봤다.
“네크로맨서는?”
“죽었지.”
“설마, 현우 네가 죽인 거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미래에서 왔다곤 해도. 그건 의외의 소식이었나보다. 현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주형석은 의외의 소식이긴 했어도. 네크로맨서의 사망에 크게 개의치는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매우 흥미롭다는 듯이.
현우를 바라보는 눈빛에 서린 호기심이 한층 그 빛을 더했을 뿐이었다.
“이건 의외인데.”
고개를 꺾는 주형석.
그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더니. 홀로 뭔가를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네크로맨서 그년이 먼저 넘어간 이후로 뭔가 많이 틀어진 것 같군. 그리고 지금 꼴을 보아서는 아무래도 그 멍청한 년의 계획은 전부 실패했던 거겠지?”
“···글쎄.”
“아무래도 내가 정답을 맞춘 것 같군.”
큭큭, 웃음을 흘리는 주형석.
이윽고 그는 품속에서 작은 힙 플라스크를 꺼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내용물을 쭈욱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크으···.”
작게 탄성을 흘린 그는 입가를 슥슥 문질러 닦아냈고. 그때 그의 손등에 독특한 향취를 풍기는 푸른 액체가 묻어나왔다.
그리고 현우의 예리한 후각은, 잠시 맡은 것만으로도 그 향기의 정체를 분명하게 파악해냈다.
그건 그가 알고는 있었으나. 두 번에 걸친 인생동안 한 번도 사용은 해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저건···.’
모르페우스의 환영초.
가끔 게이트나 던전 내부에서 발견되는 식물의 일종으로, 일반인보다 강인한 헌터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할 정도로 강력한 마약성 소재였다.
“이게 뭔지 아는 눈치로구나.”
“···역겹군.”
“뭐, 흐흐, 그리 생각할 수도 있지. 나도 처음엔 똑같이 생각했으니 말이야.”
힙 플라스크를 한 번 흔들고는 도로 품속에 집어넣는 주형석.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흐려지며 그나마 남아 있던 총기를 잃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제는 이게 없으면 하루도 버티기가 힘들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지. 저쪽에선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이뤘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이 꼴이 되어 있었으니.”
낄낄 웃음을 터트리는 주형석.
아무리 봐도 그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그를 만만하게 봐도 괜찮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설령 이성을 잃는다 해도.
천무그룹의 혈족은 기본적으로 강하다.
그리고 주형석은 몇 안 되는 천무그룹의 혈족 중에서도. 주양태 회장을 제외하곤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였으니.
“자, 그럼···.”
주위 일대의 마나가 흉포한 기세로 날뛰기 시작한다. 주형석의 입술이 씰룩 움직이며 열렸다.
“잡담은 이쯤하고.”
사납게 이를 드러내는 미소.
그리고 그는 양팔을 활짝 펼쳤다.
거대한 살의가 현우는 물론, 일대에서 오크 군단의 잔당을 소탕하고 있던 헌터 전원을 덮쳤다.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쩌저저저적─!
주형석의 등 뒤에서 순식간에 뻗어 나오는 불길한 검은 실금들, 그를 중심으로 공간이 갈라지고 있었다.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은 불길한 감각. 곧이어 펼쳐진 광경은, 꾹 닫혀 있던 현우의 입술을 반쯤 열어젖힐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
갈라지는 공간 너머.
무언가 현우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대한 눈.
현우는 저것이 분명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는 외신의 일부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미처 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 거대한 눈은 빠르게 감겨들어 어둠으로 화했고. 이내 갈라진 공간의 실금 사이에서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결계···.’
아니, 현우와 주형석 두 사람만 존재할 수 있도록. 주변 공간을 통째로 박재한 꼴이다.
현우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고민하는 사이. 어둠은 별빛 하나 존재하지 않는 한밤의 풍경처럼 빠르게 주위 공간을 잠식해 나갔다.
“아, 너무 빨리 죽진 마라.”
그 어둠 속에서···.
주형석의 두 눈이 요사스러운 붉은 빛을 발했다.
그의 곁에서 피어오르는 축염강기와 별개로, 낯익은 불길한 기운이 물씬 풍겨 나왔다.
“피차 즐겨봐야지.”
***
그 무렵···.
차원 쐐기와 조금 떨어진 전방의 방어선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끝없이 밀려드는 것만 같던 마족의 숫자가 눈에 띄게 확연히 줄어 있었다.
“키르륵···!”
이성 없이 달려드는 마족.
녀석의 머리통을 발로 후려차 터트려 버린 주양태 회장은,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회장님?”
조심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구동철에게 주양태 회장은 가만히 오른손을 들어 조용히 할 것을 명령했다.
“이상하군···.”
곧, 주양태 회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순간, 구동철의 머릿속에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쳤으나. 다행히도 그가 생각하던 최악의 경우가 벌써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저쪽.”
주양태 회장은 이내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구동철이 그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하늘 위로 까마득하게 솟은 거대한 사슬, 차원 쐐기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올게다.”
“예? 대체 뭐가···.”
구동철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가 채 질문을 끝내기도 전.
주양태 회장이 꺼낸 말을 설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늘로 솟은 사슬과 함께 지면이 한바탕 요동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기운은···.”
주양태 회장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본래 존재해서는 안 될 누군가의 기척이 그의 기감에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동철아.”
그는 조용히 구동철을 불렀다.
“예, 회장님.”
“네가 여기를 잠시 맡고 있거라.”
“···예?”
구동철이 되물었으나.
주양태 회장에게서 대답을 돌려받을 수는 없었다.
이미 그가 되묻고 있던 순간.
주양태 회장은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고. 이내, 한 마리의 거대하고 푸른 화룡이 되어. 사슬이 존재하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
콰앙─!
거친 폭음이 고막을 때린다. 분명 녀석을 향해 주먹을 뻗으며 달려들었는데. 정신을 차린 순간엔 어느새 지면을 구르고 있었다.
“끙···.”
현우는 머리를 흔들며 몸을 추슬렀다.
분명 녀석의 움직임을 안력으로 포착했고. 마나의 흐름까지 읽고 있었다. 속도 면에선 분명 자신이 우위였던 것까지도 기억났다.
‘힘에서 밀렸다.’
뻗었던 오른쪽 주먹이 뒤늦게 욱신거렸다.
만일 조금만 단련이 부족했다면 맞부딪힌 순간, 주먹이 터져버렸을 거다. 고속으로 달려오는 기차에 멋모르고 주먹질을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크흐흐!”
그러나 멀쩡하지 않은 것은 주형석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팔은 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하지만 미리 모르페우스의 환영초를 복용해둔 덕분일까. 그는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 듯이 입가를 씰룩였다.
“좋구나···.”
그의 눈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동시에 꺾여 있던 팔이 기이한 소리를 내더니. 이리저리 뒤틀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주 좋아!”
팔을 한 바퀴 돌리는 주형석.
그 모습은 분명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버서커.’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광화(狂化)와 재생력.
이건 분명히 그 녀석의 권능이다.
대체 미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주형석은 그 권능을 손에 넣었거나 빼앗은 것이 확실했다.
“하하하!”
터져 나오는 광소.
이윽고 두 눈을 붉게 물들인 주형석이 주먹을 거세게 휘두르며 응축된 축염강기를 폭사시켰다.
꽈아앙─!
창염이 폭발하며 거센 폭압을 형성했고. 일순 용오름과 같은 힘이 현우를 허공으로 밀어냈다.
“많이 성장했구나!”
주형석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도저히 이 상황에 독담으로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뱉으며. 그는 허공에 부웅 떠오른 현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국은 과거!”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7초식 화룡점정(畵龍點睛)
내뻗은 주먹에서 솟구친 축염강기가. 한 마리의 푸른 화룡이 되어 현우를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아!
주변의 마나마저 화룡이 격렬한 열기에 끓어오르는 듯했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보려 한들. 이 주형석 이후로는 어떤 미래도 바꾸지 못할 거다!”
아직 닿지도 않았는데.
사나운 열풍에 현우의 머리칼이 나부꼈다.
‘···쉽진 않겠어.’
현우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주양태 회장과 직접 비무를 펼쳤던 이후. 이 정도까지 강한 일격과 마주해본 경험은 전무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엔 회귀 후의 이야기.
회귀 이전의 현우는, 언제나 이런 싸움만을 해왔다.
매번 불리했고.
창천신공과 창천무는 사용하지도 못하는 몸이었기에, 상대를 압도하는 싸움은 백에 한 번이 있을까 말까.
천무그룹의 광룡.
현우가 그런 별호로 이름을 알린 배경에는, 뼈를 깎고 피를 쏟고서야 겨우 상대의 살점이나마 물어뜯을 수 있던 과거가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가공할 위력을 품은 주형석의 화룡점정이. 어느덧 목전까지 치닫는 상황에서도 현우는 차분히 그가 내뻗은 주먹의 경로와 마나의 흐름을 살폈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틈을 찾아 움직였다.
‘여기다.’
일점(一點).
화룡으로 화한 축염강기의 불꽃이 몸에 닿는 순간, 현우는 빠르게 보법을 밟으며 한 줄기 푸른 번개로 화했다.
인지의 영역을 넘어.
신속(神速)에 도달한 번갯불이 화룡의 몸체를 꿰뚫었고. 그 여세를 몰아 주형석을 향해 내리치는 뇌전이 되었다.
“!!”
꽈르릉─!
폭발하는 우레불꽃이 주형석을 강타했다.
재빨리 창염갑을 둘러막긴 했으나.
그 여파로 인해 허공에서 지면에 냅다 매다 꽂히듯이 떨어지고 말았으니. 현우에겐 아주 좋은 반격의 기회를 내준 셈이었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초식 재천(在天)
“개조식, 파천(破天).”
단순하지만 빠르고 강한 초식.
주형석은 반사적으로 두 팔을 들어 올려 막으려 했으나. 창염갑을 뚫고도 전해진 강한 충격이 요동치며 그의 전완을 뒤틀어 부숴버렸다.
“흠!”
주형석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설마 그 상황에서 자신의 공격이 막히고 심지어 반격까지 해낼 거라곤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당황하진 않았으나.
의외라는 표정으로 해쭉 이를 드러내어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두 번째구나.”
무엇이 두 번째인지.
현우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리고 주형석 역시, 현우가 물어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제멋대로 운을 띄우고 답까지 알아서 던져주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일일이 세다간 끝이 없을 텐데.”
현우는 이죽거리며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회심의 일격을 성공적으로 꽂아 넣었으나.
그게 치명타로 이어지진 못했다. 찌르르한 감촉이 손뼈를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흐흐, 하여간 정이 안 가는 놈이군. 이런 점에선 비명횡사한 네 아비를 꼭 닮은 것 같구나.”
빈정대는 주형석.
그러나 현우는 그 도발에 넘어가진 않았다. 솔직히 이제 와서 아버지를 들먹인다 해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에게 별다른 감정이 들리도 없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어.”
기괴한 뒤틀림 소리.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의 두 팔은 빠르게 원상복구 되었다.
이윽고.
주형석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주위를 휘감고 있던 축염강기가 스르륵 움직이더니. 이내 거칠게 회전하며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숨을 들이쉬는 것마저 쉽지 않다.
‘저것도 창염갑의 응용인가.’
그러나 적어도 현우가 알기로는, 회귀 이전에 주형석은 저런 기술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지금껏 숨기고 있었던 걸까.
“···뭐, 상관없어.”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여기선 녀석을 이기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달아오른 공기 너머에서···.
현우는 깊은 숨을 내쉬었고.
그렇게, 지면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재생 불가능한 일격이 필요하다.’
지금 바라는 목표는 단 한 가지.
저 축염강기 폭풍을 꿰뚫어 부수고.
녀석의 머리통을 한 번에 부숴버리는 것.
타오르는 불꽃 너머로.
현우는 전신을 부딪혀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