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불꽃(2)
“빌어먹을.”
류한나가 어깨를 부르르 떨며 내뱉었다.
그녀는 일그러진 얼굴로 공간을 단절하듯 나타난 검은 어둠을 노려보았다.
평범한 결계는 아니다.
그러나 그걸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이 결계를 뚫고 내부에 갇힌 현우를 지원할 방법뿐이었다. 당장 뾰족한 해결방법이 떠오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류한나는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렸다.
‘마법에 가깝지만, 마법은 아니야.’
완전히 미지의 힘.
천무그룹 무영대 소속의 헌터로서 오랜 시간을 보내온 그녀였으나. 이런 종류의 결계는 난생 처음 마주해보는 것이었다.
“어떤 것 같습니까.”
권준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 묻기는 했지만, 그의 표정은 어느 정도 류한나의 대답을 짐작한 듯이 어두웠다. 그리고 그가 짐작한대로 그녀의 입에서 나올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럼···.”
“적어도 오수진님께서 오신다면 상황이 달라질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분이 오셔도 해결될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도 문제다.
쏟아져 나오던 마족 군단은 잠시 잠잠해진 상태지만. 이게 그리 길지 않은 소강상태일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지면 아래를 파고들어간다면?”
권준성이 색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실제로 일부 결계는 지면과 접촉하는 부분까지만 적용이 되는 맹점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불가능합니다.”
류한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그렇게 견고한 결계가 그리 허술할 리도 없겠지만. 그녀가 파악한 바로는 결계를 구성하고 있는 미지의 힘이 지면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으음···.”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건 당장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없어졌다는 소리였다. 권준성은 입가를 매만지며 곤혹스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어떡하죠?”
주건우가 더듬더듬 물었다.
그러나 그의 질문에 시원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다는 소리였다.
결계는 부서지지 않는다.
외부에서 파괴할 수 없다면 결국 해법은 둘 중에 하나 밖에 없다. 안에서 파괴하거나 저절로 해제되기를 기다리거나.
그리고 두 가지 모두.
지금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지금으로서는···.”
류한나는 꾸욱 어금니를 깨물었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걸로 보입니다.”
“허어, 이것 참···.”
권준성이 침음성을 흘렸다.
당장 결계 안으로 끌려들어간 주현우도 문제지만. 협회 소속의 헌터를 이끌고 있는 그에겐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이거 난처한 상황이 됐군.’
이변의 최심부인 이곳까지 진격한 이유.
그리고 진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주현우라는 존재 덕분이었다.
물론, 권준성 본인이야.
그에게 목숨을 빚진 과거도 있고. 그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이곳까지 왔으나. 그를 제외한 협회의 헌터들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금방 불안감이 퍼져나갈 거다.’
그리고 그의 추측은 곧, 현실이 되었다.
협회의 헌터 사이에서 나름 인망이 있는 헌터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물론, 류한나나 주건우에게 직접 묻거나할 정도로 대범하진 않았다.
“실장님, 이대로 있을 겁니까?”
“방법을 찾아봐야지.”
권준성이 대답했으나.
그건 그가 생각하기에도 그다지 만족스런 대답은 아니었다. 질문을 던졌던 헌터는 입을 몇 번 우물거리더니. 슬쩍 류한나의 눈치를 보며 입술을 뗐다.
“그럼, 일단 후퇴해서 천무그룹 본대와 합류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대로 버틴다고 해서 하늘에서 해결법이 떨어지는 것도 아닐 텐데.”
그는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 처음 그 의견을 입 밖으로 꺼낸 것이 그였을 뿐. 협회 측의 헌터들 대부분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 맞소.”
“언제 또 마족 군단이 소환될 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겠지.”
“글쎄, 아예 후방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틈에 제대로 전방 방어선을 다시 구축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저마다의 의견이 그들 사이에서 난립하기 시작했다. 권준성은 그들과 류한나 사이에서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한 셈이었다.
“아무튼 여기서는 후퇴를 고려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천무그룹 측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결국, 한 명의 헌터가 나서서 천무그룹의 의견을 물었다. 그건 말이 좋아 질문이었지. 실은 여럿이 그녀에게 후퇴를 요청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다들 진심입니까.”
류한나가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녀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SSS급 헌터 중에서도 중위급에 도달한 그녀의 마나가 거친 기세로 화하여 생각 없이 말을 꺼낸 헌터들을 압박했다.
그게 그녀의 답이었다.
하지만 그 답은 간단하긴 했어도. 헌터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가볍게 끝나지는 않았다.
“큭, 끄윽···!”
앞으로 나섰던 헌터가 가슴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강한 기세를 정면에서 받은 탓에 숨통이 죄여든 것이었다.
“누구 덕에 여러분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건지. 다들 벌써 까맣게 잊어버리신 것 같군요.”
천무그룹의 혈족들과 비교하면 한참 모자란 실력이긴 하지만, 류한나 그녀 역시도 명색이 SSS급에 도달한 헌터다.
이들과 당장 혈투를 벌인다 해도.
적지 않은 숫자를 길동무로 데려갈 수 있을 자신 정도는 있었다. 울컥, 치밀어 오른 분노가 그녀의 눈빛에 타오르는 살기를 실었다.
“떠올리게 해드립니까?”
“하, 한나씨.”
주건우가 그녀를 불렀다.
이대로 간다면 원치 않는 유혈사태가 일어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이곳에 남을 겁니다. 협회 측에선 후퇴를 하던 말던 알아서들 하십시오. 대신 그 선택에는 차후 반드시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언급해두겠습니다.”
기세를 거두며 류한나는 말했다.
그건 경고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협회의 헌터들은 류한나의 기세에서 해방되어 겨우 숨을 돌리면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감각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황청의 모든 인원들 또한, 이곳에서 용사님의 귀환을 기다릴 겁니다.”
성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가 한 마디를 거들었다. 그녀의 선언에 헌터들 사이에서 동요가 감돌았다.
그녀의 합류 여부에 후퇴의 안정성이 달려 있으니. 천무그룹의 두 사람과 성녀까지 이곳에 남는다면, 오히려 후퇴가 더욱 위험한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굳어진 분위기 속에서 권준성이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걸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전면 후퇴는 아니어도 일단 지금 우리에게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예, 말씀해보십시오.”
류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빛은 여전했다. 권준성은 괜히 긴장되는 기분으로 마른침을 한 번 삼키며 입을 열었다.
“우선 우리 측에서···.”
그런데 그때.
쐐에에엑─!
거친 파공음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붉게 물든 서울의 하늘을 향했다.
하늘에서 무언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용?”
누군가 중얼거렸다.
황당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게 바로 정답이었다. 곧,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른 불꽃을 휘감은 거대한 화룡이었다.
한국의 헌터라면 모를 리가 없는 존재.
“저, 저건···!”
주양태 회장.
지금 이건 말 그대로, 하늘에서 해결법이 떨어지고 있는 격이었다.
***
한편···.
결계 내부의 상황은 류한나와 주건우의 바람과는 달리. 그리 긍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편은 아니었다.
“놀랍군.”
주형석이 탄성을 흘렸다.
손대중 없는 공격에 이곳저곳이 부러지고 으깨진 현우였으나. 재생의 불꽃이 그의 상처부위를 휘감으며 모든 상처를 지워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재생력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현우 네가 그런 권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거지?”
“···.”
“그래, 비밀은 많을 수록 좋지.”
그러나 주형석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지금의 현우는, 이미 다 잡은 먹잇감이나 다름없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결계 안에 갇힌 순간부터.
이미 현우는 호랑이 굴에 끌려 들어와 있는 셈이다. 그러니 충분히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그때 확실히 숨통을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너무 얕보고 있군.’
그렇다면 그 방심조차 이용할 뿐.
현우는 조용히 인피니티 코어에서 마나를 끌어올렸다. 주형석이 호랑이라면 현우 또한 그에 못지않은 맹수다.
적어도 사자···.
아니, 과장을 조금 보태서 용으로 우화하기를 앞두고 있는 이무기 정도는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나를 너무 많이 소모하는 권능이군.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큭큭, 웃음을 흘리는 주형석.
“그래도 쉽게 망가지진 않을 테니. 즐길 시간이 늘어나는 점은 나쁘지 않아.”
그는 축염강기를 일으켜 전신을 휘감으며 현우를 향해 다가왔다. 극한까지 압축된 열기의 폭풍이 마주하고 있는 현우를 집어삼킬 듯 날뛰었다.
그때,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공간 안으로 전달되고 있는 충격이었다. 문제는 그 힘이 결계를 뚫기엔 한참 미약하고 부족하다는 걸까.
“네 동료들이 쓸데없는 노력을 하는 모양인데.”
주형석이 히죽 웃으며 속삭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엔 밖에서는 절대 이 싸움에 개입할 수 없을 거란 확신이. 이미 강하게 서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그렇겠지.’
그리고 현우 역시도.
두 사람을 둘러싼 결계가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주형석의 힘만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몰라도. 여기서 느껴지는 힘은 분명, 미지의 영역에 가까운 외신의 힘이었으니까.
“자, 그럼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지금부터 제대로 목숨을 걸고 싸워보도록 하자꾸나.”
현우는 살짝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건 마치, 지금까지는 진심이 아니었다는 소리 같이 들리지 않는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현우의 입장에선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건지.
주형석의 상태가 일변했다. 신체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은 물론, 그의 외형까지도 기괴한 변화를 시작했다.
뚜둑, 뚝···!
전신의 근섬유가닥이 찢어지며 팽창한다. 그건 가히 기괴하다는 단어 외에는,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변화였다.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광화를 제대로 쓰기 시작했군.’
저게 녀석의 전력인 걸까.
현우는 이내 가볍게 고개를 저어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버렸다. 그리고 우레불꽃을 피워 마찬가지로 전신을 휘감았다.
“확실히 뭔가 다르다 했는데.”
우레불꽃에 화답하듯.
주형석 역시 한걸음 다가왔다. 그의 전신을 휘감은 검은 불꽃이 숨 막히는 열풍을 만들며 몸집을 더욱 불렸다.
“그건 창염이 아니군.”
주형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현우가 실패한 후의 미래를 알지 못하듯.
녀석 또한, 회귀 이후 현우가 바꿔온 과거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레불꽃의 존재는 물론, 현우가 만들어낸 창천무의 개조식 또한 그에겐 미지의 영역이리라.
“알 거 없다.”
그렇다면, 그 또한 현우가 가진 이점이 될 수 있으므로. 현우는 말을 아꼈다. 주형석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하, 역시 건방져···!”
그게 대화의 끝이었다.
주형석이 거구로 지면을 꺼뜨릴 기세로 박차며 달려들었고. 축염강기의 열기가 현우의 폐부를 찌를 듯 목전까지 닥쳐왔다.
“우선 그 입부터 뭉개주마!”
일합(一合).
주먹과 주먹이 맞닿음과 동시에 거센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밀려난 쪽은 이번에도 역시 현우였다.
“하!”
기합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묘한 소리를 뱉어내며 주형석은 손을 휘둘렀다. 축염강기의 폭풍이 밀려난 현우를 향해 파도처럼 덮쳐왔다.
그러나 현우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른발을 거세게 굴러, 속절없이 밀려나던 몸을 정지시켰고. 그대로 닥쳐오는 열풍을 향해 돌진했다.
‘자살 행위를···!’
주형석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오히려 이건, 현우에게 있어선 새로운 활로를 여는 선택이었다.
우레불꽃의 화력은 주형석과 떨어진 축염강기의 열풍을, 한 순간 찢고 길을 열어젖히기에 충분했으니까.
화아악─!
주먹을 앞으로 내뻗은 순간, 축염강기의 폭풍이 좌우로 갈라졌다. 우레불꽃이 그 틈을 파고들어 타오르며 찰나를 조금 더 늘려 투로를 열었다.
‘힘과 내구력은 내가 밀린다.’
그렇다면 승부를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면 그만이다. 우레불꽃을 사용할 수 있는 현우는 적어도 속도만큼은, 주형석에 비해 확실한 비교우위에 있었다.
그래서 그 이점 하나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벽력(霹靂).
축염강기의 폭풍 사이로 열어낸 틈을 향해. 현우는 한줄기 푸른 번갯불이 되어 빠르게 쏘아졌다.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신속.
주형석이 눈을 깜빡이며 현우의 움직임을 포착하려 하는 시점에, 이미 그는 녀석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6초식 염뢰(炎雷)
‘개조식, 뇌번천극(雷蕃天極).’
모든 일격에 전력을 실어야한다.
현우는 전신의 기혈을 터트릴 듯이 팽창시켜. 가능한 최고의 출력으로 자신만의 권능, 우레불꽃을 손끝에서 피워 올렸다.
파파─팍─!
수십 갈래의 우레불꽃이 현우의 손에서 뻗어 나와 주형석의 거구를 강타했다. 그러나 그 위력은 녀석의 움직임을 아주 잠깐 멈추는 데에 그쳤다.
“크, 재미난 재주로구나!”
주형석이 고함을 질렀다.
그는 다시금 축염강기를 퍼트리며 현우를 향해 거대해진 손아귀를 들이밀었다. 여기서 잡히면 뒷일은 보장할 수 없다.
현우가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녀석의 축염강기가 거칠게 부풀며 시야와 기감을 동시에 교란했고. 그 탓에 우측에서 날아드는 주먹을 파악하지 못했다.
“!!”
급하게 방어를 해봤으나.
주먹에 실린 위력은 범상치 않았다. 버텨내지 못한 현우의 몸이 뒤로 날아갔고. 지면을 몇 번 나뒹군 끝에 결계의 끄트머리에 처박혔다.
바로 일어나려 했지만.
충격의 여파가 남아 있던 탓에 한 번 제자리에서 휘청이고 말았다. 조금 뒤늦게 척추를 타고 고통이 느껴졌다.
“···큭.”
주먹에 얻어맞은 우반신은 물론.
전신의 근육과 뼈마디를 샅샅이 훑는 격통. 회귀 전의 현우였다면, 방금 일격으로 즉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버서커의 권능, 광화를 사용하는데도. 이렇게 정교한 전투를 할 수 있다니.’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불합리하다.
단점은 쏙 빼놓고 권능의 이점만 취한 셈. 만약 버서커 본인이 보았다면, 피눈물을 흘릴 정도로 부러워했겠지.
“이걸로 또 한 번, 기회가 사라졌구나.”
주형석이 이죽였다.
물론, 일격에 즉사시킬 수도 있었지만. 방금 일격은 일부러 손대중을 한 결과였다. 그는 이 싸움을 즐기고 싶었다.
시간은 자신의 편일 테니까.
그는 천천히 현우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자자, 다시 일어나야지!”
그런데.
현우가 다시 균형을 잡는 순간···.
“흐음···?”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감각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주형석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 고개를 들었으나. 그곳엔 빈틈없이 공간을 뒤덮고 있는 결계가 있을 뿐이었다.
‘뭐지?’
그렇게 생각하자 마자.
꽈아앙─!
결계는 물론이고 닿아 있던 지면까지. 그 위로 거인이 주먹을 내리치기라도 한 것처럼. 한바탕 거센 진동이 공간을 덮쳐 뒤흔들었다.
무언가 결계를 통과했다.
주형석 역시, 그 사실을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일반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것도 이 결계를 뚫지 못한다.
애초에 이건 결계조차 아니었다.
본래 세계와는 완벽히 격리되어 외신의 힘으로 벼려진 공간, 그러니 어떤 스킬이나 마법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체 무엇이···.
“···!!”
그때, 주형석이 뺨을 떨었다.
공간 전체에 펼쳐진 그의 기감에 무언가 이질적인 존재가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존재감이 다가온다.
그건···.
주형석과 주현우, 두 사람 모두에게 익숙한. 아니, 익숙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기척이었다.
“역시, 살아계셨나!”
주형석은 즉시 마나를 거두며 물러났다.
그의 안색엔 숨길 생각조차 없는 환희가 서려 있었다.
“···아버지!”
콰르르르─!
이윽고 그의 부름에 화답이라도 하듯. 수 백 갈래로 나뉘어진 축염강기가 하늘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