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불꽃(3)
“크하하!”
커다란 광소와 함께.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재회한 가족을 제 품에 끌어안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주형석은 쏟아지는 축염강기 다발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화아악─!
공기와 마나를 동시에 삼키는 소리가 주위에 격하게 일었고.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격렬한 축염강기의 폭풍이 좌우로 넓게 회전하며 펼쳐졌다.
‘저건···.’
현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보인 광경이지만.
녀석의 축염강기 또한, 일반적인 천무그룹 혈족의 것이 아니었다.
그 명백한 증거는 하나.
지금 녀석이 펼치고 있는 축염강기는, 실시간으로 한 없이 불길한 검은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검푸른 색으로 물든 축염강기와 청명한 푸른색의 축염강기가 일제히 충돌했다. 그 여파는 실로 압도적이라는 말 외에는 형언할 방법이 없었다.
공기마저 증발한다.
그런 단어를 연상케 할 정도로 거센 열기가 주변 일대를 잠식했고. 그 열기 한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주형석은 산채로 부글부글 끓어오름과 재생을 반복했다.
“─!”
성대 또한 불타버린 탓에.
그는 광기서린 웃음 대신, 색색대는 숨을 터트리듯 내뱉으며. 온몸으로 미처 상쇄하지 못한 푸른 축염강기를 받아냈다.
그렇게.
소나기처럼 매서운 기세로 떨어지던 수 백 갈래의 축염강기가 겨우 잠잠히 잦아든 끝에야.
“크, 허어···!”
주형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찰나에 불과했으나.
주형석으로선 도무지 짧게 느낄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아주 잠시나마 그가 믿고 있는 재생력이. 타오르는 불꽃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마저 느꼈던 것이다.
“···음, 죽진 않았군!”
이곳저곳이 불타고 녹아내려 소실되거나 끔찍한 형태로 엉겨 붙어 있긴 했지만. 그건 그에게 있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곧, 주형석의 전신에서 검푸른 색으로 침잠된 불꽃이 일었고. 그는 스스로를 다시 태우며 자신의 신체를 올바른 방향으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순간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보는 것 같군. 이것 참, 과거로 오자마자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게 된다니.”
현우에게 던지는 말은 아니었다.
신체의 재생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첫 인사는 성공적으로 받아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되려, 이제 시작이라고 해야 맞겠지.
‘이제야 납시는군.’
일전의 거대한 존재감이 이곳을 향해 다시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주형석은 서 있던 자리에서 세 발자국 물러섰다.
그의 감각은 정확했다.
콰아앙─!
불과 몇 초가 지나지 않아. 그가 서 있던 자리가 폭발하며. 무언가 충돌하듯 지면 위로 내려섰다.
“하···!”
주형석의 눈이 빛났다.
지면에 내려선 것의 정체는 푸른 화룡.
아니, 그건 내려섰다고 하기 보단. 차라리 지면을 통째로 갈라버렸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누군가 싶었다만.”
화룡을 이루고 있던 불꽃이 흩어진다.
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희끗한 백발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체격과 주위를 자연스레 압도하는 분위기를 지닌 노인···.
주양태 회장이었다.
“역시나 네 녀석이었구나.”
그는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 순간의 현우에게 있어서는, 주양태 회장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 든든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양태 회장, 확실히 존재 자체만으로 압도적인 변수를 창출해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만 의지할 생각은 없다.
현우는 주형석의 주의가 그에게 팔린 사이. 빠르게 몸을 추슬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결계의 벽면에 처박혔던 등판에 찌르르한 감각이 남아 있긴 하나. 움직이지 못할 이유는 하나 없이 완벽하게 외상을 회복한 상태였다.
“흐흐···.”
그 순간에도.
주형석의 시선은 현우를 향하지 않았다. 그는 주양태 회장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붉은 눈을 희번덕였다.
곧, 아까부터 그의 입가에 옅게 떠있던 미소가 뒤틀어지며 사나운 광기를 띄는 일그러진 흉소로 변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활짝 두 팔을 벌리는 주형석.
그는 누가 봐도 과장된 태도로 주양태 회장을 반겼다.
물론, 그걸 모를 주양태 회장이 아니었고. 당연하게도 주형석을 향한 그의 시선은 고울 수가 없었다.
“동아시아 최강의 혈맹기업 천무그룹의 지존이자!”
그러나 주형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신난 표정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워진 입을 놀렸다.
“천상천하 유아독족인 우리 아버지 주양태 회장님 아니십니까!”
“···주형석.”
주양태 회장.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둘째 아들의 이름을 읊조렸다. 설마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으리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쪽의 주형석은 그의 손으로 직접 죽였다. 세상에 그 누가 자신의 손으로 죽인 이가. 다시 살아 돌아올 거라 생각하겠는가.
“많이 추해졌구나.”
그의 눈동자에 복잡한 심경이 스쳤다.
정말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그걸 놓칠 주형석이 아니었다. 그는 주양태 회장의 반응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 건지. 배를 부여잡고 낄낄 웃으며 말했다.
“왜, 이런 꼴로 다시 볼 줄은 몰랐습니까?”
“그렇지.”
주양태 회장은 순순히 인정했다.
“샤오 가문에서 내 손으로 직접 네 녀석의 숨통을 끊어주었으니. 그걸 다시 볼거라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겠느냐.”
“흠···.”
주형석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꺾더니. 품속에서 힙플라스크를 꺼내어. 남은 내용물을 모조리 입안에 들이부었다.
“끄윽.”
트림을 하며 입가를 슥슥 문지른 주형석.
그의 주위로 모르페우스의 환영초 냄새가 그윽하게 퍼져나갔다. 그 향기를 모를 주양태 회장이 아니었다.
“···역겹군.”
혀를 차는 주양태 회장.
주형석은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이쪽에서야 이런 꼴을 보기도 전에 죽었지만. 여기서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서 말입니다. 당신 아들이 이렇게 역겹게 살아남았습니다.”
주양태 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형석 역시,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이야기였으므로.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텅 빈 힙플라스크를 등 뒤로 휙, 던져버렸다.
“뭐, 사실 저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쪽에선 샤오 가문도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됐지.”
그런 가벼운 한 마디와 함께.
주양태 회장이 성큼 걸음을 옮겨. 한 발, 주형석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은 주먹을 뻗어도 닿지 않을 거리.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서로가 고작 그 거리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실력을 지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나.”
그건 질문일까.
주형석이 그에 뭐라 대답하려 입을 벌리는 찰나. 주양태 회장이 거세게 발을 굴러 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
답 따위를 요구한 게 아니었다.
당연히 주형석은 대답을 삼키곤 그 진동을 피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질문은 던지지 않겠다.”
주양태 회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눈빛으로 주형석을 바라봤다. 그건, 더 이상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미련이 남은 눈빛은···.
더더욱 아니었고 말이다.
“모처럼 다시 만난 아들인데. 대화도 없이 바로 죽이겠다고 선언하시다니. 이러니 아들 노릇 하기가 힘들었던 거라니까.”
이죽거리는 주형석.
그러나 주양태 회장은 전혀 감정의 동요 없이 축염강기를 피워 올렸다. 적에게 향하는 극열의 권능이 이글거리며 주형석 주위의 공기를 뜨겁게 달궜다.
“나도 처음은 어렵더군.”
담담한 한 마디.
그것으로 이미 주양태 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불 보듯 뻔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양태 회장의 의지에 따라.
피어오른 축염강기가 한바탕 휘몰아치며 응집. 이윽고 두 마리의 거대한 화룡으로 화했다.
그를 중심으로 허공을 유유히 유영하는 화룡. 주양태 회장이 가볍게 손을 뻗자. 두 녀석이 허공에서 우뚝 멈추어 주형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두 번이 어려울까.”
“···어려울 겁니다.”
주형석의 전신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다시금 광화를 사용하는 듯했으나. 이번엔 현우를 상대할 때보다 훨씬 진심이 된 건지. 그 기세가 가히 심상치 않았다.
“이쪽의 내가 어땠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 한심한 실패자 놈과 나는, 하나부터 열 까지 모든 게 다를 테니까.”
검푸른 축염강기가 사나운 파도처럼 그의 신체를 휘감았다. 그건, 일전에 대균열에서 주건우가 보여주었던 요원지화(燎原之火)와 매우 닮아 있는 기술이었다.
자기 파괴와 재생.
두 가지의 상반된 힘이 그의 신체 전반에서 동시에 일어나며. 버서커에게 빼앗은 권능인 광화를 더욱 강하게 발현시켰다.
‘과연, 저게 진심인가.’
현우는 꿀꺽 침을 삼켰다.
버서커의 권능, 광화는 상처입고 죽음에 가까워질 수록 강한 힘을 제공한다.
까다로운 권능이긴 하나.
녀석이 가진 재생력엔 분명한 한계가 있었고. 그 속도 또한, 모든 종류의 부상을 빠르게 복구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저건, 축염강기를 사용해 스스로 자기 파괴를 계속 반복하면서도. 창천신공의 압도적 마나를 바탕으로 자기 파괴 속도 이상의 재생을 가능케 한 것으로 보였다.
단점을 완벽히 극복한 셈.
‘···쉽지 않겠는데.’
버서커 본인이라면 모르겠으나.
저건 천무그룹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던 주형석이다.
심지어 현우가 실패한 미래에서 이곳으로 건너온 그이니. 이전에 알고 있던 주형석보다 훨씬, 강할 것은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
아무리 주양태 회장이라 해도.
그리 가볍게 여길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 사실은 당연하게 주양태 회장 본인 역시,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거라.”
아주 짧은 한 마디를 던졌을 뿐.
아주 미약한 동요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아주 조금은, 놀란 기색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건만. 주형석은 기대가 빗나간 광경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기대하고 있던 것과 다른 상황에 마주해야만 하는 이는, 비단 주형석뿐만이 아니리라.
“그런데···.”
쿠르르─!
주형석의 뒤에 솟아 있던 차원 쐐기가. 불길한 기운을 흩뿌려대며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미 늦으셨습니다.”
낄낄, 웃음을 흘리는 주형석의 뒤로.
차원 쐐기가 일순 지면을 향해 파고드는가 싶더니. 닿아 있는 지반이 움푹 아래로 꺼지며, 창백한 피부를 가진 거대한 손이 튀어나와 사슬을 끌어당겼다.
‘저건···.’
설명 따윈 없어도 느낄 수 있었다.
저게 바로 외신의 편린이라는 듯. 굳이 느끼려 들지 않아도 불온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사방팔방에 흩뿌리고 있었으니까.
차르르륵─!
묵직한 사슬 마디마디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손은 차원 쐐기를 잡고 지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제야.
주형석의 시선이 드디어 현우를 향했다.
“자, 이걸로 서울의 종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푸욱 꺼진 지면에서.
그 수만 해도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마족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 일부는, 현우조차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저쪽의 넌, 막지 못했지.”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그 끝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 아직, 제대로 외신의 편린이 강림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점일까.
“이번이라고 뭐가 다를까.”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주현우와 주양태 회장, 이 세계에선 최고의 변수 둘을 앞두고서도 말이다.
‘그럴 만도 해.’
수많은 마족의 이글거리는 눈빛.
그리고 점점 제 스스로를 불태우며 거대한 몸집을 불려나가는 주형석까지. 이를 앞에 두고 위축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은 달랐다.
“현우야.”
“예, 조부님.”
한 발 앞으로 나서는 주양태 회장.
허공을 유영하는 두 마리의 화룡이 그의 등을 뒤따랐다.
“가자.”
응원도 위로도 아닌 말.
그러나 현우에겐 그 한 마디가 어떤 말보다 든든하게 느껴졌다.
‘머릿수가 깡패는 아니지.’
전부 쓸어버리고.
광역 공격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강한 놈만 남기면, 기실 남는 머릿수는 그리 많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하나뿐이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0초식 화신(火神)
주양태 회장이 직접 고안한 총 18초식에 이르는 창천무 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오직 광역 파괴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
그를 현우의 식대로 해석하고.
재구축하여 만들어낸 독창적인 개조식.
“개조식, 천뢰신(天雷神)”
우레불꽃의 섬광이 번뜩였고.
결계의 끄트머리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뇌신의 형상이 현우의 등 뒤로 현현(顯現)한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타오르던 마족들의 눈빛이 일순 사그라진다. 저 녀석들 또한, 본능적으로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시죠.”
부러, 주형석에게 들리도록.
현우는 그리 말하며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흡사 태산과 같은 뇌신이 손바닥을 쥐어 주먹을 만들었고. 그 위로 푸른 우레불꽃이 뇌기(雷氣)로 화해 아지랑이처럼 서렸다.
“하! 멋지군!”
주형석의 외침.
문득, 현우는 이 자리에 마야 카일리나 안젤라 록펠러가 있었다면. 반드시 나왔을 것 같은 하나의 별호를 떠올렸다.
‘라이트닝 펀치···.’
그 끔찍한 별호를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현우는 입을 꾹 다물고 뇌신의 형상을 움직였다.
“···뇌전신권(雷電神拳).”
두 마리의 화룡.
그리고 하나의 뇌신이 내지른 거대한 주먹이 그 앞의 모든 것을 휩쓸며 전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