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차원 쐐기(3)
“저기, 뭔가 오고 있습니다!”
“비행 마족인가!”
흠칫 놀라며 하늘을 보는 권준성.
“괜찮습니다.”
현우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불안한 눈빛으로 하늘을 보던 헌터들의 시선이 일제히 현우에게 쏠렸다.
기대와 놀라움이 섞인 눈빛들.
설마, 저것도 천무그룹의 지원군인 걸까. 아마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리 생각했다면 반쯤은 정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건 아군이니까요.”
“아군···?”
상공에서 천천히.
이쪽을 향해 하강하고 있는 거대한 물체. 이윽고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무렵, 이들은 그 물체가 거대한 비공정이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메, 메르카바다!”
순백색의 불꽃으로 휘감긴 비공정.
곧이어 그 비공정의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본 주건우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메르카바!”
“그거라면 교황청의···.”
다른 이들 역시, 녀석처럼 소리를 지를 정도는 아니었으나. 다들 모르는 눈치는 아니었다.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현존하는 몇 대 안되는 비공정 중에서도.
현우의 페일 라이더와 록펠러 가문의 쌍둥이 전함을 제외하면, 남은 후보 중에서는 자타공인 가장 유명한 비공정이 바로 저것일 테니까.
“끼에에엑!”
그러나 너무 눈에 띄었던 걸까.
레서 데몬이라 불리는 비행 마족 무리가 빠른 속도로 날아올라 메르카바를 향해 돌진했다. 만일 저게 평범한 헬기였다면 이는 치명적인 실책이 되었으리라.
“키시잇!”
찢어지는 괴성과 함께.
족히 서른 마리는 되어 보이는 레서 데몬 무리가 일제히 입을 벌리고 메르카바를 노리고 검붉은 불덩이를 쏘아냈다.
그러나 저건···.
헬기 따위와 비교되지 않는 아티팩트다.
일순, 메르카바를 중심으로 광휘가 뿜어져 나왔고. 놈들이 쏘아낸 검붉은 불덩이는 물론, 놈들 자체를 비추며 그대로 증발시켜 무(無)로 되돌려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잦아들지 않은 광휘는 점점 그 영향력을 확장하더니. 이내 지상까지 도달해 헌터들을 비추었다.
“오오···.”
쏟아지는 찬란한 광체.
그건 막대한 신성력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아우라였다. 이윽고 그 빛에 닿은 헌터들의 안색이 급속도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음, 기운이 샘솟는 것 같은데!”
“상처가 낫고 있어!”
떨어진 체력과 자잘한 상처들이 낫는 것은 물론이었고.
“내 손가락이··· 돌아왔다!”
심지어는 마족을 상대하며 잘려나갔던 손가락 까지도.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새롭게 돋아나는 것이었다.
기적.
이 현상은 말 그대로 그렇게밖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건···.”
권준성은 멍한 표정으로 하늘에서 이쪽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는 중인 순백의 비공정을 올려다보았다.
‘상당히 고위계의 회복 스킬이다.’
이렇게 넓은 범위에 산개해 있는 대상을 한꺼번에 치유할 수 있는 스킬. 그런 대단한 스킬을 흔히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적어도 그가 파악하고 있기로는 국내엔 저런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치유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교황청 내부에서도 마찬가지.
전 세계에서 신성력을 저만한 아우라로 만들 만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교황청의 성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설마···.”
권준성의 추측은 금방 확신이 되었다.
더 지켜볼 필요도 없이. 순백의 방주, 메르카바에서 성녀 본인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하늘하늘 나부끼는 금발.
불길한 붉은 빛을 띄고 있는 서울의 하늘과 대비되는 그녀의 모습은, 실로 성녀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신성한 자태와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서, 성녀다!”
몇몇 헌터들이 그녀를 알아봤고.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의 입장에선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개 헌터가 현장에서 교황청의 성녀를 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지면에 착륙한 메르카바에서 아그네스가 하선했고. 그녀는 여전히 벙찐 표정의 헌터들 사이를 뛰듯이 지나 현우에게 한 달음에 다가왔다.
“용사님!”
환한 미소를 짓는 아그네스.
반면에 현우는 용사라는 단어에 움찔 어깨를 떨었다.
잠깐 안 본 사이에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들어도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별호였다. 적응과는 별개로 그리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이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용사님께서 이끄는 성전에 참가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왔습니다!”
“예, 뭐···.”
현우는 쓰읍, 쓴 입맛을 다셨다.
“빠른 지원 감사드립니다.”
“용사님의 부름이라면, 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설령 그곳이 지옥 끝이라 하여도 한 달음에 찾아갈 것입니다.”
“···.”
그동안 뭘 잘못 먹은 건가.
현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달리 뭐라 대꾸할 맘도 들지 않았다.
“그간의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야 저도 굴뚝같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군요.”
“네, 그럼 어서 저 불온한 사슬을 제거하러 가시지요. 저와 교황청의 사제단이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현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 측 헌터 분들은 둘로 갈라져서 각각 비공정에 나눠 타죠. 여기서 도보로 이동하는 것보단, 그쪽이 비교적 위험부담이 적을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협회 헌터들이 각각 메르카바와 페일 라이더에 나누어 탑승한 후.
선수에서 주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현우에게. 슬그머니 다가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주현우님.”
바로 권준성이었다.
“예.”
“그, 용사라는 건···.”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했던 모양인데. 그 질문에 현우의 입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솔직히 그건, 그에게 있어 그리 달가운 질문은 아니었다. 용사고 뭐고 현우가 원치 않은 괴상한 별호였으니까.
“그건···.”
현우의 머릿속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은 하나. 성녀, 아그네스의 정수리에 강력한 꿀밤을 한 방 선사해주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죠.”
“아, 예.”
권준성은 입을 다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협회의 기획조정실장으로 활동하며. 눈치만큼은 일신의 무위보다 훨씬 많은 성장을 경험한 그였다.
괜히 물고 늘어졌다가는, 자칫 주현우의 역린을 건드릴 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기에.
더 이상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조용히 다짐했다.
***
잠시 후.
성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와 메르카바의 합류 덕분에 일행은 생각했던 것보다 한층 수월하게. 차원 쐐기가 박혀 있는 천마산 인근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 이건···.”
권준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역시도 젊은 나이에 불구하고 상당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 헌터였으나. 지금 눈앞의 풍경은 그마저도 위축되게 할 만큼 심각한 것이었다.
“마족들이 방어선을 구축했군요. 그것도 우리 협회에서 하던 것과 꽤나 비슷하게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다.
마족들이 인간, 그것도 헌터의 전략을 베껴 적용한다니. 만일 이번 일이 헌터 사회에 알려진다면, 크나큰 충격과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이 사태를 잘 해결한 후의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
“전부 오크인 것 같은데. 하나같이 일반 오크는 아니군요. 최소 B급 이상 던전의 보스급은 되는 녀석들입니다.”
류한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저 군단, 혹은 군락을 구성하고 있는 오크는 전부 SS급 이상의 위험도를 가진 보스급이었다.
‘오크 워마스터, 그리고 워록까지···.’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저것들은 말로만 군단이 아니라. 정말 체계적인 계급과 지휘를 갖춘 집단임이 분명해보였다.
“쉽진 않겠군요.”
권준성이 조심스레 말했다.
협회 고위직에 오른 덕분에 분석 계열의 고성능 스킬을 여럿 손에 넣어 습득한 그다. 이 정도 거리라면 완벽하진 않아도 대략 적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엔 일반 오크지만. 가장 약해 보이는 개체도 S급은 우습게 뛰어넘는 마나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종 같은 걸까요?”
류한나가 물었다.
그러나 권준성도 그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낼 수는 없었다.
“음, 그건 모르겠지만···.”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한 가지.
저 오크 군단이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위험할 거라는 사실 뿐이었다.
“제 분석 스킬들을 통해 파악한 결과. 전부 범상치는 않은 힘을 지니고 있으니. 최대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그리고 곧, 이들의 눈에 들어온 특이점이 하나 더 있었다.
엉성하지만 견고하게 세워진 군단의 방어선 뒤로 보이는,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기괴한 형상의 살덩이 구조물.
“저건, 일종의 토템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대답하긴 했으나. 그는 저 형상의 정체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우상(偶像).
오크 워록의 주술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토템인데. 그 재료로 무엇이 사용되는 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이상하다.’
저건 현우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오크 워록의 우상과는 달랐다. 모양부터 주변에 흩뿌리는 아우라까지 모든 게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또한, 그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관찰하는 것만으로 보이는 정보는 대부분이 그리 대단하지 않을 테니까.
“아아, 이 얼마나 불경스럽고 역겨운 광경이란 말입니까! 저것들 전부를 신의 불꽃으로 정화해야 마땅합니다!”
아그네스가 격정적으로 외쳤다.
그건, 다분히 현우를 의식하고 꺼낸 말이었다. 교황청이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성화를 양도받은 이가 다름 아닌 현우였으니 말이다.
“···뭐, 동감이긴 합니다.”
어쨌든 현우로서도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저 광경이 불경스럽고 역겨운 거야 느끼기 나름이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마족 군단을 뚫지 않고서는 차원 쐐기에 도달할 방법은 없을 테니까.
“대충 파악도 끝난 것 같으니. 이제 슬슬 움직이는 편이 좋겠군요. 시간을 지체해서 좋을 건 없을 테니까요.”
“계획이 있습니까?”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는 권준성.
현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계획이라는 것은 매우 간단했다.
방어선을 구축한 저 마족들은 전부 괴물 같은 위험도를 지닌 존재들이지만. 세상엔 마족이라고 불리는 괴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있기야 한데···.”
“말씀만 해주시면 따르겠습니다.”
“별건 아닙니다.
오히려 간단하기 짝이 없는 계획.
“망치와 모루 전술이라고 있거든요.”
“그거라면···.”
알기야 한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그건 두 진영이 맞붙는 상황에서. 본대를 모루로, 그리고 기동력이 뛰어난 소수 부대를 망치로 활용하여 적을 타격하는 전술이 아닌가.
“저희 측에서 망치로 활용할 만한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위험부담이 큰 전술이 될 것 같군요.”
“망치 역할은 제가 할 겁니다.”
그리고 그건.
매우 거대한 망치가 될 거다.
그 말을 끝으로.
현우는 프레이야의 룬망토를 꺼내 두르고, 홀로 오크 군단이 구축한 방어선을 향해 망설임 없이 뛰어나갔다.
***
과연, 계획은 효과적이었다.
그걸 전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그 여부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서 매우 달라지겠지만. 일단 실행 결과 자체만 놓고 보자면 아주 훌륭했다.
“반갑다. 돼지들아.”
갑자기 진영 한 복판에서 토템인 우상을 파괴하며 등장한 현우가. 주위 모든 오크를 학살하기 시작했고···.
“꾸, 꾸익!”
공포에 질린 외침과 함께.
일부 오크는 도망을, 그리고 다른 일부 오크는 현우에게 덤벼들었다. 선택은 극과 극이었으나. 그 결과만은 두 집단 모두 똑같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도망가다 잡혀 죽거나.
덤벼들다 맞아 죽거나.
“꾸에엑!”
오크 워록의 가슴팍에 뇌번천극을 꽂아 넣어 절명시킨 직후.
도끼를 휘두르려던 오크 워마스터에게 달려들어 머리통을 붙잡자. 녀석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꿰에엑!”
고막을 울리는 불쾌한 소리에 현우는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놈의 머리통을 쥐고 있던 오른손에 힘을 더했다.
콰드득─!
손가락이 두개골을 파고 들어가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온 직후. 녀석의 머리가 그대로 박살났고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추욱 힘없이 늘어졌다.
이후로는 반복이었다.
덤벼드는 녀석을 죽이고, 도망가는 녀석도 잡아 죽이는 단순한 작업을 얼마나 되풀이 했을까.
어느새 놈들의 수는 이제 군단이라 부를 수도 없게. 눈에 띄게 확연히 줄어들었고. 뒤이어 방어선을 완전히 밀고 전진에 성공한 헌터들이 오크 잔당을 섬멸하기 시작했다.
마무리는 그들에게 맡기고.
현우는 남은 오크 몇몇을 박살내며. 이 전투의 최종 목적지를 향해. 누구보다 앞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지면에 내리꽂힌 거대한 사슬의 앞까지 그리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었다.
‘···차원 쐐기.’
전생엔 존재하지 않았던 요소.
현우는 하늘 끝까지 솟아 있는 사슬을 위 아래로 훑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한 기묘한 마나의 흐름이 사슬 전체에서 느껴졌다.
거기에 왠지 모를 익숙함 까지.
이게 바로 외신(外神)의 힘이라는 걸까.
“이걸 파괴해야 한단 말이지···.”
그런데 그 방법을 고민하던 그때.
“···!”
드드드드─!
차원 쐐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는 분명히 새로운 이상 현상을 예고하는 전조 증상일 터.
‘뭔가 시작될 모양인데.’
현우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새로운 적이 나타날 수도 있고, 아니면 게이트 브레이크처럼 주위의 환경이 다시 변이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현우가 긴장이 서린 눈빛으로 차원 쐐기 주위의 마나 흐름에 집중하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쫘악─!
공간에 세로로 붉은 줄이 그어지더니. 누군가 그 안에서 손을 뻗어 공간 자체를 부욱 찢으며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건···.
상당히 낯익은 얼굴의 사내였다.
“···주형석?”
천무그룹의 배신자.
이번 생에는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가증스러운 혈족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