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만남(2)
“크음···!”
커다란 낭패였다.
온몸을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을 느끼며. 주양태 회장은 침음성을 흘렸다.
현우와 함께 다니엘 블랙에게 달려든 직후.
녀석은 두 사람의 출수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 기묘한 보법을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단순히 물러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녀석의 손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거대한 힘이 움직였고. 그건 이렇다 할 대비책을 시도하기도 전에 거대하고 격렬한 폭발이 되어 두 사람을 덮쳤다.
현우는 간발의 차로 빗겨냈지만···.
정면에 서 있던 주양태 회장은 아니었다.
결국, 거대한 폭발로부터 비롯된 반발력을 미처 모두 중화시키지 못한 그의 몸은. 마치 용수철처럼 뒤로 튕겨져 탑의 벽면을 뚫고 밖으로 날아갔고 말았던 것.
‘위력이 장난 아니군.’
탑의 벽면을 뚫고, 기이하게 굴절된 공간의 경계마저도 몸으로 박살낼 때까지도. 그가 온몸으로 받아낸 폭발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주양태 회장의 신체에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 그러나 굴욕적인 한 방에 당하고 말았다는 사실 만큼은, 어떻게든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잠시, 자신이 튕겨 나온 궤적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응시한 주양태 회장.
“하압!”
그는 기합을 내지르며 허공에서 몸을 한 번 크게 뒤집었다. 그리고 곧,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축염강기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포물선을 그리던 그의 신체가 마치 시간을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서서히 그 기세를 늦추더니. 이내 축염강기와 함께 허공에서 우뚝 멈춰 섰다.
‘빌어먹을 쓰레기가.’
그의 눈동자에 푸른 불꽃이 일었다.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축염강기는, 허공에 흩날리기를 멈추고 주양태 회장의 전신을 커다란 천처럼 휘감았다.
그리고···.
주양태 회장의 신형이 한 마리의 화룡으로 화했다.
화룡형(化龍形).
이는 창천신공의 극의에 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으로. 자신의 육체를 오롯이 축염강기로 변환시켜 권능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신체에 이상을 인지한 후로.
화룡형 같은 권능의 무리한 사용은 가급적 자제하려 했으나. 방금 몸으로 직접 체험한 일격을 통해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어중간하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녀석이 만들어낸 폭발은 마나를 통해 발현되는 권능과는 한참 동떨어진 극도로 순수한 의념이었다.
다시 말해···.
사용자의 의념을 통해 마나를 권능으로 벼리고. 또 그 권능을 통해 현실을 비트는 기존의 공식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완벽히 새로운 형태의 무(武)라고 할 수 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으나.
적어도 녀석이 의념을 통해 만들어낸 폭발만큼은 주양태 회장이 평생 일구어온 무학을 넘어서는, 권능 그 이상의 영역에 도달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그게 놈을 이길 수 없다는 절대적 지표는 되지 않는다.’
주양태 회장은 확신했다.
일신의 무위는 승부의 절대적 지표가 되진 않는다. 그리고 그 역시, 언제나 압도적 무위를 통해 찍어 누르는 전투만을 경험했던 것은 아니다.
최강.
천무그룹을 세운 이후로 오랜 시간 그렇게 불린 주양태 회장이었으나. 그는 단순하면서 복잡함을 품고 있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누구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건, 가장 강한 무위를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아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모두의 머리 위, 정점에 올라선 자를 가리키는 단순 명료한 호칭일 뿐.
‘그 오만한 태도가 오래가진 못할 거다.’
빠드득, 화룡이 이를 갈았다.
오로지 ‘창염’이라는 권능으로 만들어진 화룡의 입에서 푸른 불꽃이 위협적으로 튀어 올랐다.
그렇게.
한 마리의 화룡으로 화하여. 다시금 하늘을 가로질러 다니엘 블랙이 존재하는 격리된 차원 너머로 진입하려던 주양태 회장이었으나.
‘···음?’
곧,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공간의 경계를 뚫고 나온 직후에는 미처 경황이 없어 확인하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이곳은 그가 격리된 차원으로 진입했던 스위스의 베른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풍경.
이곳 또한, 모종의 이유로 곳곳이 파괴된 모습이 보였으나. 주양태 회장은 어렵지 않게 여기가 일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면을 밟고 서 있는 거대한 세 마리의 거인까지. 그가 가진 날카로운 안력이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큰 놈들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격한 분노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급속도로 차갑게 가라앉는다. 주양태 회장의 뇌리에 다니엘 블랙이 멋대로 지껄였던 여러 헛소리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명석한 주양태 회장의 두뇌는, 지금 벌어진 상황을 다니엘 블랙의 이야기와 몇 가지 추측을 통해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빌어먹을 녀석이 지껄였던 계약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가. 바로 이런 결과를 두고 말한 것이었나.’
마치 거대한 게이트처럼.
저 탑이 존재하는 황야의 공간을 중심으로, 녀석은 세계 각지를 연결해버린 모양이었다.
그 목적이 과연 무엇일지.
지금으로서는 확실하게 알아낼 방도가 없겠지만. 그게 분명 좋은 목적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리라.
“···블랙 가문의 음침한 애송이가. 매우 귀찮은 일을 벌였군.”
주양태 회장은 잠시 공간 너머를 바라봤다.
저 안에는 현우와 다니엘 블랙, 오직 둘 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만약, 여기서 그가 돌아간다면 이쪽의 승률은 현우 홀로 녀석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늘어나겠지.
하지만···.
이쪽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저만한 힘을 가진 거인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 SSS급 헌터로 구성된 한 개 분대 정도가 필요할 것이다.
당연히 그런 분대가 시기적절하게 이곳에 있을 가능성은 적다.
그리고 또 하나.
거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손자 주건우의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주양태 회장의 선택은 한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화룡으로 화한 그의 몸이 반대로 돌아섰다.
그건 선택이라기 보단.
그가 가지고 있는 주현우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차선책에 가까웠다. 그리고 둘 중에 보다 빨리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 쪽 역시도 이곳이었으니.
‘만약 이것까지 녀석의 계획이었다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굴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군.’
주양태 회장은 혀를 찼다.
그러나 놈이 나름 치밀하게 세운 계획에, 계산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가 믿고 있는 주현우의 존재 그 자체였다.
녀석이라면···.
아마 자신이 없더라도 그 누구보다 잘 해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참, 어쩔 수가 없군.”
작은 한숨과 함께.
쐐에엑─!
세 마리의 거인을 향해.
거대한 화룡이 그대로 내리 꽂혔다.
***
“자.”
다니엘 블랙이 손을 거두었다.
녀석이 일으킨 순수한 의념의 폭발로 인해. 탑의 벽면에 커다랗게 뚫렸던 구멍이 순식간에 매워지는 것이 보였다.
현우는 가늘어진 시선으로 그 광경을 노려보았다.
탑의 견고함은 상상 이상이다.
현우가 전력으로 신화를 사용한다면 일부 파괴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고작, 폭압에 밀려난 몸이 벽면을 뚫고 날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
방금 일어난 일은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녀석은 의도적으로 탑의 벽면을 파괴했던 것이 분명했다.
“이제 귀찮게 구는 방해꾼이 사라졌으니. 조금만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할까.”
귀찮은 방해꾼.
다니엘 블랙은 진심으로 주양태 회장을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놀라움을 느낄 일은 아니었다.
그게 계약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간에. 이런 대규모의 이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녀석이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났다는 것만은 이미 확실했으니까.
“차원 쐐기를 파괴했더군.”
“···그래.”
“하지만 전부 파괴하진 못했지. 서울과 노보시비르스크, 두 곳을 제외하고도 차원 쐐기는 여전히 전 세계에 다섯 개나 남아 있었거든.”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는 표현.
현우는 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과거형이 굉장히 거슬리게 들렸다. 만약, 이게 녀석의 말실수가 아니라면 지금은 모종의 이유로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는 소리 아닌가.
현우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각 지역의 헌터들이 분발해서 차원 쐐기를 파괴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좋다.
녀석이 파괴되었다고 언급한 차원 쐐기 중에서 일본의 것이 없는 이상. 이와카미를 돕기 위해 떠난 주건우 역시, 아직까지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까.
“총 다섯 개의 차원 쐐기. 내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선 그 정도만 남아 있어도 충분했다네. 물론, 나머지 두 개가 파괴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으스대는 소리였으나.
현우에게 있어선 나름의 쓸모가 있는 정보였다.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한 가지.
적어도 녀석은 미래에서 이쪽으로 넘어온 다니엘 블랙. 즉, 미래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는 것.
“자네 나름 홀로 분투를 했던 모양이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 한 마디로 헛수고였다는 소릴세.”
과거로의 회귀 이후.
현우는 정말 바쁘게 살아왔다.
솔직히 말해서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막상 돌아보면 짧게만 느껴지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헛수고라···.’
현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 녀석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으스대는 것에 불과하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
순식간에 순백의 불꽃이 현우의 전신을 휘감으며 타올랐다. 이윽고 그는 다시금 지면을 박차고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다니엘 블랙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호···!”
녀석의 눈이 빛났다.
방금 전엔 미처 사용하지 못하고 녀석의 일격을 피해야만 했으니. 지금이 처음으로 신화의 불꽃을 목격한 셈이었다.
무형의 힘과 순백의 불꽃.
두 거대한 힘이 맞부딪혔다. 이에 공간마저 밀어낼 것만 같은 여파가 주위를 휩쓸었고. 탑의 공동 내부에 고막을 때리는 쩌렁쩌렁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주먹이 찌르르 떨려온다.
고작 한 합에 불과했지만, 현우는 내장이 뒤틀리는 것만 같은 불쾌한 감각에 어금니를 꾸욱 악물어야했다.
다행히 힘의 대결에선 밀려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화의 불꽃은 단순한 권능이 아니라 인피니티 코어라는 무한한 용광로를 통해 그 무엇보다 극도로 정순하게 정제해낸 권능의 완성체니까.
“그래, 자네도 한 꺼풀 범인(凡人)의 허물을 벗어던졌군. 역시, 그분께서 경고한 변수다운 훌륭한 성장이야.”
“···그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녀석은 묘한 시선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정말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모르지.”
거짓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건, 지금 당장 승산을 점치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네놈한테 져줄 생각은 없어. 그리고 계획인지 계약인지가 순조롭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둘 생각도 없고.”
지금 눈앞의 다니엘 블랙은, 현우를 한 번 패배시킨 미래의 녀석을 상대하기에 앞서 넘어야할 언덕에 불과하다.
“나는···.”
순백의 불꽃이 타오른다.
공기마저 끓어오르게 만들 거란 착각이 들만큼 격렬한 열기가 주위로 퍼져나갔다.
극한에 도달한 권능.
현우의 신화는 그저 중첩하고 응축시키는 것만으로도 기실,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너를 끝낼 거다.”
신화, 백주(白晝).
어둠으로 가득한 탑의 내부가 일순 정오가 된 것처럼 밝아졌다. 이는 단순한 빛이 아닌, 내리쬐는 것만으로 대기중의 마나를 바로 증발시키는 ‘열기’라는 개념 그 자체였다.
“하, 터무니없군.”
그건 나름 중의적인 말이었다.
자신을 끝내버리겠다는 오만한 주장은 물론, 그 오만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저 강대한 권능까지.
하지만···.
결코 웃어넘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겠어.’
약간의 긴장을 되새기며.
찬란하게 비추는 휘광 너머로 다니엘 블랙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실로 극양지기(極陽之氣)라고 표현할 만한 응축된 순백의 불꽃, 신화로 이루어진 태양이 주현우의 머리 위로 당당히 떠오르는 것을.
“벌써 긴장하면 섭섭한데.”
현우는 한 손을 들어올렸다.
머리 위에 떠오른 신화의 태양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사용한다. 녀석을 상대로 손대중을 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
“이제부터가 진짜거든.”
연소로써 모든 것을 정화하는 불꽃이.
피할 수 없이 내리쬐는 찬란한 빛이 되어 다니엘 블랙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