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전쟁(1)
“흐, 크크···.”
이제부터 진짜라니.
다니엘 블랙은 주현우의 선언에 그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로선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낯선 권능을 보고 긴장을 끌어올리는 기색을 드러내긴 했지만, 이 공간 전체는 그가 만들어낸 오직 그만의 성역이다.
다시 말해···.
녀석은 호랑이 굴에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드는 꼴이었다. 그러니 그걸 알고 있는 입장에선 웃음을 참기란 어려웠다.
‘재미있군.’
다니엘 블랙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재미있다는 소리, 실은 진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주현우의 오만한 선언에 약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알고, 그런 오만한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자네의 정신 상태가 심히 궁금해졌네.”
쏟아지는 빛.
전방위로 내리쬐는 열기를 피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다니엘 블랙은 도리어 그 전재를 뒤집어버리는 선택을 했다.
피하지 않는다.
영창도 호흡도 준비 자세도 필요 없는 의념이 움직인다. 주현우, 녀석이 내리쬐는 빛은 닿는 즉시, 모든 것을 열기로 태워버릴 것이다.
호신강기 따위는 물론, 아마 같은 출발선을 가진 창염과 축염강기 역시. 저 빛으로 화한 순백의 불꽃 앞에서는 무력하게 ‘연소’하고 말겠지.
하지만···.
그에겐 아니었다.
“말하지 않았던가.”
다니엘 블랙의 입꼬리가 호를 그렸다.
“지금부터 자네를 매우 곤란하게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그건, 단순히 주현우를 도발하기 위한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사실만을 담은, 앞으로 그에게 벌어질 일에 대한 예고였다.
“···!”
현우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분명히 백주의 빛은 녀석을 향해 내리쬐고 있다. 그런데 녀석은 마치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백주의 열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자네가 다루는 불꽃은, 실로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봤자 여전히 권능이라는 영역에 속박 되어 있지.”
“그게 무슨···.”
“흐흐,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자네는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해.”
한 발.
녀석이 현우에게 다가왔다.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지금부터 자네에게 그 사실을 제대로 체감하도록 만들어주겠네.”
지면을 박차는 다니엘 블랙.
그에 맞서 현우 역시 무릎을 구부렸다.
사슬, 녀석이 사용하는 권능을 경계했지만. 서로 주먹이 닿는 거리에 도달할 때까지도. 녀석의 그림자에선 사슬이 튀어나올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녀석은 손가락을 들었다. 곧게 세운 검지가 현우의 가슴께를 향했다. 좋지 않은 예감, 현우는 재빠르게 몸을 틀었고. 녀석의 검지가 가리킨 궤적을 따라 무언가 총탄처럼 비껴나갔다.
‘사슬이 아니다.’
현우의 시선이 얇아졌다.
찰나에 불과한 일이라 제대로 보진 못했다. 아니, 애초에 그의 안력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라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아까도 그랬지만.
녀석이 사용하는 힘은 뭔가 이상했다. 처음 보여준 신성력과는 매우 괴리가 있다고 해야 할까.
‘···형태가 없는 건가?’
그런 추측에 도달했을 때쯤.
이미 다니엘 블랙은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가 다시금 순식간에 좁혀졌다.
무엇을 해올지 모른다.
그 탓에 당장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기는 어려웠다.
“방금의 자신감은 어디 갔지?”
비릿한 웃음을 던지며.
녀석은 주먹을 뻗어 왔다. 그 주먹에는 분명 어떤 권능도 서려 있지 않았으나. 현우의 직감은 위험하다는 경종을 울렸다.
맞부딪히는 주먹.
정면에서 힘의 대결을 펼치는 대신, 현우는 팔목을 꺾으며 녀석의 주먹을 흘려보냈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옳았다.
묵지근한 충격이 손목을 타고 찌르르 울려 퍼졌다. 만일 흘려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쯤 손목이 아니라 내장이 충격을 그대로 받아냈을 것이다.
‘이상해.’
다니엘 블랙은 접근전보다는 본인의 권능, 사슬을 통한 원거리 싸움을 선호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현우가 경험한 녀석은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지금 그 전재는 완벽히 무너졌다.
무기도 사용하지 않는 접근 전투. 이건, 기존 블랙 가문의 전투 스타일과도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방식이었다.
저릿한 통증으로 인해 펼쳐진 손아귀에 힘을 불어넣었다.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가 될 때까지 부딪혀보면 그만이다.
녀석이 재차 주먹을 날려 왔고.
현우는 양손을 교차해 막아냈다. 순백의 신화를 휘감아 만들어낸 호신기가 녀석의 일격에 크게 흔들렸다.
충격은 어느 정도 완화했지만.
아쉽게도 완전히 막아내진 못했다. 방어를 뚫고 전달되는 묵직한 충격. 순간, 현우는 신체 내부가 온통 뒤틀리는 것만 같은 격통과 마주했다.
그러고도 여파는 남았다.
덕분에 뒤로 몇 걸음 밀려난 후에야 균형을 잡고 설 수 있었다.
“그 힘···.”
현우는 입가를 닦았다.
비릿한 혈향이 입속에 가득히 번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보여준 신성력은 아니군.”
“흐흐, 신성력은 가장 효율적인 형태라고 했지. 가장 익숙하고 강한 형태라고는 하지 않았다네.”
익숙하고 강한 형태.
녀석은 무형의 힘을 마치 강기 다루듯이 자유자제로 휘두르고 있었다. 이건, 현우가 경험했던 미래의 다니엘 블랙이나. 복마전 습격 당시의 녀석과도 매우 동떨어져 있는 전투 스타일이었다.
너무도 의외인 상황.
그러나 몇 번 경험해본 후로는 조금, 저 힘의 정체에 대해서 추론해볼 수 있었다.
‘···의념.’
그 개념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게이트와 마족이 드롭 하는 스킬북을 사용해 습득한 스킬이나. 단련과 연구를 통해 올라선 무학의 경지나.
모두 의념을 통해 마나를 움직임으로서 현실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우의 신화 역시.
의념을 통해 권능을 극한까지 벼려낸 결과였으니까.
‘녀석이 의념 그 자체를 힘으로서 사용하는 거라면, 당연히 이쪽이 조금 불리할 수밖에 없다.’
팔을 뻗어야 완성되는 정권.
하지만, 녀석은 팔을 뻗는 과정 자체를 생략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걸, 무학이라 부를 수 있다면.
지금까지 이 세계의 상식을 뒤집어엎는,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방식이라고 밖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우는 무력감이나 패배의 예감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녀석에게 닿기에는 거리가 멀다면, 그만큼 지금 전진하면 된다.
가능과 불가능.
그 영역에 대해서 현우는 생각하지 않았다.
“퉤.”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온다.
하지만 신체 내부의 상처는 이미 재생력을 통해 회복되고 있었다. 그렇게 현우가 다시 주먹을 쥐고 녀석에게 덤벼들려는 그때.
“성녀가 자네를 용사라고 부른다지.”
“···뭐?”
갑작스러운 화재.
현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녀석을 바라봤다. 설마 정신을 분산시키려는 수작인 걸까. 이 수준의 사투에서 고작 그 따위 전략이 통할 리가 없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군.”
건조한 말투.
녀석은 분명 농담을 던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현우가 주먹을 멈추어야할 이유가 되진 못했다.
현우의 발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내리쬐는 백주의 빛 속에서 휘두른 주먹은 순백의 불씨를 흩날렸다. 그 모든 불꽃의 가닥이 흡사 타오르는 칼날처럼 다니엘 블랙을 향해 쇄도했다.
“말을.”
녀석은 물러나지 않았다.
천천히 뻗은 손이 의념을 발했고. 순백의 불씨들은 거센 바람에 나부끼듯이 모든 궤적이 뒤틀려 빗나갔다.
“끝까지 들어주지 않는군.”
느슨히 펼쳐진 손이 아래에서 위로 허공을 훑듯이 움직였다.
무슨 짓을 한 건지.
바로 알아차리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녀석의 의념은 오로지 감각으로만 느껴야 했으니.
“벌써 그렇게 진심으로 죽고자 덤벼들면 섭섭하지. 내가 준비한 진짜 계획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네.”
쿠구구궁─!
탑 외부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
공중에서 자태를 드러낸 화룡.
그 위품 넘치는 모습은, 지상에 있는 헌터들의 눈에도 그대로 비춰지고 있었다.
“화, 화룡···!”
“천무그룹의 지원이다!”
“주양태 회장이 왔어!”
주양태 회장의 등장.
그것만으로도 일본 방위성 소속 헌터들 사이에는 화색이 감돌았다. 방금 전까지 다들 거인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져 있던 것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뒤집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매우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러면 저 거인들도 잡을 수 있겠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냐? 주양태 회장이라면 저 거인 세 마리 정도는 아마 혼자서도 때려잡고도 남을 거라고!”
주양태 회장이라는 이름.
무릇 헌터들에게 있어 그는 세계 최강의 무위를 가진 인간이었으니.
그런 그가 이곳에 등장했다는 것은 곧, 지금껏 그들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세 마리 거인에 대한 돌파구가 생겨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기 봐!”
누군가 외치는 순간.
쐐에엑─!
세 마리의 거인을 향해.
거대한 화룡이 빠른 속도로 낙하했다.
커다란 폭음과 함께.
화룡을 이루고 있던 축염강기가 푸른 불꽃을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건, 흡사 운석이 낙하한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우, 아!”
듣기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낙하 궤도의 중심에 멀뚱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던 거인이 그대로 폭발에 휩쓸렸다.
거대한 피륙이 폭발한다.
녀석은 순식간에 셀 수 없는 수백, 수천의 육편으로 화해 주위에 흩뿌려졌다. 궤도와 조금 떨어져 있던 남은 두 마리의 거인도 그 여파에서 마냥 무사하진 못했다.
“구, 우우!”
폭발이 만들어낸 압력에 의해.
폭심지 반대 방향으로 거세게 밀려난 녀석들은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녀석들이 겨우 균형을 다시 잡고 일어났을 때엔 이미, 지상에 거대한 상흔이 남겨진 후였다.
“저 난쟁이 놈이 폭발을 일으켰다!”
“우우, 아프다! 매우!”
화룡형을 해제한 주양태 회장.
그를 향해 거인들이 핏발선 눈을 부라렸다.
“난쟁이! 찢어서 죽인다!”
족히 20m는 되어 보이는 몽둥이.
거대한 몸에 맞는 거대한 무기를 쥔 거인이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더니. 바로 온 힘을 다해서 주양태 회장을 향해 내리찍었다.
쿵─!
쿵─! 쿵─!
한 번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연신 몽둥이를 위아래로 마구 내리찍었고. 자욱이 피어오른 흙먼지가 시야를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쯤이 되어서야 손을 멈추었다.
“크후후, 이 정도면 난쟁이 놈! 완전히 뭉개져서 죽었을 거다!”
“맞다! 납작해졌을 거다!”
기세등등하게 웃는 거인들.
근처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헌터들은 선뜻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주양태 회장이라고 한들. 저런 무지막지한 몽둥이찜질을 받고도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과연, 저만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존재에게 덤벼든다고 해서.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을까.
저 거대한 거인에 비해.
헌터들 각자가 들고 있는 무기는, 고작해야 이쑤시개 정도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어쩌면 한 무더기의 개미가 인간에게 덤비는 꼴이었다.
그렇게···.
침묵과 함께 무력감이 감도는 찰나.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막대한 마나가 준동했다. 그게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굳이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었다.
주양태 회장.
그는 그토록 격렬한 몽둥이찜질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던 것이었다.
“무···.”
거인의 말이 완성되기도 전에.
무언가 흙먼지를 꿰뚫고 튀어나왔다. 푸른 불꽃의 궤적을 남기며,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쏘아진 그것은 당황한 거인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주르륵─
녀석의 가슴에서 녹색 피가 꿀렁꿀렁 흘러내려 지면을 적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녀석은 비명조차 토하지 못한 채로 고꾸라졌다.
사실상···.
아니, 명실상부한 즉사.
마치 공상 영화 속 레이저에 관통이라도 당한 것처럼. 녀석의 가슴에 뚫린 구멍에선 매캐한 탄내와 함께 이글거리는 잔불만이 남아 사인(死因)을 증명하고 있었다.
남은 거인은 단 하나.
녀석 역시도 자신이 홀로 남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투박하지만 거대한 수제 망치를 들어올렸다.
“제, 젠장! 뭐냐···!”
녀석의 눈동자가 재빨리 굴러갔다.
방금, 동료를 살해한 일격이 대체 어디서 쏘아졌던 건지. 너무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었던 탓에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윽고 녀석의 눈이 주양태 회장을 포착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하물며 녀석은 쥐새끼 따위 보다는 포식자, 혹은 맹수에 가까운 존재다. 때문에 공포에 질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선택은 당연히 공격이었다.
“쥐새끼 같은 난쟁이!”
분노 가득한 고함.
녀석이 손에 든 거대한 망치가 주양태 회장을 향해 떨어지려는 순간.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3초식 창룡퇴(蒼龍槌)
주양태 회장의 몸이 번개처럼 솟구치더니.
신체를 허공에서 빙글 돌리며 벽력과 같은 기세로 거인의 턱을 강력하게 돌려 찼다. 녀석의 고개가 팽그르르 두 바퀴 회전했다.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주양태 회장은 가볍게 혀를 찼다.
쿵─!
거인이 지면에 널브러졌다.
즉사는 아니었다.
녀석은 널브러진 자세 그대로 신음을 흘리며 몸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건 결국 죽음에 천천히 그리고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걸로 끝인가.”
가볍게 어깨를 푸는 주양태 회장.
그러나 그 말이 화근이 되었던 걸까.
쿠르릉─!
쿵─! 쿵─!
마치 지면에 우레가 내달리는 것 같은 소리. 그리고 어마어마한 진동이 지축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 발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자···.
어처구니없는 상황.
주양태 회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런 표현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하, 저건 또 뭔···.”
일그러진 공간 너머.
솟아오른 거대한 검은 탑 주변의 황야에서. 방금 상대했던 것과 비슷한, 그러나 수많은 거인들이 지면에서 솟아오르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