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총력전 대비(1)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페일 라이더의 내부는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현우와 주건우,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고. 심지어는 덕춘이까지 조용히 현우의 팔에 휘감겨 있을 뿐이었다.
훌쩍.
코를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주건우가 소리 없이 조용히 울음을 참고 있었다. 아마 그건, 분노와 무력감이 섞여 터져 나오려는 울음일 것이다.
참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현우 역시, 옆에서 입을 꾸욱 다물고 페일 라이더 아래로 펼쳐지는 지상의 풍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한 마디라도 꺼냈다간.
피차 끓어오르기 직전의 상태에 놓인 감정을, 그 이상 억누르고 있기 어려워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젠장.’
대신, 현우는 속으로 욕을 삼켰다.
여기서 다니엘 블랙의 손에 주양태 회장이 당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방심의 결과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니엘 블랙.
본래 현우가 있는 미래에서 넘어온 녀석은, 이미 상상 이상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건 어떻게 대비가 가능한 수준의 영역이 절대 아니었다.
그야말로 재해.
그리고 지금부터 1년의 시간 동안, 현우는 그 재해와 같은 다니엘 블랙을 상대할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녀석의 말대로.’
손을 잡지 않을 거라면.
결국, 녀석을 토벌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게 결코 쉬운 길이 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
고개를 돌리자.
의식을 잃은 주양태 회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우는 입안에 감도는 씁쓸한 감각을 삼켰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주양태 회장, 그가 회귀자라는 것부터.
대체 언제 회귀를 경험했던 건지. 그리고 설마 그 회귀의 배경에 현우가 예상하고 있는 존재, 아자토스가 관여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다.
‘안다고 해서 당장 바뀌는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부분이 있다면.
정확하지 않더라도 대략적이나마. 주양태 회장이 경험한 회귀의 시점이 언제인지. 어느 정도는 추측해볼 만한 여지가 있다는 점이었다.
회귀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회귀 시점 이후로 두각을 나타낸다. 그건, 이미 현우 본인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조부님은···.’
대전이를 기점으로 이름을 날렸다.
천무그룹이 세워지게 된 계기 역시, 대전이가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아마 주양태 회장의 회귀 시점은 1970년대 발생한 대전이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양태 회장이 분명히 알고 있던 건지는 몰라도. 그 회귀에 아자토스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하고 있을 확률 또한 높으리라.
추측이 완벽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 현우가 세울 수 있는 가설과 추론은 이 정도였다. 물론, 이게 어떤 도움이 될 지는 불분명하다.
단지 복잡하게 꼬여 있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상념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눈을 돌린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감정을 꽤나 추스를 수 있었고.
비교적 냉정해진 이성은 현우가 이후의 행보에 대한 결정을, 어렵지 않게 내리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래.”
결국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현우는 조용히 읊조리며 눈을 내리감았다.
우선, 1년 후.
다니엘 블랙과 약속한 유예가 끝날 때까지. 녀석을 토벌하기 위한 총력전을 최우선으로 대비한다.
그리고···.
‘조부님의 부탁.’
실종된 혈족들의 탐색.
물론, 이는 주양태 회장의 부탁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만약 ‘그쪽’ 차원에서 살아남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여러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음은 물론, 앞으로의 총력전에 있어서도 큰 전력이 되어줄 테니까.
현우는 가만히 주먹을 거머쥐었다.
실패했던 그 차원으로.
이제는 다시 그곳을 향해. 원점 회귀를 하여야 할 차례였다.
***
몇 시간 뒤.
페일 라이더는 천무그룹 본가에 도착했고. 현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중까지 나온 주영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된 겁니다.”
“···.”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대강 들은 후. 주영미는 질끈 눈을 내리감았다. 이미, 주양태 회장이 홀로 스위스로 떠났을 때부터 예감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로 이렇게 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주양태 회장이다.
주영미, 그녀가 어려서부터 봐온 최강이자 최고의 무위를 지닌 유아독존의 사내가 이리 쓰러진다니.
그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적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그녀의 머리를 더욱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그럼, 지금 아버지께선···.”
현우가 전한 이야기 속에, 주양태 회장의 사망 소식은 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숨은 붙어 있다는 소리일 테니. 주영미는 작은 희망을 끈을 붙들며 물었다.
“의식 불명입니다.”
“하.”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래도 죽진 않아서 다행이란 감정과, 그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 그녀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회복되실 거라 믿는 수밖에 없겠구나. 본가에는 여전히 뛰어난 치유사들이 있으니. 상황이 아주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주양태 회장이 이대로 깨어나지 못할 확률 역시, 그리 적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예.”
현우 역시 그걸 알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부정을 하든, 반대로 긍정을 하든. 고작 몇 마디 말로써 결과가 변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니.”
주양태 회장이 이렇게 된 이상.
천무그룹 전체의 결정권은 명실상부 그가 후계자로 지목한 주현우에게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가 처음으로 천무그룹의 방향성을 지시해야할 순간이었다.
“계획이 있긴 합니다.”
이걸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차치하고서라도 당장에 행보에 대해선 이미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1년 남짓한 유예 기간 동안,
다니엘 블랙에게 대항할 수 있을 만한 세력을 구축해야한다. 당연히 웬만한 수준으로는 대항은커녕, 비등한 싸움을 성립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을 터.
하지만 현우는, 회귀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총력전을 대비한 준비를 이미 어느 정도 끝내두었다.
“현재 가문 연합에 소속된 다른 모든 가문에게 연락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연락?”
“예, 그쪽 가문의 가주나. 그에 준하는 결정권을 가진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습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
주영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각국의 몇몇 지역은 연락이 끊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우가 본가로 돌아오기 얼마 전. 다행히 대부분의 통신 라인은 복구가 되었고. 가문 연합에 참여하기로 했던 이들에겐 모두 연락을 돌릴 수 있을 여유는 되었다.
“하지만···.”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주영미는 우선 현우의 말대로 연락을 돌리기 전에, 그 점부터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이였다.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들을 한 자리에 모으겠다는 거니. 만일, 현재 사태에 대한 도움을 강구하기 위한 거라면. 자칫, 그들에게 우리의 약점만 드러내는 꼴이 될 수도 있어.”
그녀가 이야기하는 약점이란.
현재 주양태 회장의 상태 그 자체였다.
몇 번의 이변을 거친 후라고는 하지만, 천무그룹은 여전히 동아시아 최강의 전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위세는 예전만 못하다.
스위스에 위치한 유럽지부는 사라졌으며. 주진석 부회장을 포함, 혈족이 넷이나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또한, 주양태 회장 역시도.
지금으로서는 천무그룹의 전력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 사실이 아직, 공공연히 알려지지 않은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으나.
만일, 이후로 공식석상에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적어도 그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이와카미 가문 측에서는 주양태 회장의 상태에 대해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고모님의 걱정엔 일리가 있다.’
이와카미 가문.
만일 그들이 가문 연합 내에서 영향력을 보다 강하게 행사하길 원하기라도 한다면.
주양태 회장의 상태를 의식하여. 뜻하지 않은 사태를 벌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가문의 대소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무녀, 이와카미 하나코가 바라지 않는다 해도. 가문 내부의 원로급 인물들이 강하게 밀어 붙인다면, 결국엔 그들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은···.
결국, 이와카미 가문뿐만 아니라. 현재 천무그룹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가문이 동일하게 품고 있는 분란의 씨앗이다.
그걸 억제하는 것은 힘.
지금까지는 주양태 회장이라는 존재가 그런 분란을 조기에 진압하는, 최강의 억제력이 되어주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없는 현재.
천무그룹이라는 이름에 감히 도전하고자 하는 흑심을 품은 이들이. 일절 나오지 않으리라곤 장담하기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영미가 걱정하는 대로의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현우는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조부님의 부재는 천무그룹의 약점이 아닙니다. 그분의 빈자리를 제가 채우고 있으니까요.”
“···그래, 그렇구나.”
첫 번째 모임.
그 목적은 일전의 ‘가문 회의’가 가지고 있던. 변질되기 전, 본래의 순수한 목적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만일···.”
분명 주양태 회장 또한.
최초로 구성된 가문 회의에 현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참여하지 않았을까.
“안 좋은 생각을 품고 있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천무그룹을 향해 손을 쓰기도 전에 알게 될 겁니다.”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 마음을 품은 이가 있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겠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다는 소리였다.
세상에 산재한 여러 가지 문제 중.
대부분의 경우는 하나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조부님, 주양태 회장이 없다고 해도. 천무그룹은 여전히 ‘최강’이라는 타이틀으로 불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사실을요.”
이 자리는···.
앞으로 1년의 유예가 끝난 이후. 시작될 총력전을 위한 연합을 구축하는 자리이면서.
새로운 체제 아래의 천무그룹.
주현우 산하의 천무그룹이 여전히 건재함을 드러내는 자리가 되어줄 테니까.
***
그렇게···.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이 지났고. 현우가 원하던 대로, 가문 연합에 소속되기로 한 이들이 호출에 응해 천무그룹 본가로 찾아왔다.
이와카미 가문을 필두로 교황청과 록펠러가문에 로마노프 가문, 그리고 남미 카르텔 핵심 세력으로 재부상한 멘도자 가문 까지.
“다들 반갑습니다.”
낯익은 얼굴들을 앞에 두고.
현우는 천천히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곳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부름에 응하여 이 자리에 출석한 이들은 모두, 한 때 어떤 방식으로든 현우에게 도움을 받은 전적이 있다.
“이와카미 하나코님.”
이와카미 가문의 무녀.
이와카미 하나코.
만일, 현우가 계승제에 개입하여 블랙 가문의 첩자 ‘페이스 체인저’를 잡아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후 벌어졌을 혈겁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다.
“안젤라님.”
록펠러 가문의 막내.
안젤라 록펠러, 그녀는 현우 덕분에 7대 미공략 던전인 바벨 정복할 수 있었다.
그녀 본인은 모르겠지만.
현우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바벨 공략에 실패하고.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유용한 꼭두각시 언데드가 되었을 것이다.
“소피아님.”
로마노프 가문의 현 가주.
본래라면 그녀의 가문은 배신자 알렉세이 로마노프에 의해. 다니엘 블랙에게 통째로 바쳐졌어야 했다.
이 또한···.
현우에 의해 저지되었고. 인류의 적으로 돌아설 뻔했던 로마노프 가문 역시, 정당한 계승자인 그녀에게 돌아갔다.
비록 그 위세가 전성기에 비하면 초라할 지라도 말이다.
“성녀, 아그네스님.”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현우는 이미 그녀가 예지한 불길한 미래를 자신의 손으로 바꾼 바가 있다.
또한, 무너질 예정이었던 교황청 역시. 조기에 블랙 가문을 몰아붙인 덕분일까.
지금은 현우가 알고 있는 미래와 다르게 여전히 건재하게 남아 있었다.
“마야 카일리님.”
카일리 가문.
그들에게 있어 현우는 샤오 가문에 의해 중독된 가주, 테오 카일리의 생명의 은인이다.
그리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현우라는 변수로 인해. 멸문이라는 예정된 미래를 피해갈 수 있었다.
“로이스 멘도자.”
멘도자 가문.
그리고 가주인 로이스 멘도자. 이들은 현우가 아니었다면, 파라과이 아순시온에 발생한 대균열 아래에서 멸문 당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현우로 인해 발생한 이번 세계의 변수이자 뒤틀림이다.
“앞으로 1년 후.”
돌려 말할 생각은 없다.
현우가 이들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으니까.
“세계가 멸망할 겁니다.”
아그네스와 하나코.
두 사람을 제외한 이들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