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선빵필승(4)
‘궁금하면 더 해보라니.’
샤오 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만만하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주현우의 오만한 태도에 그의 인내심이 슬슬 시험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얕잡아 볼 만한 상대는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첫 번째 기습.
만천화우를 모조리 튕겨냈다.
사실 그것까진 그리 놀랍지 않았다.
‘기습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지.’
진심으로 펼친 살초도 아니었고. 투척했던 암기에 발린 독들도 전부 사망에 이를 일은 없는 가벼운 독이었다.
그 정도도 파훼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이곳에 와서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 주현우라는 녀석은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은 제대로 가늠해볼 수 없어. 무턱대고 얕잡아 봤다간 예상외의 반격을 당할지도 모른다.’
샤오 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적어도 샤오 윤보다는 현명했다.
그리고 훨씬 신중한 편이었다. 주현우 저 녀석은 단순히 허세로 치부하기엔 너무 큰 일을 벌였다.
그렇다면 분명.
그만한 준비 정도는 했겠지.
녀석의 바닥을 가늠하기 위해.
샤오 준은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아직까진 독이 통하지 않는다곤 해도. 모든 독에 대한 완전한 면역을 가진 아티팩트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설령 천무그룹이 알려지지 않은 아티팩트를 확보했다고 해도. 사생아에 불과한 주현우의 손에 들어갈 리는 없다.’
샤오 준은 그렇게 확신했다.
“좋습니다.”
샤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면 더 해보라고 했나. 그럼 녀석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여러 종류의 가공 독은 물론이고.
샤오 가문이 보유한 영물에게 채취한 짐독(鴆毒)부터. 각종 벌레형 마족을 통해 만들어낸 고독(蠱毒). 그리고 최고 순도로 배합한 섭혼향 까지.
샤오 준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독.
그 모든 비기가 샤오 가문의 절기인 용독술을 통해 펼쳐졌다. 순식간에 그의 주위로 극한까지 응축된 독무가······.
아니, 독으로 이루어진 구름.
독운(毒雲)이 자욱하게 만들어졌다.
그때였다.
현우의 품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이윽고 미끄러지듯 현우의 품을 벗어난 것은 한 마리의 흰색 뱀이었다.
아니, 뱀이 아니었다.
머리에 분명히 돋아 있는 한 쌍의 사슴뿔.
샤오 준은 그게 뭔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이무기!”
설마.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품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던. 녀석의 몸집이 눈 깜박할 사이에 몇 배로 불어났다. 샤오 준보다 머리 하나는 크게 자라난 이무기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이게 무슨······!”
그가 펼친 독무가······.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 입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한편 제약 공장 외부.
샤오 가문의 헌터들은 완전히 박살 난 결계 앞에서. 주영미를 비롯한 세 사람과 대치하고 있었다.
“인사 한 번 거창하군.”
화려한 붉은 무복을 입은 사내.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른 헌터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섰다. 주영미가 내뿜는 기세에 그리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반갑소.”
씨익, 이를 드러내며 인사하는 사내.
그는 곧 주영미를 향해 포권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러나 주영미는 분명 그를 보았음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사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나는 리 웨이라고 하오. SSS급 헌터로 현재는 샤오 가문 아래에서 일하고 있지.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나. 당신들을 이 자리에서 막는 것이 나의 임무요.”
“물러서는 편이 좋을 텐데.”
주영미의 입이 열렸다.
서늘한 목소리는 그리 크진 않았지만. 마나가 실려 있는 덕분에 모든 이들의 귀에 분명하게 들렸다.
“그럴 수는 없소.”
“그럼 죽는 수밖에.”
그녀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주먹을 쥐며 리 웨이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뿐.
그러나 리 웨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SSS급 헌터.
중국 내에서도 총 30여 명이 전부인 최고 등급의 헌터였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중국의 헌터 협회 소속이었으니. 샤오 가문 내에서도 그는 손꼽히는 강자였다.
SSS급 중에서야 비교적 하위지만.
설령 상대가 천무가의 일원이라고 해도. 이곳에서 발목을 잡는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어쩌면 목숨을 취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무기는 없소?”
“내가 바로 무기지.”
“주먹으로 검을 상대하시겠다고.”
리 웨이의 입꼬리가 비죽 휘어졌다.
중국 내에서도 서른 명밖에 없는 SSS급 헌터. 평생을 많은 이들의 선망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온 그는 자신의 검에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천무그룹 일가의 힘이 대단하다곤 들었지만. 너무 오만한 판단이 아닌가 싶소. 간격부터 위력까지 이쪽이 모두 유리할 텐데 말이오.”
“재밌는 소리를 하네.”
주영미는 비죽 조소를 흘릴 뿐이었다.
“그럼, 가겠소.”
리 웨이의 발이 지면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그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검을 뽑았다. 발도에서 일 검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동작.
그러나 일검 안에 담긴 힘은 제아무리 대단한 강자라고 해도. 가볍게 흘려버리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쾌검과 중검.
상반되는 두 가지 성질을 모두 지닌 일격이 주영미를 향해 날아들었다. 검에 휘감긴 선명한 강기가 대기를 예리하게 가르는 순간.
주영미가 움직였다.
‘······무슨!’
리 웨이가 눈을 부릅떴다.
분명히 이쪽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이미 검은 주영미를 충분히 양단하고도 남을 속도였다.
“주먹이랑 검이 뭐?”
검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제야 리 웨이는 깨달았다. 주영미의 손에 그의 검이 붙잡혀 있었다. 그녀는 예리하게 단련된 강기를 마치 장난감처럼 쥐고 있었다.
“어, 어떻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리 웨이는 물었다.
강기가 휘감긴 검이다.
그것도 눈으로 좇기 어려운 속도로 선공으로 뻗은 일 검이다. 그걸 한발 늦게 움직여서 잡았다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
주영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이런 쓰레기 같은 검술 스킬 따위로. 천무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냐고 말이야.”
까각······ 칵···!
주영미가 손에 힘을 더하자. 리 웨이의 검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당황하며 검을 쥔 손을 뒤로 빼려고 했다.
“으, 익!”
용을 써봤지만.
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격이 다른 상대다.
리 웨이는 그 사실을 방금 깨달았으나.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그의 자신감은 그저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 오만이었을 뿐이었다.
까앙─!
검이 박살 났다.
그와 동시에 리 웨이의 목숨도 끝났다.
파편이 튀어 오르는 찰나. 주영미의 주먹이 그의 호신강기와 가슴팍을 동시에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끄, 어.”
“주제도 모르고······.”
주영미의 주먹 위로 창염이 발화했다.
리 웨이가 남긴 혈흔과 육신의 파편들이 남김없이 불타 사라졌다. 그 공포스런 광경에 주위에 침묵이 맴돌았다.
“자, 다음.”
손을 까딱였지만.
이 상황에서 감히 덤벼들 헌터는 없었다. 자신들로써는 범접조차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SSS급 헌터가 단말마를 남기고 당했는데.
만용을 부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없나 보군.”
주영미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럼 이쪽에서 먼저 가주지.”
***
쉬르륵.
독구름을 모조리 빨아들인 이무기가.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현우에게 돌아갔다. 녀석은 현우의 팔에 휘감겨 물끄러미 샤오 준을 바라봤다.
···꿀꺽.
샤오 준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가능성.
그게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저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런 단순한 불안감 같은 게 아니었다.
사오 윤부터 제약공장.
그리고 심지어 이무기까지.
이 모든 게 우연일 리가 없다.
샤오 준은 확신했다.
주현우 저 녀석은, 분명 모든 것을 알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샤오 가문이 용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꼴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당신은······.”
샤오 준은 천천히 입을 뗐다.
“대체 뭘 하고 싶은 겁니까?”
“내 실수를 바로잡는 것.”
“실수?”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실수를 바로잡는단 말인가.
하지만 샤오 준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현우가 말한 실수는 이번 삶이 아닌. 이미 사라지고 실패해버린 지난 삶의 이야기였으니까.
“너는 알 거 없어.”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는 다니엘 블랙처럼. 승리를 확신하고 계획을 주절거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여기부턴 어차피 전쟁이니까.”
샤오 가문과 천무그룹.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배신할 세 가문과의 전쟁.
녀석들이 앞으로 최소 5년 이상은 더 준비하고 시작할 예정이었던 전쟁. 그 싸움에 한 발 먼저 불을 붙일 것이다.
또한 계속해서 놈들보다 앞서 나갈 테고.
“당신의 목적은······.”
“그러니까 알아서 뭐하게.”
현우는 씨익 웃었다.
“넌 어차피 여기서 죽을 건데.”
오만한 한 마디.
그 말에 샤오 준의 뺨이 떨렸다. 이제는 이성적인 대응은 무의미하다. 주현우의 말이 적어도 반절은 맞았다.
“하, 오만하군요.”
알 필요가 없다.
어차피 주현우는 이곳에서 죽는다.
‘천무그룹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건 이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어쩌면 아직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그마한 희망을 가지고. 일단 눈앞의 역경부터 헤쳐나가면 그만이다.
“오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이 전쟁의 가해자는 천무그룹이 되겠죠. 아무리 천무그룹이 대단하다곤 해도. 다른 가문들을 모두 상대하긴 어려울 겁니다.”
“알아.”
전 세계를 주무르는 일곱 가문.
그중에서 배신이 예정되어 있는 블랙 가문과 로마노프 가문은 샤오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남은 세 가문도.
지금의 천무그룹은 강하지만.
한꺼번에 두 개 이상의 가문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각 가문의 수장들은 주양태 회장에 버금가는 실력자고. 그들이 각자의 국가에서 지난 몇십 년간 구축한 세력과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까 여기서 제대로 끝내야지.”
증거를 확보하는 것만으론 안 된다.
이후에 다른 가문들이 적어도 천무그룹에 돌아서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조금 더 전략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샤오 준이 현우의 말을 부정했다.
“확신해?”
“예, 오늘 이곳에서 죽는 것은 당신이 될 테니까요. 천무그룹이 대체 어디까지 정보를 확보한 건지. 아직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젠 상관없는 일이다.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건 눈앞의 적부터 해결한 이후에 판단해야 할 테니까.
“금방 알아낼 겁니다.”
샤오 준은 자세를 다잡았다.
흔들리던 마음에서 불안감을 몰아냈다.
이제부터 눈앞의 주현우는 분명한 적이다. 본래 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샤오 준은 확실히 주현우를 적수로 인정했다.
“그래.”
주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녀석의 속내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샤오 준의 역할은 한 가지. 저 녀석을 죽이고 제약공장 계획을 어떻게든 성공으로 이끌어가는 것.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길은 열리지 않는다.
샤오 준은 두 손을 갈고리 형태로 취했다.
독조(毒爪).
일전에 샤오 윤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자세를 취했지만. 손을 휘감은 독강기의 위력은 한눈에 보기에도 차원이 달랐다.
응축된 독기가 공기마저 부식시키며.
불길한 기운을 아지랑이처럼 주위로 퍼트리기 시작했다.
현우가 아무리 독에 대한 면역을 지니고 있다곤 해도. 저 독조에 제대로 피격되면 큰 부상을 면치 못할 게 분명했다.
독룡 노페이탄 이상의 독기.
하지만 현우는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이미 샤오 준에게서 뽑을 수 있는 독은 모조리 뽑아먹었다.
이무기가 소화를 마친다면. 이제 샤오 가문의 방계혈 정도는 능히 중독시킬 수 있는 극독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할 수 있으면.”
현우는 짧게 말하며 발을 뗐다.
고작 두 걸음. 그는 샤오 준의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샤오 준은 그 짧은 순간에 주현우의 존재감이 거대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봐.”
마치 거인이 다가온 듯한 감각.
착각은 아니었다.
샤오 준은 두 눈을 깜빡였다. 겉보기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었다.
‘마나가······.’
몇 배는 불어난 것 같다.
매사에 냉정한 샤오 준 마저. 잠시 사고가 끊어질 정도로. 지금 눈앞의 현우에게선 막대한 양의 마나가 느껴졌다.
도저히 인간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운 양의 마나가. 샤오 준의 기감을 어지럽혔다. 이게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런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이, 이게 무슨······.”
마른 침을 삼켰다.
마치 거대한 불꽃을 눈앞에 두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털이 저절로 바짝 곤두서고 피부가 따끔거렸다.
“왜, 못할 것 같아?”
현우는 도발하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네 개의 코어가 회전한다.
인피니티 코어를 중심으로 막대한 양의 마나를 컨트롤한다. 이윽고 창염으로 발화한 마나가 꽃잎이 되어 주먹을 뒤덮는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9초식 우발라화(優鉢羅華)
압축된 창염.
그리고 창염의 꽃잎으로 만들어진 봉오리는 가볍게. 그러나 거대한 압박감을 드러내며 샤오 준을 향해 치달았다.
“큿!”
그는 황급히 호신강기를 둘렀다.
그리곤 전력을 다해 양손의 독조를 꽃봉오리를 향해 꽂아넣었다.
‘막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샤오 준의 눈이 크게 뜨였다.
눈앞에서 푸른 섬광이 터져 나왔다.
꽃봉오리가 거센 폭발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