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35
35화 배신자(1)
호신강기가 박살 났다.
위력에 대해 놀랄 여유도 없이. 샤오 준의 몸은 폭발의 반동으로 거세게 튕겨 나갔다.
“커, 헉!”
등이 벽에 처박히고 나서야.
그는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
폭발 탓에 순간적으로 시각과 청각이 사라진 상황. 그럼에도 샤오 준은 격통 너머로 감각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전투에선 한 번의 실수로 생사가 오간다.
시각과 청각이 마비된 틈을 주현우가 놓칠 리가 없었다. 우선은 박살 난 호신강기를 다시 끌어올렸다.
‘굉장히 강력한 기술이다.’
일전에도 경험한 적은 있었다.
천무그룹의 서자였던 주일석.
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 전.
녀석과의 비무에서 처음으로 직접 경험했던 창천무의 위력은, 아직 어렸던 샤오 준에게 소름돋는 격의 차이를 알려주었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지금도 비슷했다.
독을 사용할 수 없느냐.
아니면 독이 통하지 않느냐.
한끗 차이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그 후로 외공 스킬의 수련에도 전력을 기울였는데. 결국,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결과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어.’
그러나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주현우가 내보였던 ‘우발라화’는 샤오 준이 기억하는 것보다. 어림잡아 세 배 이상은 강력한 위력이었다.
세 배라니.
샤오 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걸 버티네.”
추가타는 날아오지 않았다.
다만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청각에 빈정대는 한 마디가 들려왔을 뿐이었다. 뿌득, 샤오 준은 어금니를 다물었다.
‘저건 천무가의 3세라곤 믿을 수 없는 실력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
위험하다.
샤오 준은 그렇게 확신했다.
만약 주현우가 이런 위력의 기술을 몇 번이나 더 사용할 수 있다면. 샤오 준과의 전투에서 무조건 우위를 점할 것이다.
“···예상외군요.”
꿀꺽 침을 삼키며.
샤오 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입 안이 터진 걸까. 아니면 어딘가 잘못 된 걸까. 비릿한 혈향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천무그룹의 3세가. 이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게 당신의 진짜 전력입니까?”
“글쎄.”
현우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한발 샤오 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여유 따위는 부릴 수 없다. 샤오 준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꽤 오래전에······.”
시간을 벌어야 한다.
샤오 준은 주현우를 보며 말했다.
“비무에서 천무가의 서자를 상대해본 적이 있었죠. 주일석이라는 이름의 사내였는데. 당신에겐 익숙한 이름일 지도 모르겠군요.”
“알지.”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버지니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샤오 준에게 패배를 알려준 인물.
언젠가는 반드시 설욕하겠다고 다짐했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허탈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정도였으니.
“당신의 아버지는 죽었지요.”
“···모욕이냐?”
다짜고짜 패드립인가.
현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참, 끔찍한 인연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모두 저를 참으로 곤란한 지점까지 몰아붙이는군요.”
독이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녀석의 곁엔 이무기까지 붙어 있으니. 독기공을 운영해봤자 상대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되리라.
그렇다고 외공류의 스킬로 주현우를 이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지금은 가능성이 매우 적게 느껴졌다.
“저를 살려주실 생각은 없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하하, 그렇겠죠.”
샤오 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그래도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면.
샤오 준은 거기에 매달려볼 생각이었다.
“제가 당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실 건지 묻고 싶군요.”
“아버지에 대한 정보?”
현우의 뺨이 살짝 떨렸다.
솔직히 궁금한 정보기는 했다. 지난 삶에서 현우는 아버지인 주일석에 대한 정보만큼은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가장 자세히 알 만한 주양태 회장이 일찍 암살을 당했었고. 그의 심복들 또한 마찬가지로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으니까.
사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어느 정도 천무그룹 내에서 자리를 잡았을 무렵. 다니엘 블랙이 일으킨 2차 대전이가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고.
미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도 전. 천무그룹의 일원으로서 전쟁의 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으니까.
“어떻습니까.”
샤오 준은 속삭이듯 말했다.
“저는 지금 거래를 제안하는 겁니다. 천무그룹이 숨기는 주일석의 죽음에 대한 정보와 제 목숨을 교환하는 거죠.”
“교환이라······.”
“당연히 제약공장도 철수하겠습니다. 가주님께서 제게 책임을 묻겠지만.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 것보단 낫겠죠.”
죽는 것보다는 낫다.
살아만 있다면 기회는 다시 온다.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니까.
“미안하지만 거래는 거절하지.”
“······그렇습니까.”
하지만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회귀 전과는 다르다. 마음만 먹는다면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라도. 아버지에 대한 정보쯤은 스스로 알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주양태 회장이 살아 있는 한.
언젠가 그의 입으로 아버지 주일석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샤오 준의 약속은 신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당신에겐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절하시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정보를 뱉을 생각이 없잖아.”
현우는 손가락을 세 개 들어 보였다.
“샤오 가문이 한국 헌터들의 목줄을 쥐려는 진짜 이유가 뭔지. 또, 천무그룹에서 샤오 가문과 손잡은 배신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이게 사실 핵심이었다.
“블랙 가문이 너희 샤오 가문한테 어떤 거래를 제안했는지.”
“···!”
“지금 이 자리에서 널 살려준다면. 결국, 나중에 뒤통수를 맞을 게 뻔한데. 내가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거든.”
샤오 준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대체 그 사실을 주현우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천무그룹은 처음부터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건가.
여러 생각들로 샤오 준의 머리가 터질 것처럼 복잡해졌다.
‘초조함.’
샤오 준의 얼굴을 마주한다.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현우와는 다르게. 예상외의 상황에 마주한 샤오 준의 심리는 불안과 초조로 가득했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이 그를 먼저 움직이게 만들었다.
“흐아압!”
외마디 기합.
샤오 준의 손을 휘감은 독강기. 그리고 그림자에서 솟아난 아홉 마리의 독사가 한꺼번에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샤오 가문의 비전 스킬.
구사독골조(九巳毒骨爪).
본래는 외공과 독기공이 합쳐진. 대처가 매우 까다로운 기술이지만. 독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독강기로 만들어진 아홉 마리의 독사는 그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응축된 독강기로 이루어진 독사는 한 마리 한 마리가 호신강기나. 천무가의 방어기술 창염갑을 꿰뚫기에 부족함이 없으니까.
샤오 준의 독조가 현우에게 닿기 직전.
“···탈혼(奪魂)!”
팔이 불가능한 각도로 꺾였다.
마치 하나의 뱀이 되어 현우를 물기 위해 달려든 것 같은 광경. 그러나 그 앞에서 현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방향을 구부리며 달려든 샤오 준의 독조를 오른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설마 붙잡힐 거라곤 생각지 않았는데.
샤오 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는 붙잡힌 팔을 포기하고 왼손과 아홉 마리의 독사로 공격을 감행했다. 붙잡혔다는 것은 곧, 상대 역시도 거리를 내주었단 소리.
필사적인 임기응변이었다.
“읏!”
그러나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잡힌 손목을 통해 순간 막대한 양의 마나가 밀어닥쳤다. 이대로 잡혀 있다간 기혈이 죄다 망가질지도 모른다.
속이 뒤집히는 감각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샤오 준은 황급히 현우의 손아귀를 뿌리치고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임기응변에서도.
샤오 준은 주현우에게 한발 뒤처지고 있었다. 아니, 그냥 느끼기에 한발일 뿐이지. 실상은 훨씬 더 떨어져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
그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처음부터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그의 몸에서 전의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의는 빠져나갔을지라도.
아직 생존에 대한 집착은 남아 있었다. 당연한 소리였다. 세상 누구도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건 샤오 준도 마찬가지였다.
까가각! 샤오 준이 급하게 휘두른 독조가 현우의 주먹과 부딪혔다. 흑린갑의 묵빛 비늘 위로 불똥이 튀었다.
그 순간에···.
현우는 샤오 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으읏!”
황급히 지면을 차며 뒤로 몸을 뺐지만.
현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기세를 죽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마치 샤오 준과 몇 번은 싸워보았던 것 같은 노련함이 느껴졌다.
소름을 느끼며 샤오 준은 손을 뻗었다.
그러나 현우의 주먹이 조금 더 빨랐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초식 재천(在天)
응축된 창염을 휘감은 정권이 정직한 궤도로 샤오 준을 향해 치달았다. 아직 닿지 않았음에도 그의 생존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샤오 준은 상체를 급히 틀었다. 아슬아슬하게 주먹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맹렬한 창염의 열기에 머리칼이 오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위력이···!’
흘끔 시선의 끝을 보니.
공장의 벽면이 그대로 날아갔다. 만약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면. 내장이 조각조각 났을 것이 뻔한 위력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무식한 위력의 공격이 연달아 샤오 준에게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2초식 화륜(火輪)
길게 뻗은 수도가 샤오 준을 향해 휘둘러진다. 네 겹으로 중첩된 날카롭고 맹렬한 창염 앞에서 샤오 준은 공포를 느꼈다.
이미 무너진 자세에서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샤오 준은 재빨리 독사를 움직였다. 화륜의 수도와 독사가 충돌한다.
순식간에 독강기로 빚어낸 독사 다섯 마리의 목이 잘려나갔다. 응축된 독강기가 그대로 불타 증발했다.
그 사이······.
제3초식 창룡퇴(蒼龍槌)
이미 다음 공격이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있었다. 막대한 양의 마나가 불꽃이 되어 움직인다. 샤오 준은 두 팔과 함께 남은 독사를 모조리 앞으로 끌어모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창룡퇴가 정면으로 적중했다. 미처 흘려내지 못한 충격이 그대로 전해졌다. 울컥 샤오 준의 입에서 내장 조각이 튀어나왔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현우의 신체 주위로 창염이 퍼져 나간다. 눈의 수분마저 바짝 마를 것 같은 열기가. 샤오 준의 사방을 가득 채웠다.
“어, 어떻게······.”
샤오 준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마치 거대한 해일을 눈앞에 둔 것 같았다. 그리고 해일은 절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이젠 막지도 피하지도 못한다.
제6초식 염뢰(炎雷)
해일이 한 줄기의 번개로 화한다.
일점에 집중되고 응축된 불꽃의 번개. 그리고 눈을 깜빡하기도 어려운 찰나. 샤오 준의 눈앞이 섬광으로 환하게 뒤덮였다.
‘미친!’
샤오 준의 상체가 기역자로 꺾였다.
처음에 느껴진 것은 타들어 가는 고통. 그리고 몇 초가 지나고서야 샤오 준은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허, 흐···.”
가슴을 꿰뚫은 번개.
비릿한 혈향이 샤오 준의 후각을 가득 채웠다. 시야가 흐려지고 의식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손속에 사정은 없었다.
주현우는 명백한 살초를 사용했고.
샤오 준은 대처하지 못했다. 아무리 독이 통하지 않는 싸움이었다지만. 심각할 정도로 일방적인 대결이었다.
“죽기 전에 한 마디 정도는 들어줄게.”
“흐, 크흐흣··· 마지막으로 유언이라도 나, 남기라는 겁니까?”
입에서 피와 내장 조각을 흘리며.
샤오 준은 처절한 표정으로 웃었다.
“뭐, 싫으면 말고.”
“충고라면··· 하나 해주죠.”
“해봐.”
“가주님의 힘은···. 저따위랑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브, 블랙 가문 역시···. 천무그룹은 절대 마, 막을 수··· 없습니다.”
비릿한 조소.
녀석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유언은 그게 다냐?”
“다, 당신은 절대 모를 겁니다······.”
녀석의 눈빛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샤오 가문의 장남.
그리고 차기 가주 후보였던 샤오 준은 그렇게 타향인 한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안타깝게도 동정심은 조금도 일지 않았다.
“······모르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바쁘게 대비하는 거고.
‘그럼, 이제 털어볼까.’
샤오 준의 숨이 끊긴 것을 확인하고.
현우는 허리를 피며 일어났다. 죽은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가문간의 전쟁을 감수하며 이번 일을 벌인 만큼, 챙길 것들은 확실하게 챙겨야했다.
끼익─
집무실은 주인인 샤오 준의 성격을 반영하기라도 한 것처럼. 굉장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샤오 준이 연구하던 각종 독이 항아리째로 진열되어 있다는 점일까.
‘이건 생각지 못한 보너스네.’
현우는 오른팔을 들었다.
그곳엔 어느새 편안한 자세로 팔을 휘감고 있는 이무기, 덕춘이가 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쉭.”
“먹고 싶냐?”
“쉬시식!”
영물이라 말을 알아듣는 걸까.
덕춘이가 신이 나는 듯이 혀를 날름거렸다.
그럴만도 했다.
이곳은······.
독을 섭취해서 제힘으로 소화할 수 있는 덕춘이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뷔페나 다름없는 공간일 테니까.
“그래 너 다 먹어라.”
“쉭, 쉬익!”
이 녀석 또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입에서 침이 뚝뚝 흘리며. 덕춘이는 현우의 팔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독 단지에 고개를 처박은 이무기의 기묘한 식사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럼······.”
현우는 고개를 돌렸다.
샤오 준의 집무실.
이곳엔 이무기를 위한 독을 제외하고도. 당장 챙길만한 물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패자의 주머니를 터는 건.
목숨 걸고 싸운 승자에게 주어지는 정당한 권리다. 적어도 현우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