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41
41화 가문 회의(3)
‘닿을 수 있다.’
현우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상대를 향해 한발 전진한 것은 샤오 랑 뿐만이 아니었다.
“···마지막 한 번.”
단순히 막는 걸로 끝낼 생각은 없다.
제1초식 재천을 개량해 만들어낸.
오직 주현우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개량식을 사용한다면. 샤오 랑에게 충분히 닿을 길이 열릴 것이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초식 재천(在天)
샤오 랑의 파쇄격에 산산이 부서졌던 창염의 통제권을 되찾는다. 소용돌이치던 불꽃이 현우의 의지에 따라 손아귀가 되어 벌어진다.
‘마나 효율은 떨어지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현우에게 있어 효율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애송이가!”
샤오 랑의 외침이 들렸다.
그를 상대로 고작 제1초식 재천을 꺼내 들었다는 사실을 모욕적으로 느낀 걸지도 모른다.
창천십팔무.
천무그룹의 절기로 취급받는 열여덟 가지의 스킬이지만. 결국, 그건 전부 주양태 회장에게서 비롯된 기술들이다.
회귀 전의 현우는 창천무를 제18 초식까지 전부 습득했지만. 막대한 마나를 요구하는 탓에 제대로 사용해보진 못했다.
지금과 같은 개량은 꿈도 꾸지 못했고.
그저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쭉 빠져나가는 마나에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번 생에는 보이는 길 자체가 달랐다.
그 덕분이라고 할까.
창청신공 4성에 오른 이후···.
현우는 이전에 비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느끼는 게 사실이었지만.
적어도 무한하게 샘솟는 마나를 4개로 불열된 코어를 통해. 이전보다 훨씬 유능하게 다를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고오오─!
대기가 미칠 듯이 연소한다. 붉은 강기와 창염의 푸른 풀꽃이 충돌했다. 지금부터 제대로 가겠다던 샤오 랑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충돌의 여파로 속이 뒤집힌다.
목구멍에서 왈칵 핏물이 솟구치는 것만 같은 감각. 현우는 비릿한 혈향을 의식에서 지우려 노력했다.
무한한 마나를 지니고 있지만. 샤오 가문의 권마(拳魔)라는 별호는 허풍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산을 향해 주먹을 뻗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진짜 산은 아니야.’
네 개의 코어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무한한 마나를 발산하기 위해. 전신의 기혈을 최대로 열어재꼈다.
번쩍! 펼쳐진 창염을 폭사시켰다. 미쳐 날뛰는 수라파쇄격으로부터 비롯된 붉은 강기의 기세가 주춤 느려진다.
지금 이 순간.
샤오 랑에게 닿을 수 있는 확실한 일격을 만들어내야 한다. 현우는 그 일념으로 창천신공의 코어를 혹사시켰다.
“···파천.”
조용히 중얼거렸다.
현우의 오른 주먹을 창염이 뒤덮었다. 쉬이이익! 코어에서 방출된 모든 마나가 오른손에 집중되었다.
축염강기(蓄炎?氣).
창천신공의 2성에 올라야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인 창염. 그것을 극도로 압축하고 재련하여 타오르는 겁화의 강기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축염강기였다.
그냥 강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력.
그러나 보편적으로 축염강기는 창천신공의 5성에 오른 이후에나 형성할 수 있는 상위 권능에 해당한다.
설령 한 단계에 불과하다고 해도. 성급을 일시적으로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다면. 헌터 사회는 물론이고 천무그룹의 역사가 바뀌었을 테니까.
하지만 현우가 품고 있는 ‘인피니티 코어’는, 그 불가능을 한시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카가각─!
수라파쇄격을 이룬 붉은 강기가 밀려난다. 살짝 밀어냈다고 생각했을 때. 현우는 지면을 딛은 두 다리에 전력을 실었다.
닿는다.
“···!”
샤오 랑의 눈이 번뜩 뜨였다.
축염강기 너머로 수라파쇄격을 시전하던 그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왼손이 반격을 위해 현우에게 치달았다.
‘반격···!’
약속했던 조건은 다섯 초식이다.
그러니 저 반격은 상정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상정할 수가 없었다. 파천은 뒤를 생각하지 않은 최선의 일격이었으니까.
‘이런 비겁한 새끼.’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설마 그럴 거라고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런데 정말로 비무의 규칙을 어기고. 기어코 여섯 번째 초식을 사용할 줄이야.
여력이 있었다면 대응했겠지만.
마지막 일격이었던 파천은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날린 공격이었다.
물론, 인피니티 코어가 있는 만큼.
잠깐의 휴식이라도 취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손 놓고 당해야 하는 상황까진 가지 않으리라.
그러나 의미 없는 가정이다.
일단은 최소한 저 반격에 맞아 죽진 않아야 한다. 현우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어떻게든 위력을 흘려낸다면.
흑룡포로 만든 방어구가 목숨만은 살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도박에 가까운 수가 되겠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최대한 창염을 피워올리며 신체 주변에 둘렀다. 창염갑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였지만. 당장 믿을 거라곤 이것뿐이었다.
필연적으로 샤오 랑의 주먹이 현우를 꿰뚫으려는 순간.
쐐에엑! 무언가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콰쾅! 현우가 미처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눈앞에 거대한 흙먼지가 일었다.
“거기까지.”
주양태 회장이었다.
“마나를 거두고 뒤로 물러나라.”
“뭐라?”
샤오 랑의 눈썹이 치솟았다.
그는 주양태 회장의 요구대로 마나를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나는 격양된 감정을 따라 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물러서야 하는 것은 그쪽이다! 주양태 회장! 분명 약속을 나누었음에도. 정당한 비무를 방해할 생각인가!”
“···미련한 놈.”
샤오 랑의 인상이 구겨졌다.
“하?”
“샤오 가문의 권마. 네놈은 이미 약속했던 다섯 초식을 넘겼다. 이대로 계속하려 든다면. 여기부터는 비무가 아니라 살육전이 될 것이다.”
“···내가 다섯 초식을 넘겼다고?”
샤오 랑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황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관중석에서 한 여인이 일어났다.
“주양태 회장의 말이 맞습니다.”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이번 가문 회의에 교황 대리로 참석한 교황청의 성녀였다. 그녀는 덤덤한 목소리로 증언했다.
“엄밀히 따지면 이미 다섯 초식을 넘겼을 뿐만 아니라. 방금의 반격으로 여섯 초식까지 사용했습니다. 주의 이름을 걸고 제가 공증합니다.”
“내가 그랬단 말이지···.”
샤오 랑은 헛웃음을 흘렸다.
약속했던 조건을 어기고.
무의식적인 반격을 했다는 건. 그만큼 샤오 랑이 주현우의 마지막 공격을 위협적으로 생각했다는 것.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만약 주양태 회장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샤오 랑의 주먹은 무방비한 현우의 가슴을 그대로 꿰뚫었을 것이다.
“당신과 샤오 가문의 패배입니다. 권마.”
“으음···!”
패배.
샤오 랑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 두 글자보다 신경쓰는 건 따로 있었다.
‘···마지막 합.’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란 말인가. 분노와 흥분으로 마비되었던 이성적인 사고가 점차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감각.
그는 뺨을 타고 흐르는 뜨끈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감각의 정체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축축하고 뜨끈한 감촉의 정체를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피!’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아무리 저 녀석을 적수로 보지 않았다고 해도. 샤오 가문의 권마로 불리는 자신이 눈먼 공격에 맞을 수준은 아니었다.
샤오 랑은 쓰러진 현우를 내려다봤다.
비무의 조건은 다섯 초식을 버티는 것이었다. 이미 비무는 그의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이 녀석을 이대로 살려둬야 하는가.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게 마지막 경고다. 권마, 패배를 인정하고 이만 자리에서 물러나라. 충분히 경고했으니. 두 번은 말하지 않겠다.”
“······.”
결과에 승복하고 물러나야 하나.
아니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죽여야 하나.
‘가문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후자다.’
직계와 방계의 대립을 떠나.
이 자리에서 주현우의 존재를 지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샤오 가문에 있어 크나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다.
샤오 랑은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이어질 수 없었다.
주양태 회장이 어느새 조용히 한발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오싹,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이 샤오 랑의 뇌리를 내달렸다.
“물러나지 않는군. 권마.”
긴 말은 필요 없었다.
극한까지 응축된 창염이 그의 주위에서 용솟음쳤다. 샤오 랑은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한발 물러섰다.
“뒤지고 싶은가?”
주양태 회장의 눈이 살기로 번득였다.
***
“뭐?”
샤오 랑은 고개를 돌렸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주양태 회장의 눈빛이 보였다. 그 분노가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오롯이 그 혼자서 감당하긴 힘들 거란 판단이 들었을 뿐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샤오 가문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군. 꽤 오랜 세월 동안 충돌 없이 지내다 보니. 천무그룹이 그리도 우습게 보였나?”
으득, 주양태 회장이 이를 갈았다.
“나는···.”
“비무의 조건은 분명 다섯 초를 버티는 것이었다. 하나 네놈은 노망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분명 여섯 번째 초식을 사용했지.”
샤오 랑은 입을 다물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당황했다고는 해도.
마지막 초식이 되어야 했을 수라파쇄격이 파훼된 이후. 주현우의 공격에 저도 모르게 반격을 했으니까.
“직접 내건 조건을 지키지 못했으니. 패배는 확실한데. 이번 비무에 무슨 미련이 남아 물러나지 않나?”
“···인정하지. 내 불찰이다.”
샤오 랑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렀다.
주현우가 내뻗은 마지막 일격. ‘파천’은 예상을 한참 벗어난 결과였고. 그에게 정말 오랜만에 당혹감이란 감정을 일깨워주었다.
‘낭패로군.’
주현우의 목숨을 취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서. 조건이 걸려있다곤 해도 비무에서 패배했고. 자신 있게 내걸었던 그 조건마저 스스로 어기고 말았다.
“추하게 부정하려 들지는 않는군!”
“모든 이들이 목격했을 진데. 여기서 더 말을 하여 무엇하겠는가. 나 권마이자 동방무패는 이번 비무의 패배를 받아들이겠다.”
“아니, 이제 그거론 부족하다.”
그러나 주양태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샤오 랑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이번 비무에서 벌어진 실수에 대해. 관대한 아량으로 넘어갈 마음이 없었다.
“비무의 조건을 어겼으니. 불찰을 인정한다면 네 목을 직접 내놓아라. 그 정도는 되어야 성의가 있지 않겠는가.”
주양태 회장의 요구에 주위가 웅성였다.
샤오 가문의 일원들 사이에서도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가 오갔다.
“비무의 조건을 어긴 것은 맞지만. 그 대가로 권마의 목숨을 내놓으라니!”
“그건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닌가.”
“천무그룹은 정도라는 것을 모르는가!”
샤오 랑은 가문의 장로다.
고작 해야 3세에 불과한 주현우랑 비교한다면. 두 사람의 목숨의 가치는 절대 동등하지 않다.
천무그룹의 주현우가 못숨을 잃을 뻔하긴 했어도. 다행히 주양태 회장의 개입으로 큰 일은 일어나지 않기도 했고.
“과한 요구라!”
주양태 회장이 기세를 방출했다.
폐부로 들어오는 공기가 몇 배는 무거워진 것 같은 압박감이 주위를 짓눌렀다. 웅성거리던 주위의 소음이 일순 고요해졌다.
“이번 가문 회의에서. 천무그룹과 이 주양태는 네놈들 샤오 가문에게 최대한의 아량을 베풀었다.”
그래, 아량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비무에 어울려준 것 자체가. 주양태 회장에겐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샤오 가문의 차남이 행패를 부리다 목숨을 잃었을 때. 천무그룹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호의를 배풀었다. 한데 너희는 그 호의를 악용하여 천무그룹의 영역인 한국을 집어삼키려 들었지.”
주양태 회장의 시선이···.
멀찍이 떨어져 침묵을 지키고 있던 샤오 가문의 가주, 샤오 리에게 향했다.
“그래도 나는 가문 회의를 통해. 피를 흘리지 않는 방향으로 너희의 개짓거리를 수습할 기회를 주었다.”
성큼.
주양태 회장이 샤오 랑을 지나쳤다.
“그러나 그마저 인정하지 않고. 배분도 맞지 않는 비무로 샤오 가문이 직접 만든 원한을 갚으려 들었다.”
그는 가벼운 걸음으로.
샤오 리가 앉아 있는 관중석을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서로의 거리는 꽤 있었지만. 만약 마음만 먹는다면 어렵지 않게 공격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마지막 기회인 비무에서 마저. 조건을 어긴 책임조차 지지 않겠다니. 네놈 샤오 가문의 쓰레기들은 나의 아량과 관용을 시험하는구나.”
주양태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타오르던 불길은 이제 더이상 분노로 물들어 있지 않았다.
“모든 관용을 이용하고 무시하며. 끝까지 추태를 보인 것은 샤오 가문이다. 심지어 저번 회의에선 내게 독까지 사용하지 않았던가.”
“···!”
샤오 리의 눈꺼풀이 떨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동요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벌써 파악했단 말인가.
주양태 회장에게 사용한 독은 금선사와 천족오공 등을 몇백 마리나 갈아 넣은 고독(蠱毒)이었다. 그걸 몇 년간 샤오 가문의 장인들이 달라붙어 무형지독(無形之毒)으로 정제해내 사용했다.
중독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나기 전까진.
본인이 중독되었단 사실 자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무형지독의 무서움. 그런데 그걸 간파해냈단 말인가.
‘···말도 안 돼.’
샤오 리의 시선이 주형석을 향했다.
그 역시도 놀란 눈치였다. 연기일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샤오 리가 예상하고 있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억지를 심하게 쓰는군···!”
“당연히 오리발을 내밀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구태여 이를 증명할 생각도 없다. 어차피 네놈들은 끝까지 부정할 테니.”
쯧, 혀를 차는 주양태 회장.
“그러나 이제 나 주양태 역시, 더 이상은 참고 넘어가지 않도록 하겠다.”
“참지 않겠다면 어떻게 할 텐가.”
샤오 리가 조용히 물었다.
주양태 회장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샤오 가문에 전쟁을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