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샤오 가문(1)
“아, 아버지···!”
“형석이 너는 닥치고 있거라.”
주양태 회장의 동공 속에서 서늘한 불꽃이 타올랐다. 단지 몇 마디 말로써 진정될 수 있는 불꽃이 아니었다.
“진심인가. 주양태 회장.”
샤오리는 미간을 좁혔다.
최근 샤오 가문과 천무그룹의 불화. 분명 가볍게 넘어갈 사안은 아니지만. 정말 전쟁까지 선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진심이다.”
“제1차 가문 회의 이후로 지난 몇십 년간 잠잠했던. 가문 간의 전쟁을 이제 와서 본인 손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라···.”
“샤오 가문과 천무그룹. 어느 한 쪽이 멸문할 때까지. 이 선포를 철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드디어 미친 건가.”
샤오 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얼굴엔 미약한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고작 비무에서 벌어진 실수가 아닌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능청스럽게 넘어가기엔 이미 일은 심각해졌다.
‘곤란하군.’
설마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이야.
일전에 사용했던 무형지독 역시.
벌써 간파되어서는 안 되는 수였다. 앞으로 몇 년은 주양태 회장의 수명과 체력을 자신도 모르게 갉아먹어야 했을 텐데.
‘아니, 혹시 그 반대였을 수도 있다.’
샤오 리의 눈에 희망의 빛이 반짝였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주양태 회장에게 독이 잘 들었던 것일 수도 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나. 무형지독은 겉이 아닌 속을 부패시키는 극독. 제아무리 주양태 회장이라도 멀쩡하긴 어렵다.
애초에 그의 힘을 너무 강하게 생각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무영지독의 효과가 예상보다 훨씬 강했고. 벌써 중독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눈치챈 것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다면 해볼 만 하다.
천하의 주양태도 무적은 아닐 테니.
“마지막으로 변명할 말이 있다면 넓은 아량으로 들어주기는 하겠다. 변명이 아니라 유언도 상관없고.”
“그보단 권고하지. 선포를 취소해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두 가문이 서로 피를 보아서 좋을 것이 없을 텐데. 지금이라면 감정적인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가 줄 수도 있다.”
샤오 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주양태 회장의 입가엔 조소가 떠올랐다. 애초에 그는 선포한 전쟁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헛소리라.”
낮은 웃음이 주양태 회장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이윽고 샤오 리에게서 시선을 돌려 각 가문의 수장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샤오 가문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가문의 수장들은 잘 듣도록. 이 자리에서 천무그룹이 제안하는 선택지는 셋 중의 하나다.”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인 주양태 회장.
“가만히 있던가. 천무그룹의 편에 서던가.”
한 개씩 접히던 손가락.
곧, 마지막 손가락이 미련없이 접혔다.
“아니면 우리와 사생결단을 내리던가. 선택을 강요하진 않겠다. 다만 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셋 중 둘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첨언해주겠다.”
중립과 샤오 가문의 편.
두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다면. 좋을 것이 없다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비겁하게 한 가문의 가주에게까지 독을 사용했으니. 더는 두고 볼 수 없겠지! 우리 록펠러 가문은 천무그룹과 함께 싸우겠다!”
록펠러 가문의 가주. 데이비드 록펠러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샤오 가문의 음침한 녀석들은 마음에 안 드는 차였다. 이번 기회에 싸그리 밀어주마!”
블랙 가문과 로마노프 가문은···.
서로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았다. 블랙 가문의 가주, 아서 블랙의 바로 옆에서 다니엘 블랙이 고개를 저었다.
“···블랙 가문은 이번 일에서 빠지겠소.”
“로마노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양측 가문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전쟁에 끼어들어 피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짧게 이번 사태에 개입할지에 대해 고민했겠지만. 결국 그들의 결론은 샤오 가문에겐 불리한 쪽이었다.
“카일리 가문은···.”
마야 카일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한 대답을 하기 이전에 그녀는 현우 쪽을 살짝 바라봤다.
‘아무리 주현우 님이라고 해도. 설마 샤오 가문의 권마와의 비무에서 승리를 거둘 거라곤 생각지도 않았는데.’
다섯 초식이란 조건이 있긴 했지만.
마야 카일리를 포함한 누구도 현우의 승리를 예상하진 못했다.
심지어 그는 이미 가문 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측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에게 천무그룹의 편에 설 기회를 주겠다 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뭔가 더 있어.’
그녀는 자신의 직감을 믿는 편이었다.
장사꾼에게 직감이란 곧 전부나 다름없었고. 카일리 가문의 핏줄은 손익에 대한 감각만큼은 날 때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예리했으니까.
“천무그룹의 편에 서겠어요.”
확신을 가지고 마야 카일리는 말했다.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마지막으로 자네의 대답만 남았군. 교황의 대리로 이 자리에 와 있으니. 교황청의 입장은 충분히 대변할 수 있겠지.”
“···예, 교황님께선 제게 이번 가문 회의의 모든 안건에 대한 결정권을 맡기셨습니다. 또한 교황청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작게 한숨을 쉬는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그녀의 대답은 고민할 것도 없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번 전쟁 역시 중립을 선언하겠습니다.”
“샤오 가문 놈들의 비겁한 행태를 보고도. 여전히 중립을 고수하겠다는 말인가. 이번엔 조금 불쾌하게 느껴지는군.”
주양태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아그네스 그레고리오는 발언을 번복하지 않았다.
“인간의 전쟁엔 공명만이 있을 뿐.”
그녀는 조용히 두 손을 맞잡아 신실한 태도로 기도를 올렸다.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그녀를 비웃는 자는 없었다.
“인간 사이의 불화에 공정과 정의는 없습니다. 신벌의 대행자인 저희 교황청은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하겠습니다.”
“알겠다.”
주양태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을 숨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중립이라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다.
어느 쪽에도 서지 않겠다는 것.
그건 결국 어떤 손해도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천무그룹은 이번 일을 분명 기억할 것이다. 이건 샤오 가문과 원한을 끊기 위한 전쟁이지만. 천무그룹의 우군을 가리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니.”
“···저희는 언제나 주께서 바라시는 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천무그룹의 넓은 아량을 보여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저희들 신밖에 믿지 않는 광신도가. 나를 믿겠다. 근래 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우스운 농담이구나.”
비죽 조소를 흘린 주양태 회장.
그는 다시금 샤오 리와 마주 보았다.
더이상 샤오 가문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자리에 앉아 머리를 굴리고 있던 샤오 리 또한. 그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고 있었다.
샤오 리의 입에서.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대련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샤오 랑과 잠시 눈을 마주쳤다.
직계와 방계로 가문 내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눈빛만으로 서로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 수밖에 없나.’
이로서 천무그룹에 붙은 가문은 두 곳.
하지만 샤오 가문의 뒤를 봐줄 예정이었던 블랙과 로마노프가 손을 뗐다. 생각지도 않은 카일리와 록펠러가 적으로 돌아섰다.
확실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지.”
샤오 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이 지경으로 돌아갈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곳이 바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낸 샤오 가문의 본가라는 것.
“카일리 가문과 록펠러 가문.”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두 가문의 일원들을 바라봤다. 천무그룹을 지지하기로 한순간부터 저들 또한 적이었다.
“너희는 천무그룹과 마찬가지로. 샤오 가문이 지배하는 이곳 사천 땅에서 살아 고향으로 돌아가진 못할 것이다.”
“염병첨병을 떠는군.”
주양태 회장과 샤오 리.
두 지존의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
한편···.
현우는 잠시 뒤로 빠져 체력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샤오 랑과의 비무는 일단 승리로 끝났지만. 이대로면 당장 살육전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으니까.
‘샤오 가문과 전쟁에서 혼자 널브러져 있을 수는 없지.’
공명심 때문은 아니다.
샤오 가문을 박살 낸 이후엔 놈들의 비고를 털어야 한다. 그때까지 쓰러지지 않으려면 일단 지금 최대한 회복해야 했다.
“잠시 가만히 계십시오.”
그때 현우의 곁으로 다가온 한 사람.
금색으로 빛나는 머리칼이 현우의 눈앞에 사라락 흔들렸다. 옅은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아그네스 님?”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샤오 가문의 권마와 비무에서 입은 내상을 치료해 드릴 생각입니다.”
아그네스의 손이 빛을 발했다.
불과 몇 초가 지났을 뿐인데. 현우는 마구 뒤틀린 속이 빠르게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전보다 힘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천무그룹에 소속된 치유사들도 전부 일류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그네스와 비교하면 갓난아이 수준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아그네스의 손이 천천히 현우에게서 떨어졌다.
“됐습니다.”
“···중립을 선언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전쟁에서는 분명 중립을 지킬 생각입니다. 다만 샤오 가문의 권마가 비무의 규칙을 어긴 만큼. 천무그룹에 작은 호의를 배푼 것뿐입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금발이 하늘하늘 나부꼈다. 현우는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눈을 마주쳤지만 텅빈 눈동자에선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뭐, 일단은 감사합니다.”
“감사를 받고자 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 취소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린 양의 감사하는 마음을 거절하는 것 또한 주의 뜻이 아니겠지요. 저는 그리 매몰찬 사람이 아닙니다.”
뭐라는 거지.
현우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설마 치료를 해준 대가로 무언가를 내놓으란 이야기인가.
“대가를 달란 이야깁니까?”
“한국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그네스가 빙긋 웃었다.
여전히 눈동자엔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조금 섬뜩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물질적인 것을 내놓으란 소린 아닌 모양이었다.
“이번 전쟁이 끝난 이후. 주양태 회장님의 분노가 애꿎은 교황청을 향하지 않도록. 한마디 말씀을 부탁하고 싶을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진심을 알 순 없다.
그러나 현우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인연을 맺어둬서 나쁠 건 없다.’
서울 방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교황청 역시 역대급 게이트 발생에 휘말려 절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다니엘 블랙의 계략이었겠지만···.
그때 만약 아그네스 그레고리오를 비롯한 교황청의 세력이 건재했다면. 그리고 그들의 조력을 받았더라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이번엔 가능하게 만들면 된다.’
그걸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거니까.
현우는 간단하게 몸 상태를 채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직전까지 속을 뒤틀던 고통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제가 완벽히 치유를 해드리긴 했지만. 가벼운 수준이라도 내상은 내상. 며칠은 몸을 사리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아쉽게도 그럴 상황은 아닌 것 같군요.”
주위의 분위기는 영 좋지 않았다.
당장 어느 쪽에서 먼저 출수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현우는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 걸 추천합니다. 주양태 회장 혼자라도 능히 천무그룹의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저도 가만히 있을 순 없죠.”
“···공명심 때문입니까?”
“아뇨.”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부터가 가장 재미있는 부분인데. 몸 관리한다고 저 혼자만 쏙 빠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놈들을 박살 낸 이후. 비고에서 챙길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닌데.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염치없이 손을 벌릴 수는 없지 않은가.
벌써부터 비고를 탈탈 털어갈 생각에 현우의 가슴은 쿵쿵 뛰고 있었다.
***
“좋다.”
으득, 샤오 리가 이를 갈았다.
그는 눈을 날카롭게 뜨며 주양태 회장을 노려보았다. 그가 전쟁을 선포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자리에서 멀쩡히 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실수를 했군. 주양태 회장.”
“실수?”
“그래.”
샤오 리는 까딱 손짓했다.
그의 명을 기다리고 있던 샤오 가문의 최정예 살수 집단. 흑사대(黑蛇隊)가 그림자 속에서 존재를 드러냈다.
전원이 SSS급 헌터 이상의 실력자.
이들만으로도 7대 가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군소 길드는 물론이고. 작고 국력이 약한 국가 정도라면 하룻밤 만에 뒤집어 버릴 수도 있다.
하나하나가 가문의 장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이들. 그중에 세 명이 튀어나와 주양태 회장의 주위를 둘러쌌다.
“이곳은 샤오 가문의 총본산이다. 아무리 네가 대단하다고 해도. 홀로 샤오 가문의 전력을 상대할 수는 없는 법.”
“···하!”
주양태 회장의 눈썹이 추켜 올라갔다.
“나 하나 정도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뭐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고 싶은 게냐?”
자신 만만한 물음.
그러나 이미 샤오 리는 알고 있었다.
지금 주양태 회장은 혼자다. 주형석은 애초에 그의 아군이 아니며, 주현우 정도는 샤오 가문의 장로 하나면 충분히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으리라.
“평소의 성급한 성격이 화를 자처했다고 생각해라. 노괴.”
“···흥.”
주양태 회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샤오 가문의 머저리들···.”
주양태 회장은 팔짱을 끼었다.
전쟁을 언제부터 시작할 것이냐. 그런 질문은 그에게 있어서. 아니, 천무그룹에게 있어서 하등 의미가 없는 물음이었다.
“지금까지 천무그룹이 왜 동아시아 최강으로 불리고 있었는지. 오랜 평화 때문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오만방자한 소리를···.”
“오만이라!”
주양태 회장이 크게 발을 굴렀다.
찰나에 방출된 기세가 기염으로 변해 주위를 한바탕 휩쓸었다. 창졸간에 그를 에워싸고 있던 흑사대원 세 명이 숯덩이로 화해 그 자리에 나뒹굴었다.
“그렇다면 진짜 오만이 무엇인지. 내 너희들의 저승 선물으로 똑똑히 보여주도록 하겠다!”
광오한 웃음과 함께.
주양태 회장이 지면을 박찼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7초식 화룡점정(畵龍點睛)
미칠듯한 열기를 흩뿌리며.
푸른 용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