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80
80화 후쿠오카, 게이트 브레이크(1)
현터 협회 대한민국 지부.
천무그룹이라는 거대 가문이 버티고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헌터협회 자체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은근히 무시 받는 편이었다.
이유는 심플했다.
첫째로 인구가 적은 나라다 보니.
기본적인 헌터의 수가 타국 대비 많을 수가 없다. 양적인 열세는 당연히 질적인 열세로 이어지곤 한다.
둘째로 인재의 유출.
보통 S급 이상의 헌터는 페이와 대우가 훨씬 좋은 길드나 가문 쪽으로 가기 마련.
덕분에 인구대비 S급 이상 헌터의 비율은 높은 편이었으나. 정작 한국 헌터협회는 그 수혜와는 인연이 없었다.
이런 악조건으로 인해.
한국 헌터협회는 울며 겨자 먹기로 헌터 의무 복무라는 대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악순환의 반복.
‘그런데···.’
그 평가를 단번에 바꾸겠다니.
그건 단순히 게이트 하나를 공략해서 만들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세상은 그 정도로 만만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천무그룹의 3세.
허투루 그런 소리를 내뱉지는 않을 터.
윤영기 지부장.
그는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그 방법의 진위를 몹시 궁금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
대마도 인근.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 위치한 배타적 경계 수역(EEZ). 그 바다 위의 공중을 거대한 비공정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앞으로 3분 후면 도착합니다.]페일 라이더가 속도를 조금 늦췄다.
지금까지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원 없이 구경하던 주건우. 녀석이 가볍게 몸을 풀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해양 게이트는 처음인데. 국가에서 이런 게이트를 그냥 놔두는 이유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흘끔, 주건우가 윤영기를 바라봤다.
그는 삐질 새어나오는 식은땀을 손으로 훔치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건 외교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보상이야 탐나지만. 만약 섣불리 건드렸다간 외교적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니 말입니다.”
“음···.”
주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녀석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실상 이런 문제는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해양 게이트의 특성상.
내륙 지역에서 발생한 게이트와 비교해. 그 위험성이 한참 낮다는 점. 그게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였다.
게이트는 재앙을 동반한다.
그러나 민간인이 거주하는 내륙과 다르게. 해양 지역에서 발생하는 게이트는 그 재앙의 영향을 받을 인간이 없으니.
특히 이처럼 복잡한 국가 간 경계에 걸친 해양 게이트의 경우.
예측된 게이트 브레이크 기한 전까지.
이렇게 방치하며 국가 간의 합의를 통해. 공략권을 서로에게 미루려는 경우도 드물게 발생하는 편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페일 라이더를 타고 도착한 해역.
그곳엔 헌터라면 누구나 경악할 만한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건 윤영기 지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저건···.”
윤영기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페일 라이더의 창문 너머.
넓게 펼쳐진 바다 위에는 수많은 해양 마족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붉게 물든 게이트까지.
“···게이트 브레이크!”
그 광경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미 수 시간 전에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 본래 예상대로라면 게이트 브레이크까진 일주일가량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갔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을 꼽으라면. 녀석들의 진로가 한국이 아닌 일본을 향하고 있다는 걸까.
‘우리에겐 다행이지만···.’
일본에겐 재앙이 되겠지.
언뜻 육안으로 확인했을 뿐이지만.
마족 웨이브의 규모는 벌써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더 놀라운 점은 이게 아직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게이트의 색이 아직 붉고. 여전히 마족 웨이브를 토해내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아직 1차 웨이브에 불과하단 소린데.’
상황은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일목요연했다.
예상을 벗어난 재난.
앞으로 1시간 이내에 마족 웨이브는 일본 본토에 상륙할 것이 분명하다. 그 시간 안에 모든 대비를 끝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측보다 빠르군요.”
그러나···.
정작 현우의 눈빛은 침착했다.
예상했던 상황에선 조금 벗어났지만.
사실 이런 상황은 오히려 현우에겐 반가운 일이었다.
새롭게 손에 넣은 비공정.
페일 라이더의 진짜 위력을 시험해볼 아주 좋은 기회.
그리고 이와카미 가문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에게도 무거운 빚을 안겨줄 기회가. 특별히 손을 쓸 필요도 없이 빠르게 찾아온 셈.
‘아주 순풍이 불어오는군.’
현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차려진 밥상도 엎어진다. 날로 먹는 것도 적당한 시기가 있는 법.
바로 대처에 들어가야 했다.
“마족들의 예상 경로는?”
[이대로 대마도를 거쳐 후쿠오카 방면으로 향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게이트 브레이크라면 적지 않은 헌터가 희생될지도 모릅니다.]확실히 현우가 알고 있는 대로였다.
“윤영기 지부장님.”
“아, 예!”
차렷 자세로 대답하는 윤영기.
여기부터 그의 이름을 팔아넘길 차례였다.
“지부장님께선 게이트의 이변에 주목하고 계셨고. 한발 앞서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을 예측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한시가 급한 상황에 천무그룹에 도움을 요청했고. 저희는 그 요청에 따라 게이트를 관측하기 위해 이동. 일본으로 향하는 마족 웨이브를 발견한 겁니다.”
그제야 윤영기는 이해했다.
이건 일종의 외교적 알리바이였다.
정부와 정부 간의 문제.
천무그룹의 영향력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국제 사회가 얽힌 문제로 들어가게 되면. 일이 복잡해지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특히 일본은···.
천무그룹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만큼.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트집을 잡아올 가능성이 있으니. 차라리 헌터 협회를 쿠션으로 끼고 들어가는 편이 낫다.
“이번 일은 이렇게 된 겁니다. 이 정도라면 천무그룹이 일본의 재앙에 개입할 명분은 충분하겠죠.”
윤영기는 꿀꺽 침을 삼켰다.
외교적으로 마찰이 생길 부분만 적당하게 잘 넘긴다면. 이건 한국 헌터협회는 물론, 윤영기 자신의 입신양명에도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윤영기 본인이 되겠지만. 그 정도야 배팅 금액으론 너무 가벼운 수준이다.
잃을 것은 적고, 얻을 것은 많다.
“그, 그렇습니다!”
윤영기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
그건 강력한 마나의 파동을 동반한다.
당연히 육지에 있는 게이트 발생 관측 센터에서도 그 여파를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게이트 브레이크로 인해 발생한 마족의 웨이브가 향하는 방향 역시. 레이더를 통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하나.
관측과 대비는 언제나 사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까.
“왜 하필이면 이쪽으로···!”
이와카미 히로시.
가문의 삼남으로 최근 일본 헌터협회 공인 SSS급 헌터로 승격한 그는 식은땀을 훔쳤다.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
2000년대 이후로 게이트 발생 관측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이후. 지금 시대의 일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어진 재앙이다.
그러나 그 재앙이.
지금 이와카미 히로시가 있는 후쿠오카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대비는 너무나도 미흡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예측한 게이트 브레이크 발생 기한은 아직 일주일 이상 남았을 텐데···!”
그러나 의미 없는 고민이다.
당장 원인을 밝혀낸다고 해도. 이쪽을 향해 몰려오는 마족 웨이브는 한 마리도 변함없이 그대로일 테니까.
“끙···.”
히로시는 침음성을 흘렸다.
지금 포착되는 마족 웨이브의 수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많다.
현재 후쿠오카에 상주하고 있는 일본 소속 헌터만으로는 막아내기 어렵다.
아니, 막아낼 수 없다.
SSS급 헌터인 그가 선봉에서 필사적으로 방어한다면. 어느 정도야 버틸 수 있겠지만. 도쿄에서 제대로 된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바, 방위대장님.”
“···으음.”
“이제 어떻게 합니까?”
지레 겁을 먹은 헌터가 물었다.
하지만 히로시에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선 도쿄의 방위성에 긴급 지원 요청을 넣어라. 후쿠오카까지 지원이 도착하는 데엔 적어도 1시간 이상이 걸릴 테니. 그때까진 어떻게든 버텨본다.”
말이 좋아야 1시간이지.
가장 가까운 구마모토 지역 헌터들이 준비를 마치고 도착하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2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 분명했다.
“후퇴는···.”
“우리가 후퇴하면 후쿠오카는 무너진다. 그리고 이 관측 센터가 사라지면. 규슈 지역 일대의 방위에 큰 구멍이 뚫리고 말아.”
물러설 곳은 없다.
‘이 후쿠오카의 관측 센터가 무너지면. 규슈 지역의 연이은 재앙의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전원 이곳에 뼈를 묻는다.”
한 마디로 죽으란 소리.
안타깝지만 그렇게 목숨을 걸고 방어전을 펼쳐도. 이미 지원 부대가 도착했을 때쯤엔 전멸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
후쿠오카 모모치해변.
넓고 깨끗한 해변과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한 이곳은 평소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후쿠오카의 관광 명소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고. 각자의 장비로 무장한 헌터들만이 비장한 표정으로 수평선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앞으로 최소 1시간.”
이와카미 히로시가 입을 열었다.
대기 중인 헌터들의 이목이 일제히 그를 향해 쏠렸다. 순간 쿡쿡 옆구리가 쑤셔오는 감각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하며 평온한 표정을 연기했다.
“그 시간만 버티면 지원이 도착한다. 이번 방어전에 희망은 있다. 그러니 모두 목숨을 걸고 해변을 사수하도록!”
“···예!”
대답은 작지 않았다.
그러나 히로시는 목소리 안에 서린 공포와 절망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하나,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지금 히로시 역시 비슷한 감정을 격렬하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마족들이··· 보입니다!”
관측 계열 스킬을 보유한 헌터.
그가 꿀꺽 침을 삼키며 보고했다.
사실 보고가 의미 있진 않았다.
그가 입을 뗀지 30초도 지나지 않아.
수평선 너머로 빼곡히 보이는 검은 점들이 모두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마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투에 대한 긴장이 고조될 무렵.
상륙하기 직전인 마족 웨이브의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웨이브의 진격이 잠시 멈춘 사이. 헌터들은 입을 반쯤 벌리고 바다가 아닌 하늘을 바라봐야했다.
우우우우─
모모치 해변의 상공에 무언가 나타났다.
처음엔 작은 창백한 점으로 보였던 그것은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고. 이내 모두가 그 정체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는 비공정.
페일 라이더의 첫 공식적인 등장이었다.
***
‘아주 볼만한 광경이 될 거다.’
페일 라이더의 포격.
전생에 직접 대적해본 경험이 있는 현우는 누구보다 그 위용을 잘 알고 있었다.
압도적인 공포를 선사하는 위력.
심지어 지금은 페일 라이더의 유일한 단점. 엄청난 마나를 소비한다는 부분을 완벽히 상쇄할 수 있는 현우가 운용하고 있다.
[전 포대 발포 준비하겠습니다.]타나토스의 보고.
기이이잉─!
창백한 푸른 마나 입자가 페일 라이더 하부에 달려 있는 주포 5문. 그리고 부포 8문을 향해 서서히 모여들었다.
약 15초의 예열 과정 후.
[준비 완료되었습니다.]“일본 헌터 쪽엔 피해가 없어야 해.”
[이미 인명 피해의 가능성을 고려한 포격 궤적을 모두 계산해두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일본 헌터 측에 포격이 떨어진다면. 귀찮은 외교 문제로 발생할 가능성도 아주 없진 않다.
물론, 천무그룹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 문제의 불길이 크게 불어날 가능성은 어렵지 않게 차단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포격 개시.”
명령과 동시에.
현우의 몸에서 쭈욱 마나가 빨려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인피니티 코어의 마나가 무한하다곤 하지만. 솔직히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는 소모량이었다.
그러나···.
진짜 놀랄만한 광경은 이제 시작이었다.
─콰과광!
현우의 명령이 떨어짐에 따라.
일제히 바다를 향해 창백한 푸른 불꽃을 뿜은 페일 라이더의 13문의 포대. 그 공격이 만들어낸 결과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두두두두두!
지면을 강력하게 때리며 착탄한 13개의 창백한 푸른 불꽃 기둥. 그것만으로도 1차 마족 웨이브의 1할 가까운 머릿수가 단번에 쓸려나갔다.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페일 라이더의 포격은 신기전과 같은 마도화포 이상의 위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진짜 위력은 착탄 이후에 발휘된다.
현우가 기억하는 대로였다.
후우욱···!
착탄한 불꽃이 일순 부풀어 오르더니.
격렬한 섬광과 함께 폭발.
주위의 마족 수십 개체를 눈 깜빡할 사이에 검게 탄화된 파편으로 변화시켰다. 그렇게 열 세 개의 불꽃 기둥이 동시에 바다 위로 높게 솟구쳤다.
“오오오···!”
그 엄청난 위력에 윤영기가 전율했다.
그리고 현우 역시도.
방금 페일 라이더가 보여준 위력에 상당히 만족하는 중이었다.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적마녀 오수진이 사용하는 최강의 스킬. 메테오 라이트의 위력과 견줄 만도 하겠어.’
물론, 오수진 그녀가 전력으로 발한 메테오 라이트라면. 파괴력의 차이는 심하게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페일 라이더 역시.
메테오 라이트에 비해.
명확한 장점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마나가 계속해서 공급되는 한.
약간의 냉각만 거치면 끊임없이 엄청난 위력의 포격을 연속적으로 쏟아낼 수 있다는 것.
[전 포대 발포 준비 완료.]타나토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건 저 아래의 마족 웨이브에겐 들리지 않을 절대적인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