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81
81화 후쿠오카, 게이트 브레이크(2)
불과 6분.
거대 비공정이 모모치 해변에 나타난 후.
수평선을 가득 채울 정도로 몰려온 마족 웨이브가. 가공할 위력의 포격을 맞고 전부 잿더미로 변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었다.
물론, 아주 운 좋게 포격을 피해.
가까스로 해변에 상륙하고 헌터들에게 달려든 마족도 일부 있었으나. 다행히 그 정도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소수의 경지가 낮은 헌터가 부상을 입을 것을 제외하면. 이와카미 히로시 휘하 방위대의 피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하하··· 이런 미친···.”
이와카미 히로시.
그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 이렇게 헛웃음을 흘리는 것 외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아아, 들립니까.]그의 허리춤에 있던 통신기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협회 측의 마도공학 통신기 주파수에 접근할 권한이 있는 것은 같은 협회 소속의 인사뿐.
‘설마, 저 비공정이 협회 소속이라고?’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그가 알고 있는 한. 세계 어떤 국가의 헌터협회 지부도 비공정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히로시는 빠르게 통신기를 손에 쥐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큰 도움을 받은 판국에 의심만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수··· 수신 양호!”
[아, 연결된 모양입니다.]통신이 잠시 잠잠해지더니.
이내 훨씬 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페일 라이더. 천무그룹 소속 비공정입니다. 지금 통신을 받으신 분의 신원을 밝혀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이쪽은 후쿠오카 현 방위대장. 이와카미 히로시입니다. 그쪽 신분을 아직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천무그룹의 주현우입니다.]천무그룹 주현우.
분명히 들어본 기억이 있다.
‘아, 요즘 유명한 잠룡···!’
히로시의 눈이 커졌다.
최근 세계 7대 미공략 던전으로 남아 있던 바벨과 아르카임. 두 곳을 불과 몇 달 만에 공략해낸 천무그룹의 재능 넘치는 3세.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무그룹이 샤오 가문을 멸문시켰던 가문 전쟁에서. 샤오 가문의 장로 중에서도 가장 강했던 샤오 랑을 직접 쓰러트린 사내.
최근 헌터 사회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헌터는 이제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그 잠룡이 대체 여긴 왜?’
그리고 떠오르는 의문.
이걸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상대방 쪽에서 먼저 히로시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화제를 꺼냈다.
[저희는 한국 헌터협회 부산 지부의 긴급 지원 요청을 받고 왔습니다. 늦지 않게 도착한 것 같아 다행이군요.]“아아··· 예.”
히로시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일본 정부와 헌터협회 일본 지부 측에선. 이번 게이트를 한국에게 떠넘기려 했었다.
예측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공략을 한들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쪽에선···.’
게이트를 확실히 재앙으로 인지하고.
지원을 망설이지 않았다. 외교적인 문제를 떠나. 당장 죽음을 각오해야 했던 히로시는 깊은 감명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방위 대장으로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감사 인사는 조금 있다 하시죠.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이 완벽히 끝난 게 아니니까요.]“예,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착륙할 테니.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부대와 함께 잠시 뒤로 물러나주시길 바라겠습니다.]우우우웅─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천천히 착륙하는 거대한 비공정.
잠시 후.
페일 라이더의 탑승구가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히로시는 그것이 왠지 모르게 꼭 외계인과의 조우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구원자와의 조우··· 인가.’
다시 한 번.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완전히 열린 탑승구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정한 검은 정장.
그 어깨 위로 멋들어지게 수놓인 청룡. 그건 그가 확실히 천무그룹의 혈족이라는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다들 무사하십니까?”
후쿠오카의 구원자.
주현우가 그들에게 물었다.
***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를 받긴 아직 이릅니다.”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해변에 도달한 것은 1차 웨이브.
현우는 이 게이트 브레이크가. 도합 4회의 마족 웨이브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설마 이게··· 끝이 아니란 말입니까?”
“예.”
이제 1차가 끝났으니.
앞으로 3회의 웨이브를 막아내야.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은 비로소 완전히 끝나게 된다.
‘실제로 전생에 이와카미 히로시. 후쿠오카 방위 대장 휘하의 헌터 부대는 1차 웨이브를 가까스로 막아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구마모토 지역 방위대가 급하게 지원을 위해. 후쿠오카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이미 후쿠오카엔 마족의 2차 웨이브가 도달한 직후였다.
이와카미 히로시.
그의 후쿠오카 방위대는 전멸. 그리고 이어 도착한 구마모토 지역 방위대 역시. 2차 웨이브를 막아내지 못하고 전멸하게 된다.
다음 웨이브로 넘어갈 수록.
더 많고 더 강력해진 마족이 출현한다.
이후 도착한 이와카미 가문의 정예와 일본 방위성 소속 헌터 특임대가 3차 웨이브를 클리어했으나.
4차 웨이브에 이르자.
상당한 피해를 입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물밀듯 몰려드는 마족에 비해.
일본이 움직일 수 있는 헌터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들 개개인의 체력 역시 무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맙소사.”
이와카미 히로시.
그는 현우의 입에서 나온 소식에 절망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1차 웨이브는 막았지만. 앞으로 3회는 더 몰려올 겁니다. 부상자를 신속히 치료하고 다음 웨이브에 대비해 방어선을 짜도록 하죠.”
“최소 4차라니···.”
끔찍한 예측이었다.
그로서는 현우의 예상이 제발 틀리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건 예측이 아닌 미래의 정보였으니.
그의 바람대로 빗나갈 일은 없으리라.
“웨이브의 간격은 이쪽이 계산한 대로라면 약 15분 정도. 지금 이미 5분이 지났으니. 앞으로 10분 내에 준비를 마쳐야 할 겁니다.”
“다행히 저희 방위대원들의 부상은 거의 없습니다만. 아직 요청한 지원이 도착하려면 최소 1시간은 더 필요합니다.”
히로시는 흘끔 페일 라이더를 바라봤다.
저 비공정을 다시 운용한다면···.
두 번째 웨이브까지.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게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마냥 희망적이진 않았다.
‘저만한 거대 비공정을 아무런 페널티 없이 운용할 수는 없겠지. 2차 웨이브에선 아까 보여준 것만큼의 퍼포먼스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로서는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세간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비공정들은 모두 그랬으니까.
록펠러 가문이 운용하는 쌍둥이 전함.
그리고 교황청의 메르카바 역시. 가공할 위력을 가진 전략병기였지만. 전투 지속력은 쏟아낸 화력에 반비례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가 착각한 것이 하나 있다면.
현우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페일 라이더는 이미 그 지속력이라는 단점을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점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죠.”
전생의 일본은 막지 못했던 재앙.
그 결과는 이제부터 사뭇 달라질 것이다.
현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지면에 정박해 있던 페일 라이더가 다시 공중을 향해 천천히 솟구쳤다. 해변에 대기 중이던 몇몇 헌터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제가 이곳에 있는 이상.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은 이미 진압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조만간 알게 될 겁니다.”
그건···.
공중의 페일 라이더.
그리고 지상의 주현우.
두 규격 외의 존재가 발하는, 터무니없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증명이 될 테니 말이다.
***
“허어···.”
이와카미 히로시.
그는 벌어진 입을 도저히 다물지 못했다.
어느덧 4차 웨이브.
그러나 페일 라이더가 뿜어내는 화력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강력하고. 더 빠르게 마족을 소거시키고 있었다.
‘저게 비공정의 힘인가?’
실제로 목격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소문으로 들었던 록펠러 가문의 쌍둥이 전함이나. 교황청의 이단심판 부대가 운용하는 메르카바의 위력은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마치 무한한 동력을 가진 것처럼.
페일 라이더는 끊임없이 적들을 향해. 창백한 푸른 불꽃을 쏘아내고 있었다.
잠깐의 예열과 냉각에 소모되는 시간을 제외하면. 끝도 모르고 멈추지 않는 불꽃 세례.
그 광경은 아군이라도 공포를 느낄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선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페일 라이더의 포격을 뚫고.
간신히 해변에 상륙한 마족은 또다시 거대한 벽을 만나야만 했다. 그건 바로 주현우와 그가 부리는 영물 이무기였다.
“쉬이익!”
이무기···.
덕춘이의 입이 쩍 벌어지고. 동족의 푸른 체액으로 물든 바다에서 겨우 올라온 마족 무리를 향해. 검푸른 독무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마족들이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그리고 아주 운이 좋게. 그 독무까지 피한 마족들 역시, 해변에서 고작 몇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을 뿐이었다.
번쩍이는 푸른색 우레불꽃.
그 섬광의 끝에 한 사람의 인영이 있었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2초식 와류(渦流)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와 함께.
푸른 우레불꽃이 해변의 모래사장을 번쩍 가로질렀다.
콰르르르!
모래를 단숨에 녹이는 열기를 품은 권능이 번갯불의 형상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흡사 불꽃과 번개가 섞인 폭풍을 보는 것 같았다. 그건 압도적인 마나의 출력을 통해 발하는 경이롭고 순수한 힘이었다.
단 5초.
해변에 상륙하고 몇 발자국 떼지도 못한 마족들이 검은 숯덩이로 변하는 데에 소요된 시간이었다.
“이야···.”
방위대 소속의 젊은 헌터.
이제 막 S급에 도달해 한창 콧대가 높아져 있던 한 녀석이 탄성을 흘렸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자존심이 높은 헌터라도.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엔 감탄과 경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군.’
히로시 또한 꿀꺽 침을 삼켰다.
이와카미 가문과 일본 소속 SSS급 헌터를 모두 합쳐도. 그 인원은 스물을 넘지 않는다. 몇 명 되지 않는 최정예 헌터 중, 하나라는 자부심을 강하게 가진 그였다.
하지만 이번 전투를 목격한 뒤론.
그런 자부심은 아무래도 잠시 묻어두어야 할 것 같았다.
“이걸로 끝인 것 같군요.”
툭툭, 손을 터는 현우.
히로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대, 대단한 활약이었습니다.”
“그쪽 헌터 중에 부상자는 없습니까?”
“덕분에 경상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4회나 되는 웨이브를 예측하고 방어에 성공하다니. 역시, 천무그룹 혈족 분이라 그런지. 저희 상상을 초월하시는군요.”
그러나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예상이나 예측이 덕분이 아닙니다.”
“그럼···.”
“준비와 대비죠. 여기 윤영기 지부장님이 아니었다면. 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귀찮은 외교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지만. 그걸 이와카미 히로시가 알 턱이 없었다.
‘한국 헌터협회를 마냥 우습게 볼 수만은 없겠군.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곤 해도. 나름 깨어있는 지휘관이 있는 모양이야.’
히로시의 시선이 윤영기를 향했다.
하지만 눈이 마주친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끄럽기 짝이 없군.’
윤영기 지부장.
그는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로서는 저런 시선을 받을 자격이 없다.
물론 주현우의 옆에서 오랜만에 목숨을 걸고. 현역으로 활동하던 때와 같은 실전을 치르긴 했다.
하지만 그건 변명에 불과하다.
결국 처음부터 그는 이번 일에 숟가락만 얹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정신머리가 잘못 되었던 거다.’
한국 헌터협회는 비교적 약소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런 수치스러운 평가를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 윤영기는 하나의 길을 보았다.
‘이번 게이트 브레이크 역시. 조금 더 앞서 대비했다면. 우리 한국 헌터협회의 전력으로 일본에 큰 빚을 지울 수 있었을 터.’
한 발 앞서서 대비하는 자세.
그런 태도로 협회를 운용했다면. 지금 한국 헌터협회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져 있었을 지도 모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사실은 가장 빠르다고 했던가.
‘지금부터 바꿔나가면 되겠지.’
이렇듯 현우의 행보는···.
본래 목표로 삼지 않았던. 긍정적인 나비 효과 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아무튼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현우와 윤영기.
양쪽에 고개를 숙여 보인 히로시.
“일본 정부에 긍정적인 보고는 물론이고. 저희 이와카미 가문에서도 섭섭지 않은 보상을 약속해 드리겠습니다.”
“보상이라···.”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와카미 가문에서 원하는 것은 하나.
오키나와에 위치한 미공략 던전. ‘세계수의 미궁’의 키 아이템이 되어줄 세계수의 묘목뿐이다.
그러나 대뜸 요구하긴 어려웠다.
다른 물건이라면 몰라도.
세계수의 묘목은 이와카미 가문에서 10년 주기로 선출되는 한 명의 무녀에게. 대물림 되는 가보와 같은 아티팩트니까.
“당장 정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히로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흘끗 윤영기에게 눈치를 주었다. 이 부분에서 그가 나서야할 차례였다.
“일본 정부와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면. 아무래도 잠시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럼 교토의 이와카미 본가에서 머무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번 일에 대한 보답도 할 겸. 최선을 다해 대접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바라던 바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선 우선 이와카미 가문 본가에 방문해야 했다.
그런데 아예 당분간 손님으로 머물게 되면.
조건이 훨씬 유리해질 테니. 현우로서는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였다.
“조만간 저희 이와카미 가문에서 계승제가 예정되어 있기도 하니.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으실 겁니다.”
이와카미 가문의 계승제.
현우는 그 의식에 대해선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계승제라는 의식의 목적이나 진행이 아니다.
이번 계승제 당일 밤···.
혈마인이라는 존재가 혈겁을 일으키고.
이와카미 가문은 하룻밤 사이에 거의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된다.
‘그 미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지금 시점에선 오직 나 하나뿐이다.’
그리고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오직 주현우 한 사람 뿐이었다.
드디어···.
일본과 이와카미 가문.
그들의 미래에 격변을 일으켜 가문 연합을 구성하고. 덤으로 세계수의 묘목까지 손에 넣을 기회가. 확실하게 현우의 손 안에 들어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