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세 마리 토끼(2)
한편···.
페일 라이더 내부.
잔존 세력을 경계하며 천천히 하강하고 있는 비공정에서. 주건우는 먼저 지상으로 내려간 현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화룡형이라니.’
그의 성취가 경이로울 정도로 빠른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설마 벌써 화룡형까지 습득했을 줄이야.
주건우는 꿀꺽 침을 삼켰다.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지금까진 주현우를 따라잡고 싶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앞에서 달리고 있는 그를 따라잡기는커녕.
이제는 닿을 수조차 없는 먼 곳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멈춰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질투···.
그런 감정은 생겨나지 않았다.
질투는 저급한 감정이지만.
그래도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상대에게나 품을 수 있는 감정이다. 주건우에게 있어 주현우는 질투를 품기엔 너무 아득한 곳에 있었다.
“하하···.”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주현우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는 너무 허황된 꿈이 아니었을까. 주건우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한나 씨.”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 건우 도련님.”
“현우 형 혼자서 멋있는 거는 죄다 하는 것 같지 않아요? 옆에 있다 보면 왠지 모르게 들러리가 된 느낌이란 말이죠.”
“독립을 원하시는 겁니까?”
“아뇨, 그건 아직 이른 것 같고···.”
주건우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여전히 현우에겐 배울 것이 많았다.
그리고 독립해서 자신의 공략팀을 꾸린다 해도. 지금 현우가 하는 것의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가 보기에 주현우라는 사람은···.
‘무슨 일에 뛰어들어도. 전부 꿰뚫어보고 흐름을 이끌어간다. 준비가 안 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일도. 형이 시작하면 마치 오래전 준비를 끝낸 것처럼 굴러가잖아.’
데뷔전 때부터.
샤오 가문과 얼어붙은 요툰헤임 던전, 그리고 바벨과 아르카임 공략까지. 현우는 항상 모든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였다.
주건우는 지금까지 그저 그의 통찰력을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건우 도련님.”
류한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양이 아무리 밝아도 낮이 지나면 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태양이 없는 시간엔 달과 별이 빛나야 하는 법이죠.”
“으음.”
일단 고개를 끄덕인 주건우.
그러나 묘하게 이해하진 못한 눈빛이었다.
“적재적소에 저희가 활약할 타이밍이 올 겁니다. 그때가 되어 현우 도련님께 도움이 된다면, 저는 적어도 그게 저의 쓸모라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겸손한 말.
주건우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만약 주현우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여전히 어머니의 품조차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절대 잡히지 않을 것 같은 태양에 닿고 싶으니까. 그 발버둥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당장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이 주현우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
“좋은 말씀이네요.”
그는 재차 고개를 끄덕인 뒤.
슬그머니 류한나를 향해 속삭였다.
“아, 근데 태양이란 비유는 살짝···.”
“···마침, 약간 민망한 비유가 아니었을까.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었습니다.”
류한나는 입을 우물거렸다.
막상 생각한대로 입 밖으로 뱉고 보니. 남부끄러운 비유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닌데. 현우 형이 들으면 괜히 민망하게 생각할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네요.”
“동의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류한나.
그러나 한 가지.
두 사람이 미처 알지 못했던 점이 있으니.
페일 라이더의 주인인 현우는···.
타나토스와 의식이 동기화 되어 있기에. 기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자신의 감각처럼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
[재미있는 대화였습니다.]타나토스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마스터께선 부하에게 막대한 신임을 받고 계시는군요. 확실히 벌써 세계급 유물을 두 개나 손에 넣으신 분 답습니다.]“···크흠.”
괜히 헛기침을 뱉은 현우.
위에서 오간 대화는 일단 못 들은 걸로 하고. 지금 당면한 상황에 먼저 집중하기로 했다.
“하나는 살려주겠다···.”
페이스 체인저가 얇은 눈을 뜨고 현우를 노려보았다.
“역시,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우리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어렵겠지. 그래서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하려 드는 게로군.”
“···이간질이라.”
현우는 픽,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알렉세이 로마노프와 페이스 체인저 두 사람을 혼자서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어렵다.
“판단은 마음대로 해.”
블랙 가문의 사흉 페이스 체인저.
녀석의 실력이 현우가 기억하는 것과 같진 않겠지만. 적어도 지난번에 상대했던 샤오 랑의 전력과 비슷한 수준은 되겠지.
그리고···.
알렉세이 역시 한때 로마노프의 가주였다.
물론, 오로지 무력만이 가주라는 자리를 꿰차는 척도는 아니다. 다른 모든 가문이 천무그룹처럼 압도적인 힘을 숭상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알렉세이는 SSS급에 다다른 헌터 중에서도. 중간 이상은 가는 실력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불리하진 않아.’
일단 현우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설령 혼자라고 해도.
눈앞의 두 녀석을 상대할 방도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마침 녀석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 이미, 녀석들을 상대할 방법은 마련해두었다.
바벨에서 손에 넣은 두 가지.
아수라에게 강탈한 재생의 불꽃과 최초 공략 보상으로 획득한 혼돈의 성배.
현우는 이 두 개의 요소를, 이번 일을 기회삼아. 녀석들에게 한 번 시험해볼 심산이었다.
‘혼돈의 성배의 페널티는 강하다.’
그 결과는 이미 서울 방어전에서 목격했다.
혼돈의 성배의 효과를 통해 강화된 마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강화된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내부로부터 서서히 파괴되는 결말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그건 헌터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샤오 가문의 섬신단을 섭취하고. 녀석들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낮은 등급의 헌터들이 희생양이었지.’
그들의 최후 또한.
마족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재생의 불꽃이 있다면···.
현우의 체력이 허락하는 한.
혼돈의 성배를 통해 발휘되는 잠재력 발현 효과를, 아무런 페널티 없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실험해볼 가치는 있다.’
단순한 추측은 아니었다.
그 아이디어를 이곳에 오는 잠깐의 틈을 활용해 타나토스에게 질문했고. 그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이었으니.
실패할 확률은 미약하겠지.
물론, 타나토스는 자신의 데이터로도.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으나.
현우는 확신했다.
이건 분명 성공할 거라고.
“선택할 기회는 줬다.”
이제 선택의 기회는 없다.
페이스 체인저와 알렉세이 로마노프.
두 사람 중에 누가 죽게 될지. 그건 오로지 현우의 손에 달린 문제였다. 그리고 두 녀석 모두 죽게 될 가능성 역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다.
페이스 체인저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너무 오만하군.”
“그럴 지도 모르지.”
그러나 오만함은 강자의 특권이다.
현우는 아공간 포켓에서 혼돈의 성배를 꺼냈다. 페이스 체인저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
혼돈의 성배.
이건 아직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신물이다.
블랙 가문 역시, 바벨에서 현우가 신물을 획득했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게 이 혼돈의 성배라는 것을 모를 터.
“그래서 말인데.”
하지만 이젠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녀석들이 놓치고.
앞으로 놓칠 예정인 모든 것은···.
모조리 현우의 손에서 서서히 녀석들의 목을 조이는 무기로 활용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부터 설득을 좀 해볼까 해.”
“설득···?”
“내가 왜, 오만해도 되는 건지.”
그러나 그 설득은.
입이 아닌 몸으로 행해질 예정이었다.
***
혼돈의 성배.
그 효능은 현우의 기억 이상으로 대단했다.
평소라면 버티지 못했을 정도로 격렬한 마나의 운용에도. 신체가 아무 무리 없이 따라주고 있었다.
페이스 체인저와 알렉세이.
지금이라면 두 사람을 능히 상대하고도 남을 만한 힘이. 일시적으로 현우의 전신에 먹물처럼 스며들기 시작했다.
‘오래 사용하진 못하겠군.’
마치 전력질주를 하는 것처럼.
빠르게 체력이 소모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속전속결로 끝내야한다.
페일 라이더가 착륙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현우는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그건 페이스 체인저도 마찬가지였다.
인피니티 코어.
그 무한한 마나의 원천을 활짝 열어젖히는 감각. 끝을 모르고 솟아나는 정순한 마나가. 격류가 되어 현우의 기혈을 타고 흘렀다.
“죽여주마!”
시뻘건 강기가 페이스 체인저의 양손에서 아른거렸다. 저게 무슨 기술인지 현우는 잘 알고 있었다.
혈령귀조(血靈鬼爪).
붉게 물든 손톱이 현우를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웬만한 호신강기라면 종잇장처럼 찢어발겨버릴 만한 위력이 담긴 일격.
그러나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현우는 빠르게 보법을 밟아 혈령귀조가 그리는 궤적에서 빠져나왔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 공격의 여파가 날카롭게 귓전을 스쳤다.
현우의 입꼬리가 살짝 휘어졌다.
‘뻔히 보인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혈령귀조의 속도를 두 눈으로 포착하지 못했을 텐데. 지금은 이렇듯 뻔히 보이고 파악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우의 눈에는 단순히 녀석이 내뻗는 공격을 넘어. 몸 전체의 움직임과 마나의 흐름이 훤히 보였다.
눈썰미가 좋아졌다.
단순히 그렇게 표현하긴 부족했다.
주양태 회장과 대련 이후.
감각과 시야가 훨씬 넓어진 느낌이었다.
녀석이 어떻게 움직이려 하는지.
그리고 어디를 노리고 주먹과 발을 뻗고 있는 건지. 녀석의 의도와 사고를 한 발 앞서 예측할 수 있었다.
이렇듯 지금 현우의 시야엔···.
페이스 체인저라는 인물의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완벽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훤히 보이는 빈틈.
현우는 그곳을 향해 힘을 담아 주먹을 내질렀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야.’
쩌엉!
페이스 체인저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현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다시 균형을 되찾기 전에, 적어도 한 군데는 부러뜨릴 생각이었다.
“아, 알렉세이!”
그러나 상대는 하나가 아니었다.
알렉세이가 손을 휘둘렀다. 로마노프의 상징과도 같은 빙백신장이, 활짝 펼친 그의 손에서 극음지기를 흩뿌리며 현우를 향해 전진했다.
‘까다롭긴 하군.’
그 순간 현우는 양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의 의지에 따라 우레불꽃이 폭사하며. 들끓는 열기로 극음의 기운을 순식간에 눈앞에서 증발시켰다.
“허···!”
알렉세이는 허탈한 목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고작 한 번의 공격이 막힌 걸로 멈출 그가 아니었다.
이번엔 페이스 체인저와 함께.
두 사람의 고수가 펼치는 합격기가 현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숨을 쉴 틈도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붉은 혈조(血爪)와 모든 것을 얼리는 극한기.
“계속 버틸 순 없을 거다!”
알렉세이가 고함을 지르며 넓게 극한기를 흩뿌렸다. 발밑이 순간 얼어붙으며 서리의 송곳이 현우를 향해 치솟았다.
현우는 그에 맞서 가볍게 발을 굴렀다.
창천십팔무의 제5초식, 만리화를 응용한 불꽃의 꽃잎들이 펼쳐지며. 서리 송곳들을 빠르게 지워나갔다.
그러나 연이어 날아든 혈조가 오른뺨을 스쳤고. 뜨끈한 감촉과 함께 스멀스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의 말이 맞긴 해.’
계속 버틸 수는 없다.
여유는 앞으로 1분 정도.
그리고 현우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전투를 끝낼 생각이었다.
단지 생각뿐만이 아니라.
그걸 실현하기 위한 확실한 방법 또한.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애초에 이 싸움을 시작한 쪽은 현우였다.
그러니 확실히 끝내는 것도.
현우가 될 것이다.
‘큰 걸로 간다.’
파파팍─!
현우의 양손에서 우레불꽃의 푸른 섬광이 번뜩였다. 콰득, 하고 주먹을 뻗기에 앞서 내딛은 왼발에 지면이 움푹 패였다.
제12초식 와류.
소용돌이치는 푸른 우레불꽃이 알렉세이와 페이스 체인저. 둘을 향해 공기를 뒤흔들며 뻗어나갔다.
“···!”
간발의 차이로 피한 둘이었지만.
현우의 공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방금 일격은 단순히 두 녀석의 합격기에 틈을 비집어 만들기 위한 것이었을 뿐. 진짜는 바로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인피니티 코어가 회전한다.
무한한 마나의 원천에서.
현우는 현재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마나를 뽑아 올렸다. 전신이 열감에 휩싸일 정도로 거센 마나의 흐름.
그 한 가운데에서.
현우는 기세를 해방했고.
이어 우레불꽃의 뇌전이 다발로 화해.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으로 치솟았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0초식 화신(火神)
“허, 헛!”
페이스 체인저는 경악했다.
현우의 주위에 응집된 마나는 얼핏 보아도 공포심을 일으킬 만큼, 불길하고 치명적인 위력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페이스 체인저의 감은 정확히 맞았다.
“천뢰신(天雷神).”
불꽃으로 만든 번개.
창천신공으로부터 비롯된 권능인 창염이 한 단계 진일보한 결과.
극한까지 응축된 뇌성과 극렬한 화기를 품은 불꽃이 합쳐진 우레불꽃이. 공중에서 하나로 응집되며 거대한 인간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뇌신의 형상.
압도적인 무위가 현현(顯現)했다.
이윽고 그 형상이 손을 치켜들었고.
가공할 만한 열기를 품은 뇌전이 그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모여들었다.
이윽고.
허공에서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청명한 푸른 빛깔의 번갯불. 공기마저 불태우는 것 같은 섬전(閃電)이 번쩍, 눈앞을 가득 채웠다.
다행히 알렉세이는 그 범위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구르듯 뛰어 피할 수 있었지만···.
“이런 미···.”
페이스 체인저.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천뢰신의 번개가─
그를 향해 정확히 내리꽂혔다.
미처 대응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전신의 호신강기가 끓어올랐다.
그의 마나가 흡사 끓는 물처럼 부글거리며 무형의 연기로 화해 흩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오로지 경악스러운 열기뿐이었다.
‘···이 정도인가.’
위력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흩어지는 천뢰신의 형상 너머로.
검은 숯덩이가 되어버린 페이스 체인저의 형체가 드러났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숨은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현우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이미 까맣게 타버린 페이스 체인저의 시체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한 가지 물건이 현우의 손에 잡혔다.
‘다올로스의 피리.’
블랙 가문.
그리고 다니엘 블랙이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해온 계획을, 비로소 확실하게 추월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