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89
89화 크노스, 던전 공략권(2)
“와오.”
마야 카일리.
그녀가 짧은 경탄을 내뱉었다.
“던전 공략권 하나에 오천만 달러라니. 이건 크노스 경매 역사상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대범한 배팅이네요.”
공략권에 오천만 달러.
이전 이무기의 알 때도 그랬지만. 이건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선 거의 ‘돈지랄’으로 보일 수준의 금액이었다.
“주현우님께선 이번 던전에서 공략권에 태운 오천만 달러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는 모양이죠?”
“뭐,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전부 이야기해줄 필요는 없다.
신물과 블랙 가문의 계획에 대해. 당장은 말해도 완전히 신뢰하기란 어려운 일임은 틀림없으니까.
‘모든 게 충분히 준비되었을 때.’
그땐 마야 카일리뿐만 아니라.
현우와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모든 이에게 사실을 밝힐 것이다. 다만 그 시기가 지금이 되기엔 아직 이를 뿐이었다.
“세계 7대 미공략 던전도 이제 다섯 개만 남았네요. 바벨과 아르카임도 주현우님 손에 공략되었으니. 조금만 지나면 네 개 밖에 남지 않겠는데요?”
“두고 봐야 알겠죠.”
현우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백 퍼센트, 세계수의 미궁을 공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은 가지고 있었다. 이미 키 아이템인 세계수의 묘목도 손에 넣었으니.
도전하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저나 오천만 달러라니. 너무 과하게 입찰가를 올려버리신 거 아닌가요. 상승폭을 보면 못해도 삼천만 정도엔 정리되었을 텐데.”
“혹시,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저야 당연히 좋죠.”
휘휘 고개를 젓는 마야 카일리.
낙찰가가 올라갈 수록.
카일리 가문이 운영하는 크노스 경매에 떨어지는 수수료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녀의 입장에선 두 배든, 열 배든 얼마든지 상관없었다.
오히려 수수료를 통해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는 그녀와 카일리 가문으로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니까.
“그런데 혹시, 주현우님이 입찰 가격을 과하게 올려 부른 것도. 어떤 목적이 있는 건가요?”
“예리하시군요.”
“이래봬도 저는 장사꾼이잖아요. 이렇게 눈치가 좋아야 남의 돈으로 먹고 살 수도 있는 거예요.”
흐흥.
콧소리를 내며 가슴을 쭉 내미는 마야 카일리. 그러나 현우의 진짜 목적에 대해서. 아마 그녀는 짐작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오천만 달러.
이미 주양태 회장이 한 번 크노스 경매에서 같은 방식으로 샤오 가문의 뒤통수를 날린 적이 있으니.
그 금액만으로도 낙찰자가 누구인지.
블러드 레이븐즈 길드는 몰라도. 적어도 블랙 가문 측에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내가 비공식적으로 블랙 가문 측에 보내는 도전장이다.’
블러드 레이븐즈.
녀석들의 뒤엔 블랙 가문이 있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조차.
이번 경매에서 바로 오천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지불할 능력은 없었다.
말이야 쉬워 보이는 금액이나. 그 정도의 현금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길드와 가문뿐이니까.
블랙 가문에 요청한다면 지원이야 받을 수 있을 테지만. 아쉽게도 이 크노스 경매의 원칙 때문에 당장은 어렵겠지.
그건 바로 경매 시작 전.
미리 예치해둔 금액만을 입찰에 사용할 수 있다는 원칙.
그래서 더더욱 크노스 경매가 VIP중에서도 VVIP들이 경쟁하는 경매인 것이다.
어떻게 올라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입찰 경쟁에선. 결국 예치금이 많은 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으니까.
“참, 그러고 보니까···.”
마야 카일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눈치였다.
“이번에 주현우님이 낙찰 받은 공략권을 크노스 경매에 출품한 길드. 혹시 어딘지 알고 계신가요?”
“토르의 형제단 아닙니까.”
블러드 레이븐즈의 등장 전.
토르의 형제단은 노르웨이 내에선 누구나 최고로 손꼽는 길드였다.
지금이야 몇 가지 악재가 겹친 탓에 그 최고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SSS급 헌터가 둘이나 소속되어 있는 규모 있는 길드다.
“그 토르의 형제단에서 낙찰자인 주현우님을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하던데요.”
“···제 정보를 넘기신 겁니까?”
“에잇! 저를 뭘로 보고요!”
삐죽 입을 내미는 마야 카일리.
그녀는 괜히 팔짱을 끼며 현우를 흘겨보는 눈빛을 보냈다. 괜한 무안함에 현우는 입가에 쓴웃음을 띠었다.
“낙찰자의 정보는 절대로 동의 없이 제공하지 않아요. 저번 샤오 가문의 행패 때도. 저희 측에선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고요.”
“그럼, 공략권을 낙찰 받은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쪽에서 만나고 싶다는 제안을 보냈단 말입니까.”
“네, 낙찰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만나야 한다고 부탁했어요. 용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는데. 굉장히 필사적인 것 같더라고요.”
“흠.”
현우는 잠시 고민했다.
공략권은 이미 손에 들어왔지만. 이걸 영원히 비밀로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비밀로 할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세계수의 미궁 던전의 공략을 시작하면. 전 세계에 그 소식이 알려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어떻게 하시겠어요?”
마야 카일리의 물음.
이번에 현우의 대답은 빨랐다.
“한 번 만나보죠.”
이게 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활용할지. 일단 시도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럼 이쪽으로 호출할게요. 저는 빠져 있을 테니까. 서로 이야기 편하게 나누시면 될 거에요.”
고개를 끄덕인 마야 카일리.
그녀는 이내 VIP룸에서 나갔다.
“토르의 형제단이라···.”
전생에서 토르의 형제단은 세계수의 미궁 공략에 실패한 후. 길드 마스터의 사임과 계속된 부진으로 인해 해산했다.
적어도 현우의 기억 속에 그들에 대한 특이점은 없었다. 그러니 심각한 문제는 아니겠지.
홀로 VIP 룸에 남겨진 현우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잠시 눈을 감고 있으려던 찰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참, 해둘 것이 하나 있었지.’
현우는 슬쩍 경매장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그곳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던 블러드 레이븐즈. 녀석들이 드디어 현실 파악을 끝낸 건지. 슬슬 자리를 뜨려는 모습을 보였다.
“타나토스.”
현우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대로 녀석들을 놓쳐줄 생각은 없었다.
[예, 마스터.]“저기 앞머리가 M자로 빠진 녀석 보이지.”
아론 크루거.
녀석이 블러드 레이븐즈의 길드 마스터다.
바로 대답하는 타나토스.
[아론 크루거, 블러드 레이븐즈 길드의 마스터이자 탈모 중기로군요. 조금만 더 진행되면 뒷머리도 빠지기 시작할 겁니다.]“···뭐?”
[헌터로서 경지는 높은 것 같은데. 탈모는 아티팩트나 단련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아무튼, 지금부터 저놈을 추적해줘.”
거기까지 궁금했던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예정된 슬픈 미래를 하나 추가로 알게 되며. 현우는 녀석을 향해 낚싯대를 드리웠다.
***
잠시 후.
VIP룸으로 한 사내가 들어왔다.
“반갑소.”
우락부락한 덩치.
그리고 덥수룩한 붉은 수염과 대비되는 아이처럼 맑은 눈이 특징적인 사내였다.
나이는 마흔 정도 되었을까.
연륜이 느껴지는 얼굴엔 마족이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커다란 상처가 눈에 띄었다.
“토르켈 한센이라고 하오. 설마 낙찰 받은 상대가 그 유명한 천무그룹의 잠룡이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불쑥, 그는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실물을 보게 되다니. 훌륭한 전사를 직접 만나게 되어 정말로 영광이오. 이건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오.”
현우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손.
그 두툼한 손을 맞잡는 것만으로 현우의 손은 그의 손바닥 속으로 쏘옥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천무그룹의 주현우입니다. 더 자세하게 소개할 필요도 없이. 한센 씨께선 이미 저를 알고 계신 것 같군요.”
“그냥 편하게 토르켈이라고 부르시오.”
“예, 토르켈 씨.”
고개를 끄덕인 현우.
토르켈은 그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내가 화제를 빙빙 돌리며 예의를 차리는 방법을 잘 모르는 편이오. 그러니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고 싶소. 워낙 투박하게 살아온지라 조금 이해해준다면 고맙겠는데.”
“괜찮습니다.”
토르의 형제단.
그들이 바로 이번 크노스 경매에 세계수의 미궁 공략권을 출품한 길드다.
그 사유는 뻔했다.
바로 돈과 길드 운영 문제.
오랜 기간 세계수의 미궁 던전 공략에 매진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으리라.
‘토르의 형제단은 SSS급 헌터가 3명이나 소속되어 있던 길드다. 한때는 북유럽 지역 최강의 길드를 하나 꼽으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이름이었지.’
하지만···.
세계수의 미궁에 관심을 가진 후로.
토르의 형제단을 둘러싼 상황과, 그들이 공들여 쌓아온 명성은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렇게 무려 2년.
오로지 세계수의 미궁 던전 하나에 매진한 결과는 실패뿐이었고. 설상가상으로 길드에 치명적인 타격을 선사한 사건까지 벌어지게 된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소속된 3명의 SSS급 헌터 중. 한 명이 세계수의 미궁 던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만 사망했던 사건.
이 일로 현재 토르의 형제단에 남은 SSS급 헌터는, 길드 마스터 토르켈 한센과 부길드 마스터 에릭 보른 뿐.
‘이것만으론 치명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SSS급 헌터가 둘.
여전히 노르웨이 국가 내의 길드 중에선 압도적인 1위의 전력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외의 소속 헌터들이 하나 둘.
길드에서 탈퇴하는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연이은 던전 공략 실패에 사기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SSS급 헌터 하나가 사망한 것이 원인이었겠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소.”
토르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해보시죠.”
“이미 공략권을 경매에 내놓고도 정말 염치없는 부탁으로 들리겠지만. 세계수의 미궁 던전 공략에 우리 토르의 형제단을 동행시켜주면 좋겠소.”
현우는 그 소리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오천만 달러나 되는 거금을 들여 공략권을 구매했다. 그런데 던전 공략에 동행하게 해달라니.
‘말도 안 되는 부탁이지.’
돈은 돈대로 받고.
공략권까지 포기할 수 없단 소리로 밖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현우는 그걸 단번에 승낙할 바보가 아니었다.
“상당히 올려서 입찰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낙찰가로는 부족하셨던 겁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오.”
토르켈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그는 끄응, 하는 침음성을 흘리더니. 바로 그 자리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의 거구 덕분에 VIP룸이 한바탕 흔들리기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던전의 보상이나 공략 성공의 명예는 필요 없소. 나를 고기방패로 사용한다고 해도 좋으니. 그저 던전 공략에 동행만 시켜주시오.”
보상과 명예가 필요 없다.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는 소리.
심지어 SSS급인 본인을 고기 방패로 사용해도 좋다니. 그 정도로 필사적일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일단 들어볼 만은 하겠는데.’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무언가’의 정체에 따라서.
현우의 생각도 바뀔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프레다 한센.”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현우는 어렵지 않게. 토르켈과 프레다 한센이라는 이름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아내의 이름이오. SSS급 헌터였고 지난 세계수의 미궁 공략전때. 나를 대신해서 목숨을 잃었지.”
과연, 그런 거였나.
현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공략에 동행하려는 이유는···.”
“복수나 못 다한 꿈을 이루려는 거창한 목적은 아니오. 그저 혹시라도 내 아내의 유해나 유품을 수습할 수 있길 바랄 뿐이지.”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전생에서는 그가 세계수의 미궁 공략에 다시 참여했단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마 블러드 레이븐즈가 그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현우는 이번 공략을 통해 토르의 형제단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좋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현우.
유리한 변수는 많을 수록 좋다.
“대신,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제안?”
토르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토르의 형제단이 천무그룹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겁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종의 연합에 합류해달란 거죠.”
가문연합.
현우는 토르의 형제단이 아직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 그들을 가문연합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토르의 형제단은 유럽 전역을 호령하는 블랙 가문을 상대하기 위한. 아주 좋은 교두보가 되어줄 수 있는 집단이니까.
“만약 천무그룹과 협력한다는 소식을 가져가시면. 지금 토르의 형제단이 당면한 문제 대부분이 해결 될 수 있을 겁니다.”
마치 상황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것 같은 예리한 한 마디. 토르켈은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꿀꺽 침을 삼켰다.
‘확실히, 이대로 가면 토르의 형제단은 서서히 무너질 거다. 안 그래도 최근 떠오르는 신생 길드 블러드 레이븐즈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으니···.’
제안이란 이름의 조건.
그러나 토르켈에겐 도무지 거절을 생각하지 못할 매력적인 거래 조건이었다.
“···그래, 좋소!”
결국,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