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시칠리아의 재앙(1)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사방에 포진한 기자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주건우가 두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그러나 현우라고 해서 이 상황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저기, 잠룡이다!”
“뭐해! 빨리 카메라 돌려!”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그들이 현우와 일행을 발견하고 우르르 다가왔다. 그 기세가 마치 먹이를 본 하이에나 무리 같았다.
“토르의 형제단도 있다!”
다양한 인종의 기자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현우를 향했다. 이건 현우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약간 당황스런 기분으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엔 진짜로 세 번째 미공략 던전을 클리어한 모양인데!”
“주현우 씨, 이쪽 좀 봐주시죠!”
“잠시 저희 NRK와 인터뷰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많이도 아니고 5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목소리.
그리고 곧···.
이 뜬금없는 사태의 원인이 대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건 현우의 기억에 있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금발.
그리고 갑옷과 수녀복을 반반 섞어놓은 것 같은, 독특한 복식까지. 현우는 시야에 들어온 그녀를 어렵지 않게 알아봤다.
“···아그네스님.”
교황청의 성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그녀가 걸음을 옮기자.
기자들이 일순 조용해지며 인파 사이로 길이 열렸다. 기묘한 광경이었지만, 감탄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지난 가문 회의 이후로는 처음이군요.”
그녀는 지난번과 똑같이.
여전히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눈동자로. 현우를 향해 빙긋 다분히 인공적인 느낌이 묻어나오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기까지 기자들을 몰고 온 겁니까?”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분들께서 제 뒤를 일방적으로 따라오신 것 같습니다. 일단 사과드리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그녀.
그 순간 플래시가 마구 터져 나왔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웬만해서는 바티칸에서 움직이지 않는 성녀가 직접 걸음을 했다. 그것도 이곳, 노르웨이의 미공략 던전을 향해···.’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 만도 했다.
현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바티칸에 있어야 할 그녀다.
교황청의 2인자인 성녀가 천무그룹에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도 아니고. 이곳까지 직접 걸음 했다면, 그만큼 급하고 중요한 용건이 있다는 소리일 테니.
일단 들어나 보자 싶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만약 거절한다면?”
“눈물을 머금고 돌아갈 수밖에요.”
무표정한 얼굴로 답하는 아그네스.
그녀는 이윽고 후후, 작은 웃음을 흘리며 표정이 아닌 소리로만 웃었다.
“주현우님께선 그렇게 매몰찬 분이 아니실 거라 믿습니다.”
“죄송한데 저는 매몰찬 사람 맞습니다. 특히, 제게 이득이 안 되는 사람에겐 더욱 가차 없는 편이고요.”
단지 잡담이나 나눌 생각은 아닐 터.
만일 그게 단순히 도와달라는 것뿐이라면. 현우로선 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이득도 없는 일에 뛰어들 이유는 없으니까.
“오직 당신 하나를 만나기 위해. 머나먼 바티칸에서 이곳까지 걸음 한 소녀를 바람맞히시려는 겁니까?”
소녀라니.
성녀의 나이는 올해로 서른쯤이었나.
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이렇다 할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그녀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현우의 시선을 피했다.
“···일단 이야기만 들어보죠.”
***
노르웨이 상공.
어디로 가든 기자들이 따라올 것 같았기에, 현우는 아예 성녀를 페일 라이더에 태우고 공중으로 피신했다.
“본론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그녀는 차를 한 모금 홀짝 마셨다. 언제 가져온 건지는 몰라도. 류한나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찻잎을 내온 것이었다.
“혹시, 주현우님께선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게는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들어는 봤습니다.”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그녀의 예지 능력은 유명했다.
“하지만 제 예지 능력의 전부를 알지는 못하실 겁니다.”
“전부라면···.”
“미래의 단편을 볼 수 있지만.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며, 어떤 방법으로도 한 번 예지한 미래를 바꾸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죠.”
그러니까 반쪽짜리 예지라는 것.
현우는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었다.
성녀, 아그네스 그래고리오의 예지가 미래를 바꾸었단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무 의미가 없는 능력입니다. 아무리 미래를 예측하고 경고한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미래를 이미 알고 있으나.
필연적인 운명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
미래를 알고 있으며 착실히 바꾸고 있는 현우로선. 그녀가 가진 절망이 얼마나 큰 것일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그네스가 다시금 입을 뗐다.
그녀는 현우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당신, 주현우님은 다릅니다.”
“···예?”
다르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현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먼저 하나 묻고 싶습니다.”
“뭘 말입니까?”
“주현우님께서는 혹시, 저와 비슷한 예지 능력자가 아니십니까?”
언젠가 오수진에게도 들었던 이야기.
현우는 뇌리를 관통하는 데자뷔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제게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혹시, ‘그런’ 능력이 없다면. 예지가 아닌,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글쎄요.”
말꼬리 잡기일 지도 모르지만.
아그네스의 감은 꽤나 예리했다. 예지는 아니라도 현우는 전생을 통해서 이미 미래의 일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걸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그녀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만한 이유는 아직 없다.
“굳이, 다른 능력이라면···.”
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남들보다 준비성이 철저하고 통찰력이 뛰어나며 상당한 재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제 능력이겠군요.”
“···.”
아그네스는 입을 반쯤 벌렸다.
평소엔 능구렁이 같은 그녀였으나. 이토록 당당한 자신감 앞에서는 그녀 역시도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가장 기막힌 부분은···.
최근 주현우의 활약을 정리해보면, 그에겐 충분히 스스로 그런 평가를 내릴만한 자격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
그녀는 입을 열려다가.
도로 잠시 다물고 말았다.
대체 어떤 이야기가 튀어나올까 했는데.
주현우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음은 물론이고. 그녀에게 있어선 꽤나 진솔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엔 그렇게 짧은 시간 침묵이 흘렀다. 먼저 침묵을 깨트린 쪽은 아그네스, 그녀였다.
“권마와의 대련을 기억하십니까?”
“예.”
권마, 샤오 랑.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다행히 일이 잘 흘러간 덕분에 샤오 가문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었으나. 그때의 대련은 현우 본인도 목숨을 걸고 시도한 계획이었으니까.
“그때 저는 주현우님께서 권마의 손에 목숨을 잃는 미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는 이루어지지 않았죠.”
“···미래가 바뀌었단 거군요.”
“예, 그때부터 조금씩 말입니다.”
샤오 가문에 이어 카일리 가문.
그리고 베헤모스로 인해 발생할 뻔했던 재앙까지도. 그녀의 예지 안에 있었고 모두 현우의 개입으로 바뀌었다.
“주현우님께는 미래를 바꾸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눈을 빛내는 아그네스.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미래가 바뀌는 거야 알고 있으나.
그녀가 예지한 미래가 어떻게 되는 지는 현우도 알 수 없던 이야기니까.
그러나 깊게 파고들면 곤란하다.
“그래서 본론은 뭡니까.”
이쪽 이야기를 계속할 생각은 없다.
거짓말이나 조잡한 변명이 늘어나면, 결국 뒤에 감춘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니.
미래를 알고 바꿀 수 있다는 진실은 아직, 누구에게도 밝힐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얻을 이득도 없고 말이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그네스는 진지하게 말했다.
“미래 예지에 관련된 겁니까?”
“네.”
“요점만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죠.”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이틀이 지난 후. 시칠리아 섬에서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날 겁니다.”
현우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시칠리아 섬의 재앙.’
이건 오직···.
현우만이 바꿀 수 있는 미래였다.
***
사건의 개요는 간단했다.
시칠리아 섬의 에트나 화산.
불운하게도 용암으로 가득 찬 분화구 내부에서 게이트가 발생했고. 교황청에서 보낸 공략팀은 게이트에 접근하는 것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교황청의 유일한 비공정, 메르카바는 내부의 열기로 인해 운용이 불가할 정도로 손상을 입은 상황.
“제 예지가 정확하다면, 게이트 브레이크 발생 이후. 저희 교황청 소속의 수많은 헌터가 희생되고 말 겁니다.”
그녀의 예지는 정확했다.
이번 게이트 브레이크에선 티폰이라는 끔찍한 보스급 마족이 세상 밖으로 풀려나올 테니까.
과연, 그 끔찍한 결과를 예지했다면. 성녀가 급히 직접 움직여 현우를 만나러 올 만도 했다.
‘하지만 이상한 구석이 있어.’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칠리아의 재앙은 이미 알고 있는 미래의 사건이지만. 정작 걸리는 점은 따로 있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분명, 시칠리아 섬의 재앙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정도 후에나 터지는 사건이다.
그게 지금 발생했단 소린.
결국 한 가지 결론만을 의미한다.
‘무언가 사건을 앞당겼다.’
현우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예상을 벗어나 흘러가는 미래.
그러나 이게 꼭 나쁜 소식만은 아니었다.
당장 일어나는 일이 바뀌었다곤 하지만. 일단, 현우는 시칠리아 섬의 재앙에 대한 해법을 이미 알고 있다.
발생하는 타이밍이 어긋났어도, 해결 방법만 같다면 복잡하지 않다. 지금 가능한 수를 동원해서 같은 방법을 재현하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이건 또 다른 단서이기도 했다.
‘이제 확실하게 내가 움직인 영향이 이 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거다. 블랙 가문이 직접 움직이지 않고서야. 이런 이변이 일어날 수가 없을 테니.’
현우가 미리 움직이는 만큼.
녀석들의 입장에선 숨통이 조여 오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발버둥.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달가운 일이다.
이제 흐름은 이쪽으로 넘어왔고. 미래가 현우가 바라는 대로. 블랙 가문 측에 있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니까.
“좋습니다. 도와드리죠.”
이내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티폰 공략에 참여하는 이유는 단순히 동정심 때문은 아니었다. 되려 그 반대라고 해야 맞겠지.
‘티폰에게 나오는 소재는 상당히 유용한 것들이 많다.’
베헤모스에 버금가는 거대한 보스.
녀석에게 얻을 수 있는 소재는 각종 유용한 포션과 영약을 만들어 내는 최고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다만 조건이 두 개 있습니다.”
기왕 하는 김에 제대로.
현우는 교황청을 털어볼 생각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물에 빠진 놈을 구해주는 건데. 당연히 봇짐까지 전부 털어갈 권리가 있지.’
현우는 두 개의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이번 게이트와 연관된 보상의 소유권을 제게 이양할 것.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번 도움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교황청에서 지불할 것.”
성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그녀로선 거절할 길이 없는 조건이었다.
***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
평소 아름다운 지중해와 아름다운 건축물 등으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지역이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모습을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처럼 붉게 물든 하늘과 일반인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뜨거운 열기.
그 광경의 중심엔 시칠리아의 명물, 에트나 화산이 검은 연기를 하늘 높이 뿜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풍경.
그러나 지옥 속에도 사람은 있었다.
“후우, 빌어먹게 덥군!”
흐르는 땀을 훔치는 헌터.
방열 대책을 철저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 전체가 변해버린 이곳의 기온은 외곽 지역 조차도 대략 62도에 육박, 헌터가 아니라면 몇 분만에 실신할 수준이었다.
덕분에 외곽을 통제하는 헌터들의 입에선 연신 불만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고생인지···.”
“이봐, 덥고 땀 좀 흘리면 그만인 수준에 감사해야지. 그래도 우리는 게이트 공략조로 들어가진 않잖어.”
“음, 그건 그렇긴 하지.”
에트나 화산은 평소에도 종종 작은 분화를 일으키곤 하는 활화산이지만. 이번에 일어난 재앙은 그 성격이 이전과는 판이했다.
게이트의 발생.
이게 만약 단순한 육상 게이트였다면, 이미 빠르게 교황청에서 해결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이번 게이트는 어처구니없게도.
예측을 불허한 에트나 화산의 분화와 함께. 분화구의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 문제였다. 그 메르카바조차 접근을 못하고 퇴각하고 말았으니까.
“대체 언제나 공략이 되려나.”
“나는 게이트 브레이크만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어. 그랬다간 여기 있는 우리도 모조리 뒤질 테니까.”
“하하, 설마 그러겠어?”
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그 순간 한바탕 지면이 요동치더니. 에트나 화산 방향에서 폭음과 함께 용암이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저건···!”
페르난도 파롤린.
교황청 소속 사제이자 이탈리아 정부 공인 S급 헌터인 그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화산 쪽을 가리켰다.
단순한 화산의 분화···.
그러나 자세히 보면 터져 나온 용암과 함께. 화속성 마족들이 함께 분화구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마족의 웨이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은 단번에 이해했다.
“미, 미친! 게이트 브레이크다!”
“빨리 대응 본부에 연락해!”
모두의 눈빛에 절망이 서리는 순간.
번쩍, 하고 검은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에 일순 섬광이 내달렸다.
꾸르릉!
마치 신화 속 번개의 신, 제우스의 신벌이 지상에 내리 꽂히는 것처럼. 하늘에서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를 향해. 푸른 뇌전을 휘감은 창이 날아와 꽂혔다.
“뭐, 뭐야 저건?”
그리고···.
우우우우─
시커먼 구름 속에서 자태를 드러낸 비공정 페일 라이더.
그곳에서 가공할 만한 포격이.
이제 막 분화구 밖으로 빠져 나오는 마족 웨이브를 향해.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