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613)
회귀자 사용설명서 1613화
중원무림빙의(18)
“이 후안무치한 놈들! 정파(正派)의 탈을 쓴 놈들이 하는 짓은 흑도(黑道)와 다를 바가 없구나! 감히 무슨 연유로 본녀의 장원에 찾아와 이리 패악질을 부리는 것이냐!”
“…….”
“…….”
‘차라리 잘됐자너.’
현시점에서는 관아의 개입이 제일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참 이 새끼들도 투명하기는 해.’
그 누구보다도 양가 놈의 사고에 대해 궁금해하고, 파헤쳐야 할 녀석들이 이렇게 관아를 끼지 않고 몰려온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장원이랑 표국이 탐난다 이거지?’
이쪽이 가지고 있는 것에 욕심을 품고 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관아에 신고하면 진실을 밝히는 것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언정, 연 부인의 것들에는 손을 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일이 꼬여 내가 범인으로 지목된다고 하더라도, 꼬물이가 재산을 물려받게 될 것은 자명한 일.
인민재판으로 아예 연가장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려야 내가 가진 것들을 본인들이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꼬물이도 죽이거나 내쫓을 생각일 것이다.
심지어 이쪽에서 일을 벌였을 것이라는 보장도, 증거도 없다는 걸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아마 저쪽에서 몰려온 놈들 중 반 정도는 아마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냥 건수 한번 잘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이번 기회에 꽁으로 표국과 장원을 가져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진짜 하는 짓이 흑도 새끼들이랑 똑같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리나?’
당연하지만 저 무리에 중심에 있었던 것은 혜검장문인과 금전투귀다.
‘욕심 그득한 거 봐.’
녀석들의 얼굴에 욕심이 그득한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번 일을 직접 꾸민 당사자들인 모양.
‘이게 진짜 사람 새끼들인가?’
심지어 당당하기까지 하다.
곧바로 소리를 치는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갈(喝)!”
“…….”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한 계집이로구나! 네가 양 대인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천지신명(天地神明)이 알고 있는바! 며칠 전에 있었던 일에 앙심을 풀고 양 대인을 해하려 했다는 것을 정녕 우리들이 모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들은 네놈들이다! 양가 놈이 내 아들에게 상처를 입혀 내 그에 노한 적이 있으나! 어찌 그것을 내가 양가 놈이 스스로 연못에 빠진 것과 연관 지을 수 있단 말이냐! 네놈들이야말로 하늘 아래 떳떳이 그런 망발을 지껄일 수가 있느냐! 최소한 내가 양가 놈을 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오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일 터!”
“…….”
“심증만으로 본녀의 장원에 앞에 모여 이리 패악질을 부리겠다는 것은, 단순히 목소리를 높여 본녀를 죄인으로 만들겠다는 심산이 아니더냐! 어디 솔직히 말해보아라! 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이 탐이 났다고 말이다!”
“그 간교한 혓바닥이 뽑혀 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네년이 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네년의 장원 안에 숨겨져 있을 터! 필히 독을 사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리는구나! 양가 놈의 몸에서 독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터인데… 부끄러움도 모르고 이리 내 장원의 앞에서 본녀가 독을 사용했다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네놈들이 하는 짓이 도적 떼와 다름이 무엇이냐!”
‘진짜 이 무식하고 미개한 새끼들 진짜.’
가장 최악인 것은 이 새끼들이 무식하고 미개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에 있었다.
‘도적질하러 온 주제에 시바. 또 양민들한테는 존경받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거자너.’
추후에 말이 나오지 않게 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이쪽이 이리 당당하게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 당당하게 나가야 된다니까?’
아마 이 정도로 몰려온 군중을 직시한 이후에는 이쪽이 바짝 엎드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
우리들은 죄가 없다고 엎드려 빈다면 그때부터는 뭐 일사천리였으니까. 곧바로 밧줄로 이쪽을 묶고 조사를 해보겠다며 장원을 들쑤시고 어거지로 증거를 만들었겠지.
모용화연과 꼬물이가 중원식 마녀사냥을 당할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이야기였다.
‘분위기가 바뀌었자너.’
함께 이쪽을 욕하기 위해 찾아온 군중들 사이에서 동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연 부인의 말이 맞소! 어찌 칼을 찬 무인들이 이리 몰려와 힘없는 아녀자를 핍박한단 말이오!”
“옳소!”
“연 부인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이다! 금전투귀.”
‘내가 어버버하다가 맞을 줄 알았나 봐. 진짜. 야. 시바 내가 그렇게 멍청하고 겁 많은 사람이었으면 표국을 운영할 수 있었겠어?’
조용히 자리해 있던 혜검장문인이 포권을 하며 앞으로 나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쪽에게 한 번 포권을 한 이후에는 등을 돌려 군중들에게도 포권을 박는다.
“혜검문의 장문인 혜원이올시다. 강호의 동도들에게 이리 불미스러운 일로 인사를 올리게 되어 참으로 유감이오.”
“혜검군자!(彗劍君子)”
“혜검군자(彗劍君子)다!”
‘중원식 리액션 시바 질리지도 않자너.’
거기에….
“…….”
“…….”
‘저딴 새끼가… 군자?’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뭔 시바 도사처럼 수염을 기르고 차분한 분위기의 옷을 입고 있을 뿐이지, 하는 짓은 시바 사기꾼 새끼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마을 내에서는 제법 선망을 받고 있는 모양인지, 군중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당연히 군중들에게 강호의 동도 운운한 것도 노림수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양민들이 갑자기 강호의 일원이 되었으니 뿌듯하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하고 그렇겠지.
“아마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은 본인이 양 대인과 얼마나 각별한 사이인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그럼! 알다마다!”
“때문에 이번 사고에 평소보다 더 심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소이다. 물론 연 부인의 말대로 아직 연 부인의 죄를 입증할 수 없는 수단이 없어 그녀를 흉수로 지목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나… 본인이 그녀를 흉수로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객잔과 학당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고 때문이 아니요.”
“…….”
“양 대인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그날의 사고 이후, 양 대인이 본인에게 직접 청록(靑綠) 표국에 압박을 넣을 것을 사주했던 적이 있소이다.”
“저… 저런!!”
“그럴 수가!”
‘아주 지랄들을 하시네. 진짜.’
“본인은 양대인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부끄럽게도 본 문파의 제자들이 청록표국의 표사들에게 해를 끼친 적이 있소. 우리 혜검문뿐만이 아니라, 아마 많은 이들이 청록표국의 행사에 해를 끼쳤을 것이외다. 아마 연 부인도 그걸 알고 있을 테지. 그렇지 않소?”
“그것과는 별개의….”
“별개의 일이 아니외다! 연 부인이 얼마나 청록표국을 아끼는지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니 내 이리 말할 수 있는 것이오! 양 대인이 연 부인에게 먼저 앙심을 품고 청록표국을 망하게 만들려고 했으니! 그 모든 걸 홀로 감당했어야 할 연 부인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소?”
‘와. 아주 소설을 쓰네. 진짜.’
“양대인에게 손을 쓰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이외다.”
“그… 그럴 수가!!!”
“그런!!”
‘중원식 리액션 시발 그만 좀 쳐해.’
모두가 녀석의 말에 동의하며 놀라고 있는 중이었지만 맨 구석에 있는 여인의 표정은 별로 밝지 않다.
‘양 부인….’
그야 시바 사경을 헤매고 있는 양 대인의 체면을 군중들 앞에서 난도질해 놨으니 좋은 표정이 나올 리 만무하다.
오히려 그것이 아니라 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금방 제지당하고 있다.
‘진짜 힘없는 부인으로 중원 무림에서 살아남기 빡세자너.’
동질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물론 심증이외다. 연 부인의 주장대로, 연 부인은 동기가 있을 뿐 심증이 존재하지 않소. 양 대인의 몸에서 독이 검출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오. 하나 강호의 동도들도 알다시피, 이 중원 무림에는 무색무취무미무형(無色無臭無味無形)의 독이 존재하오. 대표적으로 당가의 무형지독처럼 말이오.”
“무… 무형지독!”
“무형지독이라니!!”
“연 부인의 죄를 입증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연 부인 또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없는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외다.”
‘그게 시바 무슨 개소리야? 이 새끼들은.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야?’
“듣다 보니 기가 차 말도 나오지 않는구나. 내가 어찌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단 말이냐! 심지어 당가의 무형지독을 운운하다니. 본녀가 어찌 그런 독을 구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다!”
“청록표국을 운영하고 있지 않소! 수많은 물건들이 오고 가는 표국의 주인이니 당연히 그런 독들도 구할 수 있을 테지!”
‘뭐… 그게 말이 돼? 이게 맞아?’
이쯤 되면 말싸움할 기운도 없다. 너무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궤변에도 급이 있게 마련인데, 이건 궤변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개소리의 나열이다.
당연히 군중들이 혜검문 늙은이의 주장이 개소리라는 걸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와… 이… 미개한 새끼들… 와… 시바… 이 정도로 미개하다고?’
“저… 저 표독스러운 계집을 보게나!”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거짓말을 하는구나!”
‘와. 시바. 뭐? 표독스러워? 컨셉 잘못 잡았나? 피해자인 척해야 했나? 너무 당당한 것도 문제가 돼? 여기는?’
“그간 마을의 풍기를 어지럽히더니 드디어 선을 넘었구나!”
‘내가 시바 무슨 풍기를 어지럽혀? 풍기를 어지럽힌 건 니들 눈깔이지 내가 아니에요.’
유독 수준 낮은 군중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개함의 급이 다르다.
대륙은 그나마 말이라도 통하는 놈들이 태반이었는데, 여기 있는 놈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야 문맹들도 엄청나게 많을 테니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와… 진짜. 시바… 와… 어처구니가 없어서… 내가 진짜….’
애초부터 이 새끼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마 내가 애 하나 딸린 힘 없는 여자라는 것도 녀석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 중 하나일 터, 기본적인 시대 풍조가 그러했다.
고강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여협들이나 강한 위세를 가지고 있는 가문의 자제들은 당연히 대우를 받기야 하겠지만 아무 힘 없는 모용화연은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의 천덕꾸러기였고, 뭇 사내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악녀 포지션에 자리해 있었다. 청록표국의 성공 아닌 성공을 음해하는 이들도 많다. 뭐 사내들을 유혹했다느니 계약조건으로 뭐 누군가의 애첩이 되었다느니 하는 소문들이 유령처럼 떠든다.
애 엄마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본인들도 쟁취하지 못한 사업을 성공시켰다고 믿지 못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가십이었다.
그건 질투이기도 했고, 시기이기도 했다. 어디 객잔주도, 어디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놈들도, 모두들 내 성과에 놀라워하면서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도인처럼 꾸며 입고 있는 혜검장문인과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는 거다.
‘진짜… 개 미개하네… 진짜.’
차라리 이기영의 모습이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나 정파의 손을 두고 있는 본 장문인이 어찌 힘없는 아녀자를 핍박할 수 있겠소!”
“…….”
“장원의 문을 여시오! 장원을 조사하고 문제가 없다면 내 정식으로 사과하겠소!”
‘개새끼야. 증거 조작할 거잖아.’
“장원의 문을 열어라!!”
“연 부인은 장원의 문을 열어라!!”
“희대의 악녀로다!!”
잔뜩 흥분한 군중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아악!!!”
돌멩이도 날아 들어온다. 정확히 시바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온 돌멩이 때문에 몸이 옆으로 기운다.
‘피… 시바… 피나…’
분노로 일그러진 심 씨 자매들이 검을 뽑아 든 것은 당연지사.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이 사악한 계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