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672)
회귀자 사용설명서 1672화
중원무림빙의(77)
사태의 심각성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지만, 설마하니 녀석이 자진해서 이쪽에게 영약을 구걸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굉장한 기세로 말이다. 망원경이 없어 무슨 상황이 일어난 건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뜸 영약을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 초월자에 이른 강자가 나타났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꼬물이에게 있다는 사실 역시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녀석이 먼저 영약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성격상 ‘그 영약’을 먹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음이 분명, 단순히 모용화연을 지키기 위해서 방금과 같은 발언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믿을 수는 없지만 정말로 모용진천을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앞서 말했듯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알파메일의 기세가 느껴진다.
그 기세가 모용화연의 영약을 먹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간에 녀석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이 새끼… 진짜… 너… 꼬물이한테 정이라도 든 거야?’
“…….”
‘왜 이렇게 표정이… 진지해.’
“시간이 없다.”
‘진짜… 네 아들 같아?’
물론 의문을 해소할 시간은 없다. 도대체 녀석이 정확히 뭘 원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추측할 시간도 없다.
녀석의 말에 허겁지겁 품 안쪽을 뒤져본 것은 당연지사. 거의 대부분을 심 씨 자매들을 통해 보냈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하나를 챙긴 것이 유효했던 것이다.
유실되었을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주머니 속에 있는 목함이 잡힌다.
“환단이에요. 혹시 몰라서 가지고 왔었거든요. 어쩌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나머지는 전부 심 씨 자매들한테 보내서 남은 건 이것밖에 없는데.”
정신없이 말을 이어나가며 함께 목함을 열자.
“아….”
텅 비어 있는 목함이 눈에 비쳐온다. 황하에 빠졌을 때 유실된 것이다.
“…….”
“…….”
“아… 시바….”
“…….”
“시바… 진짜….”
“…….”
“아… 씨발!! 씨발!!! 진짜!!”
“…….”
“이, 이러니까 내가 미리 먹어 놓자고 했잖아요!! 꼴랑 현경 가지고 뭘!!! 먹으려면 진즉에 처먹을 것이지!!!”
“그만.”
“그만하기는 뭘 그만해! 시바!! 우리 꼬물이가 이 개새끼야!!!”
“그만하라고 했다. 후우… 후우….”
“…….”
“…….”
미친놈처럼 한바탕 이 구역을 뒤집어 놓고 싶었지만 묘하게 무거운 목소리가 자꾸만 이쪽의 성질을 억누른다.
‘이 새끼… 진짜… 왜 이래?’
다시 한번 천천히 녀석을 살펴본 것은 당연지사. 그제야 놈의 얼굴이 자세히 눈에 비쳐온다. 얼굴이 붉다. 약 기운을 완전히 해독하는 데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그 과정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에 열이 오르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언뜻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본인이 본인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뭐야. 뭐야?’
천천히 가까이 다가오는 녀석.
‘뭐야? 시바… 지, 지금 여기서.’
내 모습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 미친 새끼가 시바… 음양합일 하고 가겠다는 거야 뭐야. 그, 그럴 시간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것 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기도 하다. 두 노괴들이 버텨주기를, 진 군사가 우사인 볼트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것저것 생각이 깊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갑작스레 내 팔목을 덥석 잡아 오는 녀석, 심지어는 이쪽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인다.
“뭐!”
이후에는 천천히 입술을 이쪽의 목에 맞춰오기 시작. 단순히 입술이 아니라 놈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 직후….
“아!… 아악!”
잔뜩 흥분했는지 꽈악 이빨로 목을 깨무는 진 군사가 보였다.
“잠… 잠깐만… 잠깐… 아…아파! 시… 시바 아프다고요!”
심지어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도 않는 녀석. 너무나 시바 열정적으로, 또 게걸스럽게 모용화연의 목을 탐하고 있었던 터라 이 새끼가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녀석이 내게서 떨어지지 않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뭐야. 뭐야… 시바. 지금… 지금 마시고 있는 거야?’
녀석이 이쪽의 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 그 영약이나 음양합일만큼은 아니겠지만 모용화연의 피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새끼가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듯이 목에 달라붙어서 거머리마냥 피를 빨아대고 있는 모습은 충분히 당황스럽다. 심지어는 혓바닥으로 흘러내리는 피를 훑고 있다. 전생에 뱀파이어였던 것일까. 아예 살점이 뜯긴 줄 알고 걱정했는데 송곳니로 피가 흘러내릴 수 있는 구멍만 뚫어 놓은 모양이다.
“잠… 잠깐…아… 윽….”
“…….”
“군사님. 시바… 도대체… 언제까지… 처먹으려고… 윽!”
“…….”
“야! 야… 아! 윽….”
“…….”
“이제! 그만 좀 처먹어! 시… 시바!”
가슴을 퍽 밀친 이후에 눈에 비친 놈의 입이 피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보니 기가 찬다. 어처구니없지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 하지만 본인이 뭘 해야 하는지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출발하는 게… 좋겠군.”
“시… 시바 아프잖아요! 아니, 운기조식 같은 거. 안 해도 돼요? 소화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거 아니에요?”
“멍청한 놈.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그럴 여유가 있을 리가 없지.”
‘멋있는 척하지 말고 개새끼야 입부터 좀 닦고 말해.’
“입부터 닦아요.”
“이동하도록 하지.”
‘근데. 이거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나?’
어린 죽음의 피를 먹었던 정진호 같은 경우에는 효과가 곧바로 나타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12차원은 매커니즘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심지어 모용화연의 같은 경우에는 이기영과는 조금 다르다. 이기영의 경우에는 피를 섭취한 이후 사도가 되었던 녀석도 있었고, 곧바로 몸이 터져 버린 녀석도 있었다.
이게 혹시 진 군사에게도 악영향을 끼칠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딱히 그런 전조는 없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이쪽을 들고 달리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천으로 지혈하고 있는 내 목을 바라보는 것이 눈에 비친다.
“…….”
“…….”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는지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녀석.
‘약빨 제대로자너.’
“…….”
“위치 알려드려야 해요?”
“아니, 알려줄 필요 없다. 놈의 존재감이야 먼 곳에서도 느껴지고 있으니.”
“이제 좀 정신이 들어요?”
“처음부터 제정신이었다. 멍청한 놈.”
“그런 것치고는 아까 너무 멍하던데요. 그리고 시바 피를 달라고 할 거였으면 그냥 달라고 하면 되지. 남의 목은 왜 그렇게 쪽쪽 빨아대고 그래요? 어휴 시바 소름이 끼쳐 가지고… 지는 절대로 못 올라오게 하더니, 아주 지는… 군사님 때문에 시바! 현기증 나잖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개뿔. 입에 묻은 거나 좀 닦고 말해요. 뭔 시바 케첩이라도 먹는 것마냥 빨아먹드만.”
“…….”
“…….”
“지. 지금은 네놈과 쓸데없는 잡담을 할 때가 아니다. 네놈은 모용진천부터 살피고 지금 상황이 어떤지 계속 브리핑하도록.”
“그렇지 않아도 망원경으로 계속 보고 있었어요. 다행히도 노괴들이 제대로 버티고 있고요. 사실 형님 노괴랑 동생 노괴만 있었으면 조금 불안했을 텐데… 다행히 현경 고수 한 명이 전투에 합류했거든요. 무아성니(無我聖尼)라고… 형님 노괴 옛 정인처럼 보였는데, 이 누나 진짜 장난 아니에요. 사실 형님 노괴는 외팔이라서 견제만 간간이 해주고 있는 상태고, 본채는 무아성니(無我聖尼)예요. 검술이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
슬쩍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딱 진 군사의 말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무에 대한 이해도는 무아성니가 더 나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스펙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준신화 등급과 신화 등급, 현경과 생사경의 차이는 그만큼 크다. 현경 세 명이서 생사경 한 명에게 압도당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 매번 전투력 측정기로 예를 드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라파엘 세 명이 김현성 하나를 감당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물론 조금 더 전략적인 선택이 가능해지기야 하겠지만 딱 거기까지. 전투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유리한 쪽은 언제나 높은 스펙을 가지고 있는 쪽이다.
아니나 다를까 점점 밀리고 있는 두 노괴와 무아성니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형님 노괴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동생 노괴는 말년의 얻은 제자를 보호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무아성니 역시 점점 소모되고 있는 내공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만큼 눈앞에 있는 괴선은 강하다.
차희라와 거의 동수를 이루었던 광백노사와 동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패도적이고 불규칙스럽다.
초식을, 형을, 아예 버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별호처럼 기괴하고 이상하기 짝이 없는 공격들이다. 어찌 보면 진 군사와 이쪽이 가장 꺼림칙해할 상대가 아닐까.
결국, 장법을 맞고 피를 토하며 반대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무아성니의 모습이 보인다.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고, 두 노괴들은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괴선을 저지하려 손을 뻗고 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여기까지 들려올 정도의 굉음에 진 군사의 발걸음이 한층 더 빨라진다. 정말로 소화가 된 것인지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경지를 한 단계 더 찢었다는 걸 확연하게 알려주는 것만 같은 속도.
배경이 눈앞에서 휙휙 지나간다. 발이 빠르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짧게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 같은 독특한 신법이었다. 심지어 점점 빨라진다.
점점 녀석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한다. 온몸이 변태하고 있다. 그간의 진청영에게서 볼 수 없었던 존재감이 조금씩 조금씩 들어앉기 시작한다. 진 군사 역시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인지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몸을 움직인다.
눈동자부터, 손가락, 다리, 몸 안에 내공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내공이 거센 파도를 일으키며 미쳐 날뛴 이후에는….
마치 조용한 호수처럼 가라앉는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고, 그로 인해 생겨난 파동이 진 군사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후우….”
‘시… 시바….’
하지만 괴선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진 군사가?
머릿속을 읽은 것인지 진 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놈과 부딪치면, 모용진천을 데리고 도망쳐라.”
“네?”
“2할”
“뭐가… 2할이에요?”
“내가 놈을 이길 수 있을 확률이다.”
그리고….
“…….”
“…….”
“쿨럭… 쿨럭! 형, 형님… 절륜색마요.”
“절… 절륜색마 놈아!!! 네놈을 기다리느라… 쿨럭! 쿨럭! 지… 지쳤느니라!!! 왜 이제야 온 것이냐!!! 이 못난 것아!!! 흐어억!!!”
형님 노괴의 큰 소리를 뒤로하고, 괴선과 몸을 부딪치는 진 군사의 뒷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흐히히히흐힛! 오호라! 네가 그 절륜색마라는 놈이로구나.”
“…….”
“…….”
“저 멍청한 놈이 신세를 진 것 같더군.”
“…….”
“죽여주마. 개자식.”
“…….”
“…….”
“어디 해볼 테면 해보거라! 색마 놈아! 낄낄낄!!”
콰드드드드득!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