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725)
회귀자 사용설명서 1725화
중원무림빙의(130)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은 것 같아 보이는 눈빛이었다.
한껏 여유로운 척하고 있었지만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초조해 보인다. 이미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결심했지만 막상 이렇게 이쪽의 얼굴을 마주하니 긴장되는 것일까.
진 군사 같지만 미묘하게 진 군사 같지 않은 느낌… 본인도 본인에게 일어나는 이상 현상을 알고 있는지 모든 행동들이 부자연스럽다.
도박을 할 때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녀석이 이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확실히 그 기억이 충격적이기는 충격적이었던 것 같았다.
진청이라는 인간의 인격의 근간이 뒤흔들릴 수도 있는 커다란 사건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최선을 다해서 시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자너….’
왜 이렇게 애잔해 보일까.
“…….”
‘눈알 굴러가는 게 왜 이렇게 잘 보이는 거냐구… 젠장. 겨우 이런 걸로 멘탈이 흔들리면 어떻게 하는 거냐구….’
“…….”
‘아니… 꼬마라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작아 보이는 군사님이자너….’
진 군사의 명예를 위해, 역시나 꼬마 신랑 때의 기억은 잊어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것일까.
“뭘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냐. 이기영.”
“…….”
“젠장… 또 어려진 걸로 한 소리 하려는 모양이군.”
“…….”
“이전에 네놈이 작아졌을 때 내가 했던 말들을 돌려주기라도 할 생각이냐.”
“…….”
‘그래 주길… 바라고 있는 거겠죠….’
차라리.
차라리… 작아진 것으로 놀림받는 걸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상처를 들쑤시지 말았으면 하는 느낌인지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이 됐을 정도였다.
‘무슨 심정으로… 시바 여기에 와 있는 거냐고요. 군사님….’
작아진 꼬마 군사의 어깨를 보니 이 일을 그냥 넘기고 싶었던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여러 가지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녀석에게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서 꼭 들어야 하기도 했고….
‘하… 시바 한 소리 하고 싶자너….’
“…….”
‘놀리고 싶자너….’
다른 이유 없이, 평범하게 녀석을 골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 작아진 어깨를 더 작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뇌가 찌릿찌릿 울리는 것 같다.
이유 모를… 아니, 이유가 확실한 도파민이 분비된다. 꼬마 신랑이 했던 행동들을 복기해 주며 지금 당장 이죽이죽거리고 싶다.
네가 모련이가 죽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엉엉 울고 뽀뽀까지 한 거 기억나느냐고 이죽이죽이죽거리고 싶다. 욕탕에서 씻겨준 건 또 기억나느냐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내게 얼굴을 파묻고 코 했던 건 또 기억나느냐고 놀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시… 참아야 해… 참아야만 하자너…’
“도대체… 왜… 그렇게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거냐… 이기영.”
‘이 악물고 참아야 되자너….’
하고 싶은 말을 꾸욱 눌러 담은 채로 일단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나도 충격받을 진 군사를 위해서, 아니, 진짜로 녀석이 도망쳐 버릴까 걱정이 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그렇게….
힘들게 첫 마디를 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녀석도 조금 의문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일단은 안심하는 듯한 모양새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 곧바로 온 거잖아요.”
“편지는 이틀 전에 보냈다. 아무래도 네놈의 시비가 편지를 늦게 전한 모양이로군.”
“아. 그랬었나요? 반로환동했다는 건 진짜네요… 아니, 그전에 뭐 기억을 잃었다느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뭐예요? 세뇌는 또 뭐고요? 깨어난 지 얼마 안 됐다면서요. 그럼 도대체 그간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건데요? 아니, 지금 일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고 계신 거예요?”
“뭐?”
‘그래. 내가 편한 설정 하나 던져줄게.’
“군사님뿐만이 아니에요.”
“?”
“저도 기억이 안 나요.”
“?”
“저도 기억이 안 난다고요. 제가 스스로 지웠는지, 아니면 지워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이 비어 있는 부분이 있기는 있어요.”
“그게… 정말인가?”
“정말이니까 이렇게 이야기하죠. 지금까지는 제가 기억을 지운 줄 알았는데, 갑자기 군사님까지 뭐 머리에 문제가 생겼다느니 뭐니 하는 이야기하니까 이상하더라고요. 제가 스스로가 기억을 지우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요. 거기에 이런 이야기를 한 게 군사님뿐만이 아니에요. 제가 현성이도 훔쳐봤었는데… 현성이도 비슷한 말을 꺼냈었거든요. 저를 원래대로 되돌린다느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을 했었던 것 같은데… 정황상 제가 누군가에게 세뇌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물론 흘려들어도 상관없는 것 같기는 했고… 실제로도 반쯤 흘려듣기는 했지만 군사님까지 이러시니… 의심이 되더라고요.”
“…….”
“조금 타이밍이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고요….”
“…….”
‘머리 굴리는 소리 여기까지 들리자너.’
“그렇군….”
“그리고… 사실 저는 군사님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에요.”
“?!”
“뭘 그렇게 놀래요?”
“기억을 잃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부분 부분이 유실되었다고 이야기했잖아요. 전부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아니라고요. 확실히 장담할 수 있어요. 저는 군사님의 이 어릴 적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사마영 전에 누구에게 빙의되어 있는지도 알고 있고요.”
“그게…….”
“…….”
“누구인지… 기억이 나나?”
“모련이라는 시비였어요.”
“모련?”
‘아 군사님! 시바 연기력 실화냐고요!’
굳은 얼굴이 보인다.
“모련이라고 했나?”
‘그게 무슨 연기냐고요.’
심각한 표정이다.
“네.”
진중한 스탠스를 유지하는 표정이다. 너무 황당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연기였던 터라 내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심지어 웃음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도올신녀의 밑에서 일하는 시비였나 봐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요즘 난리기도 하고요. 모련이라는 시비가 갑자기 어느 순간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으니 도올신녀가 거의 막장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데… 사실 그럴 만도 했죠. 정황상 모련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제가 다른 몸에 빙의한 게 일단 그 첫 번째 증거고… 아니, 사실 딱히 증거가 필요하지도 않죠.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
“눈으로 확인했다… 이 말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련의 시신은 현성이가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요. 김현성이 모련을 죽인 건 아닐까… 아니면 의도치 않게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슬쩍 녀석의 표정을 살펴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었다. 김현성이 모련을 죽였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표정을 읽기가 쉽지가 않다.
이 새끼는 지금 내게 힌트를 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자신의 치부를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말을 이어온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다시 한번 이쪽을 떠보는 역질문이었다.
“모련이라… 그러니까 이기영 네 말은 네가 모련이라는 시비의 몸이었을 때 나를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이로군.”
‘진짜 피곤하게 하시네요. 군사님. 시바. 아니, 기억 안 난다고요. 덮어 드리겠다고요.’
“단순히 만난 적이었으면 기억을 했었겠어요? 옆에 붙어서 같이 다녔던 것 같았으니까 하는 소리죠.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건지, 어째서 죽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련은 분명히 꼬마 군사님과 만나서 몇 가지 일을 같이했을 거라는 게 제 추론이에요. 실제로 몇 가지 정보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거든요.”
“정보? 무슨 정보지?”
“모련은 팽가희, 그리고 심양대협과 만난 적이 있어요.”
“…….”
“심지어는 쓰로누스의 빙의체와도 만난 적이 있고요.”
“…….”
“진가의 현 가주와도 무슨 관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군사님까지 포함해서, 이 여섯 명이서 함께 활동했었던 것 같기는 한데… 현 진가의 분위기를 보면… 진가의 차남 역시 행방불명인 것 같더라고요. 군사님 그쪽에 사람들 있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도 조사 중인 것 같더군.”
“아… 그래요?”
“그래서, 또 무엇이 기억이 나지?”
“그냥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것 같아요. 전부 다 흐릿하고요. 솔직히 다른 기억은 지금 당장 필요 없는 것 같은데….”
“…….”
“모련이 어떻게 죽었는지, 당시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가장 의문이기는 해요. 만약 제가 스스로 기억을 지웠다면, 어째서 지웠는지도 궁금하고요.”
그러니까 어서 빨리 이야기해 보라는 듯이 슬쩍 압박을 해봤지만….
‘하. 답답하네. 진짜.’
아직도 녀석은 요지부동이다. 당연히,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계산을 하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모련의 죽음에 대한 비화를 풀어도 되는지, 만약에 푼다면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이걸 정말 말하는 것이 맞는지. 말한다면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뭐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마 진 군사가 가장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모련에게 얽힌 사건이 아니라… 모련의 죽음에서 일어난 자신의 치부라고 본다. 엉망진창으로 울부짖으며 사랑을 외치던 꼬마 신랑의 모습 말이다.
‘적당히 하고 그냥 이야기해요. 그냥 시바.’
이를테면….
‘뭐… 나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현성이 관련된 건 아닌 것 같더군….’
라든가.
‘으윽… 머리가… 아파오는군… 잠깐… 네놈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라든가 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힌트를 주는 것 정도는….
‘솔직히 어렵지 않잖아. 이렇게 살 구멍을 많이 만들어줬는데…’
혹시 이 새끼 이게 함정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모든 빌드업이 자신을 나락으로 빠뜨리려고 하는 이기영의 계략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마치 지뢰밭 한가운데 자리한 것처럼 조심스럽게 지뢰를 찾아 나가며 내게 정답을 알려주는 과정을 거치려고 하는 걸까.
‘그래… 너무 답답해하지 말자.’
그렇지 않아도 심신미약 상태이기도 했고… 이렇게 용기 내 찾아온 녀석을 다그치고 압박하는 것은 좋은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아직 대화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 충분히 시간을 주는 것이 옳다. 일단 다른 이야기부터 하면서 말이다. 내가 얼마나 녀석을 신뢰하는지 깔아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뭐 사실 중요한 건 따로 있어요.”
“…….”
“제가 회귀자라는 사실이겠네요.”
“…….”
“27번이에요.”
“뭐라….”
“자그마치 이번이 27번째라고요. 그 쪽지 기억하세요?”
“무슨….”
“군사님을 믿으라는 쪽지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었나요?”
“…….”
“아마 26번의 회귀 이후에 내린 결론일 거예요. 적어도 12차원에서는 군사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 말이에요.”
“…….”
“현성이처럼… 이전의 회차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기억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의지는 이어지고 있는 것 같네요. 혹시 군사님은 알고 계셨나요?”
“…….”
“만약 이 일을… 그러니까 이 계획을 혼자가 아니라 군사님과 함께 설계한 것이 맞다면… 어쩌면 군사님에게도 그 의지가 남아 있을지도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그 의지는 불현듯 떠오른 기억이나… 꿈 같은 형태로도 비쳐질 수도 있고요.”
“…….”
“혹시… 기억나는 게 있나요?”
멈칫하던 녀석의 입에서….
“…….”
갑작스레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지….”
“네?”
“지랄하지 마라!!! 이기영!!!!”
‘아… 아니, 이 새끼 왜 이래?!’
“지랄하지 마라!!! 지… 지랄하지 마라!! 이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