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무림으로(2)
WH-7팀이 서울로 귀환했다.
그들은 돌아오자마자 정신이 없었다. 수많은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고, 방송에서는 연일 그들의 업적에 대해 칭송했다.
-평양 탈환! 북한과 국교 재개!-
누가 강력한 몬스터를 잡았네, 어느 게이트를 파괴했네, 그런 흔한 소식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서울 전체가 들썩이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한 반응에 WH-7팀 직원들은 어깨에 뽕이라도 넣은 것 같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평양을 떠날 때요? 정말 엄청난 환송인사를 받았죠.”
“의장대 사열에, 합창단에, 울면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던 주민들···. 기자님도 그걸 보셨으면 입을 못 다무셨을 겁니다.”
“하하. 저희야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대인은 그들이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라며 적극 권장했다.
정작 본인은 귀찮다며 모든 인터뷰를 왕구호에게 떠넘겼지만 말이다.
TV에 왕구호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아, 네, 그게···.
어느새 7팀의 얼굴이 된 왕구호는, 백영희가 잡아준 인터뷰며 행사에 참석해 길드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맡았다.
좀 답답하긴 해도, 항상 자신감 넘치고 오만한 초인들만 봤던 시민들은 순박한 청년인 왕구호에게 호감을 느꼈다.
-저, 저희가 평양 시민들을 도우면서 느낀 점은, 그,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영웅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흐암. 자식. 밤새 그렇게 인터뷰 연습을 하고도 더듬네.”
대인은 TV에 나온 왕구호를 보다가 채널을 돌렸다.
그는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었는데, 소파 앞 테이블에는 먹다 남긴 치킨이며 피자, 야식이 가득했다.
“쿠울···.”
그리고 대인의 옆에는, 릴리가 대인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잠들어 있었다.
쿡쿡. 대인은 릴리의 볼을 찔렀다.
“야. 잘 거면 방에 가서 자.”
“쿠울···.”
“어휴.”
대인은 릴리를 안아서 일으켰다. 방에 데려가 침대에 반듯이 눕히고,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줬다. 릴리가 뒤척이며 이불을 걷어찼다.
“···이게 진짜.”
대인은 계란말이처럼 릴리를 이불로 돌돌 말았다. 소녀는 답답한 듯 애벌레처럼 꿈틀거렸지만, 끝까지 깨어나지는 않았다.
대인이 작게 말했다.
“꼬맹이. 나 없는 동안 말썽피우지 마라.”
대인은 릴리의 머리맡에 편지 한 장을 놓아두었다. 그리고 소녀의 통통한 볼을 가볍게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우웅···.”
아마 깨어나면 한 동안 난리를 피울 것이다.
치사하게 혼자서 무림으로 갔다고 말이다.
‘무림은 널 데리고 다닐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거든.’
가이아 대륙이야 꼬맹이의 부모님을 찾기 위해서 같이 갔지만, 무림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혼자 갔다오는 게 편하지.’
대인은 그렇게 판단했고, 오늘 하루종일 릴리와 놀아주며 체력을 빼서 꿀잠을 자게 만들었다.
‘···회귀한 후로 가장 힘든 작전이었어.’
꼬맹이의 체력은 트롤 저리가라였다.
대인은 자기 방으로 가서 미리 싸둔 가방을 메고, 검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다.
서울로 돌아 온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도 길드 앞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스르륵.
대인은 을 사용해 인파 사이를 헤치고 나왔다.
‘슬슬 나는 이제 현장에서 빠져야지.’
조만간 7팀은 왕구호를 팀장으로 재편할 것이다. 전에 대인이 건네준 리스트를 통해 백영희가 팀에 새로운 초인들을 영입 중이었다.
최상급 탱커인 왕구호.
최상급 딜러인 시루떡.
여기에 새로운 신입 초인들이 추가되면, 대인은 굳이 현장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뭐, 본인이 가끔 나가고 싶을 땐 나가겠지만.
‘어제 재단 설립 이야기도 다 끝냈고.’
대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재단을 하나 만들 생각이었다.
재단으로 할 수 있는 사업 몇 가지를 구상했고, 길드 변호사를 통해 법률적인 자문을 구했다.
그가 무림에 가 있는 동안, 나머지 자잘한 일은 백영희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꼬맹이야 며칠 난리를 피우겠지만 학교 가서 친구들 사귀면 금방 괜찮아지겠지. 언제까지 사냥터만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릴리는 다음 주부터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아직 호적이 없어서 정식 입학은 안 됐지만, 길드가 재단으로 있는 학교라서 일단 수업은 같이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조만간 이계인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그 문제도 해결되겠지.’
릴리가 가이아 대륙 출신이라는 건, 이제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대인은 더 이상 숨기지도 않았다.
‘아브락사스가 꼬맹이 옆에 남아주기로 했으니 별 일 없겠지.’
아브락사스도 무림세계에 흥미를 느꼈지만, 나중에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에 이번에는 지구에 남기로 했다.
-그럼 돌아올 때까지 릴리는 내가 맡아줄게. 아직 지구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잔뜩 있으니까-
덕분에 대인은 안심하고 혼자 무림으로 간다는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두 달.
대인은 두 달만 무림에 가서 창천신검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이류무공과 일류무공도 몇 개 구해오고 말이다.
물론 길드에는 외국에 다녀온다고 말했다.
어느새 로로우 자치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기 전에 처리할 일은 다 했고···. 수련도 할 만큼 했고.’
북한에서 지낸 한 달 동안, 그리고 돌아온 후에도 대인은 틈틈이 파천신공을 수련했다.
그는 이제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무림.
사람 죽이는 기술만큼은 그 어느 차원보다 발전한 자들이 사는 곳이었다.
대인은 머릿속에 무림의 정보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십대 고수. 그 이상만 피하면 돼.”
무림인들은 순위 매기길 좋아했다.
천하삼절이니, 십대고수니, 구룡삼봉이니, 천하 백대 고수니 등등.
그 중에서 백대 고수에 이름이 언급되는 이들은 강기를 다룰 수 있었다.
그들은 대인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약한 자들이었다.
‘무공 말고 다른 능력까지 동원하면 백대 고수 대부분은 이길 수 있어.’
십대 고수는 그 이상의 괴물들로, 대인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설령 이긴다고 해도 팔다리가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그건 절대 사양이었다.
‘어둠까지 사용할 수 있으면 십대고수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대인은 을 사용할 수 없었다.
아귀가 최상급 정령 프로스트를 먹고 깊이 잠들어 버린 탓이었다. 그 후로는 불러도 대답도 없고 어둠도 쓸 수 없었다.
“뭐, 다 소화시키면 깨어나겠지.”
대인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설령 십대고수라고 해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도망치는 것은 문제 없었다.
그러나 만약 천하삼절과 싸우게 된다면?
대인은 잠깐 상상해보고 곧 고개를 저었다.
“만날 리가 없지.”
전생에서도 10년 이상 무림을 왔다 갔다 했지만, 천하삼절은커녕 십대 고수를 본 것도 딱 한번 뿐이었다.
대인은 쓸데없는 걱정을 털어버리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창문 하나 없이 완벽하게 차단된 컨테이너 창고 하나가 보였다.
이 숨겨진 창고.
대인은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창고 내부.
수 미터 높이의 거대한 금속기둥 5개가 원형으로 세워져 있었다.
치직! 치지! 치지직-!
기둥에는 새파란 마법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문자가 빛나며 기둥들 사이로 마력이 오갔다.
그리고 다섯 기둥의 중심에는,
우우우우웅!
무림세계와 연결된 게이트가 비활성화된 상태로 대기 중이었다.
“대인님!”
차원 터미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키리가 대인을 향해 걸어왔다.
“오셨군요. 이동 준비도 다 끝났습니다.”
키리는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기술자였다. 과학과 마법기술이 총망라된 차원이동 기술을 개발했다는 자부심이 그의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그 옆에는 아브락사스도 있었다. 그녀는 마법적 지식을 이용해 차원터미널을 만드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릴리는?”
“재워두고 왔지. 나 혼자 간 거 알면 난리칠 텐데. 잘 좀 다독여줘.”
대인의 말에 아브락사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노력은 해보겠지만, 널 쫓아서 무림으로 가겠다고 할지도 몰라.”
“설마···. 그럼 제발 좀 말려줘라.”
대인은 터미널 앞에 섰다. 키리가 그에게 다가와 동전처럼 생긴 물건을 건넸다.
“이건 귀환 장치입니다.”
500원짜리 동전만한 금속이 투명한 케이스 안에 들어 있었다. 동전 가운데는 역삼각형 형태의 버튼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고 마력을 주입하시면 됩니다. 그럼 1시간 이내에 귀환 게이트가 열릴 겁니다.”
대인은 귀환 장치를 품속에 넣자, 키리가 이번에는 작은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이건 위치추적기 겸 통신아이템입니다.”
“통신장비? 차원 간에는 통신이 안 될 텐데?”
대인이 의아하게 묻자, 키리가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혹시라도 대인님께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대인이 무림에 가서 실종될 경우, 지구에서 수색대를 보내 찾기 위한 수단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대인은 피식 웃었다.
“고마워. 이렇게까지 신경써주고.”
“아닙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걸요.”
그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지, 대인은 훗날 깨닫게 된다.
우우우우우웅!
키리가 기둥 옆에서 버튼을 조작하자, 무림행 게이트가 빛나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대인은 게이트 앞에 섰다.
칙칙한 회색빛이던 게이트가 점점 생기 넘치는 파란색으로 변했다.
우우우우웅!
키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무림 쪽에는 고정게이트가 없기 때문에 자석효과(magnet effect)가 발생할 겁니다.”
자석효과란, 예를 들면 대인이 소림의 불상을 가지고 있으면 소림 주변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아지는 효과였다.
“응. 알고 있어.”
대인은 가방 깊숙이 검황비록을 넣어두었다. 게다가 검황의 무공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익혔다.
아마 높은 확률로 검황과 관련된 장소로 이동할 것이다.
‘이왕이면 창천신검이 있는 장소로 바로 떨어지면 좋겠는데.’
일이 쉽게 풀리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란게 그렇게 만만하게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우우우우우웅!
터미널의 에너지가 다 충전되며, 게이트가 완전하게 열렸다.
대인은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갔다 올게.”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올 때 선물 가져와! 신기한 걸로!”
파아아아앗-!
눈부신 빛과 함께, 대인의 모습이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
“후우···.”
맑은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대인은 깊게 호흡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동양풍으로 지어진 작은 집들이 보였다. 드문드문 지어진 집들 사이로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무기를 차고, 단전에 마나를 지니고 있었다.
“제대로 왔네.”
이곳은 무림이었다.
그리고,
“엄청 촌동네네.”
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곳 시간은 초저녁이었다.
‘일단 묵을 곳부터 찾자.’
대인은 가까운 사람을 붙잡고 객잔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상대는 허리에 검을 찬 중년 사내였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혹시 이 근처에 객잔이 있습니까?”
“이 동네 처음이슈? 여기 객잔이라고는 저어기 진 노인이 하는 곳 하나요.”
사내는 경계하는 시선으로 대인을 바라봤다.
어째 입은 옷도 특이하고, 등에 멘 가방이며 검도 하나같이 낯선 것뿐이었다.
대인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정파의 후기지수처럼 포권도 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소생 강호초출이라 여기저기 발 가는 데로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무림인들은 ‘강호초출’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그리고 ‘선배님’ 소리에는 환장했다.
우연한 시비로 주먹다짐을 벌이고, 술 한 잔 걸치고 화해하고,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며 의기투합하고,
그러다 마음이 맞으면 복숭아나무 찾아가서 절하고 의형제를 맺는 놈들이 무림인이었다.
‘의형제까지는 아니지만, 술 정도는 함께 먹으면서 정보를 좀 얻어야지.’
대인은 검은 속내를 감추며 건강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사해가 동도라 하였는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통성명이나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는 백가검문의···.”
그러나 사내는 대인이 기대한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아, 그러슈?”
퉁명스레 말한 사내는 찬바람이 날 정도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그 매정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인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 이리 인심이 야박해?”
촌동네라 그런가. 그때랑 이때는 문화가 다른 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대인은 사내가 말한 객잔을 찾아갔다.
“어서오십쇼~ 어이구. 처음 보는 얼굴이구만. 이쪽으로 오시오.”
덩치가 크고 인상이 서글서글한 노인이 대인을 맞이했다. 노인은 대인을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했다.
15~16살 정도 돼 보이는 점소이가 행주로 탁자를 닦으며 말했다. 어디 아픈지 인상이 창백한 녀석이었다.
“뭐 드릴까요?”
이런 시골 객잔에서 기본 메뉴 이상을 시키는 건 사치였다.
“소면이랑 만두 주시오. 아, 죽엽청도 한 병 주고.”
잠시 후, 객잔 주인인 노인이 직접 음식을 가져오며 말했다.
“손님. 묵고 가실 거요?”
“예. 하루이틀정도···.”
대인은 말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객잔 안에는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마을에 하나 뿐인 객잔이라더니, 촌이라 객잔에 오는 사람도 없는 모양이었다.
“꽤 한적한 곳이군요.”
“여긴 외지인들이 거의 안 오는 촌이요. 하루에 손님이 세 명이나 오면 다행이지.”
‘그런데 잘도 장사를 하고 있네.’
노인은 아예 대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아하니 무림인 같은데. 어디에서 오셨소?”
“광동의 백가검문 출신입니다. 강호초출이라 여기저기 유랑하듯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대인은 미리 생각해둔 신분을 술술 읊었다.
무림에는 수천 개 이상의 문파가 있고, 광동은 그 중에서도 변방이었다.
적당히 하나쯤 만들어 낸다고 해서, 촌락의 노인이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노인이 넉살좋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무림인이셨군. 키도 크고, 몸도 튼튼해서 보여서 한눈에 알아봤소이다. 나도 소싯적엔 무공 좀 배웠지.”
객점 주인은 노인치고는 허리도 꼿꼿하고 팔뚝도 두꺼웠다. 골격 자체가 두껍고 튼튼한 사내였다.
‘그래도 절정고수는 좀 심한데.’
대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방금 나온 만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셨군요. 음. 만두가 맛있네요. 그런데 제가 지도도 없이 발 닿는 대로 걷다보니 그러는데···. 이 마을 이름이 뭡니까?”
“뭣? 그것도 모르고 왔단 말이오? 푸하하하!”
노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오랜만에 재미있는 청년을 봤다며 죽엽청 한 병을 서비스로 줬다.
물론 그 죽엽청은 노인과 대인이 나눠 마셔야 했다.
“여긴 길림성에서도 촌 동네요. 어쩌다 이 먼 곳까지 왔는지 모르겠는데···.”
노인은 오랜만에 손님이 무척 반가운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할아버지. 술은 적당히 드세요.”
“어이구. 알았다 이놈아.”
“늘 말로만 알았다고 하시잖아요.”
“글쎄 알았대두.”
노인의 손자로 보이는 점소이가 한숨을 내쉬더니, 빗자루를 들고 가게를 슥슥 쓸었다.
대인은 별 생각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하마터면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가 손주를 바라보는 걸 느낀 노인이 말했다.
“음? 젊은 양반. 왜 그러시오?”
착각일까. 한 순간 노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고 느낀 것은.
‘착각일 리가 없지.’
대인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좀 피곤해서 그런가 봅니다. 오늘은 그만 마시고 쉬어야겠네요. 방 있죠?”
“물론이오. 내 가장 좋은 방으로 줄 테니 따라오시오.”
대인은 노인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날개처럼 펼쳐진 노인의 광배근이 위협적으로 꿈틀거렸다.
쉬지 않고 단련하지 않으면, 절대 저 나이에 저런 근육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런 촌 동네 객잔 주인이 절정고수라고? 게다가···.’
힐끔.
대인은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청소 중인 점소이를 바라봤다.
‘역시 맞네.’
점소이는 별 생각 없이 빗질을 하고 있었다. 그것만 보면 아무런 위화감도 없었다.
하지만 무림인은 사소한 움직임에서도 평소에 익힌 무공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그런 일상생활의 움직임만으로 상대가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아는건 지극히 어렵지만,
‘상대가 나랑 같은 무공을 익혔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점소이가 팔을 뻗는 자세, 발의 움직임.
어딘가 어설프고 조금씩은 다르기도 했지만, 대인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 녀석. 검황의 무공을 익혔어.’
절정고수인 객잔 주인과, 검황의 무공을 익힌 점소이.
방으로 들어온 대인은 짐을 풀며 중얼거렸다.
“이곳에 떨어진 이유가 있었네.”
이 객잔에서 며칠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